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계공원(㵢溪公園)
뇌계(㵢溪) 유호인(兪好仁, 1445~1494) 선생을 기리는 공원(카페 우측 100m에 위치)
뇌계공원(㵢溪公園)
뇌계(㵢溪) 유호인(兪好仁, 1445~1494) 선생을 기리는 공원
〇 출생 및 사망 : 1445년(세종 27년) 경남 함양 출생 ~ 1494년(성종 25년) 사망
〇 본관 및 호 : 본관 고령(高靈), 자 극기(克己), 호 뇌계(㵢溪)
〇 학통 :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힘 (사림파의 핵심 인물)
〇 주요 관직
⦁ 1474년(성종 5년) 식년문과 급제
⦁ 승문원 정자, 전적, 병조좌랑, 사간원 정언 역임
⦁ 도승지(都承旨), 장령, 거창현감 등 역임
〇 문학적 평가
⦁ 성종 대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문장이 명쾌하고 시재(詩才)가 뛰어나 성종 임금의 두터운총애(宠愛)를 받음. 강희맹, 임제 등과 함께 당대 문단을 이루었음
〇 주요 저서 『뇌계집(㵢溪集)』
〇 뇌계공원
함양은 뇌계 유호인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벼슬에서 물러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주하며 학문을 이어간 곳이다. 그의 호인 '뇌계(㵢溪)' 역시 고향인 함양군 지곡면 신형리 마을 앞을 흐르는 시냇물 이름에서 따왔다. 함양군은 지역이 배출한 대표적인 선비이자 문장가인 유호인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충효 정신을 기리기 위해 상림공원 인근에 뇌계공원(카페 ‘프레스트’ 도로 옆 위치)과 시비를 조성했다.
1. 성종 임금의 어제시조(御製詩調)
원문 및 현대어 풀이
있으렴 부디 갈따 가느니 안 가더면
가다가 정(情) 들면 바초니 안 가더면
아라라 가도 가고 오도 오라 날 이즐가 하노라
현대어 풀이
부디 머물러 있으려무나, 정녕 가겠느냐? 가다가 가지 않고 머물 수는 없겠느냐?
길을 가다가 정이 들면 그곳에 머물러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되는구나.
아아, 가려거든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려무나. 나를 까맣게 잊어버릴까 두렵구나.
해설
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시로는 매우 드물게 순우리말 시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하를 향한 성종의 사적인 정과 인간적인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는 명작이다.
2. 뇌계 유호인의 답시(答詩)
유호인 선생은 임금의 깊은 총애와 정성에 감격하면서도,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러 가는 효심과 신하로서의 충성을 다짐하는 한시(漢詩)로 답하였다.
원문 및 현대어 풀이
殿下恩波廣 (전하은파광)
臣心鐵石堅 (신심철석견)
歸山養老母 (귀산양로모)
忠孝本無二 (충효본무이)
현대어 풀이
전하의 은혜는 바다처럼 넓고 깊으오며,
이 신하의 마음 또한 쇠나 돌처럼 굳건하옵니다.
고향 산천으로 돌아가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려 하오니,
임금께 바치는 충성과 어버이에 대한 효도는 본래 둘이 아니옵니다.
해설
임금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면서, 효(孝) 역시 국가의 기본 덕목이자 충(忠)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들어 임금의 양해를 구하고 있다. 이 유교적 충효사상의 결합은 후대 선비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3. 역사적 배경 및 의의
사직의 이유
유호인 선생은 사간원 정언, 도승지 등 요직을 거치며 성종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연로한 어머니의 병환과 봉양을 위해 여러 차례 사직을 청했다.
군신의 정
성종은 유호인을 곁에 두고 싶어 거창 현감으로 발령 내어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게 하기도 했으나, 결국 완전히 관직을 내려놓고 귀향할 때 이 시조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