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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공은 한발 한발 내디디며 느리게 에펠탑을 오릅니다. 자신이 페인트를 칠해야 할 자리에 도착했을 때 에펠탑 아래 파리 시내는 너무 아득해서 이미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천길 낭떠러지 같은 에펠탑 위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맨손으로 페인트칠을 합니다. 한 손으로 칠을 하고, 한 손은 난간을 잡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마치 춤을 추듯이 붓질을 합니다. 사진가가 무섭지 않냐고 물었더니, 페인트공은 무섭지만, 연인을 생각하며 견딘다라고 합니다. 이 모습을 담은 사진이 프랑스의 사진가 마크 리부를 세계에 알린 <에펠탑의 페인트공>입니다.
이렇게 무섭지만 견디면서 페인트칠을 하는 극적인 요소는 없지만, 사랑어린배움터가 새 옷을 입는 날 우리는 극적인 것보다 더 아름답고 세심한, 사랑을 담아서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사실 3층 높이 난간에 올랐갔을 때는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난간이 앞뒤로 흔들리거나 출렁거리기도 했으니까요.
지난여름 비가 올 때 벽과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졌습니다. 교실 벽은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어올랐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하자 싶어서 이동식 비계를 빌려와 땜질을 했지만 건물 전체는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교실 누런 벽지를 볼 때마다 비오는 날을 걱정하고 외벽 방수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비님은 예고없이 우리 곁을 찾아왔고, 방수공사는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배움터가 새 옷을 입는 페인트칠도 반갑지만 외벽, 창틀 방수공사는 그래서 더 반가웠습니다.
올라서서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철구조물의 위용을 보고서는, 과연 오늘 페인트칠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거기에 올라설 파티친구들이나 학부모들, 작업하시는 분들이 안전할까 하는 걱정도 앞섰습니다. 규모에서 오는 위압감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들, 파티친구들과 작업하시는 분들까지 많은 인원이 우왕좌왕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워낙에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일이 페인트칠이기도 하고요.
신단다와 아이들이 마음의 빛을 모았습니다. 사랑어린배움터가 예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두 손 모읍니다. 파티 선생님으로부터 해야 할 일들, 조심해야 할 일 등에 대해서 설명을 듣습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진 배움터 그림은 벌써 페인트붓을 들고 달려가게 만듭니다. 하지만 파티 언니, 형 들이 색깔대장으로 정해졌으니 모둠으로 모여서 색깔대장을 따르기로 합니다.
기다리는 일이 지루하고 햇살은 따갑지만 예쁘게 빛을 칠하기 위해 조급함은 잠시 접어 둡니다. 아몽은, 오늘 따라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다고 신기하다는 듯 웃습니다. 배움터 곳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예쁜 색깔을 떠올립니다.
아이들의 조급함을 모르는지 어른들은 여전히 밑작업 중입니다. 둘러서서 도면을 보고, 색깔을 조합하고, 칠할 곳을 정하고, 인원을 나눌 궁리를 합니다. 페인트칠을 시작해야 하는데 빠대칠이 덜 된 곳이 많습니다. 빠대를 바른 후 30여 분 정도가 지나야 페인트칠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이미 일은 시작됐는데 조급해지기는 아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외벽을 깔끔하게 하는 정리작업이 덜 된 곳도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아빠들 몇몇이 빠대, 칼, 빗자루를 들고 달려 듭니다. 페인트 작업 회사분들도 분주합니다. 사장님은 몇 번을 밀고, 쓸어도 빠진 데가 있다며 겸연쩍어 합니다. 파티친구들이 올레길 표식을 만들었습니다. 파란 마음, 노란 마음이 지나가는 길입니다. 우리 마음속 예쁜 빛이 여기로 내려와 앉겠지요?
자, 이제 빛칠하기를 시작합니다. 빠대가 마른 곳, 정리작업이 끝난 곳부터 서서히 페인트 칠을 합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빛칠과 마주합니다. 아이들은 손에 붓을 들거나 대야를 들고 색깔대장을 따라서, 배움지기들을 따라서 병아리떼처럼 쫑쫑거리며 옮겨다닙니다. 페인트 작업 회사분들은 3층으로, 학부모와 파티친구들은 2층 난간으로 올라가고, 아이들은 1층을 맡습니다.
정성을 쏟는지 별다른 말들이 오가지도 않습니다. 전문가처럼 안전장구를 챙겼습니다. 페인트를 갖고 장난을 치지도 않습니다. 붓을 쥔 손에 힘을 한껏 줍니다. 자기 키보다도 더 기다란 장대에 페인트를 묻혀서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밀어 올립니다. 마치 그곳이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작은 별이라고 할지라도...
누나, 언니 들에게 묻고, 설명을 들으며 진지하기만 합니다. 누군가는 다만 가만히 앉아서 자기 신발에도 마음의 빛을 담아 줍니다. 손가락으로 페인트를 찍어 신발을 정성스럽게 꾸밉니다. 언니, 나도 그렸어! 하며 둘이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발을 들이밉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고 깡총거리며 갈지자로 뛰어갑니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는 야무지게 핸드프린팅을 해놨습니다.
씨앗, 새싹, 줄기는 구령대를 도맡았습니다. <큰 뜻 깊은생각 바른행동> 아래를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오르내리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얼마나 많이 쩌렁쩌렁 울렸을까요? 오랜 세월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구령대를 바라보며 따가운 햇살을 손차양으로 가렸을 테고, 하품을 하고, 운동장을 발뒤축으로 툭툭 차며 흙먼지를 날렸겠지요? 알 수 없는 날을 살아온 구령대가 고사리 손으로 예쁜 옷을 입었습니다.
