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야구장에서 여성 관중이 희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야구장에서 여성 관중을 보기란, 아프간에서 기독교인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었다. 태백 산길에서 수km를 걷고 걸어야 간신히 사람 한 명을 만날 수 있듯이, 야구장에서도 여러 블록을 지나고 지나 화장실 앞에나 가야 여성 관중을 볼 수 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또 야구장은 여자를 데리고 갈 곳이 못 된다고 여기던 때도 있었다. 야구장은 여자와 함께 가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지나치게 거친 곳이었다. 사방으로 담배 연기가 날리고, 욕설이 난무하고, 소주병이 경기 끝날 때까지 처음처럼 굴러다니는 야구장은 여성 관중에게 일종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나 다름없었다.
하물며 그런 야구장에 여자들끼리만 간다는 것은 소녀시대를 남학교 기숙사에 떨궈놓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 그러다보니 야구장은 흡사 미아리 성인전용극장처럼 남자 손님이 전체 이용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시커먼’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야구장은 남자들만을 위한, 남자들에 의한 ‘남성적’인 공간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랬던 야구장이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2006년 WBC를 기점으로 조금씩 여성 야구팬의 숫자가 늘어나는 조짐을 보이더니, 지난해부터는 야구장에 여성 관중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야구장에서 여성 관중은 더 이상 희귀한 존재도, 못 올 곳에 찾아온 이질적인 대상도 아니다. 부부동반이나 연인동반은 기본이고 아예 여성들끼리 여럿이 야구장에 ‘놀러온’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단지 여성팬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요즘 여성 야구팬들은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해박한 야구 지식을 자랑한다. 여자들은 야구를 모른다느니, 여자친구에게 볼넷에 대해 설명하다가 싸워서 헤어졌다는 소리는 삼국유사에나 나올 법한 옛날 얘기. 2군 선수나 아마야구 선수를 줄줄 꿰고 프로야구 역사를 호메로스처럼 읊어대는 여성 팬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여성 관중이 늘어나면서 야구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예전의 성인전용극장 같은 칙칙한 분위기를 벗어나 보다 화사하고 밝고 세련된, 흡사 멀티플렉스 같은 분위기로 ‘일신’한 것이다. 이제는 애미애비 사돈의 팔촌까지 거론하는 욕설 퍼레이드나 바닥을 굴러다니는 소주병은 거의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여성 관중들 특유의 독특한 악세사리와 패션, 튀는 피켓과 응원구호가 대체하고 있다. 그와 함께 가족 단위 관중, 어린이 관중의 숫자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 관중의 증가가 야구장에 가져온 벼락같은 축복이자 기적과도 같은 변화다.
응원단은 여전히 성인전용극장
여성 관중과 가족단위 관중의 수가 큰 폭으로 늘면서, 구단들도 변화된 팬 베이스에 맞춰 다양한 서비스를 모색하고 있다. 가령 잠실구장의 ‘끌레도르존’이나 문학구장 ‘패밀리존’과 같은 탁자지정석의 등장이 그런 예다. 또 여성 관중을 겨냥한 핑크색 유니폼이나 모자, 팬시용품의 판매도 새로운 팬층을 겨냥한 구단들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노력들은 프로야구가 팬서비스 면에서도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는 증거이고,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의 변화와 달리,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관중 구성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야구장 응원 문화, 특히 그 중에서도 치어리더와 응원 단장이 주도하는 ‘단체 응원’이다. 관중석 한복판에 자리한 응원 단상 위에서 큰 소리로 관중의 박수와 함성을 유도하는 응원 단장, 그리고 화려한 복장과 섹시한 율동으로 관중들의 흥을 돋우는 치어리더, 여기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막대풍선을 두들기는 관중들. 이는 한국 야구장 하면 바로 연상되는, 너무 오래되어 전통의 일부로까지 여겨지는 친숙한 광경이다.
