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7, 8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최선책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보고(寶庫)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순위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 수호를 첫 번째로 여기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에 합당한 결과도 풍성히 얻게 됩니다.
믿음의 현장이 구원의 현장이고,
응답의 현장이고, 축복의 현장입니다.
저는 지금 목회 사역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전도 사명을 감당하다 보니
많은 사람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대면 전도만 190회가 넘었고
800여 명을 전도했습니다.
SNS 전도는 30개 언어로 70여 개 나라에서
76,000여 명의 세계인들이
전도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만하면 안 되고
늘 겸손한 믿음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고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쓰임을 받고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
제일 두렵습니다.
이로 인해 끊임없이 회개하며
올바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은혜가 많으니 회개도 많습니다.
회개가 은혜입니다.
새벽마다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유튜브 전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새벽에 온갖 생각으로
저를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어쩌면 마귀의 공격 때문에
제가 깨어 근신하며
믿음을 지키고 있는지 모릅니다.
마귀의 도전에 성령의 응전으로
승리하며 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8, 9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우리가 믿음을 굳게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 깨어 근신하여
마귀의 계략을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을 지키게 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물질을 지켜야 하고,
건강을 지켜야 하고, 가족을 지켜야 하고,
직장과 회사를 지켜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중에
가장 열심히 지켜야 할 것은
금보다 은보다 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을 지키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저절로 지켜지는 게 아닙니다.
시시각각 나에게 침투해 들어오는
잘못된 생각을 물리치고
올바른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죄로 오염된 생각을
수만 번이나 하며 힘들게 삽니다.
마귀가 우리의 생각에 침투해 들어와
우리의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쓰러지고 넘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중권세 잡은 자를
이기기 위해 선한 싸움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최선을 다해 주어진 길을 달려갔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소망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잘 되려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보십시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의 인기를 지키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인기가 올라갈 때는
매우 좋아하고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인기가 내려가면
견딜 수 없는 슬픔과 불안에 빠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의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
고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잘 안 되어도
그때마다 천국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위로받으며
소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세상에서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질병으로 고통을 당했어도
그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것을 감사하며
기쁘게 살았습니다.
제가 교육 전도사 시절,
새벽 교회 목사님이
한동안 매주일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맡고 있던 교회학교가
크게 부흥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지겹기까지 할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해주셨지만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예전처럼 칭찬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약간의 오해와 섭섭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 왜 목사님이
옛날처럼 칭찬을 안 하시지?’
이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 지키는 자를
가장 많이 칭찬하시고 상급을 주십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형이상학(形而上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는 집을 지키고,
돈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힘듭니다.
하지만 믿음이 눈에 안 보인다고
그것을 안 지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마저
허무한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는 우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만 굳게 잡으면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굳게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 엄청난 태풍에
많은 나무가 뽑혔지요.
나무는 흔들립니다.
큰 나무도 흔들리고 작은 나무도 흔들립니다.
가로수도 흔들립니다.
정원수도 흔들립니다.
모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같이 흔들려도
뽑히지는 않는 나무가 있습니다.
어떤 나무가 뽑히지 않습니까?
뿌리 깊은 나무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허리케인, 토네이도와 같은
환난의 태풍이 불어오고,
화산폭발과 같은 엄청난 재앙이 몰려와도
믿음의 뿌리만 깊이 내리고 있으면
결코 뽑히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지키려 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구원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세 신앙을 탈피하여
내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유튜브에서 천국과 지옥 간증 영상을
많이 봅니다.
오늘 새벽에도 성옥임 집사님의
천국 간증을 듣고 큰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서는 종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 간증을 들을 때마다
은혜가 되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천국에 가서 상급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합니다.
천국에 가서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며 살았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고 생각할 때
누가 전도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많은 사람이 전도 없이 성경을 벗어나
왜곡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달려갈 길을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마귀와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어떤 장애물과 방해 요소가 있어도
우리는 멈추지 말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무엇을 지키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까?
예배를 지키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도를 지키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의 모든 신앙생활을 지켜나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믿음을 지켜야 천국을 지킵니다.
저는 많이 회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많은 성도가
교회를 나오지 않으며
불신앙의 늪에 빠진 채
영혼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이 없도록 가르친 것도
제 책임입니다.
정말 가슴이 저리고 아픈 일입니다.
혹시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책망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천국이 있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천국이 없으면 언제라도
예수를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있는 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천국 소망을 가지고
더 간절하게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상급을 받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열심히 전도해서 큰 상급을 받도록
부단히 이끌어줘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설교 시간마다 천국 복음을 많이 들어서
천국에 대해 더욱 확신하며
기쁨으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기쁨만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쁨을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는 헌신도
강조해야 합니다.
천국 구원과 전도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님처럼 날마다 반복을 해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믿음을 지킨 데는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상급이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믿음을 지킨 바울에게 무슨 상급이 주어집니까?
의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할 때
우리에게도 의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그냥 대가 없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어질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킵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0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죽도록 충성한다는 개념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를 믿다가 순교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잃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연 이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까?
교회마다 이 사명을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증언하다가 복음 때문에 순교했습니다.
특히 지금은 청년 전도가
매우 어려운 시대입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청년들이 미디어를 통한 세상 문화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기 삶에 그대로 접목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과 아울러
부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마귀가 이 미디어를 사용해서
청년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타락시키고,
잘못된 길로 가게 합니다.
우리 교회 아이들도 걱정스러운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우리보다 몇 배, 몇십 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천국 복음으로
미디어를 정복하게 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잘못된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급속히 타락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면에 우리 기독교에서는
미디어 활용이 극히 저조합니다.
거의 ‘우리끼리’의 미디어입니다.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을 끼치는 미디어로
확장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장년들보다 청년들이
미디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우리가 보내는 구원의 복음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매일 받고 있는 좋아요 표시들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MBC 방송 영상에서도
좋아요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 교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고요?
몇 개월째 우크라이나 뉴스 영상에
전도 영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 있는 그들에게
천국에서의 영생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소련 강태원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죽음의 공포에 빠진
우크라이나인들이
성경책을 간절히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인들 860여 명이
우리 교회에서 보낸 전도 영상을
조회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가끔 악플도 옵니다.
요즘 몇 번이나 이런 악플을 보내온 사람이
있습니다.
“칼 맞고 싶지 않으면 나가!”
정말 그 사람이 제 앞에 있었다면
가슴에 칼을 꽂았을까요?
저는 거의 날마다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악플을 받으며 무형의 죽음을 겪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에도 전도하는 사람이
칼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이 극심한 사람들은
전도자에 대해 어떤 행패를 부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악플을 다는 사람에게
천국과 지옥 영상 링크로
답글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그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비록 악플을 받는다 해도
전도하다가 목숨을 잃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40여 전에
어린이 전도를 많이 할 때
리어카에 태우고
교회에 데려오는 전도를 했는데
지금 어린이 전도를 할 때는
리어카 대신 휴대폰 유튜브 방송 출연 영상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군요.
제 췌장암 치유 간증 전도는
불신자들도 아주 강하게 전도할 수 있는
효과적 도구가 됩니다.
전도 대상자들에게 지옥을 강조해도
오해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알았다는 대답을 많이 합니다.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전도 믿음을 지킵시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악의 세력과 맞서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훗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 지켜 나를 위해 마련된 상급을 지키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