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상과 충신, 어진 장수와 용감한 병사들이 다 여기에서 나왔다.” 신라 시대 김대문이『 화랑세기(花郎世記) 』에서 신라의 화랑 제도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표현하는 – 옮긴이 아사달. 아래 ‘옮긴이’) 말이다. 과연 그런 평가에 걸맞게 김유신을 비롯하여 김흠춘, 죽지, 사다함, 원술, 관창 등 신라의 영웅들이 모두 화랑 출신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용맹무쌍한 화랑은 아름다운 여인을 따르는 청년들에게서 시작되었다.
『 삼국사기 』에 따르면 진흥왕 때 화랑 제도가 시작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화랑은 그 이전에도 있었으며, 다만 진흥왕은 그것을 적극 권장하고 제도화한 데 불과하다. 그것은 당시 활발한 정복 사업을 벌이던 국가 시책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했다.
화랑은 원래 ‘남모’와 ‘준정’이라는 어여쁜 처녀들을 ‘원화(源花)’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받들던 청년의 무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에도 위/아래가 있는 법, 두 처녀는 당연히 서로를 질투하게 된다. 마침내 준정이 남모를 집으로 꾀어 들여 술을 먹인 뒤 남모가 취하자 강물에 빠뜨려 죽이는 비극이 일어난다. 남모를 따르는 청년들에게 그 사실이 발각되자, 준정도 사형에 처해지고 원화 제도는 법으로 금해진다.
하지만 진흥왕은 이내(곧 – 옮긴이) 그 제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번에는 남자를 뽑아 화랑 또는 국선(國仙)이라 부르고 낭도들이 화랑을 따르게 만든다. 좋은 가문(집안 – 옮긴이)의 청년 중에(가운데 – 옮긴이) 덕행이 있는 자를 선정하여 곱게 치장시키고 화랑으로 만든 것이다.
이에 반해 고구려(고구리/전기 고리 – 옮긴이)의 선배 제도는 훨씬 남성적이다. 고구려의 선배는 신라의 화랑보다 시대적으로도 훨씬 ‘선배’였고, 화랑의 다른 이름인 국선은 분명 고구려의 선배를 좇아 생긴 이름임에도 불구하고(‘불구하고’는 빼야 문법/어법에 맞다 – 옮긴이) 화랑에 비해 선배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하기사 역사(순수한 밝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는 승리자(이긴 이 – 옮긴이)의 기록이기 마련이므로, 승리한 신라의 입장에서는 패한 고구려의 선배 제도를 화랑에 견주어 볼 리가 없다.
선배라는 이름은 이두로서, 한자로는 선인(先人 또는 仙人)이라 쓴다. 사냥과 가무, 체력 단련 등의 여러 가지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을 ‘선배’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국가(나라 – 옮긴이)에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면서(살아가면서 – 옮긴이) 무예와 학문을 갈고 닦았다. 화랑과 마찬가지로, 전시(전쟁이 벌어진 때 – 옮긴이)에는 이들이 자체 부대를 조직하고 전장에 나가 정예군으로 활동했다.
화랑이 여성에 기원을 둔 것에 알맞게 귀족 출신에다 외모와 몸치장을 중시하는 여성적인 속성을 지닌 데 반해, 선배는 충직하면서도 거친 남성미를 짙게 풍긴다. 우선 선배의 외모부터가 화랑과는 아예 딴판이다. 선배는 머리를 박박 깎고 검은 옷을 입었으므로 전형적인 무사를 연상시키지만, 화랑은 화장까지 했으니 영락없는 기생 오라비의 모습이다.
선배의 독특한 외양(겉모습 – 옮긴이) 때문에 고구려와 대 전쟁을 벌였던 수와 당의 병사들은 이들을 승군(僧軍. 승려들로 만들어진 군대 – 옮긴이)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구려를 숭상했던 고려(후기 고리 – 옮긴이)의 장군 최영조차 “당이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하나, 고구려는 승군 3만을 내어 이를 대파하였다.”고 선배를 찬양하고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 』(송[북송 : 옮긴이]의 [사신인 : 옮긴이] 서긍이 고려에 머물면서 고려의 풍속과 문물에 관해 쓴 책)에 나오는 재가화상(요즘 말로 하면 대처승[아내를 두고 살림을 하는 불교 승려 – 옮긴이])은 선배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서긍의 설명이 맞다면, 후기 고리[왕건이 세운 나라]는 후기신라 뿐 아니라 전기 고리[고구리]의 전통도 이어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기 고리의 선배 제도가 후기 고리의 재가화상 제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후기 고리를 나라 이름뿐 아니라 문화와 제도도 전기 고리에서 이어받은 전기 고리의 후신으로 간주하며, 전기 고리가 지나[支那]의 갈마[‘역사’]라는 지나 정부와 지나 학계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덧붙이자면, 후기 고리가 선배 제도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중기 고리 유민들의 후기 고리 망명이 아닌가 한다. 후기신라는 전기 고리를 “도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철저하게 부정했고, 왕건은 그런 후기신라의 백성으로 살다가 후기 고리를 세웠기 때문이다.
