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일자, 2011, 8, 8,
새벽잠을 반납하고 달려와 맞이한 "만휴정" 애마쉼터는 가히 매머드 급입니다 !!
애마쉼터에서 만휴정 안내소를 거쳐,, 정자를 가려면 약 1 KM 남짓 걸음마를 해야 되거든요 ~
"만휴정 원림"<晩休亭 園林>을 향하던중 폭포의 울림에 이끌려 본즉 "만휴정 계곡" 에 있는,, 높이 24 M 의 ~
"송암폭포" 가 정적을 깨며,, 사자후<獅子喉>를 토해내 "용추 호담"<龍湫 虎曇>을 이룹니다 !!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나 다시 돌아가리라" 하며,, 관직을 사임하고 돌아오는 심경을 ~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이렇게 읇었는데,, 도연명이 세속과 결별하고 "은일"<隱逸>을 결심한 선언문이라고 합니다 ~
"전원시"<田園詩>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도연명은 귀거래 후<歸去來 後>농사를 지으며 가난을 벗삼아 은거한 인물로 ~
"귀거래" 를 통한 그의 소박하고 청빈했던 삶은,, 고려, 조선시대의 선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
"향수"<鄕愁>는 다른말로 "회향"<懷鄕>이라고 하는데..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누구나 갖고있는 시름이라고 한다죠..?
"만휴정"<晩休亭>은 조선 전기의 문신 "김계행"<金溪行>이 귀거래하여 지은 정자로,, 17 세에 진사<進士>가 되었고 ~
50세 되던해 식년시에 급제해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가,, 연산군때 대사간<大司諫>에 올랐으나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그는 ~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한 간언<諫言>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안동으로 낙향을 했다고 합니다 ~
처음에는 안동 풍산사제에 조그만 정자를 지어 "보백당"<寶白堂>이라 칭하고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자 ~
세간에선 그를 "보백선생" 이라 불렀는데 "보백" 이란 재물에 욕심이없고 곧고 깨끗한 "청백'<淸白>을 보물로 삼는다는 의미라네요 ~
"만휴정" 은 김계행의 장인인 "남상치"<南尙致>가 지어 "쌍청헌"<雙淸軒>이란 당호로 불렸다가 ~
"김계행" 이 만년의 나이에,, 이곳을 은거지로 즐겨사용해 "만휴정" 으로 바뀌게 됐고,, 다리는 통나무를 쪼개서 만든 다리라고 하며 ~
"지신근신 대인충후"<持身謹愼 待人忠厚> 풀이하면 <내몸은 근신하고 남에게는 충후하라> "선생유훈"<先生遺訓> ~
"만휴정"<晩休亭>이란? "늣은 나이에 쉰다" 는 뜻으로 선생이 말년에 얻은 정자의 의미를 잘 나타내 주며..?
"보백당 만휴정 천석" <寶白堂 晩休亭 泉石>이라 새겨진 암각자 입니다 ~
만휴정 상류에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이라 새겨진 암각문 <巖刻門>이 ~
세월이 흘렀음에도.. 선명하게 너럭바위에 남아있읍니다 !!
뜻은? "내집에 보물은 없고,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 뿐이다" !!
계류<溪流>가 유유히 너럭바위를 타고 흐르는 곳에.,, 보물같은 "선생의 유훈" 이 선명히 드러나 있읍니다 !!
"청백리" <淸白吏>로 이름을 떨친 선생은 "호" 도 "보백당" <寶白堂>으로 했다는군요 ~
"만휴정" 에서 2 KM 떨어져 있는 "묵계서원" 의 정문인 "진덕문"<進德門>입니다 ~
정문을 지나면 문루<門樓>인 "읍청루" 가 독보적인 건축미<建築美>를 선보이구요 !!
"읍청루"<挹淸樓>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탁 트여.. 사색<思色>의 공간으로 거듭났을테죠..?
1501 년 고희를 넘긴 "보백선생" 은.. 이곳 안동 길안면 묵계리 종택<宗宅>에 정착했구요 ~
"묵계서원"<默溪書院>은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 "응계 옥고"<凝溪 玉沽>선생을 봉향<奉享>하는 서원으로 ~
선명한 태극문양이 비치듯,, 두분의 올곧은 "청백리 정신" 이 계승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
"입교당"<立敎堂>은.. 보백당 선생이 후학들을 지도하던 "강당" 이구요 ~
"극기재"<克己齋>는,, 유생<儒生>들이 공부와 생활을하던 공간 이라고 합니다..?
선생을 모신 사당<祠堂>인 청덕사<淸德祠>에는.. 사계절 푸른 송림이 감싸고 있으며..?
종택 마당에 있는,, 거북바위가 수호신 <守護神> 의 임무를 띠고 있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