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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잠깐만요
이홍사
저기, 수척한 부처가 돌아앉아 제 귀를 뜯고 있네
돌아갈 길이 추적거리는 먼 나라 새벽
허름한 뒷골목 호텔, 뒤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깊은 내상을 입었구나
퇴화한 새소리를 들으며 쓴다.
무뎌진 새소리를 따라 적는다.
*
온통 부처로 무장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가 보르네오섬의 브루나이 귀퉁이에 앉아 부처를 적는다.
부처로 무장한 사내.
남들은 그렇게 수식한다.
깃들어주셔요.
스며주셔요.
매일 새벽, 자고 일어나 정갈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의 말 중에 한 부분이다. 나는 부처를 믿는다, 아니다. 나는 부처에 기댄다는 말이 더 적절할 성싶다. 그런데 남들은 부처로 무장했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부처의 가피를 듬뿍 받아 가슴에 담고 샐 틈이 없도록 봉인했다. 침대 머리에 벗어둔 오늘의 시계는 아직 차지 않았다.
- 부처를 불렀다고 적는다.
부처가 불렀다고 다시 적는다.
어느 게 적절한 표현인지 약간 헷갈렸다.-
술탄 국왕이 이슬람 종교로 무슬림을 지배하는 이 나라에서 엉뚱하게도 부처를 불렀다, 여기 처음 도착하던 날도 그랬다. 이슬람의 성지 오마르 알리 모스크에 가서 예배당 그 웅장한 내부를 둘러보며 나는 부처를 찾았다. 이 공간에 부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엉뚱하게 한 것. 이슬람의 무슬림, 입장에서 따져보면 얼마나 불량스러운 짓이겠는가.
보르네오섬의 작은 나라, 브루나이.
돌아갈 새벽에 깨어 현담과 현공의 차이를 헤아려 본다.
먼 나라에서 섣불리 쥐고 자던 잠을 놓치면 다시 잠이 오지 않는 법. 초저녁에 일찍 자서 그런지 새벽이라고 지칭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오밤중에 깨어나 지금 한국에 있을 두 스님을 더듬고 있다.
현공과 현담.
현공이나 현담 스님은 머리를 깎은 스님, 같은 비구 스님이지만 성격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두 스님의 성격을 떠올리고 얼굴 모습을 떠올리면 확실한 차이가 드러나지만, 핸드폰 전화번호에 찍힌 이름을 보면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두 스님의 전화번호는 가나다순에 의해, 핸드폰 바로 아래위로 저장되어 있지만, 두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은, 물리적 거리로 따지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오 분을 가느냐 오십 분을 가느냐의 차이다.
두 스님은 가깝고도 먼 사이인가?
가깝고도 먼 사이?
두 스님을 뵌 건 지난 달이었다.
지난달 현담 스님께 전화를 넣은 곳은 친구의 타이어 가게서였다.
친구의 타이어 가게는 지산 삼거리에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주차가 쉬운 그곳이 내게는 참새 방앗간이다. 현장을 둘러보러 나가거나, 들어오면서 꼭 들러서 커피를 한잔하고 노닥거리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공간. 언제 들러도 눈총을 주는 이가 없는 공간에서 나는 늘 일련의 사건을 구상한다. 그곳에서 구상하는 사건들은 내 정신 건강에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울 때가 있다. 그곳에서 기획하는 사건들은 경제 논리를 벗어난 일들이기에 그렇다.
친구의 타이어 가게에 걸어서 오 분 거리에 도현사가 있다. 그곳은 아내가 자주 다니는 절이다. 그 도현사의 현담 스님께 전화한다는 것이 잘못 눌러서 현공 스님께 전화가 갔다. 스님들과의 대화, 찾아뵙기보다는 통화를 즐기는 내 핸드폰에는 거의 열댓 분의 스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데 모두가 법명으로 저장되어 있다. 다른 스님들은 하나씩 저장되어 있지만, 현담과 현공은 가나다순에 의해서 바로 아래위로 저장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핸드폰에 저장된 스님들께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스님들은 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신도를 기다린다. 신도들이 물어다 주는 소식을 들으며 바깥 세계를 접하는 스님이 대부분이다.
