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덮어주는 것입니다!
참고말씀: 창9:20-23; 잠10:12; 17:9; 마24:12; 고전14:1; 딤후3:2,4; 히10:25; 벧전4:7
읽을말씀: 벧전4:8
주제말씀: 벧전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첫째, 사랑이 식어지지 않으려면 더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벧전4:8 상)
성경은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사랑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식어집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 하) 어째서입니까? 먼저는, 각종 불법이 만연하기 때문이요, “불법이 성하므로...”(마24:12 상) 또한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나 돈, 쾌락 등을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3:2 상)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4 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사랑도 점점 더 식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펄펄 끓던 냄비의 물이 가스 불을 끄면 급속도로 식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도 자기애(自己愛)나 물질만능주의(物質萬能主義), 쾌락주의(快樂主義) 등의 이유로 빨리 식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개인마다 식어지는 정도가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사랑이 식어져가는 경향들을 교회 안팎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 하)
그렇다면 사랑이 식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열치열(以熱治熱), 곧 열(熱)은 열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랑이 식어질 때는 더욱 뜨겁게 서로 사랑함으로써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벧전4:8 상)
이게 어떻게 방법이 될 수 있습니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기도가 식어지면 더 열정적으로 기도함으로써 꺼져가는 기도의 불씨를 살릴 수 있고, 모이기에 소홀해지면 더욱 더 모이기에 힘씀으로써 신앙생활의 열의를 되살릴 수 있는 것 같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사랑이 식어질 때는 더욱 뜨겁게 사랑함으로써 식어져가는 사랑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더욱 그리해야 합니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지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심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벧전4:7,8)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같은 역설의 원리를 깨닫고, 식어져가는 사랑을 되살리기 위해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둘째, 뜨겁게 사랑하려면 감싸주고 덮어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하)
한편, 뜨겁게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대방의 허물을 감싸주고 덮어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하) 어째서입니까? 덮어주는 것이 곧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10:12 하)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상대방의 허물을 가려주거나 덮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들추어내고 공개해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고 맙니까? 친한 친구 사이라도 틈이 생기고 멀어지게 됩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17:9)
우리의 경우는 어느 쪽에 더 가깝습니까?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입니까? 아니면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입니까? 원컨대 사랑을 진정 구하는 자는 상대방의 허물을 계속 말하는 자가 아니라 가려주고 덮어주는 자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창9:20-23)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잘 덮어주지 않습니까? 그의 동기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10:12) 원컨대 우리는 사랑을 추구하며, “사랑을 추구하며...”(고전14:1 상) 사랑을 따라서 행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물론, 여기서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은 상대방의 고의적이고도 중차대한 과실까지도 무조건 못 본 척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중대과실은 엄히 묻고 권면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작은 실수들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얼마든지 덮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도록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또한 뜨겁게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허물을 거듭 말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고 가려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