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2-47 초창기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했는가?
제자들을 비롯한 120명은 오로지 기도함으로써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을 받았다.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내며 그들이 기도하는 곳에 가득했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에게 하나씩 임했다. 그러자 성령이 말하게 하는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4). 큰 무리가 모여들었다(6). 그들은 나라가 달라 언어도 달랐다. 그런데 각 나라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들었다(11). 이때 베드로와 11명의 제자들은 소리 높여 외치며 설교했다(14-36). 이 설교를 들은 자들은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37)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8)라고 말했고,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40)고 외치자 그 말을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무려 3,000명이었다. 120명이 10일 만에 3,000명으로 늘어났다. 폭발적이다.
제자들을 포함한 120명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을까? 성령이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엄청난 현상들이 일어날 것이라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비대하다 못해 거대해진 예루살렘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예루살렘 교회는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했는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42) 사도들의 가르침, 교제, 떡을 떼는 일, 기도. 4가지 형태다. 우리말 성경은 3천 명이 기도하는 일에만 오로지 힘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에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일, 교제하는 일, 떡 떼는 일에도 기도처럼 오로지 힘쓰고 있다. 오로지 힘쓰다는 충성, 집착, 인내, 계속, 간절함이 들어있다. 따라서 3천 명은 사도들의 가르침, 교제, 떡 떼는 일, 기도에 충성하고 집착하며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인 간절함으로 참여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데 주력했다. 제자[사도]들은 3천 명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라고 예수님의 유언대로 가르치는 일에 주력했다. 이에 대해 모든 새신자들[삼천 명]도 말씀을 배우는 데 있어서 오로지 힘썼다. 초집중했다.
예수님이 베다니 마을로 갔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했고, 동시에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배웠다. 마르다는 그렇게 하고 있는 마리아가 얄미워서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예수님께 부탁했을 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하며 예수님은 오히려 언니 마르다를 책망하고,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배우려는 마리아를 더 칭찬하셨다(눅 10:38-42).
무리 중에 어떤 여성이 예수님을 향해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외쳤다. 밴 태와 먹인 젖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을 낳아 기른 마리아를 말한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 11:,28)라고 말씀하셨다. 훌륭하게 키운 부모, 계급, 직분/직업, 출신이 복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라는 것이다. 베뢰아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간절히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확인하기 위해 성경을 상고(詳考)즉 자세히 검토했다(행 17:11). 1901년 평양에서 열린 여성도 사경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엔 120km나 떨어진 곳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1907년 평양대 부흥운동회 땐 480km나 떨어진 목포, 무안 지역에서 참석한 성도들도 있었다. 그들은 지게에 솥단지를 짊어지고 왔고, 어떤 여성은 아이를 업고 머리에 쌀을 인 채 왔는데, 손에는 때 묻고 닳은 성경이 있었다. 벧전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신 12:28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2] 서로 교제하는 데 주력했다. 보통 교제라는 뜻은 “사람끼리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교제는 사람끼리 나누는 교제도 있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교제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믿는 자들의 친밀한 교제로 이어진다. 여기서 교제는 “테 코이노니아” 즉 “그 교제”이다. 성령을 소유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그 교제이다. 사도들을 포함한 120명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성령을 기도하며 기다렸고, 마침내 10일째 되던 날 120명 모두에게 약속한 성령이 오셨다. 모두가 예외 없이 성령을 소유함으로써 그 교제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은 삼천 명의 새 영혼들도 한결같이 같은 성령을 소유하게 되었다(41). 이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 성취였다. 욜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에언할 것이요]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환상을 보고]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구약에서 성령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직무수행을 위해 제한된 사람들 즉 왕, 제사장, 선지자 외엔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구속을 완성하심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에게 성령이 선물로 주어졌다.
