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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라이프 스터디 요약(2)
이상들을 본 시기
제 30년에
이제 우리는 네 가지 요점을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첫째는 년도와 달과 일자의 시기이다. 그 해는 제 30년이었다. 제 30년의 의미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연구해 본다면, 제 30년이란 에스겔 생애의 제 30년째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에스겔은 서른 살이었다. 민수기 4장 2절과 3절, 역대 상 23장 3절에 따르면 레위인 제사장은 30세가 될 때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했다. 주 예수님도 역시 서른 살이 되셨을 때 사역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하셨다. 서른 살에 달한 제사장으로서 에스겔은 그의 제사장 직임을 시작할 자격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본다. 즉 영적인 것들을 깨닫고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기 위해서는 생명의 성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른 살이 됨으로써 모든 제사장들은 성숙되어 있었다. 이 나이에 에스겔도 성숙했다. 이 나이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숙하셨다. 이것은 만일 우리가 이 책에 있는 이상들을 보고자 한다면 영적 생명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숙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갖게 되는 이유는 대부분이 생명에 있어서 매우 어리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말해서, 어떤 이들은 겨우 다섯 살이다. 또 어떤 이들은 열 두 살이고 어떤 이들은 열다섯 살일지 모르나 영적인 성숙에 있어서 서른 살에 달한 이들은 많지 않다. 어린애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 안의 이상들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이상들을 본 사람은 매우 성숙했었다. 서른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건축에 관한 부분인 에스겔서 40장부터 48장에서도 쓰인다. 46장 22절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의 바깥뜰은 네 구석의 뜰을 가졌는데 각각의 넓이(광)가 삼십 규빗이다. 이들 네 구석의 뜰은 사람들이 먹고 누리기 위한 제물을 제사장들이 준비하는 곳이다. 더욱이 40장 17절에서 성전의 바깥뜰은 서른 개의 방을 가졌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러 함께 모일 때 그들은 이 서른 개의 방에서 풍성한 제물을 누렸다. 에스겔서 41장 6절은 또 다른 서른 개의 골방을 언급하고 있다. 이 골방들은 성전 둘레의 삼면(三面)에 있는데 각각 삼층으로 되어 있다. 각 층마다 서른 개의 골방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골방들은 성전의 충만함을 가리킨다. 이 모든 구절들을 한데 두고 볼 때 우리는 이런 것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삼십이란 수(數)가 그리스도를 준비하고,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공급하고,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고, 그리스도의 충만을 표현하는 것에 관계된 수임을 볼 수 있다. 성경에서 30이란 수가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의 성숙을 상징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당신이 누리도록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능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충만함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용 능력을 가리킨다. 에스겔이 이상들을 보았을 때 의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이것은 그가 성숙한 사람임을 뜻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예비할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이 누리도록 그리스도를 공급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성숙했으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그분의 충만함 가운데서 누릴 수 있었다. 삼십이란 수는 에스겔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생명에 있어서 성숙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에 관한 이상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의 누림을 위해 양식을 마련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누릴 수 있으며 성전의 골방들, 즉 그리스도의 충만이 될 수 있다.
삼십이란 수는 에스겔서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다섯 곱하기 여섯과 십의 세 배로 이뤄진다. 주로 그것은 삼 곱하기 십으로 이뤄진다. 성경에서 열(10)은 언제나 두 개의 다섯으로 구성된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열 처녀가 나온다. 다섯 처녀는 지혜롭고 다섯 처녀는 어리석다. 십계명의 경우, 다섯 계명은 한쪽 서판에 있고, 다섯 계명은 다른 서판에 있다. 다섯이란 수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섯(5)은 당신에게 하나님을 더함으로써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을 상징한다. 네 개의 손가락 더하기 하나의 엄지를 생각해 보라. 이 다섯 손가락으로 당신은 어떤 것을 하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 넷이란 수는 피조물의 수이며, 하나라는 수는 창조주의 수이다. 피조물이 자기에게 더해진 창조주를 가질 때, 그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 이같이 당신은 열(10)이 다섯의 두 배로 구성된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더해진 하나님을 갖고 있는 피조물들임을 뜻한다. 그 목적은 우리가 책임을 감당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30이란 수는 피조물들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그들에게 더해진 하나님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거듭나기 전에 우리는 오직 넷이라는 수만 가진 피조물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영접하여 우리는 다섯이란 수가 되었다. 그렇게 더해짐으로써 우리 모두는 삼십 세인 에스겔들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상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누림을 위해 제물을 마련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을 위해 제물들의 모든 풍성을 누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표현할 수 있다.
