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23:1-6)
1. 지난 주일부터 시편 23편 말씀을 나눕니다. 지난 주일에는 2절,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말씀을 나누었어요. 오늘은 4절의 말씀을 나눌 때 주님의 은혜
가 우리 가운데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
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편을 노래한 다윗은 청소년기-청년
기에 오랫동안 양을 돌보는 목자 생활을 경험했어요. 그는 양에 관한 전문가였
어요. 양은 털이 길어서 무더운 여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질병에 감염될 위험
이 있습니다.
목자들은 시원한 산간 지방으로 양들을 데려가서 여름을 보냅니다. 여름이 지나
면, 목자들이 양들을 이끌고 다시 산 밑으로 내려옵니다. 다윗은 목자로서 양들
을 이끌고 높은 산을 자주 올라간 경험이 있어요. 다윗은 노련한 목동으로서 험
한 길을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었어요. 그 길을 가다가 갑작스러운 폭우나 악천
후를 만나도 양들을 안전하게 인도할 수 있는 목자였습니다. 이것을 잘 알았던
다윗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이 양들을 이끌고 실제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이 위대한 노래
는 나올 수 없었습니다.
2.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비결”
이 무엇일까요?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면서도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다윗은 그 이유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
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고 노래했습니다. 비결은 매우 단순했어요. 다윗의 목
자이신 주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지
팡이는 양들을 인도할 때 씁니다. 막대기는 늑대나 사나운 들짐승들을 물리칠
때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에 사는 한인 최고 가이드는 이강근 목사님이에요. 목회자이신데, 히브
리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어요.(정치학 박사) 저보다 신대원 한 해 후배인데,
이스라엘에 정착해 살면서 목회도 하고 한인회장도 하기도 했어요. 독특한 이
력이지요.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귀국하는 계기에, 우리가 함께 만날 볼 수 있
는 분이에요. 이목사님이 사진을 찍어서 지팡이와 막대기를 비교해 준 적이
있어요. 최근에는 아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국경 지역을 영상으로 소개하며 페
이스북에 생방송으로 전해줍니다. 시리아 접경에서 이집트 접경까지. 목사님
아들이 드론 영상과 사진을 잘 찍어요.
3. 지팡이는 나무의 가느다란 가지를 이용해서, 막대기는 두툼한 부분이 포함된
부분을 잘라서 씁니다. 그 두툼한 부분으로 양들에게 다가오는 짐승을 내리치는
무기로 삼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잘 기업합시다. 우리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나는 혼자가 아님을 잊
지 맙시다. 이 믿음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마28:20에 예수님께서 분명히 약속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건강할 때에 함께 하십니다. 병들 때에도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성공할 때에도 실패할 때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시험을 잘 치러도, 시험에 낙방해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젊어서도
늙어서도,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 하세요. 이렇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
고 체험하는 자에게는 결코 절망과 두려움이 없어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
은 상황에 우리가 처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만을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그때 내 앞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
짜기가 없습니다. 16세기 조선 시대 양사언이,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태산은 중국 산둥성에 있는 1535m의 산. 태산은
산둥성에서 제일 높은 산이고요.
4. 중국의 5대 명산 중에 하나에요. 중국에서 신령한 산으로 불렸어요. 나라를
창건한 황제들이 와서 제사를 드린 곳이기도 합니다. 진시황, 한나라 무제, 당
-송-청의 황제 등이. 중국에 높은 산 중에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양사언이 태산을 높게 보았던 것입니다. 사람들 이 보기에는 태산 같
은 어려움이라도,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 가운데, 한국
교회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상황이에요. 오
늘 아침에도, 제 지인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목회 서신을 보내며 교회에 20명 밖
에 못 나오니, 본인 말고 19명 만 교회를 나오지 말라고.
참담한 말을 해야 하는 심정을 토로했어요. 이 기간이 다시 얼마나 갈지도 모
릅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잘
경험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확신에 찬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우리를 이끌고 가실까요?” 골짜기라야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공해가 없이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올라
갑니다. 그 길은 험한 골짜기를 통해서 올라가죠. 유명 계곡은 언제나 깊고 높
은 산 속에 있어요.
5. 울진에서 봉화를 향해 넘어가는 계곡이 불령계곡이에요. 제가 본 계곡 중에
서 가장 깊고 또 멋진 곳입니다. 이 계곡은 우리나라 백두대간이 남부지방으로
뻗어가는 출발점에 있습니다. 험한 산, 골짜기에 이렇게 멋진 계곡들이 있습니
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역사를 보거나,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을 보아도 인생에서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험한
인생의 골짜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간 사람들이 훗날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
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
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사
도 바울은 누구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경험한 사람이었어요. 살 소망을
잃어버린 상태까지 이르렀어요. 사망의 골짜기에서 자기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망의 골짜기 가운데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알았습니다.
6. 사도 바울이 새 힘을 얻고 살 수 있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때 바울에게
절망과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이제는 담대하였어요. 사도 바울이 얼마나 담대
했는지 모릅니다. 자기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살면서도, 자기를 심문하
는 재판관들과 자기를 호위하는 군사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죄수인 바울이
그들이 생명을 얻기 위하여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전도했습니다. 자기가 갇힌
것 말고는 다 나를 본받으라고 재판관들과 군인들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의 별밖에 보이
지 않아요.
그곳은 해가 늦게 뜨고, 일찍 해가 집니다.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
습니까? 시편43:5, 시편 기자는 자기 영혼을 향하여 크게 부르짖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
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
리로다.” 우리에게 절망과 불안이 있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이 시편 기자
의 부르짖음대로 스스로 외치세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
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내 영혼아 하나님을 바라라.” 그때 우리 속에 있
던 절망과 불안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7. 오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대하여 나눕니다. 깊은 골짜기를 통하여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흘러갑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를 통하여 새로운 축복의 샘이 넘쳐흐를 수 있어요. 누구든지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어두운 생활을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길을 걸어간다고 할 때
에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길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고 유익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큰 용기
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지닌 역동적인 힘(dynamic power)입니다. 2차대전 때 나치
정권하에서 히틀러에 반대하던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마틴 니믈러 목사님이
있었어요. 이분이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윤리만도 아니고 종교의 어떤 조직만도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이다. 하나님과 조용히 한적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싸움이다. 저급한 생명을 구원의 생명으로 바꾸어 놓고 죄
악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 놓는 위대한 결투가 기독교이다.” 좌절하
고 절망할 수밖에 없던 현실에서 넘어지지 않고,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8. 깊은 골짜기 주변에는 아주 좋은 풀들이 자랐습니다. 거기에서 아무런 공해
도 없는 싱싱한 풀을 양들이 먹을 수 있었어요. 험한 골짜기를 지나기까지는
사나운 짐승들의 위협과 한 발을 잘못 디디더라도 떨어질 위협, 갑작스러운
폭우로 물이 불어나 휩쓸려갈 위험도 있지만, 거기를 지나면 안전하고 풍성한
풀밭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날 우리 삶의 현장에서 어떤 종류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런
주님이 계심을 믿고 당당하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다윗이나
바울과 같이 아무 두려움 없이 도리어 당당하게 세상을 이길 수 습니다. 롬8: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
기느니라.”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다가올 수 있어요. 그
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하
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