아이들은 손에, 옷에 페인트가 묻었다며 울상을 짓지만 붓을 놓지 않습니다. 페인트붓으로 장난을 치며 까르르 웃습니다. 아이들의 붓끝과 그걸 바라보는 눈에는 마음이 가서 닿습니다. 아이들이 칠하고 우루루 몰려서 놀러 간 뒤에 파티 선생님과 친구가 구령대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칠했습니다.
엄마들이 함께 만들어준 짜장밥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빠질 수 없는 축구를 한 판 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언니들과 운동장에 금을 긋고 놀이를 합니다. 몇몇은 파티 형과 농구를 합니다. 먼지를 일으키던 축구공이 팔방을 하고 있는 친구 가랑이 사이로 골인이 됩니다. 운동장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점심 후 나른한 햇살이 배움터를 가득 비춥니다.
날개 선생님께서 2층 올라가는 계단 벽면과 공양간 벽에 멋진 생명평화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우리 배움터가 온 생명이 평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가기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빨간 모자를 만지작거리면서 두더지 모자 같다고 말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사진을 찍어 줍니다. 아이들의 어리광 소리가 축구 골대까지 들려옵니다.
소성이 아빠가 오시자 작업이 작업다워집니다. 도면을 보며 실제 벽면 어디까지가 파란색인지 군청색인지 고민하다 소성이 아빠가 3층 난간으로 올라 갑니다. 소성이 아빠가 테이프를 붙이고, 너구리가 2층에서 중심을 잡고, 민정아빠가 1층에서 붙입니다. 땅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조금 더 왼쪽으로, 아니 오른쪽으로,를 외칩니다. 또 페인트를 부지런히 날라다 위로 올립니다.
파티친구들이 칠하고 있는 건물 동편의 삼각형은 크고 작고 자유로운데, 학부모들이 맡은 서편 외벽은 도면만 바라보며 어떻게든 도면대로 구성하려 합니다. 모르는 일을 하니 파티에서 그려준 도면이 최선이었습니다. 잘 모르는 일이더라도 조금 더 고민해보고, 다시금 물어보는 여유가 아쉽습니다. 뒤늦게 동편과 서편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서편도 도면만 쳐다보지 말고 자유롭게 칠하자고 하자, 파티친구가 좋은 생각이라며 그렇게 하라고 힘을 싣습니다.
난간을 한 손으로 잡고 붓질을 하는 모습이 여간 위태롭지 않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출렁거리는 구조물에도 불구하고 꼼꼼하게 칠하는 일은 아이들을 향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학부모들이 칠하는 모습을 보며 작업 지시를 하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보며 빠진 데, 테이프가 뜯어지지 않은 데 여기저기를 알려 줍니다. 덕분에 위에서 벽만 보며 전체를 바라보지 못한 상황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자기 눈 앞만 겨우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넓은 안목을 갖게 해주는 일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남도 끝자락, 작은 학교까지 찾아와서 예쁜 옷을 입혀준 파티친구들이 고맙습니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을 일 같았는데 알록달록 산뜻하고, 화사합니다. 멀리서 찾아와준 친구들의 사랑어린 마음 하나하나가 정성 가득한 손길로 바뀌어 배움터 이곳저곳을 쓰다듬습니다. 친구들의 고운 마음을 우리 안에 살포시 담습니다.
페인트 칠을 끝내고 날개 선생님께서 아쉬운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페인트칠 회사 사장님께 내일이라도 다시 칠해달라고 부탁하는 파티친구 모습이 우리 식구와 같습니다. 서로 수고했다며 웃습니다. 하루종일 뒤에서 색깔 고르고, 페인트 섞고, 담아내느라 애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 조율해서 아름다운 일을 마무리 지어서 더욱 고맙습니다.
모두가 함께 해서 즐거운 날입니다. 잔칫날이 이런 날이겠지요? 시형이가 방송국 인터뷰에서 야무지게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저도 지저분한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었을 때처럼 상쾌하고 좋을 거 같아요! 아이들과 학부모, 파티친구들과 페인트칠회사분들 모두가 배움터 앞 뒤로, 놀이터와 운동장 철봉에 바짝 붙어서 새 옷을 입히는 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내 마음 속 작은 때를 벗겨내고 이렇게나 멋지고 화사한 색으로 곱게 단장할 수 있다면, 늘 그대에게 환한 색색의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을 텐데! 내 지저분한 옷을 흐르는 시냇물에 담궈 푹푹 빨고 햇볕에 바싹 말려 아직 조금 남아있는 향긋한 빨래비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늘 그대에게 상쾌한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을 텐데!
사랑어린배움터가 새 옷을 입던 날, 그곳에 사랑어린 페인트공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랑어린 사람들 맞지요?
Yes!
첫댓글 어른 아이 모두다 웃는얼굴로 진지하게 붓칠하는 모습이 일이 아니고 어울려 노는게 바로 이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차츰 알록달록 옷으로 바꿔입어가는 학교의 모습에 글을 읽어가는내내 저절로 웃게 되네요^~^
아이들에겐 최고의 날로 기억되는 날일거에요
사랑합니다 모두다!!
온통사랑투성이네~^^
조퇴가 취미이자 특기인 제가 이 날 조퇴를 못해서 얼마나 아쉽고 서운했던지요...^^하네요.
모두들 수고많으셨어요. 뭉클
우리가 우리를 칠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