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청소를 하다 보니,
현관쪽 보일러 문 주변에 비닐봉지가 보였고, 그 안에는 언제 사다놓았는지 싹이 1cm도 더 자란 감자 몇 개가 있었다.
잘은 모르되 그걸 사다 먹고 남아서 가급적 오래 보관한답시고 놔두었던, 한 달도 넘은 것이 분명했다.
가난한 내 주제에 먹는 걸 버릴 수는 없는 거고,
저걸 어떻게 처치한다지? 하기는 했는데, 그냥 또 잊었다.
그러다가 그 이틀 쯤 뒤에, 병원에 가는 길에 신발을 신다 그 봉지를 보면서는,
아이, 버릴 수도 없고... 하다간, '축제'나 해? 했던 건,
싹이 손마디 하나도 넘게 나온 감자를 쪄먹을 순 없을 것 같아, 그 싹을 떼어내 버리고 ‘빠따따 리오하나(Patata Riojana: 스페인 리오하 지방의 감자 요리)’를 해 먹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옛날 '까미노'를 걸을 때(마지막 가을 길), 리오하 지방의 한 '기부 알베르게'에서 묵었을 때, 거기 관리자(수도자)가 손님들의 저녁으로 몇몇 길을 걷는 사람들을 불러(나도 포함) 음식을 함께 하기로 했을 때, 눈여겨 보며 배웠다가(참 맛있었다. 양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해 보니,
쉽기도 하고 또 맛도 있어서(물론 내 친구들도 맛있다고 했지만, 또 나중에 스페인에 가서 해 먹을 때 스페인 친구들도 내가 만든 걸 맛있다고 먹어주는 등) 그 뒤로 이따금 해 먹는 내 대표적인 메뉴 중의 하나다.
물론, 원래는 '초리소'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엔 스페인에서 돌아올 때 '육가공식품'을 가져올 수가 없어서 사오지 못해, 그렇지만 한 지인이 짠(많이) '하몬'을 준 게 냉동실에 남아 있어서,
꿩 대신 닭이라고, '하몬'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자면, 뭐가 필요할까? 하면서 아파트를 나섰는데,
'비노(와인)'는 있고(두 병 정도 남아 있으니, 그 중 한 병을 따면 된다.), 또 냉장고에 뒹굴어다니는 치즈가 조금 있으니(나중에 보니 너무 적었다.), 포도를 사와서 곁들이면 될 테고, '샐러드'는.. 지난번 대학 친구가 올 때 천안에서 사왔던 '봄동'이 아직 남아 있으니, 그걸 이용하면(양파와 섞어도) 될 거 같고...... 하는 식으로 식단을 계산하면서 병원엘 갔다.
물론 음식이야 그렇다고 쳐도,
그렇잖아도 요즘 어디 가고 싶어도 갈 수도 없는 등 갑갑해서 죽겠는데,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었던 차에 잘됐다! 했던 건,
언제라도 막걸리 한 잔 못할 것 없지만,
어차피 상황이 이러니(감자 처리), 오늘은 스페인 식으로 기분이라도 내 보자! 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혈압측정기를 차고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요즘 이상하네? 꼭 내가 병원에 오는 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네...... 하면서, 역시 자전거를 타고(그 날은 눈이 막 시작되어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장으로 향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눈은 오면서 쌓였다.내가 돌아올 때는 제법 쌓여서, 아파트 가까이에서는 또 자전거를 끌고 와야만 했다.
오후가 되자 쌓였던 눈은 거의 녹았고,
저녁이 되면서는 축제 준비에 들어갔다.
이 즈음해서 군산에 한 번 가보려고도 했는데,
그놈의 IM선교횐지 뭔지 때문에 신규확진자가 확 늘어나는 바람에 포기했으니,
그렇다고 뭐 제대로된 음식도 할 수 없는 처지에(충분한 양이 나올 수가 없는 상황) 누군가를 초대할 상황도 아니니,
그저 혼자서 조용히 '혼자만의 축제'를 즐기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은 바게트도 필요한데,
사러 가기도 귀찮고 또 그런 돈을 쓰는 것도 부담스러우니,
집에 있는 '에어 프라이어'를 이용해 내가 직접 빵을 구워 먹으면 될 터였다.
그렇게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나만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다소 초라한 듯한 상이었지만, 비노는 그래봬도 언제부턴가 아껴두었던 '라 리오하(La Rioja) 스페인 산. 스페인에서도 고급에 속하는) 라,
혼자 마시기 아깝네! 하고도 있었는데,
상은 작은데 샐러드 등이 공간을 너무 차지하다 보니,
이거, 상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겠네...... 하며 웃을 수밖에.
그리고 본요리인 '빠따따 리오하나'(하몬으로 만든)가 준비되었다.(아래)
근데,
한 번 먹어볼까? 하고 시작을 했는데,
하나 하나가 다 맛있는 거 아닌가!
맛도 달아났을 싹튼 감자로 만든 '빠따따...'도 의외로 맛이 좋았고, 빵 역시 담백하고 고소했고, 샐러드도 보기와는 달리 아주 상큼했고,
부족했던 치즈에 곁들여 먹은 포도 역시 환상적이었다. 그러니,
왜 이리 맛있는 거야? 정말, 혼자 먹기 아깝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너무 자화자찬하는 거 아닌가? 하기도 했지만, 맛있는 걸 어쩌라고! 하고 말았다.)
사실 스페인 음식이라고는 해도,
푸짐한 고기도 없고 눈에 띄는 화려한 메뉴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 혼자 먹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정말, 양이 딱 맞았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나중엔 약간의 술기운도 오르는 등) 나는 모처럼, 혼자만의 축제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