<2화에 이어서> 제일 행복하고 다정하고 그리운 사진, 이제 누가 남아있나(?) 둘러보아야 한다.
사진은 먹기 시작, 무엇을 먹어도 참 맛있을 때이지! 수영이가 나무 그늘에 가려 잘 안 보이네.
수영이는 이름을 졸업 후 석영으로 바꾸었고 기원에서 한 번 만났는데 그때는 아직 유명해지기 전이었고 흑석동 집으로 술을 사가지고 가서 마셨던 적이 있다. 흥선이는 졸업 후 동대문 지나 신설동 쪽으로 가면서 왼쪽 길 첫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 넓은 마당 가운데에 큰 대문 있는 집이었다. 또 겨울에는 동대문 운동장 안의 수영장에 물을 조금만 넣고 얼면 스케이트장이 되어 입장료를 받고 들어 갔었다. 햇볕이 들어오면 얼음이 녹을까 봐, 그늘막을 만들었는데 수영장 위를 천으로 덮으면 찬 공기가 들어오지 못해 얼음이 얼지 않으니까 줄을 치고 가림막을 내려뜨리는 방법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봉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 번호가 나보다 하나 앞으로 시험 때는 번호순으로 앉으니 내가 뒤에 앉아 가끔 덕 좀 보았다. 성휘네는 명동 입구 긴 골목에서 숙박업을 하셨다. 시험 때는 함께 공부한다고 성휘네로 갔었는데, 사실 오히려 더 공부할 수 없었지. 고등학교 때 밴드부 악장으로 지휘를 맡았었다. 행진 때에는 맨 앞에서 지휘봉을 흔들어 박자를 맞추며 가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었다. 병훈이는 우리보다 더 착하고 순진 착했지. 특히 찜뿡(고무공을 위로 올렸다가 주먹으로 치고 나가는 삼각형 구장 약식 야구)할 때는 공을 치고 나가는 공격이나 수비 때 날아오는 공을 잘 받아내는 실력 발휘를 잘했다. 찜뿡은 내가 제일 못했지. 내가 공격하러 나가면 모두 전진 수비를 하곤 했으니까! 나는 공을 위로 올렸다가 주먹으로도 잘 치지도 못하고 멀리 날려 보내지도 못했다. 내가 잘 못하면 친구들이 “걱정 마, 괜찮아!” 또는 영어로 “Never mind!”라고 하며 김대건이 응원도 많이 해 주었었다. 장소는 중학교 건물 사이 좁은 곳에서 점심 먹고 많이 했다. 짐뿡하면 이만규를 빼놓을 수가 없다. 공격 땐 치기도 잘했고 경기 중 날아오는 공을 한 손으로 잡아내는 수비도 엄청 잘했다. 김대건은 2003년 동창회원명부에는 '재미'라고, 이만규는 캐나다 주소가 정확하게 나와 있기는 하네.
중학교 2학년 가을 소풍 뒷줄 황수영(석영) 유정민 앞줄 박흥선 이승휘 박봉기 조병훈
모두 사진기를 향해 얼굴을 향하고 있었으니, 뒤에서 수영이가 장난치는 것도, 유정민이 병훈이 모자 위에 과자를 올려놓은 것도 모르고 웃음 짓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1956년 봄, 경복중학교 입학시험 봐서 합격한 자만 입학이 되는 시험제도가 있던 시절이다. 국민학교 6학년이 되면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학교마다 공부를 늦게까지 시켰다. 덕수국민학교 수송국민학교 종로국민학교 등등 학교마다 입학률을 높이기 위해 엄청 신경 쓰던 때였지. 입학하고 나서 보니 수원 매산국민학교 등 에서도 몇 명이 들어온 것을 알고 사실 많이 놀랐었다. 또 수원에서 아침마다 등교했는지는 그 당시 물어본 것도 같은 데 기차 타고 서울역까지 와서 다시 버스로 등교하려면 시간상 최소한 90분 이상 걸렸을 것 같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기야 서울에서도 먼 곳에서 오려면 1시간 이상 걸렸을 것이다. 입학시험 치루고 발표날 내가 직접 합격자 명단 게시판을 보러갔었다. 합격자는 성적순으로 404 임운학이 맨 처음으로 나왔다. 이름은 세로쓰기로 수험번호와 함께 쓰였다. 앞에서부터 훑어가며 내 이름을 찾으니 나온다. 중간 조금 전이다. 그러면 이제는 집으로 또 뛰어간다. 방을 보러 갈 때는 합격 여부를 모르니 붙었을까 떨어졌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두근두근 쿵쾅쿵쾅 했었는데 올 때는 합격의 기쁨에 신나서 빨리 뛰어가고 싶은 마음에 숨차는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우리 형제 8남매는 나이 차이가 많아 위 4명과 아래 4명이 따로 어울렸었다. 4명과 4명 사이에 형이 하나 어렸을 때 고환암으로 일찍 돌아가셔서 간격이 5년이 되었었다. 큰형이 1930년 생이시고 막내가 1949년이니 19년 나이 차가 나는 것이다.
첫댓글 대단한 기억력이네요! 친구 한명한명에 얽힌 추억이 재밌고 부럽기도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는 김 형에게 감사부터 드립니다.
옛날 이야기는 그래도 기억에 남아있는데 어제 오늘 이야기는
정말 오락가락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고 사진과 글로 남길 수 있는 시간과 마음에
저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여러 친구들에게도 뜻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