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음식솜씨가 없으셨다
워낙 드나드는 객(客)식구들이 많은
우리집으로 오셔서
살림을 꾸리시다 보니
그렇게 되셨는지 알 수 는 없으나
직산 고모 말씀대로 라면
새 신부일때도
할머니께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고 하시니
기본적으로
음식솜씨가 없으셨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더우기
엄마는 외삼촌들과는
열살이나 차이나는
외동딸이기도 하니 이해가 될법은 하다
서울로 이사를 온 이후에도
고향의 친척분들은
끊임없이 우리집을 드나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형님들과
내 칭구들도
그 객 식구중에 한 몫을 톡톡히 하였다
아침에 등교할때쯤 이면
큰형과
작은형의 칭구들
나와 내 누이동생 까지 합하여
엄마는
혼자서 도시락을
적어도 7~8개씩 준비 하는것이 보통이었다
늘,
저녁때만 되면
집안 가득히 사람들로 북적여서
엄마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 아마, 집에 아버지가 안계신 날이 많아
형들 칭구들이 부담없이 왔었을 것이리라 )
쌀은 고향에서 보내 왔지만,
그외
다른 찬거리나 과일들은 이웃 영천시장으로
엄마와
누이동생과 셋이서 장을 보러 다녔다
이렇다 보니
우리집의 음식은
맛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양이 중요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음식솜씨가 없으신것
이외에는
무던하신 분이셨다
.
.
.
우리집 에서
대부분 같이 지내던
큰형 칭구들과
작은형 칭구들은
모두가
지방에서는 살 만들 하였고,
꽤나 똑똑하다고 이름이 났다고 했다
형들 칭구들은 모두
서울에서 하숙을 하였는데
늘상,
우리집에 와서 숙식을 할 때가 많이 있었다
지방에서
형 칭구 어머니들 께서
미안해 하시면서
우리집에 오실때면
구경도 못해본
맛난 음식들을 많이 먹어본 기억도 난다
고향에 있을때나
서울로 왔을때나
집안 행사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직산 고모가 꼭 오셔서
엄마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셨다
직산 고모가 하는 음식은
모양도 이쁘기도 하고
맛도 내 입맛에 딱 맞아
직산 고모가 오시는 날엔
무릇
명절 같았다
재료에 있어서는
실상, 다르고 말것도 없는
단순한 음식이었다
엄마가 해 주시던것과 별 다를게 없었다
그런 원초적인 전병이나 부침개가
직산 고모의 손을 거치니까
전혀 딴맛이 났다
손맛이라는 맛이 따로 존재 하는 것일까?
나는 고모의 전병과 부침개 맛에
거의 경탄을 하였다
더우기
고모가
엄마 몰래 주는
뜨거운
부침종류들의 맛에
나와 누이동생은
얼마나 입안이 복 되었던가!
어렸을때
학교
운동회나
소풍가는 날이면
으례
직산 고모가 만드신 3단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선생님께 드렸던 기억도 난다
.
.
.
.
고향집 에서도
엄마는 늘 몸빼바지를 입으셨다
집안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별반 다름이 없으셨다
식사때가 되면
따로 정성을 다해
할머니만 반듯하게 차려 드리신후에
늘 그랬듯이
우리는 집에 있는 모든 식구들과
한곳에 모여 밥을 먹었다
나는 그렇게 먹는 것이 싫어서
심통도 부리고,
가끔 내 누이동생을 꼬드겨서
둘이서 끼니를 거를때가 종종 있었다
직산고모집은
우리집과 그리 멀지 않는 읍내에 있었다
학교를 마친후에,
가끔 고모집에 들려서
혼자 호젓하게 책을 보기도 하고,
주황색 불빛의 라디오,
마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부르는 노랫소리같은 모차르트 음악과
웅장하면서도 울부짖는 느낌이 흠씬 나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이라는 음악들을
처음으로 들어 보았다
그것은 낡은 풍금소리만 듣던
나에게는
신세계로 나가는 길이었다
고모가 있는 집에는
그 당시엔 보기 드문 전축이 있었고
얼마간의 책장 사이에
고모부가 아끼던 음반들이 있었다
고모는 음반을 조심 스럽게 다루셨다
전축이 돌아가는 동안
다음에 걸 음반을 살짝 입김을 불어 넣기도 하고
작은 솔 같은것으로
닦아내기도 했다
그속에 파묻혀 고모네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고모가
은 젓가락같은 긴 손가락으로
내어 놓은 색다른 간식도 먹었으며,
더우기
고모한테는 은은한 분 냄새가 났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은은한 분 냄새가 나는
여자를 나는 좋아한다
팔찌와 액서세리 몇개쯤 한 여자가 좋고
은젓가락같이 기인 손가락에
잘 다듬어진 솥톱위로
빨간 메뉴큐어를 바른 여자를 좋아한다
히힛!
〈 고모는 내 신혼집에 혼자 오시고 싶어 하셨다
고모, 성내역에서 내려, 상가앞에서 기다릴께,
서울에 성내역이란 곳도 있냐?
왜 그런곳으로 갔어?
하시며 불안해 하셨다
나는 이곳에서 미련스럽게 40여년을
살아가고 있고,
고모가 오실때 마다
맥주한잔 하던 성내역 맥주집은 그대로 있는데.... 〉
.
.
고모집에 들러
집에 너무 늦게 돌아간
어둑어둑 저녁무렵이면
나는 엄마로부터 된 꾸지람을
듣지 않으면 안되었다
〈 아침 등교길에 다녀온다고 했었지만 〉
< 네가 정신 있는 얘냐 ? ,
아 학교갔다 바로 올것이지
어디로 다니다가 이제야 오냐? >
이 말끝에 엄마는
으례 그렇듯이
직산고모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
.
.
흰 가슴 사이로
푸른 정맥이 얽혀있던
엄마의 가슴이
화석처럼 변해가고,
하얀 살결을 타고난
엄마의 정겨운 얼굴과
엹은 미소도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져 버렸다
입 언저리에
여러겹의 파문같은 주름을 지으며
엄마의
웃는 모습이 그리워 질때,
불현듯
엄마가 해 주시던
그 시절
엄마 음식을 먹고 싶다
.
.
.
고향집
백토같은 흰 마당,
극약같은 흰구름은
푸른 하늘에 드높게 떠 있는 날,
빨랫줄에
하얀 빨래들이 널려있고
그것이
바람 한점에 날려가는 한낮,
.
.
.
.
몸빼바지를 입고
활달하게
고향집 마당을 가로 지르는
엄마의 모습이
새삼 그립다
글.그림. 오.베.
첫댓글 정감가는 닉.오베.반갑습니다
제 어릴적엔 전쟁이 끝난지 얼마안된 시기라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라 아무거나 잘 먹었죠.꽁보리밥에 소금장을 도시락으로 싸간적도 있었죠.그것에 단련이 되어선지 객지생활하며 먹는거는 쉽게 견뎠드랬습니다
화가 이신가 봅니다
종종뵈니 방갑습니다~
아마, 오개님과
제 둘째형님과 년배가
비슷하실거 같습니다만,
찿기 힘든 <오> 문중
종친모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막걸리 한잔 드시면서,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 나이(?)까지 편식이 심해
집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칭구들도 다아~
꼴보기 싫어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그냥, 내 좋아하는 음식들만 이라도 먹으려고 합니다
오개님처럼
가리지 않고 잘드시는게
솔직히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오개님, 잘 드셔야
무탈하게 올. 여름 나시지요,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