한 성령을 공유하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었고(44),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46). 예전엔 구약의 규례를 준수하기 위해 모였다면 이제는 성령과 교제하다 보니 성령에 의해 기쁘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성전에 모였다. 가정을 버리고 성전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하여 늘 함께 모였다. 성령과 교제하면 희락[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을 같이 하고 싶어진다. 악감정과 죄가 없어지면 늘 마음을 같을 수밖에 없다. 성령이 계신 곳에 함께 모이고 싶어진다. 가고 또 가고 싶고, 보고 또 보고 싶어진다. 한 성령을 공유[성령과 교제]하자 내 물건 네 물건이 아니라 서로 함께 사용하려고[통용] 했다(44). 서로의 물건을 소중히 여겼다. 소중하고 비싼 물건을 스스럼없이 가지고 가서 쓰라고 한다. 소중한 카드/자동차를 흔쾌히 내준다. 더 나아가 내 재산과 내 소유를 팔아서라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려고 했다(45). 성령을 소유한 다른 성도가 가난에 허덕이는 힘든 모습을 마냥 지켜볼 수만 없어서 발 벗고 나섰다. 욕심과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교회가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재물과 소유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랑, 화평, 자비, 양선(良善)이 아닐 수 없다. 성령을 공유하는 그 교제에 오로지 힘씀으로써 일치단결되었고, 재물을 나누는 구제로 이어졌다. 엡 4:2,3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3] 떡을 떼는 일에 오로지 힘썼다(42). 떡을 떼는 일은 성찬을 말한다. 이 성찬은 음식을 먹는 일과 병행되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46,47). 성령과 교제가 탁월하게 일어났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기쁨에 취해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떡을 떼고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純全; 완벽한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눴다. 상품을 팔 목적, 이성과 교제할 목적, 대접을 받을 목적, 대접하고 생색을 낼 목적이 아니었다. 완벽한 순수함 그 자체였다. 히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 교회는 성찬을 매년 2회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목장별로 소그룹 예배를 하고 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도에 몰입해 주길 바란다.
성령을 공유한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한 것은 당연했고 자발적이었다. 성령을 통해 치료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선천성 하반신 지체 장애인이 치료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고,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주목했다(5:8,9).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눅 24:49-53). 기쁨이 찬송으로 표현되었다.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고난 중에 있으면 찬송 들으며 더 우울함에 젖지 말고 기도하라. 즐겁다면 무조건 하나님을 찬양하라. 고백하라.
[4] 기도에 오로지 힘쓴 교회였다(42).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로 시작된 교회이다.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 질 때까지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1:14). 간절히, 인내심을 갖고, 계속적으로, 끈질기게, 강청(强請)하는 몰입 기도였다. 그러다가 오순절 당일 약속한 성령을 받았다. 핵심 맴버였던 120명의 오로지 기도는 3,000명의 새 영혼들에게 고스란히 흘러갔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그 성령과 계속 교제하고, 교회가 태동하고 유지되고 성장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기도밖에 없다. 베드로와 요한이 하반신 장애인을 고친 것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3:1). 교회 지도자 베드로와 요한이 감금되었을 때, 성도들은 합심하여 부르짖어 기도했다(4:24-31).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내일 순교하게 될 때도 마가의 집에 모여 합심으로 기도했다(12:12). 그들은 지정된 한 곳에 모여 기도하기도 하고, 각 가정에서도 간절히 함께 기도했다.
예수님이 행하시던 기적들과 그보다 더 큰 기적들이 일어나고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과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 기도이다.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기도하면 기도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능력이 나온다.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기적은 우연이 아니다. 기도와 연결되어 있다.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 기적이다. 막 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귀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를 통해 주님이 하신 일과 그보다 더한 큰일을 할 수 있다. 교회에서 부르짖는 기도가 목장으로 이어지고, 각 개인에게 이어지고, 새 가족에게 확산되길 바란다. 2~8시간 기도가 확산되길 바란다.
결론 - 초창기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했는가?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 오로지 힘쓰고, 성령을 공유하는 그 교제에 오로지 힘쓰고, 떡을 떼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 먹는 일에 힘쓰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