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앓이
오춘자
메일함으로 아름다운 풍경사진 한 장이 날아들었다. 병풍처럼 둘러선 푸른
산 아래 낮은 산마루를 넘어가는 오솔길이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
는 순간 가슴이 콱 막히는 통증이 경련을 일으키듯 일어났다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오솔길. 어디서 보았을까.
태고 적 전설로 걸어 들어가는 저 길목. 푸른 하늘에 엄마 얼굴 그리며 장난인 듯
시름인 듯 휘적휘적 팔 저으며 걸어가던 길. 길가에 피어난 찔레꽃 순을 따서 먹기도
하고 산비알 양지쪽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진달래가 머리에 피기도 하고. 뽀얗게 핀 민
들레 홀씨를 호오 불어 바람에 날리며 반겨 줄이 없는 마을로 이모 찾아 가던 길.
그랬다 내 나이 아주 어렸을 적, 나는 친척집에 한동안 맡겨진 일이 있었다. 삼면
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었다. 전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땔감은 산
에서 나무를 해 와야 밥도 짓고 군불도 지폈다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자루에
다 솔방울도 주워 담았다. 발매를 하는 산이 있어서 산에 가면 나무는 지천이었다. 마
른 삭정이를 모아놓고 솔방울을 주워 담아 놓으면 아저씨가 와서 지개로 져갔다. 호롱
불이 흔들리는 밤이면 이불속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 소리 없이 울었다. 뒷산에서 부엉
이도 나를 따라 울었다. 그 새가 두견새였는지는 모르지만 밤새도록 나를 따라 슬프게
울었다 엄마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찬찬히 엄마 얼굴을 그려보고 또 그려본다.
옆집 아줌마가 우리 엄마 참 예쁘다고 했지. 그래 내가 봐도 우리 엄마는 참 예뻐. 코
를 옷소매로 문지른다고 혼 낼 때는 미웠지만 아궁이에서 군고구마 꺼내 줄때는 정말
예뻤어. 이 세상에 우리 엄마처럼 예쁜 사람은 없을 거야.
훌쩍거리고 울다가 아주머니에게 혼이 난 후로는 이불속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그
러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엄마를 만난다. 여전히 우리 집에서 아궁이에 고구마 굽고
이웃집 대추나무 밑에 가서 대추를 줍는다 언뜻 돌아보니 엄마가 저만치 어디론가 가
신다. '엄마 엄마 어디가 젓가락에 감자하나 꿰어 들고 엄마를 부르며 따라가다가
아주머니가 웬 잠꼬대냐며 흔드는 바람에 깨어난다. 그러면 나는 또 서러워서 울었다.
태산같이 높은 뒷산 너머에 이모가 살고 있었다. 수 십리 길도 걸어 다녔던 시절 엄
마랑 친척집에서 산길을 걸어서 이모네 집을 간 일이 있었다. 그 길이 어렴풋이 생각
났다 뒷산 고개 길을 넘어서 몇 굽이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할미꽃 전설을 닮은 언덕
에 올라서면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이모네 마을이 보였다.
어느 날 나는 아주머니께 말도 없이 길을 나섰다. 저 산만 넘어가면 우리 엄마랑 똑
같이 닮은 이모가 있다. 내가 가면 이모가 반갑다고 하며 놀라시겠지? 그리고는 나를
꼬옥 안아 주실거야 이모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가르쳐 드려야지. 나는 한쪽
손가락을 다 펴고 다른 쪽 손가락 두개를 더 폈다. 우리이모 집으로 가는 한적한 이
길을 맨 처음 낸 사람은 누구일까. 이 산을 넘어가면 또 마을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옛날 사람들은 참 용하기도 했구나.
빨리 가서 이모를 볼 욕심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나폴나폴 뛰어갔다. 머리위에 쏟아
지는 햇살은 따사롭고 귓불에 스치는 바람은 보드랍고 감미로웠다 시장기가 느껴지
면 길옆에 피어있는 찔레꽃 순을 따서 먹기도 하고 뽀얗게 핀 민들레 홀씨를 호오 불
어 엄마 있는 곳으로 언니 있는 곳으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가다가 심심하면 진달래
꽃을 꺾어서 머리에 꽂기도 하고 하얗게 핀 할미꽃 수염을 땋아서 각시 머리도 만들었
다 밭두렁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조팝나무 꽃을 한 아름 꺾어 않고는 그 옛날 엄마
가 들려주던 할미꽃 전설을 다시 뇌이며 해롱해롱 장난치며 걸어갔다. 하늘에서는 목
청도 고운 새가 옥구슬을 구르듯이 아름다운 노래를 끊임없이 부른다. 고개를 활딱 제
키고 눈이 부시도록 높푸른 창공을 바라보며 비비롱 비비롱 울어 예는 이름모를 새를
찾노라 갈 길이 멀다는 것도 잊은 채 서성이던 길.
아 그랬었구나 숲 속으로 나있는 길을 보면 아련한 추억의 오솔길로 정감이 어리
는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이 배어났던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아픔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 해 있었구나. 아름다운 추억의 오솔길이 이렇게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줄은 몰랐다 산허리로 굽이굽이 돌아 나 있는 외로운 저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길일까 쉬지 않고 걸어서 자꾸자꾸 가면 닿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에는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꿈이 있을까? 희망이 있을까? 가물가물 호롱불이 흔들리는 초가삼간 우리 집
에 고구마 굽는 예쁜 우리 엄마가 계실지도 모르겠구나.
추억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데 가슴속에서 뜨거운 훈기가 자꾸만 솟구쳐 흐른다.
2005/ 20집
첫댓글 산허리로 굽이굽이 돌아 나 있는 외로운 저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길일까 쉬지 않고 걸어서 자꾸자꾸 가면 닿는 곳은 어디일까. 그곳에는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꿈이 있을까? 희망이 있을까? 가물가물 호롱불이 흔들리는 초가삼간 우리 집
에 고구마 굽는 예쁜 우리 엄마가 계실지도 모르겠구나.
추억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데 가슴속에서 뜨거운 훈기가 자꾸만 솟구쳐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