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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으로 본 한국의 종교 - '일제하 사교집단' 白白敎 | ||
재산뺏고 정조뺏고 배교땐 목숨까지…父子 2대에 걸쳐 살인-사기행각 | ||
살인광마 사교집단인 백백교는 1900년 평안남도 영변군 근산면 화현동의 가난한 농사꾼으로 동학교도였던 전정운(全廷雲)이 백도교(白道敎)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농사를 짓다가 25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3년동안 도를 닦아 천지신령의 도를 터득하였다고 주장하며 함경남도 문천군 운림면 마양동에 백도교를 창설했다. 교명을 백백교로 고친 전정운은 1904년 6월에 천재지변이 일어나 전 인류가 멸망하지만 백백교를 믿으면 동해바다에 새로 생길 신선의 땅으로 피난하여 불로장생하게 된다면서 신도를 끌어 모았다. 전정운이 감언이설로 신도들을 미혹시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을 넘으면 바다가 있고 거기에 아름다운 섬이 떠 있는데 거기는 사철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일하지 않아도 농사는 저절로 되어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후는 항상 따뜻하여 눈도 비도 거의 없고 꽃 향기만 그윽하니 사람들은 수백년을 예사로 산다. 그 섬의 소유는 백백교이다. 잘 개간된 토지 위에 궁궐같은 집들을 이미 잘 지어 놓았고 모든 준비가 다 되었으므로 이 이상향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백백교에 들어오라. 이 신선들의 세계에서 돈 따위는 필요치 않고 다만 보화만을 기준으로 삼으니 속세에서 사용하는 돈 따위는 모두 버리고 들어오라" 대부분의 종말론들이 그러하듯 백백교의 경우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1904년 6월이 지나도록 천재지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동해의 유토피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도들이 동요하자 반발하는 신도들을 죽이고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으로 본거지를 옮겼다가 다시 근동명 오성산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1만여 명의 신도를 모은 전정운은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60명이 넘는 첩을 거느리고 호사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1919년 51세의 나이에 본거지를 새로 옮긴 가평군 화악산 기슭에서 병사하였다. 그동안 첩 4명을 생매장하고, 장인이자 수제자인 우광현(禹光鉉) 등과 함께 신도 최인상 최인혁 형제 가족 8명을 살해하는 등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교주 전정운이 죽자 장남 용주(龍株)와 차남 용해(龍海) 사이에 재산싸움이 벌어졌다. 전용해는 재빨리 외할아버지 우광현과 결탁하여 재산을 차지하고 차병간을 백백교의 새교주로 내세웠다. 이에 패배한 전용주는 별도로 인천교(人天敎)를 만들어 교주가 되었다. 백백교와 인천교는 각기 포교활동을 통해 신도 수를 늘려가는 한편, 여신도 간음과 재산탈취 등을 예사로 하였다. 1923년 전용해가 형을 내쫓고 인천교까지 장악하여 가평의 본거지에 궁궐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대교당을 짓게 된 것은 그만큼 갈취한 신도들의 재산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사이비 교리에 민중들 현혹돼 백백교의 중심 교리는 '한 사람(교주)의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하자(一之白將欲白之於 天下地)'는 것으로, 이는 유불선 3교가 모두 성쇠를 거듭하며 3천년을 흐르는 동안 그 본질이 쇠퇴하고 거죽만 남았으므로 새로운 종교가 요구되고 그 것이 바로 백백교라는 것이다. 그들은 신도들에게 백백교를 믿으면 살아서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가게된다면서 우매한 민중을 끌어 모았다. 입교식은 돈 1원을 내고 행하는데 먼저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 후 맑은 물 한 그릇을 정히 떠놓고 세번 손을 들었다 놓은 후 "제불자 제불자 천혼도우 제여자 제여자…" 운운 하는 괴상한 주문을 7번씩 세차례 외는 것이었다. 신도는 성별에 따라 평상시에도 늘 주문을 외워야 한다. 성인 남자의 경우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 따위다. 전용해는 1923년 7월 조선총독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포교허가를 받아 3대 교지를 만들었다. 첫째는 '백백교는 유불선 3교를 종합한 것이며 교조의 결박한 심령으로 세도인심을 결백하게 하고 이를 믿으면 몸과 마음이 다 결백해지고 일체중생은 모두 선남선녀가 된다'. 둘째는 '전세계는 얼마 지나지않아 신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서양은 불로 망하고 동양은 물로 망한다. 그러나 백백교도만은 정감록에서 구인백백(求人白白)이라고 한 것 같이 구원을 받는다'. 셋째는 '30척 이상의 대홍수 재앙이 있은 후에 동해에 새로운 섬이 생겨나는데 이곳은 기린과 봉황이 춤추고 불로초가 있어 양식걱정이 없고, 교도는 질병과 재앙이 없어 불로장수하여 극락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자식없는 사람은 자식을 두게된다'는 허황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일제의 폭압통치에 시달리면서 희망없는 삶을 살고있던 가난한 농민들과 어리석은 민중에게 백백교의 달콤한 교리는 한줄기 구원이고 복음이었다. 거기에 궁궐을 방불케 하는 대회당은 믿음을 주었다. 백백교에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빼앗기고 부인과 딸은 교주에게 헌상되었다. 