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장 4-12절. 구브로 전도. 요약설교
4절.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1. ‘실루기아’는 안디옥의 외항으로서 안디옥 서쪽 26킬로 지점에 있는 항구입니다.
‘구브로’는 섬이고, 바나바의 고향이었고, 많은 유대인이 거기 살고 있었고, 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이었습니다(행 1:19-20).
2.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 두 사람을 파송했다는 것이 무엇이 대단한 것이냐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오순절 사건만큼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가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두 선교사를 보낸 사건은 세계 선교의 문을 열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공식적인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상의 모든 교회들도 성령 받고 교회를 개척하며 이방인 선교를 담당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 즉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3. 교회가 선교하는 것과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보내심을 따라 움직인다는 원리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 혼자 결정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으면서 확인하고 의논하고 이것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각인가 검토하는 그런 조심스러운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4. 구브로라는 섬으로 가도록 누가 결정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분명한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확인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하고 선교한다는 것은 같은데 그 과정에서 성령님의 음성에 예민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확신을 가졌더라도, 다른 사람들까지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서로 의논하는 중에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의논과 확인 과정을 무시함으로써 교회의 분란이 많이 일어나게 되고, 복음 전도와 선교에서 실패를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5절.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살라미’는 구브로 섬의 동쪽에 있는 성읍이었습니다.
이 살라미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회당도 있었습니다.
요한은 마가 요한을 가리키며, 바나바의 생질이었고(골 4:10), 예루살렘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마리아 집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요한 마가는 성령님이 파송하신 것도 아니고, 안디옥 교회에서 정식으로 파송한 것도 아니고, 다만 바나바와의 친척 관계와 예루살렘 교회가 그의 집이란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수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Ramsay, St. Paul the traveller. 71).
6절.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1. ‘바보’라는 성읍은 구브로 섬의 서쪽 끝에 있었고, 로마 총독부가 있는 곳이었고, 살라미에서부터 바보까지는 160킬로나 되었는데, 바나바와 사울은 구브로 섬을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꿰뚫어 걸어갔습니다.
‘바 예수’에서 ‘바’는 아람어로 아들이라는 뜻이고, ‘예수’란 말은 구약의 여호수아에서 나온 헬라어였습니다.
2. 지금 ‘바보’라고 하는 도성에 일어난 사건은 선교사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무슨 사건에 부딪치느냐 하는 전형적인 모델이 여기에 나옵니다.
즉 선교지에 가면 무당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오대양육대주 어느 나라에나 다 부딪히는 사건입니다.
그 지역의 토속신앙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지역의 전통적인 종교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불교 유교 천주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당 즉 무속신앙이 문제입니다.
이처럼 어느 나라에 가든지 이런 무속신앙을 맨 먼저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7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1. 두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어느 곳에 가든지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 꼭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서기오 바울>입니다.
이 서기오 바울에 대해서는 성경에 ‘총독’이라고 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혜 있는 사람’이란 것은 서기오 바울 총독이 올바른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의미하고, 그래서 이 열정으로 인해 그는 바나바와 사울의 복음 전도를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총독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고 했습니다.
8절.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1. 유대인이면서 마술사인 이 엘루마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수라고 하고,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면서, 총독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했을 것입니다.
2. 이 박수 <엘루마>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해는 여러분의 주변에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예수를 믿으려고 하면 그 주변 사람들이 못 믿게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괜히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역사입니다.
어떤 성도가 예수를 믿지 않는 집에 시집을 갔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누가 예수를 믿으려고 하면, 주변에서 벌떼처럼 난리를 칩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3장에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9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 ‘사울’이란 이름은 유대식 이름이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사울이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구브로 총독에게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이방인 지역에서 복음 전파를 하기 때문에, 유대식 이름인 사울보다는 로마 식 이름인 바울로 처신했기 때문입니다.
박수 엘루마를 대적하도록 바울을 충동시키신 이는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2. 9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박수무당을 제압하는 방법 세 가지가 나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도 가정과 직장과 사회의 마귀들을 다 쫓아내기를 바랍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어떻게 무당을 대적하는가요?
첫째 바울은 박수 무당을 ‘주목했다’고 했습니다.
즉 주저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다 뜻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전투를 의미합니다.
마귀의 종을 대적할 때는 겸손히 꼬리를 내리거나 등 돌리거나 눈을 감으면 큰일 납니다.
싸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눈을 뜨고 직시를 해야 합니다.
마귀가 피해 달아날 때까지 주목하고, 대적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싸움이고 복음 전도입니다.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10절.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 둘째 바울은 엘루마에 대항하여 소리를 쳤습니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이처럼 마귀의 종을 대적하려면, 성령이 충만해야 됩니다.
성령 충만도 안 하고, 기도도 안 하고 마귀를 대적하려고 하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압니까?
‘너나 잘해라’ 그럽니다.
마귀의 종도 영물이라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여러분이 예수 잘 믿는 척 하지만 뒤에서 나쁜 짓하고 비신앙적인 행위를 한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너 어제 뭐했어, 그러고 날 쫓아’ 이러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약점을 잡히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마귀를 대적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많이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2. ‘주의 바른 길’이란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신 32:4, 호 14:9).
11절.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 셋째 바울은 마귀의 자식에게 형벌(저주:아나데마)을 선포했습니다.
<네가 맹인이 될지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박수무당이 즉시 맹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박수무당을 벌주었습니다.
2. 박수 엘루마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 아니고 일시적인 맹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헤롯 아그립바 왕은 죽음의 형벌을 당했으나, 이 박수 엘루마는 일시적으로 맹인 되는 형벌로서 비교적 가벼운 형벌이었습니다.
12절.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마가복음 16:19. '믿고 세례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죄가 이르리니 믿는 사람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귀신들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음을 얻으리라.
예수 믿는 것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구원이고, 마귀와 영적인 싸움에서 사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여 늘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를 방해하고, 성도들을 대적하는 마귀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이루시고, 날마다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