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사순 제4주일) 아버지 마음
서울 본원 책임 소임을 할 때, 행사가 있어서 다른 분원 공동체 형제들이 다 모였다. 그중에 한 형제가 간식을 먹으며 역시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게 많다고 했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다른 공동체 형제들에게 과일이랑 싸서 보냈다. 내 것인 거처럼 선심을 썼다. 그 형제 농담처럼 정말 아버지가 된 것 같았다. 뭔가 줄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나 마침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갔다. 그 땅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모세에게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다.(탈출 3,8)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첫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거기서 거둔 곡식을 먹게 되자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 그들이 광야를 헤맬 때 하느님이 주시던 양식이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여호 5,12)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니 그곳에서 나는 양식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 가나안 땅은 지금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곳, 우리 인생 순례의 목적지인 하느님 아버지 품이고 그분이 다스리시고 그분께 복종하는 영혼들이 있는 곳, 하늘나라를 예고했다.
오늘 복음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이야기다. 이 이야기 주인공은 둘째 아들도 첫째 아들 아니다. 그들 아버지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 각자는 아버지 집을 떠나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돼서 돌아온 둘째 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첫째 아들이기도 하다. 그는 아버지 함께 살면서도 기쁘지 않았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아무런 심판도 없이 환영하고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에게 심통을 부렸다. 성당에 빠지지 않고 가고 성당 일 봉사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많이 하지만 기쁨이 없고 그런 생활이 열심히 하지 않는 이웃을 심판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지적질을 해댄다. 그런 사람들 마음이 차갑다는 걸 느끼는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둘째는 물론이고 첫째도 아버지 마음을 알고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버지 마음이 되어야 한다.
우리 관심은 두 아들이 아니라 그 아버지다. 다른 고장에는 기근이 들어 굶어 죽게 됐어도 그곳에는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풍족하고 풍요로운 곳이 아버지 집, 하늘나라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그것을 맛보게 해주셨다. 그분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고 마지막에는 당신 생명까지 전부 다 내주셨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언제나 주고 또 전부 다 줄 수 있어서 부자다. 우리가 되돌아가야 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평소에도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우리는 맛보고 깨달아야 한다.(시편 34,9) 우리는 첫째보다는 둘째 아들의 처지에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하느님께로 돌아감은 이 이야기처럼 드라마틱하게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며칠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을 헤맸다. 길을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시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둘째 아들은 죽음의 냄새를 맡은 다음에야 어찌 되든 무조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느님에게서 점점 멀어져서 짙은 어둠과 죽음의 기운을 느꼈을 때 풍요롭고 기쁨이 넘치는 아버지 집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그가 그랬다면 그건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기도가 그 역할, 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리신다는 게 전해지게 한 걸 거다. 우리는 무조건 아버지 집에 가고 아버지 마음이 되어야 살 수 있다.
예수님, 주님은 저희에게 아버지 하느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차고 넘치게 베푸시는 부잣집 주인이셨습니다. 저는 그분께로 부자 하느님,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께로 갑니다. 제 마음이 그곳을 찾는 것인지, 제 마음이 그렇게 변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님이 지니셨던 아버지 하느님 마음을 가르쳐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언제나 특히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하느님이 기뻐하실 것을 선택할 수 있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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