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 템플스테이 / 이미옥
한 해 마무리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다섯 엄마들은 단출한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호기심 반 사심 반으로 천은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추석쯤에 다녀온 지인이 말하길 절 뒤 숲속 산책로도 초입의 작은 호숫길도 예쁜 곳이라 했다.
단풍철이 지나서 절을 찾은 이들이 많지 않았다. 경내로 들어서니 따뜻한 햇살 아래 보살 둘이 고양이를 눕혀 놓고 새까만 진드기를 잡고 있었다. 마당에 뱃살을 철푸덕 부려놓은 게으른 녀석들은 선잠이 들었을 텐데 거대한 그림자에 미동조차 없다. 도착이 일러 툇마루에 가방을 내려놓고 산책에 나섰다. 여름에 시원하게 흘렀을 계곡물은 작은 웅덩이를 이룬 채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을 맑게 새기며 겨울 향을 내고 있었다. 상쾌한 냉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천천히 걸었다. 숲의 묵직한 고요는 여인들의 들뜬 수다에 깨어났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극락보전 오른편으로 설핏 보이는 사립문을 지나 돌담길을 걷다 보면 템플스테이 건물이 나온다. 오래된 나무 대문으로 들어서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반질한 흙길, 흙길을 감싸고 있는 나무 그리고 절에서 살짝 비켜 앉은 템플스테이 건물에서 배려가 느껴졌다. 무거운 종아리를 가만히 훑고 지나가는 산사의 바람까지. 짐을 풀고 널찍한 대청마루에 줄줄이 앉아 마당 구석에 꽃등처럼 매달린 감을 보며 한마디씩 하고 있으니 템플스테이 총무 보살이 단체 사진을 찍어준단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라는 걸 잊은 다섯 명의 소녀들이 사랑채 깊은 마당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는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절 마당을 환히 비추는 보름달을 구경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우리에게 스님이 예불 타종을 하러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잔다. 모두가 따라나섰다. 스님이 정돈된 자세로 줄을 잡고 당목을 부드럽게 종에 부딪히자 커다란 소리가 났다. 땅바닥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스님은 계단 아래에 빙둘러 서 있는 우리에게 올라와 쳐 보란다. 한 명씩 차례로 종을 쳤다. 각자의 방식대로 제각각의 소리를 내는 종소리가 조용한 산사에 퍼져 나갔다.
스님은 우리를 숙소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길이 좁아 한 줄로 길게 걷고 있어서 그분의 나직한 음성은 말이 아닌 소리로 가만가만 들려왔다. 숙소 마당에서 다들 아쉬운 인사를 나눌 때, “스님, 저녁에 게임 해도 되죠?” 한 아이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응, 해도 된다.” 시원한 대답에 아이가 부모를 돌아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답을 한 스님도 우리도 함께 웃었다.
달빛 아래 짧은 산책 탓인지, 일찍 내려앉은 어둠과 맑은 공기 때문인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곤조곤 얘기하다 잠이 들었다. 낯선 잠자리로 인한 뒤척임도 없이 누군가의 알람 소리가 울릴 때까지 곤하게 잤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막내의 가까운 중학교 배정, 큰아들의 대학 합격, 멋진 스님의 불경 소리를 바라는 이들은 서둘러 일어나 극락보전으로 갔다. 나는 따끈한 온돌 바닥에 등을 붙인 채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루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은 이가 맞지 않는 방문을 간간이 흔들었다.
집을 나설 때의 분주함은 산사에 머물면서 차분해지고 고요해졌다. 이른 새벽 절 마당을 가지런히 비질한 어떤 이의 마음처럼.
첫댓글 산사에서의 하룻 밤, 참 좋았던 날의 기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제가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템플스테이 꼭 해 보고 싶었던 것인데 부럽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 계획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글이 이뻐요.
몸과 마음이 깨끗해졌겠어요. 그런 것을 바라고 가겠지만요.
'따끈한 온돌 바닥에 등을 붙인 채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문장이 저를 막 잡아끄네요. 글을 읽으니 제 마음까지 평온해집니다.
언젠가는 저도 친구들과 해 보고 싶은 활동입니다.
고요한 산사에서 친구들과 머문 시간이 참 정갈했을 것 같습니다.
숲솦 산책로를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느껴지네요.
템플스테이 늘 꿈꾸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없지만,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예전에 강화도 가서 큰스님 법회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때쯤이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