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세상에 태어난 지 열흘쯤이다. 배꼽에 달려 까맣게 말라가던 탯줄이 떨어졌다. 아기의 일부였던 탯줄은 생명이 시작된 순간부터 하나로 연결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인간의 생명은 태로부터 출발한다. 더욱이 엄마와 태아를 이어주는 탯줄은 의미가 있고 귀하게 여겨 옛날부터 지금까지니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민가에서는 땅에 묻기도 하고 태워서 강물에 띄워 보내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어른들은 아기를 출산하면 태를 볏짚으로 싸매고 새끼로 묶어 돌을 매달아 조심스럽게 바다 깊은 곳에 던지는 것을 보았다. 바다 깊이가 얕아지는 썰물 때면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탯줄이 간혹 보이기도 했다.
전국 최대의 태실 유적지인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에 갔다. ‘성주’라면 꿀맛 같은 참외로 유명한 곳인 줄 알았는데 왕실이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한 태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봉안된 자리는 인간이 자연에 머무는 듯 편안해 보인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변에는 소나무가 빙 둘러 서 있다. 태실 쪽으로 가지를 뻗친 소나무에서는 범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왕실 자손들의 태를 봉안한 명당 중의 명당이라서인지 그 기가 눈으로, 느낌으로 전해진다. 이곳을 다녀가면 맑고 힘찬 기운을 가득히 받아 임신이 잘되며 건강하고 훌륭한 아기가 태어난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해설자의 설명이 헛말이 아닌 듯싶다. 세종서적 18 왕자의 태항이 나란히 모셔져 있고, 조금 떨어졌지만,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곳에 비운의 단종태항이 외롭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을 바라보는 마음이 애잔하다. 세월을 견뎌온 석물들을 보는 순간 600년 전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선 왕실은 먼 곳 성주까지 명당자리를 찾아서 태실을 만들었다. 왕실은 그들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석실을 만들어 왕자들의 태를 봉안하는 태실을 만들었나 보다. 수양 대군의 즉위를 반대했던 다섯 왕자들의 석물은 파괴된 채로 그때의 피비린내 나는 왕실의 모습이 고스란히 짐작된다. 파손된 석실은 연꽃잎이 새겨진 움푹 팬 받침만 남아있다. 줄지은 석물들이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맞고 서 있다. 파인 받침에도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다. 억울하게 죽은 왕자들의 슬픈 눈물인 듯 쓸쓸하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참 야무지다. 아기의 성장 과정에 사용했던 모든 것들을 기념으로 소중하게 간직한다. 태아의 생명줄인 탯줄로 도장을 만들기도 하고 태어나 처음 입었던 배냇저고리와 함께 액자를 만들어 장식하는가 하면, 예쁜 보관함에 넣어둔다. 먼 훗날에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주는 유산으로 이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있을까 싶다.
아이들이 출산 후 나는 태를 별 의미 없이 무심히 버렸다. 태실을 보는 순간 자식에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비에 젖은 옷처럼 후줄근해지는 것 같다.
몇 해 전, 탯줄을 냉동은행에 보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관 비용이 일반인에게는 부담스러워 아무나 할 수 없다고 했다. 현대 의학에서는 ‘제대혈’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난치성 치료제로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탯줄을 냉동 보관했다가 백혈병이나 척추마비, 신경계 손상, 간 경화, 파킨슨병, 당뇨 등 다양한 난치성 치료제로 개발한다. 탯줄이 희망이 꺼져가는 누군가에게 생명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이란, 뱃속에서 탯줄로 내 모든 것을 부여받은 분신이다. 간혹 육신의 고통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일은 자식일지라도 냉정하게 거절한다지만, 탯줄로 이어진 부모 자식 사이보다 다 귀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자식 일이라면 언제든지 불나방처럼 뛰어들 기세다.
딸의 산후조리를 두 달간 해주었다. 도우미 역할은 만만치 않다. 산모 음식 챙기랴, 신생아 목욕에 개구쟁이 첫째 치다꺼리에, 동생에게 빼앗긴 엄마 품을 차지하겠다고 징징거리는 둘째 돌보랴, 빨래는 몇 번을 돌려도 끝이 없다. 딸에게 내색 못 하는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래도 나에게서 딸로 해서 손녀로 이어지는 탯줄의 힘이 나를 버텨내게 했다. 육신은 고통스러워도 마음이 기쁜 이유다. 자식을 향한 애정은 영원히 자를 수 없는 마음의 탯줄이 아닌가.
부산으로 돌아온 후, 손녀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이 궁금하다. 이런 엄마를 위해 딸은 사진과 동영상을 카톡으로 전해준다. 휴대폰을 열어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손녀의 생명을 유지하던 탯줄은 떨어졌지만, 이제는 엄마의 젖줄로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얼굴 윤곽이 또렷해지고 있다. 목욕하는 동영상에는 탯줄이 떨어진 배꼽이 반달처럼 예쁘다. 옹알이에 환하게 웃기도 한다. 손녀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나도 따라 웃고 있다.
밤낮없이 딸의 산후조리를 해줄 때는 몸이 고되었다. 두 달 동안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안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았다. 지금은 카톡으로 보내 준 손녀 사진을 보며, 몸이 편하다고 마음까지 편할 수는 없다. 이런저런 간섭 문자를 보낸다. 카톡 산후조리 도우미는 일 년 넘게도 해줄 것만 같다.
시도 때도 없는 카톡 소리가 반갑다. 그동안 힘들었던 시름들이 녹아 버린다. 살아오면서 고통스르운 일이나 기막히게 슬펐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가. 내가 언제, 이처럼 가슴이 벅찬 일이 또 있었나 싶다. 세상 모든 행복이 지금 내 가슴속에 가득한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털어 버리고 돌아온 것이 딸에게는 미안하기만 하다.
손녀 배꼽에서 떨어진 마른 탯줄을 소중하게 포장하던 딸의 손길을 떠올려본다. ‘세종대왕자태실’이 왕가의 번영과 맑은 기운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랐듯이, 엄마와 탯줄로 이어저 세상에 태어난 예쁜 손녀가 아무 탈 없이 맑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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