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참전 용사님의 흔적~
유승대 19살의 학생이다
용케도 징집을 피해 고향땅 포천 양문에 머물렀다
탱크를 몰고 내려오는 북한군
뒤돌아 보며 딱총을 쏘면서 밀려가는 국군
처음에는 접경지역이라 전쟁인지도 몰랐다
새벽이 오니 빗속에 북한군 세상이다
영평천을 가로질러 38선이 되었다가
북한군의 측량요구로 졸지에 성동리는 북한지역이 되었다
함께 지내던 일가친척이 갈라져 남북으로 쪼개졌다
쏘련군이 나타나 여자들을 후린다는 못된 이야기도 들렸다
몰래 철조망 개구멍으로 편지를 교환하고
일부는 뒷거래로 남과 북을 넘나들며 예전처럼 지냈다
그랜는데 갑작스레 비밀통로가 차단되어 꼼짝못하게 되었다
북으로 간 형님, 남쪽으로 내려온 사촌 조카, 이산가족이다~!
그러더니 얼마후 탱크같은 것이 영평천 넘어 남으로 오더니
성문에 자리잡았다 소문이 무성하니 멀리서 지켜도 보느라 난리다
그것이 남침위한 준비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단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이미 무성하게 "해방군이 곧 온다"고 했다
양문에는 국군이 있었으나 콘크리트 참호도 없었다
군인인지 동네형인지 이건 군대도 아니고 친구같이 지냈다
밤에는 몽둥이 들고 함께 보초도 섰다
낮에는 그저 농부처럼 일손도 함께 하고 이건~~
그러다 갑작스레 보이던 쏘련군이 안보이고 미군이 안보인다
형들이 이제 진지에 오지말라 한다
북쪽에서 무슨 차들이 쉴새없이 영평강을 건너 안으로 들어오고
동네 사람들이 일부 사라져 행불도 되었다
그것이 남침준비고 남노당에 포섭된 인원이 북으로 간 것이었다
경계심도 없고 뭐 그런가 그렇게 그 시절은 그렇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총소리 나고 괴물같은 것이 기어왔다
함께 하던 형들은 남으로 쏟살같이 가고 북쪽 형들이 왔다
전쟁이었다, 그런데 동네는 조용하고 밖에 나가 괴물을 만져본다
어이없는 사실이다
해방군이라며 여기저기 모이라하여 이미 배웠던(?) 노래를 배운다
장백산가도 김일성 장군가도 배우는데 선생이 국민학교 선생이다
알고보니 선생도 이미 공산당원으로 포섭되어 있었다
완장찬 형들이 나타나는데 얼마전 사라진 동네형도 있다
나이차이도 별로없어 다가가니 집에 가만히 있어라 충고한다
이거 뭐가 이상하다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매일 모이고 교육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집에 계시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간다
나와 동생도 가고 어린 동생들 셋은 집에 머문다
난 중학교는 못가고 농사꾼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의정부로 서울로 유학을 갔는데 일요일이라 집에 왔다
어리둥절 모두가 고개만 갸우뚱하고 어디 가질 못했다
솔직히 뭔가 몰랐다
인민 해방군이라니 일부는 좋다고 날뛰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 통제가 심해지고 일절 밖으로 못나오게 한다
더러는 또래들이 붙들려 간다는 소문이 들려 불무산에 숨었다
키가 작기도해서 득도 보았다
밤이면 몰래 내려와 먹을 것을 갔고 다시 산속에 숨는다
갑작스레 또 어수선한데 북한군이 북으로 올라간다
아니 많은 사람둘이 떼지어 북으로 동행하는데 어디로 갈까
따발총들은 어린 놈둘이 옆에서 뭐라고 소리지르고 간다
점점 하늘에 비행기가 나타나 쌕쌕거렸다
여기저기 죽어간 시체들의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미 아버지 어머니는 나가서 시체를 묻는 일을 해욌다
그것이 죽은 군인인지 민간인지 사실 잘 모른다
신북다리 근처에 많이 죽고 또 무럭고개(국사봉 맡)에 많았다
지금은 흔적도 없다