그런 스님들께 그런 소식을 물어다 주는 일에 나는 충실한 편.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성의나 신심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이지, 스님들께 즐거움을 주는 방법. 그 방식을 나름대로 체득하고 있었다. 스님들께 전화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배운다고 생각하면 한두 시간은 통화할 수가 있다. 전화를 받은 스님이 가르친다는 기분이 들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고즈넉한 산사의 기운은 느낄 수가 없지만, 스님들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기운으로 기분이 말끔해질 때도 있다.
어제는 친구의 타이어 가게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무료한 짬에 잠시 옆에 있는 도현사에 들러 볼까, 하고 현담 스님께 전화를 넣었다. 통화를 길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입춘이 지났으니 가까운 절에 가서 봄기운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이! 이게 누구야? 정말 오랜만이야.
예! 스님 접니다. 절에 계십니까?
응 절에 있어. 오실 거야?
절에 계시니 제가 커피 한잔 마시러 후딱 가겠습니다.
응 어서 와. 기다릴게.
통화는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했다. 가만, 이 스님 목소리가 왜 이래? 뭘 잘못 자셨나? 그렇게 목소리를 의심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방금 통화한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하니, 현담이 아니라, 현공 스님이었다.
이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현공 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자비사까지 가려면 차로 거의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왕복 두 시간인데, 그럴 여유가 없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들러 볼 현장이 있다. 바로 인근이 도현사에 가서 커피나 한 모금 하려던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엄청나게 커졌다.
스님께 간다는 약속을 해놓고 가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문제다. 늘 신도를 기다리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분이 스님이 아닌가. 그렇다고 기다리시지 말라고 다시 전화해서 현담 스님께 전화한다는 걸 잘못 눌렀다고 실토할 수도 없는 문제. 물론 두 스님은 서로 알고 있는 사이지만, 그렇게 한다면 현공 스님은 엄청나게 서운해하실 터.
어떻게 하나 잠시 망설였다.
기다리신다고 했는데.
아이고, 자비사 부처님이 이 중생을 부르시는구나. 그쪽 부처님은 도현사 부처님과 다른 분이신 모양이네.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현장에 전화해서 오후 늦게 들르겠다고, 시간의 간격을 조금 벌려 내 시간을 만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점심은 자비사에 가서 먹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차에 올랐다.
자비사는 낙동강이 오롯이 품고 있는 마을 도개, 도개에서 군위로 넘어가는 청와산 푸른 기숡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자비사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했고 산을 찾아야만 했다.
자비사에서 점심을 해결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건 막연한 오산.
절로 가는 시간에 점심시간이 지났고, 절에 도착해 법당에서 참배하고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니 공양간은 이미 설거지를 깔끔히 마쳤다는 걸 눈치챌 수가 있었다.
굳이 점심으로 밥이 필요했다면 공양간에 가서 공양주에게 부탁해 남은 나물에다 고추장을 듬뿍 넣어서 한 사발 비벼서 쉽게 해결했겠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의 불행에 있어서
너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해
나보다 더 큰
너의 불행을 가져와!
그날 스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생각이다. 남의 불행이 왜 뜬금없이 떠올라 나를 사로잡고 있었는지. 그 말이 맴돌아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절에 가면 내놓는 전통차는, 나는 맛을 모르겠다. 전통차 중에서 우전이니, 작설이니 하지만 그런 차를 마셔서 맛을 구분하는 것도 이상하고 다도에 대해서는 더 터무니없는 예법이라고 치부하는 형편이니 절에서 예를 갖추며 차를 마시는 것은 어쩐지 부담스럽다.
현공 스님은 그걸 알고 있는 터라, 내가 가면 차를 내놓지 않는다. 인스턴트커피에 종이컵으로 잘 저어서 한 잔 내미는 형편이다. 그날은 현공 스님께 종이컵에 관해서 얘기했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면서 어지간하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었고 스님은 편리함에 너무 쫓는 현대인의 버릇을 아우르기엔 충분한 물건이라 했다.
스님께 종이컵을 거론하며 딴지를 건 내 전략이다.
스님을 만나서 바로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덕담을 주십시오, 대뜸,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서 망설이게 된다. 오랜만에 스님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난 다음에는 할 말이 없는 법이다. 무슨 딴지를 걸어서 이야기를 수면 아래로 끌어 내려야 한다.