제 5년
에스겔은 때가 제 30년이라고 말했을 뿐 아니라, 제 5년이라고 말했다. 제 30년은 그의 출생 년도부터 계산된 것이고, 제 5년은 포로 된 해부터 계산된 것이다. 그들이 포로 되어 잡혀간 지 5년이 흘렀다. 다섯은 넷 더하기 하나로서 피조물에 창조자가 더해진 것을 상징함을 기억하라. 왜 포로 된 지 제 5년에 이상이 임했는가? 그 이유는 제 5년 때까지 사람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안 된 에스겔은 준비되지 않았었다. 마찬가지로, 백성들도 포로 되어 다섯 해를 지내기까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었다.
제 5년에 관한 요점 한 가지가 더 있다. 즉 오 년 전에 에스겔은 25세였고 아직 서른이 아니었다. 민수기 4장 2절, 3절은 제사장들이 모두 삼십이 되어서야 그들의 직임을 시작한다고 말해 준다. 그러나 민수기 8장 24절은, 레위인들은 모두 25세에 섬기기 시작한다고 일러 준다. 겉으로 볼 때 성경에 모순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장은 25세에 섬기기 시작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장은 30세에 섬기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이것은 그들에게 5년의 견습기가 필요했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곧바로 제사장 봉사에 임할 수 없었다. 그들은 5년 동안 훈련받고 훈육되는 것이 필요했다. 포로 되기 시작할 때 에스겔은 25세였다. 그는 갓 견습에 들어갔었다. 그는 배우는 자였다. 그는 견습 초기에는 이상들을 보지 못했으나, 견습 말기에 완전히 성숙했을 때 이상을 보았다. 이것은 이상을 받아들이는 데 생명의 성숙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스겔이 이상을 보는 데는 30세의 성숙이 필요했고, 사람들이 이상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성숙하기 위한 5년이 필요했다. 이것은 영적인 일들에는 성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신이 어릴 때에는 영적인 것들을 보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영적인 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취할 수 있기 위해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성숙을 허락해 주시도록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에스겔 라이프 스터디 요약(3)
장소- 갈대아에서
이제 우리는 그가 이상들을 보았던 장소를 살펴보자. 그 장소는 좋은 곳이 아니었고, 갈대아인들의 땅이었다. 갈대아는 바벨이 시작된 곳이었다. 히브리어 「바벨」은 헬라어 「바벨론」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므로 갈대아는 바로 바벨론이었다. 창세기 11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탄이 하나님을 반역하기 위해 타락한 모든 사람들을 모은 곳이 바로 바벨이라는 것이다. 에스겔이 이상들을 본 곳도 바로 사탄이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거슬려 반역을 일으켰던 그 장소였다. 그러나 할렐루야! 그곳은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분의 택한 백성을 불러내셨던 곳이기도 했다. 불행히도, 에스겔 시대에 그분의 택한 백성들이 대부분 포로가 되어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의 포로 됨은 일종의 타락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고 나온 바로 그곳에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어디에 있는가? 가나안 땅인가? 아니면 갈대아인들의 땅에 있는가? 확실히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땅에 있지 않고 타락한 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에스겔서는 갈대아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강가에서
에스겔이 이상들을 받았을 때, 그는 강가에 있었다. 이 책에는 두 강이 나온다. 하나는 1장에 있고, 다른 강은 47장에 나온다. 그발 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에게서 흘러 떠내려 보내었지만,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강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이끌었다. 당신은 오늘날에도 이 땅 위에 여전히 이 두 강이 있음을 아는가? 한 강은 이 세상의 흐름이요, 풍조요, 조류이다.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이 강은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내려 보낸다. 그러나 할렐루야! 이 땅 위에는 또 하나의 강이 있다. 이 강이 흐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당신은 오늘날 어느 강가에 있는가? 당신은 그발 강가에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거처로부터 흘러나오는 강가에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거처로부터 흐르는 생수의 강가에 있다고 말하지만, 이 시대의 풍조에 속한 무엇을 여전히 갖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아직도 오늘날 세상의 흐름 안에 있지는 않은가? 만일 당신이 여전히 오늘날 세상의 흐름 안에 있다면, 당신은 생수의 강가에 있지 않고 그발 강가에 있는 것이다. 당신은 거룩한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타락한 갈대아인들의 땅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두 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속한 강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한 땅에 속한 강이다. 하나는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흘러 떠내려 보내는 강이요,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되돌리는 강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건축을 파괴하는 강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처소를 건축하는 강이다.
이상을 본 사람
이제 우리는 그 이상을 본 사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스겔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는가? 첫째, 그는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 자신을 하나님과 연합시키면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사람이다. 에스겔은 그러한 제사장이었다. 둘째로, 에스겔은 부시의 아들이었다. 부시(Buzi)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