그런데 얼마나 지나 8월이 지나는데 모두를 데려간다
부역이였다, 밤이면 무슨 짐을 메고 퇴계원까지 갔다 온다
벼가 익어가는 때인데 국군이 왔다
나도 산에서 내려와 형들을 반겼다, 한두명은 알겠다
이제 세상은 아군 세상인데 날뛰던 사람들이 사라져 텅빈 마을~
날뛰는 사람들은 식구를 데리고 사라졌다
안가고 있는 몇몇집은 경찰이 와서 데려갔는데 소식이 없다
이것은 부역자 처단이란 또다른 비극이다
북으로 가는 피난민을 처음보았다
남으로 가는 피난민은 동란때 있었지 이때는 그럴 겨를도 없었다
참으로 요상한 모습인데 우리동네 사람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오고
수원 인천 이천 광주사람도 있다, 엄청난 인원이 산고개를 넘어간다
지금보니 그것이 북쪽으로 끌고가는 양민납치였다
그런데 추운 겨울이 오는데 국군들이 내려온다
아니 왜 통일이 되었냐고 물었더니 답도 없이 빨리 떠나란다
중공군이 내려와 1.4후퇴였다
그래서 이제는 죽었다 싶어 온가족이 피난 길에 나갔다
의정부에서 서울로 한강에서 건너 수원으로 간다
하지만 여기서 경찰에 붙들렸다
메고가는 짐을 넘기고 붙잡혀 어딘지도 모르는데 제주도에 갔다
몰아치는 바람, 걷기도 힘든데 엄청나게 붙잡혀 왔다
모슬포에서 교육을 받고 어느날 또 배타고 인천에 왔다
여기서 가차로 춘천에 가고 거기서는 도락구에 실려 산속으로 갔다
제3사단에 3000명, 오대산 설악산 평창일대다
제18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로 갔다
여기서 가장 심힌 전투는 인제 현리 한석산 가리봉지역이다
북한군과 전투다
하지만 주로 신병들이라 제대로 전투도 못했다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며 고참이 시키는대로 한다
중공군 5월 공세에 포위되었는 무슨 높은 산을 넘어서 정선까지 갔다
중공군이 오는지 북한군이 오는지도 잘 모르고~~
그러더니 다시 삼척인지 잘 모르지만 배타고 간성에 들어갔다
뜨거운 여름이고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여름이다
그런데 전투도 안했는데 양구북방으로 간단다,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가을이 와서 단풍지는데 지금의 뻔치볼 일대에 갔다
대암산이 있고 그 앞에 또 높은 고지가 있는데 5사단과 교대했다
나는 그때 지휘관을 잘 만나 연대 전령이 되어 사단을 왔다갔다 한다
전쟁때는 지휘관을 잘 만나야 산다
그 산이 무슨 산인지 모른다( 내가 가칠봉 1211미터라고 설명)
여가서는 처음은 골짜기마다 시체가 쌓여 치우느라 고생했다
노무자들이 들어왔는데 나보다 더 고생하더라
총도없이 무슨 핫바지 같은 것에 지게지고 낫들고 다니는 모습 선하다
그런데 낙엽이 지는데 이미 미군기와 동해안에서 한포를 때렸다
온통 모든 산이 벌겋게 되고 나무도 별로 없더라
겨울은 아닌데 내가 격은 가장 심한 전투가 있었다
연대 오피에서 대낮에 보이는데 고지 육박전에 비행기 폭격~
여기에 함포까지 작열하여 누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가칠봉에서 엄청 죽었다
시신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우린 한겨울인데 내려와 양구에서 교육을 받는데 난 전령이다
겨울인데 해가 바뀐 '52.1월초에 북한강지역으로 들어갔다
6사단 지역인데 북한군과 전투한다
또 그러다 봄에 수도사단에 주고 북한강 동쪽으로 들어갔다
별 전투가 없다가 가을인데 죽다못해 살아나온다
무슨 피고지 독수리고지 일대는 파면 시신 나온다
노무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겨울이 오고 '53. 2월에 북한강 뷱쪽에 8사단이 왔다
우리는 그 동쪽 밑으로 이동하여 무슨 택사스고지 일대로 갔다
사실 이곳은 산에서 산으로 연결되는 곳이더라
이제는 거꾸로 우리가 사단에 진지를 주고 북한강 서안으로 갔다
그때가 4월경인가 그런데 모두 휴전인 줄 알았다
