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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옥의 실상입니다.
요한계시록 9:1~11
계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계9: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계9: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계9: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계9: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계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계9: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계9: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계9: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계9: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계9:11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제가 간혹 전도하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말하다 보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툭툭 내 뱉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지옥이요? 까짓것 있으면 가면 되지 뭐!”이러는 겁니다. 정말 지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요? 만약에 잠시라도 지옥을 경험하였다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열매로 인하여 복을 누릴 수 있고 아니면 화(禍)를 불러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민14:28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하나님은 듣고 계심에 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제 둘째 딸이 어린 아기 때부터 저는 집에 돌아오면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면서 “주우~ 쭉 주우~ 쭉!”그러면서 아이가 커가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한 대로 키가 176Cm가 되도록 훌쩍 커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제 말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큰 딸에게도 어느 날 저녁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날 신랑은 네가 무슨 말을 하든지 허허 웃으면서 받아주고 아이를 낳게 되면 기저귀 가방과 아이를 들쳐 업고 네가 화장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해도 재촉하지 않고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말대로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내 인생이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지옥가도 할 수 없지 뭐!”이런 말입니다. 말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옥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지옥은 이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계9:1절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별은 천사나 하늘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표현할 때는 쓰는 단어입니다. 예수님도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다고 하셨습니다.(눅 10:18) 이것으로 미뤄 볼 때 이 별은 타락한 천사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요한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를 보았습니다. 동사 ‘떨어지다’ 의 시제가 완료형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별 하나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이미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 사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열쇠를 지니시고 많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셨다면 반대로 사탄은 땅에 있는 사람들을 무저갱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온 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저갱’의 의미를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는 ‘깊이가 없는’ 것을 말하여 끝이 없는 절망의 늪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의 단적인 특징은 절망입니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희망도 없습니다. 밑도 끝도 없고 절망이 영원토록 존재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2절에서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라고 하였습니다. ‘큰 화덕의 연기’ 라고 하였습니다. 이 연기가 얼마나 짙은지 해와 공기가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림을 받을 것임을 예시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평화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진리는 모든 만물의 운행을 질서정연하게 이워주는 것처럼 우리 영혼이 진리로 채워지면 평안과 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영혼의 상태가 질서 있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진리가 가려지는 순간에 그 영혼은 뒤죽박죽 무질서의 상태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주님의 오실 때가 되면 더욱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온 영혼을 휘집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유명한 개그우먼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에게 웃음을 주었고 사회적으로도 명성을 누렸던 그녀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냐 말입니다. 그것도 어머니와 함께 말입니다. 만약에 그녀나 모친이 진리에 사로잡혔더라면 절대 그러한 일을 꿈도 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진리가 가려져 있었습니다. 영혼의 상태가 빛을 잃고, 그 배후에는 죽음의 영 사탄의 영향을 받았기에 그런 끔직한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지옥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6절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우면 “그냥 갹 죽어버리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지옥의 모습을 알고 나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살은 자기의 목숨을 살인하는 죄를 짓게 되어 자살은 회개의 기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교인 중에는 목사님이 생전에 설교하였던 것을 주일예배 때 들으면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참 영적인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살한 목사님은 지옥에 가 있는데 그 분의 육성으로 하는 설교를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고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옥에서 자살한 목사님의 영혼을 잡고 있는 사탄이 그 설교를 듣고 있는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 이유는 육신을 벗어나 영혼 상태로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영광된 부활의 몸으로 들어가는 곳이라면 지옥은 영혼상태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벌거벗은 수치’라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어 부활의 몸을 입지 않으면 그 영혼상태가 수치스런 모습으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상태로 가게 되면 왜 고통스럽냐 하면 영혼은 세상에 살 때 경험된 모든 것들이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기억이 무질서 속에서 엄청난 혼돈에 접어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분노와 역겨움, 수치 때로는 불타는 정욕들이 뒤엉켜 고통의 불속에서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천국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쌓아둔 모든 경험과 지식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지식에 연결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국의 모든 것은 매 순간이 새롭습니다. 영원의 세계는 전혀 지루함이 없고 더욱 신선하고 기쁨이 충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육신으로 있을 때 경험한 모든 것이 고스란히 살아납니다. 영혼의 상태에서 그 안에 있는 기억이 떠오르게 되면 그 상황으로 금세 나타납니다. 이것은 물질상태가 아닌 영의 세계이기에 가능합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의 연속이 쉼 없이 계속되는 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사탄이 황충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말씀합니다.
