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여름에는 빈손에 묻은 나른함이 있지
껍질의 속사정이 들린다던 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웃음 같은 다정함이지
적막보다 다정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여름이 여름으로 지나는 시간에
그럴듯한 속사정들이 서로를 붙잡는 밤이 있지
-『경향신문/詩想과 세상』2023.07.24. -
사랑은 가장 흔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다. 말이나 행동은 물론 날씨에도 미묘한 심리 변화를 보인다. 그래서 어렵다. 이 시는 사랑과 이별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시적 화자의 감정과 감각 묘사가 돋보인다. “아직 이른 노래”나 “나만 몰랐던 언약”이 암시하듯, 사랑은 둘만의 관계에 그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감정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우리가 모를 수도 있는 약속들”이 영향을 미친다. “복숭아 껍질을 벗기는” 듯한 이른 사랑은 그래서 더 위태롭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무섭지 않다. 정말 무서운 건 나만 모르는 일이 안 보이는 곳에서 벌어질 때다. 당사자가 모르는 밀약은 삶도, 사랑도 파탄으로 몰고 간다. 사랑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실체를 드러내면, 여름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 된다. 다정한 웃음은 가식이 되고, 상실감으로 입을 굳게 닫는다. 이별이 길어질수록 그리움과 원망이 교차한다. “그럴듯한 속사정”과 핑계로 사랑하는 사람을 잡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밤이면 그리움이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