나라 이름은 전기 고리를 본따 고리로 지을 수 있었으나, 그 문화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을 테고, 그러던 참에 전기 고리의 후신을 자처하며 전기 고리의 문화와 백성을 이어받아 살던 중기 고리의 백성/지배층들이 후기 고리로 달아나기 시작하자, 후기 고리 조정은 그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제도와 문화[그러니까, 전기 고리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들]도 받아들여 선배 제도를 되살리고 그것을 시대와 현실에 맞게 재가화상 제도로 바꾼 건 아닌지.
후기 고리 시대에 신라의 화랑이 사라지고 그 빈 자리를 재가화상들이 메운 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후기 고리의 신라 부정이며, 동시에 전기 고리[고구리] 계승 선언이기도 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는 근세조선의 사대부들이 전 왕조인 후기 고리를 부정하면서 불교 문화와 불교 승려들도 부정하고, 그 빈 자리를 유교 문화와 유학자들로 채우려고 한 것과 같다 – 옮긴이)
선배와 화랑은 모두 국책(國策. 나라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세우는 정책이나 시책 – 옮긴이)으로 장려하던 제도였을 뿐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선배는 원래 고구려의 10월 제사(동맹[東盟]? - 옮긴이)에 모인 군중 앞에서 무예를 선보인 데서 비롯되었고, 화랑은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그러나 그 뿌리는 엄연히 다르다 – 옮긴이).
화랑의 계율로 유명한 세속오계를 만든 이는 승려 원광이다(이는 잘못된 이해다. 기록에 따르면, 원광은 “지금 세속에는 다섯 가지 가르침이 있다.”고 했지, “내가 다섯 가지 가르침을 만들어 주마.”라고 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원광은 이미 신라 사회에 있던 다섯 가지 가르침을 뽑아내 자기식으로 정돈해서 화랑들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 옮긴이).
일찍이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의 진(陳 : 제하[諸夏]의 남북조 시대에 있었던 마지막 남조 왕조. 화중 지방과 화남 지방에 있었다 - 옮긴이)과 수(隋)를 섭렵하며 불법을 닦아 신라로 돌아와서는 진평왕의 명을 받아 수나라에 군사를 청하는 서신을 작성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애국’ 승려 원광은 불교의 10개 보살계를 속세에 맞도록 추려서 세속오계를 만드는데(다시 말하겠지만, 이건 잘못된 이해다. 신라의 세속 사회에는 원광 이전에 이미 오계, 그러니까 다섯 가지 가르침이 있었다 – 옮긴이), 이것이 나중에 화랑이 지켜야 할 계율이 된다.
세속오계 중의(가운데 – 옮긴이) 다른 조항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살생유택(殺生有擇. 살생을 하는 데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는 뜻 – 옮긴이)의 조항은 일반 승려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가려서 죽이든 어떻든 죽임을 허락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이는 세속오계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의 신라 사회에서 통하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 옮긴이). 이는 원광이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된 승려인 탓이기도 하지만, 당시 종교와 정치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님을 뜻한다.
불교가 특히 융성했던 시기에 탄생한 화랑은 실제로 속세를 정화하여 정토(淨土. ‘붓다가 사는 깨끗한 세상’을 뜻하는 불교 용어 – 옮긴이)로 만든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고(사명을 품었고 – 옮긴이), 낭도 중에 한두 명씩 승려 낭도가 있어 화랑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분 바르고 곱게 치장한 화랑과 머리를 박박 깎은 승려가 함께 있는 모습이라니, 오늘날 같으면 못 볼 꼴이었겠지만 종교(불교)와 정치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화랑이나 선배나 다 무예와 학문뿐 아니라 가무(노래와 춤 – 옮긴이)도 대단히 즐겼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특이한 현상이라는 노래방 문화가 자리 잡은 오늘날이 있기까지는 화랑과 선배라는 조상들도 단단히 한 몫을 한 셈이다.
- 『 상식 밖의 한국사 』 (‘남경태’ 지음, ‘(주)새길’ 펴냄, 1995년)에서
- 음력 7월 25일에, ‘이제 우리는 밝달민족의 상무정신을 상징하는 존재로 화랑뿐 아니라 선배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사달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