3절에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고 했습니다. ‘황충’은 ‘아크리스 ajkriv"’라고 하였는데 이는 ‘메뚜기’ 를 말합니다. 메뚜기는 떼 지어 다니며 들판과 나무를 갉아 먹어 황폐화시키는 곤충입니다. 사탄이 수를 셀 수 없는 사탄의 수하에 있는 악한 영, 귀신을 땅에 풀어놓아 지옥의 자녀로 이끌어 들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황충들의 모양에 대하여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황충에 대한 표현은 말들 같고 사람의 얼굴 같고 머리에는 금 같은 비슷한 것을 썼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여자의 머리털 같은 털이 있고 이빨은 사자 이빨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을 머리에 그리면서 연상하게 되면 뭐라 표현하지 못할 기괴한 모습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명확하게 무엇이라 말하지 않고 요한은 ‘무엇과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악한 마귀의 특성이 요한의 영적 감각에 와 닿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즉 마귀는 신속하고 지칠 줄 모르면서 사납고 때로는 친근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옥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옥은 물질세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게 되면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구더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세계가 아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옥은 영적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는 지옥에 들어온 영혼으로부터 파장이 나타나게 됩니다. 간사하고 더러운 영혼은 그런 파장을 발사하기 때문에 그런 영혼에게 부딪히게 되면 내가 느끼는 그대로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게 됩니다. 영혼에도 고통이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그 영혼이 축적된 경험에 의한 지식이 있어 떠오른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을 느껴보지 않았습니까? 누가 칼로 손을 베임을 당하면서 ‘아~악’소리를 들을 때 전율을 느끼면서 내게도 그 아픔이 와 닿지 않습니까? 우리가 육체로 있을 때는 그 감각이 육체로 인하여 걸러져서 오기 때문에 온전하게 느끼지 않지만 지옥에서는 그런 아픔이 적나라하게 내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옥에 다녀오신 분들의 간증을 여러분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양한 뱀들이 있어 사람들의 눈을 파고 들고, 마귀들이 삼지창으로 온 몸을 찌르고 집게로 혀를 잡아당기고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형벌을 주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몸이 손상되지 않고 또 다른 고통을 당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영혼의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상태지만 몸을 입고 있을 때 보다 더 선명하고 분명하고 느낄 수 있기에 고통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마귀가 10절에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고 했습니다. 전갈은 게와 같이 집게발로 먹이를 포획하고 긴 꼬리 끝의 쏘는 살로 그 속에 독을 주입하여 죽인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탄은 우리의 영혼에게 혼돈과 더불어 괴로움을 심어주어 세상을 비관하게 하고 더 나가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도록 하게 합니다. 이것이 지옥의 모습입니다.
미국의 랍 벨(Rob Bell)이라는 목사는 <사랑이 이긴다>라는 책에서 주장하기를 사랑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형벌이 있는 지옥을 만드실 리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옥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그의 말대로 지옥이 없다면 굳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리 없습니다. 지옥은 한 평생 육체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하나님의 사랑이 끊긴 곳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9: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인 치심을 받은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의 양식을 공급하시고 악한 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혀 보호하십니다.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피난처로 교회를 준비하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는 말씀을 NIV성경에서는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 이라고 하였고 표준새번역에서는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지옥의 권세,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보호막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지옥이 가져다 주는 죽음의 영향력을 온 몸으로 피흘려 막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보존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 무엇 보다 우리들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혼에 담겨 있는 것이 입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의 영 사탄의 지배를 받으면 절망의 소리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천국의 영이신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감사와 찬양, 그리고 소망의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서 나오는 말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잠18:20에서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하였습니다. 내가 말하는 방향으로 내 삶의 방향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 하는 일 마다 안 되는지 미치고 환장하겠네~”하는 등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내 영혼이 지옥의 영으로 사로잡히게 됩니다. 지옥을 면할 수 있는 내 입술이 하나님의 영으로 다스림 받아야 됩니다. 히13:15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였습니다. 내 말을 다스림 받으십시다. 함부로 말을 내뱉어 인생을 꼬이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로 들어서 우리들에게 생명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 교회 안에서 신앙의 길을 가야 되는 것이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