남자들은 산너머 이상향의 목적지에 보낸다면서 모두 죽여 없앴다. 교주 전용해는 아버지 전정운의 잔인함과 음란함을 보고 배운 뒤에 더 흉악한 간계를 보태어 무려 14년간이나 비밀을 지켜오며 음란과 살인극을 자행하였다. 총독부 경찰, 초기에는 묵인 교주 전용해는 학식이 없는 무지한 인간이었지만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마음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총참모격인 이경득과 문봉조 등 간부들을 각도에 보내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을 골라서 백백교에 입교시킨뒤 그 딸을 전용해의 시녀로 바치게 하여 정조를 유린하였다. 전용해는 이렇게 끌어들인 젊은 여성 4∼5명 씩을 항상 첩으로 거느리다가 살해하는 것을 능사로 삼았다. 이런 속에서도 백백교의 교세는 늘어나 가평소재 일본인 경찰서장이 인사를 오기도 했다고 한다. 1930년 전 교주 전정운이 첩 4명을 생매장한 사실이 뒤늦게 발각돼 백백교 간부에 대한 일제검거령이 내렸으나 전용해 등은 교묘하게 잠적하여 검거를 피할수 있었다. 해마다 거액을 일경에 바쳤던 터라 경찰에서도 애써 잡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용해는 부하들에게 외조부이자 늙은 교주인 우광현을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다. 명실상부한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전용해는 금광개발을 한다면서 탄광을 사들였다. 그러나 이 광산은 금을 캐는 것이 아니라 화약폭발음 소리에 맞춰서 백백교도들의 살인장소로 이용되었다. 정용해와 백백교 간부들은 신도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호화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살인을 다반사로 저질렀다. 전용해는 1935년 서울 신당동으로 거소를 옮기면서 자신의 살인마각을 알고있는 이복동생 전잡비와 그의 여동생까지 살해하는등 인면수심의 만행을 거듭하였다. 백백교의 범죄사건은 '사소한' 일로 희대의 사교 교주의 죄상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부친이 백백교에 빠져 여동생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고 전재산을 빼앗긴 유혼룡이란 청년이 교주 면담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흑막이 폭로되었다. 건장한 청년신도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나타난 전용해가 유혼룡에게 거액의 헌금을 강요하자 유혼룡이 이를 거부하면서 백백교를 성토하자 전용해는 칼을 빼들고 격투가 벌어졌다. 싸움판이 벌어진 곳은 바로 동대문경찰서 왕십리주재소 옆이었다. 싸움소리에 놀란 모리야 순사부장이 순사들을 이끌고 급히 달려와 이들을 체포하였다. 이 틈에 전용해는 애첩 등을 데리고 양평군 비밀장소로 도주하였다. 경찰은 8개월에 걸쳐 전용해의 아지트와 전국 각처의 백백교 비밀장소에서 346구의 시체를 발굴했다. 전용해는 몇 달후 용문산 도일봉 능선 솔밭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세간에는 신출귀몰한 전용해가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잡아다가 자기의 옷을 입히고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고 도망쳤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1941년 1월에 마무리된 백백교사건의 선고공판은 혼자서 170명을 죽인 김서진, 167명을 죽인 이경득, 127명을 죽인 문봉조 등 살인마들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나머지 십수명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희대의 살인마 사교사건은 막을 내렸다.(<신시(紳市)>, 1992년 11월호, '역사에 누락된 백백교사건의 진상'등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김 삼 웅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
(p.s) 1961년 1991년 두번에 걸쳐 영화로 제작된 소재입니다. 내용도 엽기적이고 영화소재로는 매력적이었던것 같습니다. 비디오 가게에서는 대여가 가능할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직 DVD로 발매되지는 않았습니다.
첫댓글 61년판은 몰라도 91년판의 주인공은 당연히 이대근옹이었죠. -_-';;; 담양 고수 동굴에서 동네 아줌마들이랑 업계 배우들이랑 동원해서 찍은 괴작이죠(제 군대 고참 모친이 거기 엑스트라로 참가했죠 동네 아줌마라서) 80년대 조선일보 하단광고에 빛나는 초특급 에로 동명 소설이 있습니다. -_-;;; 전 그걸 신촌 모 대학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중간에 찢어간 페이지의 압박. - 평은 "잠 안 올때 외로운 홀애비가 볼만한 쓰레기 작"이고 참고로 전용해의 두개골은 국과수에 범죄형 얼굴의 표본으로 저장되었다는 괴담이 있죠. 아직도 있다는 말 부터 6.25때 분실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개인적으로 다시 리바이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혈의누를 보니깐....걸작이 나올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주인공은 개인적으로 송강호...ㅎㅎㅎ
전용해의 머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알콜에 담겨..
이런놈들은 사지를 찢어죽여야 합니다.거열형의 부활을 주장함~!!!
이래나 저라나 사이비 종교란 백해 무익합니다.
꼭 세상이 불안하면 저런 게 횡횡하죠.......
백백교 이거 옜날에 문성근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본적이있는데. 사이비종교 덜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