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른들은 “애들은 다 저 먹을 것 갖고 태어난다”고 얘기했다. 가난한 시절, 빠듯한 살림에도 이런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생각으로 아이를 여럿 낳아 키웠다. 그러나 요즘은 애 키우는 게 무한대의 고비용 구조요, 그렇다고 노후 봉양을 기대할 수도 없어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라는 푸념까지 나올 정도이니 한국에선 아이 하나둘 갖고도 부모들이 “등골 빠진다”고 난리다.
“애들은 저 먹을 것 갖고 태어난다”는 말은 지금 프랑스에 딱 들어맞는다. 나라에서 출산 수당이며, 육아 수당을 듬뿍 지원해 아이 키우는 부담을 덜어주기도 하지만, 나처럼 금전적 지원을 못 받는 외국인도 프랑스 생활에서 아이를 앞장세우면 혜택 받는 게 많다.
한국서 온 친구 가족과 함께 오르세 박물관에 입장하려고 길게 줄을 선 적이 있다. 늘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곳이라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박물관 안내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리를 보더니 “저쪽 출입구로 가라”고 안내했다. 아이 덕에 1분도 기다리지 않고 입장했다. 18세 미만은 박물관 입장이 무료여서, 아이들은 돈 한 푼 안 내는 공짜 손님인데도 이리 대접을 받는다.
정해진 좌석이 없고 무조건 선착순으로 자리를 골라 잡아 앉는 값싼 비행기 라이언에어를 탈 때도, 휠체어에 탄 사람이나 아이가 있는 가정만큼은 1순위로 먼저 태워준다.
프랑스 철도공사 SNCF에는 어린이 할인카드 ‘앙팡 플뤼스’라는 게 있다. 노인 우대나 학생 할인카드는 당사자에게만 할인 혜택이 적용되지만, 어린이 우대는 해당 어린이는 물론 동반하는 어른 4명까지 기차표를 30~50% 할인해 준다. 연회비가 65유로인데 아이 하나 있으면 아빠, 엄마, 옆집 아저씨 아줌마까지 값싼 기차여행을 할 수 있으니 한 번만 사용해도 연회비 본전을 건지고도 남는다. ‘어른 따라다니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 모시고 다니는 어른들’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이슬람 및 아프리카 이민 2세의 소요 사태 이후 프랑스 이민정책이 강화됐다. 올해 2만5000명의 불법 이민자를 강제 추방하겠다고 프랑스 당국의 서슬이 퍼렇다. 여기서도 아이가 있으면 예외다.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불법 이민자라도 아이는 무조건 학교에 받아준다. 올 들어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학교를 통해 불법 이민자 가정을 찾아낸다고 칼을 빼들자 이 무자비한 정책에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사르코지 장관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자녀가 있거나 프랑스에 도착할 당시 13세 미만이면서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불법 이민자 가정은 구제해 주기로 방침을 바꿨다.
아이가 여럿인 무슬림 또는 아프리카 이민자 가정 중에는 마땅한 직업 없이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각종 수당과 가족 수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아이 덕에 먹고 산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한국 같으면 ‘경로 우대’가 우선이겠지만 고령 사회에 접어든 프랑스에서는 웬만한 나이로 노인 대접 받기 힘들다. 70대도 청춘이다. 80~90대에 접어들어 심각하게 거동이 불편해야 스스로도, 남들도 노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경로 우대’보다 ‘어린이 우대’가 더 눈에 띄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저출산도 앞서 경험한 나라이다 보니 이처럼 어린이들의 사회적 지위(?)도 남다르다.
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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