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스타트업 따라 하면 실패
― 혁신은 다소 모호한 개념인데, 어떻게 정의하나.
"혁신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변화다. 기술적 변화,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 혹은 둘 다 될 수 있다. 혁신의 종류는 네 가지다. '일상적(routine) 혁신'은 기업에 이미 존재하는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하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만든 '파괴적(disruptive) 혁신'은 기업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다. '급진적(radical) 혁신'은 기술력에 상당한 변화를 의미하지만, 파괴적 혁신과 다르게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한다. '건축적(architectural) 혁신'은 기술적으로 급진적인 변화와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가장 도전적이고 어려운 혁신이다."
― 대기업이 혁신하려 할 때 많이 하는 실수는 뭔가.
"스타트업 문화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극히 일부다. 규모가 작다고 혁신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은 이미 한 산업군에서 성공을 한 경험이 있는 조직이다. 스타트업보다 혁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대기업 총수들은 흔히 혁신 문화에 대해 '즐겁고' '재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혁신 문화는 공원에서 뛰어노는 게 아니라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것 같은 극한 직업이다. 처음엔 실패를 다 용인해줄 것처럼 달콤하게 속삭이다가 나중에 말을 바꿔선 안 된다."
― 대기업은 수십년간 이어온 전략과 업무 패턴이 있을 텐데 바꿀 수 있을까.
"혁신을 위해 기업 핵심 전략을 모조리 바꿀 필요는 없다. 타이어 업체 굿이어(Goodyear)는 현재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이어 판매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 반면 구글은 핵심 산업인 광고 비즈니스가 매년 30%씩 고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핵심 산업에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달 탐사 같은 기업 본질과 관련없는 투자도 하고 있다. 굳이 '모 아니면 도'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 신규 사업보다 기존 사업 혁신부터
― 굿이어는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면 좋을까.
"아마존·구글·애플이 거대 기업이 된 이유는 그들이 플랫폼이었고, 신규 사업 창출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굿이어 같은 제조 기업은 본질적으로 신규 사업 도전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기존 고객(자동차 회사)과 관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 ' 타이어만 팔지 않고 자동차를 서비스한다'라는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신기술을 확보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다. 혁신은 기술 개발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진 않다.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선해 틈새시장을 만들 수도 있다. 온라인 면도기 배송 회사 달러셰이브클럽(Dollar Shave Club)은 면도기 강자 질레트를 놀라게 만들었다. 질레트는 그동안 면도기 시장 70%를 장악하면서 전통 판매 방식을 고수했다. 달러셰이브클럽은 한 달에 1달러만 내면 2중 면도날 5개를 쓸 수 있는 면도기를 집으로 보내준다. 이런 틈새시장은 대기업도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다고 본다."
― 미국 대형 백화점 시어스는 사라질 위기다. 시어스가 혁신하지 못했던 이유는 뭐라고 보나.
"전자상거래 시대 시어스의 몰락은 필연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얼마 전 이사를 한 뒤 아내와 함께 접시를 사러 백화점에 갔는데, 도와줄 점원이 보이지 않았다. 비용 축소를 위해 감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아마존에서 접시를 주문했다. 바로 다음 날 배송됐다. 오프라인 매장은 절대 온라인 매장만큼 비용을 낮출 수 없다. 아마존과 비용 경쟁을 해선 안 된다. 온라인으로 쉽게 물건을 살 수 있지만 굳이 소비자가 매장까지 나오게 할 이유를 만들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