그래야 깊이를 지닌 이야기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그런 이야기로 딴지를 끌어 스님의 생각을 수면 아래 깊숙하게 끌어내려 그 부분에서 이 양반의 생각이 어떤가를 짚어보고 한 수 배운다면, 비록 전화번호의 착오로 잘못 찾아간 절이라지만 본전을 건질 수 있는 법.
그날은 다른 사람들이 주지 스님 방에 들어오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스님과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큰스님을 독차지하고 즐긴 것이다. 그런 시간이니 점심을 먹지 못했다고 서운해할 일만은 아니었다.
그날 짚어보니, 현공 스님과 만난 지 꼭 삼십팔 년째다. 비교적 옛일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스님이 일러준 숫자였다. 38.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숫자를 푸근하게 여겨졌던 건 왜일까?
현공 스님은 도리사의 종무 스님으로 계시던 젊은 날, 일을 위해서 만났다.
당시에 나는 그때로서는 보기 드문 소형 굴착기 기사였고 차주다. 도리사의 경내 배수 작업공사에 들어갔다. 비가 오면 절 마당과 법당, 요사채 부근에서 배수되지 않는 물, 진입로에 넘쳐나는 물을 잡으러 갔다. 그런 일은 그 절의 종무 스님 담당이다. 도면이 있는 일도 아니니 종무 스님과 상의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마땅하고 들어가는 작업비는 종무 스님에게 받아야 했다. 종무 스님은 작은 굴착기로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물 사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물 사냥?
그럴듯한 말을 새기며, 매일 그날 작업이 끝나면, 다음날 일을 위해서 종무 스님과 앉아 차를 마시며 물 사냥에 대해 의논했다. 그때부터 전통차가 아니라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주차장과 진입로까지 완전히 물 사냥을 하는데 거의 보름이 소요되었고, 그 일을 하며 종무 스님, 그 젊은 스님에게 신비감을 느꼈다. 신비감? 그랬다. 신비로운 면을 지닌 스님이었다. 나도 젊었고 스님도 젊었던 시절이었다.
그 물 사냥을 마치고도 스님과 연결고리를 끊지 않았다. 수시로 연락하고, 시간이 나면 일삼아서 도리사 종무소에 차를 마시러 갔다. 도리사를 찾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당시에 귀했던 승용차를 스님도, 나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에 내가 타던 소형 중고차는 스님을 만나러 갈 때야 그 진가를 발휘했다. 스님과 친분은 그렇게 두터움을 더해 갔다.
그날 엉뚱하게 전화를 하는 바람에 찾아간, 자비사 현공 스님의 말씀 중 남는 것은,
물건을 살 때 두 가지 기준점을 설정해야 한다. 물건이 확 마음에 들던지, 아니면 가격이 눈에 뜨이던지, 달리 말하면 물건의 품질에 빠져들던지, 아니면 가격에 미쳐야 한다는 말이었다. 물건이 마음에 들고 가격까지 감동적이라면 금상첨화가 되겠지만, 그런 경우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법. 하나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물건을 찾으라는 말씀이었다. 그 얘기를 풀어서 두 시간이 넘도록 했다.
스님을 뵈면 언제나 배울 게 있군요. 이제 한 가지를 충족시키는 물건을 사러 가겠습니다.
현공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문지방을 넘으면서 인사차 던진 말이다.
그 정도로 떠들며, 스님을 독차지하고 놀았다면, 비록 전화를 잘못해서 찾아간 자비사이지만 본전은 건진 셈, 그날은 현공 스님의 늘 던지는, 선문답이 없었다. 스님을 만나면, 던져 주는 선문답이나 화두가 늘 싱그럽고 상큼한 바람이 되어 가슴에 일었는데, 그날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만 나누었다.
자비사를 나와 주차장의 차에 오르자, 시동도 걸지 않고, 바로 전화기를 열어 현공 스님과 현담 스님을 분리했다. 그 일이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 전화기에 아래위로 저장된 이름 앞에 변별력이 생기도록 절 이름을 앞에 넣었다. 자비사 현공, 도현사 현담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바로 저장했다. 두 스님의 법명보다 그 스님들이 깔고 앉은, 절의 이름을 수식어로 채택해 저장했다. 그렇게 저장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속의 두 스님은 순식간에, 엄청난 간격으로 벌어졌다.
