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 우리나라 이름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다.
선 너머 네 거리, 꽃밭정이 네 거리, 명주 골 네 거리,
여울초등학교, 솔 내 고등학교, 한들 초등학교,
가리내 길, 전주의 길 이름이자 학교 이름이다.
원래 사람들이 부르던 그 이름들이 전주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채색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10월 9일 한글날. 세종대왕이 아름다운 말 한글을
제창하신 날, 전주 문화방송국 보도팀과 함께,
우리말로 지어진 아름다운 마을이름이 한문으로 바뀌어 진 이 곳 저곳을 찾았다.
나의 고향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상백암은 원래 흰 바우(차돌)이 많아서
흰바우 마을이고, 아래 마을인 중백암은 아래 흰바우 마을이다.
그리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구름다리 마을은 한자어로 운교리라고 이름이 바뀌었고,
전주시 고사동은 일제 시대 고사정이라고 부르다가
일제 동명을 우리말로 개편하면서 고사동이라고 정에서 동으로만 바뀌었다.
그뿐인가, 전주시 동산동은 원래 쪽 구름, 편월片月로 불렸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 농장주 이름을 따서 오늘에 이르렀다.
1990년대 동산동이라는 이름을 조각구름 마을로 바꾸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어도 바꾸지 못했었는데,
가서 보니 쪽 구름 도서관등 쪽 구름이 여기저기 보였다.
내가 바꾸고자 했던 이름, 조각구름이 보편화되어서
조각구름 동, 조각구름 슈퍼, 조각구름 우체국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익산시 춘포면의 대장촌리가 춘포리로 바뀌었지만 그곳에 가면
대장촌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일제 청산이 멀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우리 말,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우리 말 열 개>가
김수영 시인의 산문집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은 아무래도 내가 어렸을 때에 들은 말들이다.
아버지는 상인이라 나는 어려서 서울의 아래대의 장사꾼의 말들은
자연히 많이 배웠다.
‘마수걸이’ ‘에누리’ ‘은근짜’ ‘군것질‘ ‘총채’ 같은 낱말 속에는
하나하나 어린 시절의 역사가 스며있고, 신화가 담겨 있다.
또한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 등도 그렇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지역의 말이나 나라의 말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시간은 느슨하게 측정된다. 분을 셀 필요는 절대로 없다.
그들은 ‘내일 한 낮에 만나러 올게. 저녁 전에’ 라는 식으로
여유를 두고 말한다.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나타내는 많은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어두워진 다음 잘 때까지’ 라는 뜻의 ‘공그르트’
‘해가 산꼭대기에’ 라는 뜻의 ‘니체’
해 뜨기 전 새들이 노래하는 아침 시간을 뜻하는 ‘치페’- 치리트(새 노래)
등 모두 너그러운 말들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 실린 글이다.
그 지역의 이름이나 말은 그 지역의 형상이나 역사,
그리고 그 땅을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프레게는 “말은 문장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고 말했고,
“작가는 그의 시대, 그의 나라의 정신적 지도 위에,
그리고 사상의 역사 위에 그 이름을 새긴다.” 고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기술>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땅의 지도 위에 어떤 글을 새기고,
걸어도, 걸어도 다 걸을 수 없는 이 땅의 성스러운 국토위에다
어떤 이야기들을 새겨놓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가능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래밭에 자취를 남겼던 나의 발자국이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 반복에 금세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부질없이, 부질없이 남겨 놓는 나의 발자국들,
2018년 10월 9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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