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역설 제프 딕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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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우리 시대의 역설/ 제프 딕슨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 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작아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고 너무 지쳐서 깨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탤레비젼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가치있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 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 버렸다.
공기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는 더 늘어났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 류시화 엮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오래된 미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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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히틀러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따돌리고 놀림을 받곤 했던 두 학생이 자신들을 무시한 급우들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수백발의 총알이 난사되면서 13명의 무고한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갔고 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끔찍한 이 사건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 뉴스를 접한 호주 콴타스 항공의 최고 경영자 제프 딕슨은 글 하나를 인터넷에 올렸다. ‘우리시대의 역설’이었다.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했던 이 시는 삽시간에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한 줄씩 덧보태어져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은 딕슨의 시가 아니라 미국 한 교회 목사의 설교라는 말도 있고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이 글의 반향이 컸던 것은 세계인들이 그만큼 폭넓게 공감했다는 뜻이다. 당시 21세기 진입을 코앞에 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듯했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삶은 헛헛해져만 갔다. 좌표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양면적 자화상을 이 시는 아프게 꼬집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행복해져야 마땅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어찌된 까닭일까. 물질의 풍요와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것은 돈이 행복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물질적인 기반은 행복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적 만족 없이 행복이 담보되기는 어렵다. 수년 전 부탄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국민총생산(GNP)지표를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물량적 부의 추구로 인해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GNH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에 있는 인구 70만의 작은 산악 국가로, 국민소득은 2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나라다. 부탄은 1972년 이후 GNH를 국정의 기본철학으로 삼고 있어, 부탄 국민의 97%는 현재 행복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 역시 1974년 “경제성장(GNP)과 행복수준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GNP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롱경제학이지만 거시경제를 짧게 공부한 내 소견으로도 공감이 가는 제안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소득층에게 편중되는 양극화가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의 유속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졌고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에 가속화되었다. 결국 오늘의 양극화는 40년 전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이고 이대로 가다간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 많이 가지고 누리고 배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좀 더 너그러워지고 형편이 어려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깨를 펼 수 있어야 양극의 격차는 좁혀질 수 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합의를 이끌어낼 패러다임을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출범시킨 바 있다. 함께한 조윤제 교수, 박승 전 한은 총재,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등은 모두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다. ‘올드패션’이란 일부의 평가도 있었고 인품이 안 된 정치건달 김종인씨는 초장부터 재를 뿌리는 발언도 했지만 ‘세상이 확 바뀔 수 있다는’ 국가대개조론은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KAIST ‘입학사정관’직을 소신껏 수행한 바 있는 박승 전 총재의 연설은 감회를 새롭게 했다.
‘흙수저’ 문제와 미르·케이재단 의혹, 조선해양 사태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수렁에 빠진 나라를 그대로 둬야 하느냐, 지식인이 나서서 나라 구석구석 전면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한 열정적인 연설에서 희망을 예감했다. 그는 평소 “나 홀로 잘 사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성장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분이다. 한없는 탐욕과 헛된 것에 대한 부질없는 집착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이를 걷어내야 삶의 근원이 들여다보이고, 그 안목을 가질 때의 자유로움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리라.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