이렇게 사이를 벌려 놓아야 안심이 되는 두 양반이군.
그렇게 뱉었던가, 만날 때마다 현공 스님이 이야기를 한다.
집을 지으라는 말. 몸이 사는 집이 아니라 마음을 누일 집. 그런 집을 어디에 한 채 지어두고 마음이 고달프면 들어가서 푹 쉬라는 말인데.
어디에 지을까?
마음속이었다. 그런 집은 가슴에 지어야 마땅하다는 말이었다.
가슴에 집을 지을 만한 땅을 사려면 얼마나 들어야 할까? 몇 평이 적당할까? 속 좁은 내 가슴에 그럴 공간이나, 영역이 있기나 할까?
내 가슴에 그럴 공간이 없으면 부처의 가슴이라도 잠시 빌려야 마땅할 터.
부처님 가슴 속으로 주소지를 옮기진 못하겠지만, 수시로 들락거릴 수는 있겠다. 덤으로 부처와 내통하는 길을 만들 수가 있을 터이고. 그렇게 내통하는 길을 들락거리는 건 언제나 짬을 이용해야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절에 가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건 숙제가 되고 부처와 나 사이에 벽이 생긴다. 순간순간, 기회가 있으면 바로, 잠깐만요! 하고 찾아야 한다. 그게 내가 부처를 만나는 방법.
아무튼, 현공과 현담의 간격을 띄워 놓으니 그날은 맘이 놓였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먼 나라에서 두 스님에게 잡혀있는 걸까?
보르네오섬의 새벽,
돌아갈 길이 추적거리는데 꼭두새벽이라기보다는 오밤중에 깨어나 두 스님을 헤아리고 있다.
현공과 현담.
삭발한 뒤통수의 곡선이야 사뭇 닮았지만, 성격이야 엄청 다른 두 스님을.
어제도 두 스님 생각에 사로잡혀 오후를 보냈다. 해안을 거니는 내내 두 스님의 얼굴이 번갈아 눈에 밟혔다.
왜 난데없이 두 스님을 비교하며 골똘했을까?
아마도 집 때문이었을 거다.
마음속에 지으라는 실제 바닷가에 있는 집.
어제는 엠파이어 호텔 주변, 해안가를 싸돌아다녔다. 우기인데도 불구하고 우산을 챙기지 않고 나갔지만, 싸돌아다니는 동안은 비가 오지 않았다. 시집 한 권만 옆구리에 끼고 그냥 아무 준비 없이, 정말 다시 생각하니, 커피 한 잔 값도 챙기지 않고,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든다는 호텔로 갔었다.
이 작은 나라는 택시비가 유독 비싸다.
기름과 천연가스 나와서 졸지에 부국이 된 나라, 잘 사는 나라에 택시를 할 사람이 없는 것인가, 호텔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면 여러 군데 전화를 해보고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처럼 부른다고 바로 총알처럼 날아오는 택시는 적어도 없는 나라다.
대중교통이 없는 나라.
참 웃기는 이야기지만 대중교통, 이 나라는 시내버스가 없다. 있다고는 들었지만, 보지 못했다. 명맥만 유지할 뿐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퇴화하는 실정인지 모른다. 어느 집이나, 고급 승용차를 서너 대씩 보유하고 있으니 시내버스를 이용할 승객이 없는 나라, 이 작은 나라는 세금이 없다고 했다. 학비는 전부가 무료고 만약, 유학을 해외로 가면 유학비 전반을 나라에서 책임진단다.
세금이 없으니, 개인택시고 뭐고, 자격이나 면허, 그런 게 없는 모양, 누구나 승용차 지붕에 택시라는 플라스틱 표시, 자석이 붙은 표식만 얹으면 끌고 나가 영업해도 무방한 모양인데, 부르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택시를 끌고 오는 게 대부분, 분명 노인들이 무료한 시간에 아르바이트 삼아 영업을 하는 모양인데 비싸다는 기분이 든다. 물가가 싼 나라가 아니라 그 정도는 예상했지만, 항상 타보면 내가 예상했던 금액 위에서 돌았으니, 길바닥에 경비가 박살 난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 교통에 대한 정보는 이 작은 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몰랐다. 인구가 겨우 사십만이라는, 영어가 공용이긴 하지만 말레이시아 언어를 사용하는 이 나라에 오기 전에 듣지 못했다.