그러다 6월부터 북한군이 우리가 있던 곳을 포위하여 다 죽는다
그 산 이름은 모른다, 난 연대에서 지켜보는데
어느새 북한군이 연대 뒤에서 나타나 혼비백산하여 금성천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살았다
우리 우측의 5사단은 북한강 동쪽일대(황병동)에서 다 죽었다 들었다
시신이 강물에 떠나니고 있더라
그러다 휴전이 되고 전역했다
신고날에 보니 같이 온 전우는 3000명중 세명 살았다
물론 현지 임관하여 장교도 되고 하사관도 되었으리라
다 죽었는지 아니면 어디 포로가 되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 모른다
지금은 귀가 잘 안들려 왜 이걸 묻는지 모르겠다
"유해발굴 위해 자료를 모은다고 설명하니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하셨다~♥"
~~~♥ ^^
신나게 말씀하시는 용사님
그 용사님이 고혈압에 당요에 고생이다
간병인이 모시고 포천의료원에 정기검진차 오셨다
작은 체구에 하지만 목소리는 차량차량하시다
눈시울을 적시며 실제 가장 힘든 전투는 가칠봉이란다
그 앞에 5사단도 여기서 녹았다고 한다
공짜기마다 시신이 가득하여 눈뜨고 볼 수 조차 없었단다
어떻게 살아서 연대 전령이 되어 무사 제대했다
그때는 마구잡이로 군에 데려와
학도병이나 노무자들은 총알받이로 죽어도 기록도 없다고 한다
"밥 세끼 먹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마지막 남긴 말씀이다
~~~♥^^
나는 그런 용사님 유해를 찾아
단단한 허벅지에 힘을 실리고
튼튼한 종아리에 무게를 실려 산을 올랐다
무너지는 이상은 저녁이면 불러내 위로를 하고
바람소리 불면 꿈이 깨려나
금강굴에서 중청을 바라보며 아스라한 육신을 붙둘던 나~~!♥
유승대 89세 참전용사 어르신~
수원에서 경찰에 붙둘려 3사단 18연대 1대대 1중대
제주도에서 교육, 배로 인천으로 최전방에서 전투한 포천의 영웅
최초 함께 신고고한 3사단 3000명이 3명이 된 너무도 슬픈 사연
우리가 전쟁을 원한 것이 아니고 미국과 유엔군이 원한 것도 아니다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과 모의하여 전세계를 공산화 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자유진영은 공산화를 막기위해 한반도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철의 장막을 치려는 소련. 중공. 북한 공산군과 싸운 것이다
이때 전사한 군인 학도병 경찰이 18만여 명,
찾지 못한 유해가 13만 4천여 명이다
이중에 2000년부터 12,000명을 발굴했다
내가 처음 시작하여 퇴역하던 2008년 초까지 10,000을 발굴했다
하지만 끝은 없다
기록의 부실과 전투 현장이 훼손되고 자연섭리에 따라 변화해 가기 때문에 시간속에 묻혀진다
오늘은 어제 포천의료원에 가서 만난 용사님을 알리고 싶었다<p><img src="http://t1.daumcdn.net/cafeattach/1XM0x/0765c02a1b908fb5e4160389d7b93cacf282d45c" class="txc-image"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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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연대 참전용사님을 포천의료원에서 만나다
이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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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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