술탄, 이슬람의 왕조가 지배하는 아주 작은 이 나라에 있을 건 다 있다.
도대체, 이 나라에서 통화량이 얼마나 된다고 지폐가 여러 종류인데 동전까지 만들었을까,
아무튼, 어제, 허름한 이 호텔 아가씨에게 택시를 이용하지 않고 엠파이어 호텔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하얀색 히잡을 쓴 아가씨가, 걸어서는 가기 힘든 거리라며 바로 뒤의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전화해서 오토바이를 가져오게 했던 모양.
외국에 와서 동네 아저씨 오토바이 뒤에 얹혀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호텔에 간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묵고 있는 이 호텔은 시 외곽으로 뚝 떨어진 손님이 적은 호텔이라 히잡의 아가씨와 금세 친해진 모양이긴 한데, 호텔이 한 나라의 랜드마크가 되는 나라가 있을까?
도대체 호텔을 얼마나 잘 지었으면 랜드마크래? 호텔 안에 골프장이 있다? 뭔 호텔이 그래?
여러 가지 사항들이 호기심으로 변해 들쑤셨다.
건축비가 3조 달러?
3조 달러면 쌀이 몇 가마니나 될까?
오토바이 꽁무니에 실려 가는 동안, 그 3조 달러라는 금액이나 숫자에 현실감은 일지 않았다. 3조 달러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는 알 수가 없었고 지금 못마땅한 건 시집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지만, 시집 속의 토실토실한 언어를 가슴에 담을 심리적 짬을 엮어내지 못했다는 점. 두 스님이 눈에 밟혔으므로 시집은 그냥 옆구리의 짐에 불과했다.
집이라는 게 내 머리에 화두로 들어왔기 까닭?
마음의 집? 그래서 스님들을 떠올리게 된 걸까?
호텔과 집?
집? 그리고 마음을 누일 곳?
거대하고 찬란한 호텔과 산속의 토굴 하나?
속으로 그런 영양가 없는 비교를 하며 들어가는데, 이건 호텔이 아니었다. 한국의 어느 종합 대학 캠퍼스에 들어가는 분위기, 내 인식 속에 존재하는 호텔과는 사뭇 달랐다. 아, 이게 세계급이구나, 역시 대지에 여유가 있어, 건물도 멀찍하게 떨어져 지었고 고층으로 높이 올라간 건 없었다. 객실도 여러 동으로 나누어서 지었는데 이쪽 동棟에서 저쪽 동으로 가려면 로비를 지키는 직원이 전동카트로 모시는 시스템. 가히 얄팍한 내 상상력을 초월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곳은 그 호텔의 메인 로비 앞이 아니라, 별채로 지은 객실인 모양인데 아담한 건물의 입구였다. 눈치를 보니 오토바이를 태워주었던 그 아저씨는 감히 본관 건물 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울 만큼 간이 크지를 못했던 모양. 그곳이 만만했던지 별관 입구에 나를 내려준 오토바이는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내게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안에서 직원이 나오기 전에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역시 술탄국 이슬람 지배하는 나라 국민은 간이 작고 주눅이 들어있는 모양.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오토바이에 눈길을 주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안에서 깔끔한 제복을 입은 지배인이 잽싸게 나와 웃음을 물고 이방인을 맞았다.
브루나이놈 치고는 헌칠하게 잘생긴 놈이었다.
이 나라를 돌아다니며 잘생긴 놈은 보질 못했는데 그 호텔에서 제법 괜찮게 생긴 놈이구나, 생각했다. 종자가 시원찮다. 브루나이, 나라에 기름이 나도 천연가스가 풍부해 졸지에 달 살게 되었지만, 종자를 개량하거나, 바꿀 수는 없었다.
그 옛날 말레이시아와 중국 화교의 찌꺼기들, 그렇다.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찌꺼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나라에서 못 먹고 살아 화전이나 일구려고 섬나라 밀림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후예다. 종자가 시원찮으니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의 이목구비가 훤칠하질 못하고 꼬질꼬질했다. 좋은 차를 타고 내리는데 보면 범털은 없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 히잡을 쓴 얼굴은 이목구비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법인데 맘에 들도록 다가오는 얼굴이 없었다.
조상이 시원찮으니 그런가?
범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하자면, 범털로 따지면 한국인을 빼놓을 수 없다. 동양에서는 한국인 서양에서는 러시아, 우량종이라고 할까? 생긴 게 반듯하고 옷을 잘 입으니 품행이 방정하고, 어느 나라를 돌아다녀도 우리나라 사람만큼 옷을 잘 입는 민족을 찾아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월급이 백만 원이라면 월급의 절반이 되는 오십만 원짜리 옷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지 않다. 먹는 데만 치중했지, 옷은 뒷전이고 일본인은 근친혼을 해서 종자가 이빨부터 틀어졌고 생김새에 우량종을 따지면 한국인이 으뜸이다. 머리 좋지, 근면하지, 옷 잘 입지, 잘 생겼지, 어디를 가나 한국인은 단박에 표시가 나게 돋보인다.
아무튼, 그 잘생긴 놈에게 투숙객이 아니라는 걸 내가 먼저 밝혔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상관없단다.
호텔 구경을 시켜줄 의무가 있는 놈이라 했다.
아무튼, 그 지배인이 제공하는 전통 카트에 실려 호텔을 두루 구경했다. 메인 로비의 기둥에 붙은 순금, 그게 순금이라 했다. 매인 로비에는 천정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았는데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높이에 노란색은 전부가 순금이라 했다. 인터넷에서 그게 순금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녀석에게 물어보니 순금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 대답이 건성인 거 같아 다시 메인 로비에 있는 총 매니저에게 물었더니 웃으면서 엄지를 세웠다. 예전에 어느 나라에 여행하면서 어느 사원의 지붕이 전부 순금이라는 말을 듣고 기어이 만져본 적은 있지만, 호텔 내부를 순금으로 장식한다는 건 분명히 내 상상을 초월했다.
정말 금테 둘렀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가끔가다가 종교에서 종교의 힘으로 금을 붙이거나 금으로 만든 곳은 더러 있다. 그러나 호텔 내부를 금으로 장식한다는 건 처음이었다. 금으로 기둥을 감았다고 하니 그냥 금박을 입힌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순금을 어른 팔목 정도의 굵기로 만들어 기둥 끝과 중간에 적당한 간격으로 장식해둔 것이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기둥과 천정이 하나가 아니었다. 그 넓은 로비에 그렇게 장식했으니 호텔 총매니저가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세계 제일의 호텔이라 하며 엄지를 세웠음이 분명할 터.
그런 호텔 로비에 서면 주눅이 들어야 하는데 어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호텔은 이 작은 나라의 국책사업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만든 것이니 영리를 따지지 않고 술탄국의 국왕이 왕실의 영빈관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한껏 멋을 부려 지은 호텔이니 영리는 따지지 않았다. 이 작은 나라에 국빈이 그렇게 자주 올 일은 없고 영빈관을 제외한 다른 객실은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데, 비싸다. 감히 하룻밤 잔다는 생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그 호텔은 수영장이 네 개이고 골프장이 있으며 볼링장과 영화관, 도서관까지 갖추고 있었다. 호텔을 둘러보고 뒤편의 바다를 끼고 있는 골프장을 가로질러 해안으로 나갔다. 가면서 보니 골프장은 홀마다 바다의 최고 전경을 담고 있었다.
아, 이런 호텔로 집이다.
거기서 말하는 집, 집을 생각 속에서 다스리며 스님이 말한 마음속에 지으라는 집 하나를 떠올렸던 모양,
해안은 아름다웠다.
쓰레기 한 조각 없이 깨끗한 해안, 해안도 호텔에서 관리하는 모양이었는데 시집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해안을 거닐며 내내 집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면서 두 스님의 얼굴을 밟고 다녔다.
현담 스님,
부처를 부르라고 했다.
현공 스님,
부처에 깃들라고 했다.
부처 속에 집 하나 튼실하게 짓는 방법은 없을까?
보르네오섬의 푸른 새벽, 뭔가를 적다가 나는 부처를 부른다.
부처님 잠깐만요. 내가 누구예요?
나지막하게 소리 내어 부처를 불렀다. 그러자, 부처가 나를 불렀다.
부처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는 나, 날이 밝으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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