이런 응원이 대체 뭐가 문제일까. 과거 서울 구단의 프런트를 지낸 한 야구계 관계자는 “치어리더가 주도하는 응원은 다분히 남성 관중 중심적”이라고 단언한다. “과거 남성 관중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던 시절에는 치어리더를 동원한 응원이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과 가족 중심으로 관중 구성이 바뀌어 가는 지금 시점에도 치어리더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올해 광주 경기에서 연출된 낯뜨거운 장면이 이런 의견을 뒷받침한다. 이날 KIA 타이거즈의 응원단은 굉장히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준비해서 나타났다. 긴 옷을 입고 등장한 치어리더들이 단상 위에서 음악에 맞춰 옷을 하나씩 찢고 벗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간신히 가슴만 가릴 정도의 짧은 탑만 남겨놓은 것. 환호하는 관중도 있었지만, 여성 관중들 가운데 상당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당시 경기를 관전한 홍민영(회사원, 가명)씨는 “정도가 지나친 선정적 퍼포먼스여서 몹시 불쾌했다”면서 “광주 구장이 남성 관중 비율이 높은 편이다보니 그와 같은 무대를 연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명백히 남성 관중을 겨냥해서 선보이는 치어리더의 섹시한 무대가 여성 관중들에게는 오히려 반감을 사는 요인일 수 있다.
현재의 치어리딩이 치어리더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견해도 있다. 다른 팀 응원단보다 더 섹시하고 과감한 의상과 안무를 선보이는 데만 급급할 뿐 ‘치어리딩’ 자체에는 소홀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치어리더 경험이 있는 황민희(회사원, 가명)씨는 “치어리더에게는 응원을 위해 개발된 고유의 안무와 동작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야구장 치어리더를 보면 이게 생방송 뮤직뱅크 백댄서인지 치어리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치어리더다운 안무를 선보이기보다는 기성 댄스그룹들의 안무를 흉내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구단들 간 응원전이 치열해지면서 생긴 이런 경향은 치어리더들의 파격적인 안무와 의상에서 시작해 이제는 배트걸 복장으로까지 번져간 판이다. 여성 관중은 물론이고 ‘애들이 볼까’ 겁난다는 부모들의 지적이 많다. 야구장 분위기는 성인극장에서 멀티플렉스로 바뀐 지 오래인데, 응원단상에서는 여전히 남성 관중들만을 위한 섹시 댄스 경연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여자들의 춤사위 말고도 공수교대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많을 것”이라는 송세경(대학생) 씨의 지적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소주병보다 무서운 파울 타구
다른 문제도 있다. 한 방송사 해설위원은 “최근 프로야구 관중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파울 타구에 맞는 관중 수도 3~4배 정도 늘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응원단장과 치어리더의 율동에 신경을 쓰다보면, 정작 경기장 안에서의 상황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중 안전을 위해서라도 현재와 같은 응원단 구성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해설위원의 말처럼 국내 야구장에서 파울타구에 맞아 부상을 입는 관중의 수는 적지 않다. 이는 정확하게 지난해부터 시작된 관중수 급증과 비례한다. 결코 경기장 안전시설이 미비하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백스탑 쪽의 그물을 제외하면 1, 3루측 관중석은 파울타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관중이 공에 맞아 다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관중들이 전부 전직 야구선수 출신이라 그런 것은 아닐테고,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관중들의 집중력 차이에 있다. 미국 야구장에는 치어리더나 응원단장처럼 경기 중에 관중들의 시선을 빼앗을 만한 요인이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관중들은 콜라와 갈릭 프라이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잠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주의해서 경기를 지켜본다. 다른데 한눈을 파는 일이 없으니, 공에 맞아 다칠 일도 없다.
반면 국내 야구장은 경기 내내 계속되는 응원전과 치어리더의 율동이 경기와는 별개로 관중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이는 네이팜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가자지구 한복판에서 부루마불 게임을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여성이나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남성 관중들도 종종 파울타구에 맞는 광경을 연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지어는 치어리더나 응원단장이 파울타구에 가격당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되는데, 높은 단상 위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특성상 자칫하면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자기 돈으로 입장료 내고 들어와서 야구장에서 무얼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관중석에 누워서 잠을 자든,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기건, 뜨개질을 하든, 치어리더를 바라보며 흐뭇한 상상에 잠기건 남이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상 위의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는 분명 구단이 돈을 주고 고용한 ‘구단직원’일 터. 응원단의 존재가 관중들의 안전을 저해하고 있다면, 이는 반드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응원단의 대규모 응원은 관중들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집중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앞서 언급된 해설위원은 “야구는 굉장히 민감하고 작은 것에도 영향받기 쉬운 스포츠”라면서, “큰 북을 두들기고 앰프로 유행가를 크게 트는 응원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더해 선수들 간의 콜플레이나 벤치에서 보내는 지시사항이 들리지 않는 상황도 대규모 응원이 낳는 결과 중 하나다.
아마 많은 팬들은 “프로 선수라면 관중의 소음이나 야유 정도에는 관계없이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수의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들리는 소음이나 관중석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주의를 빼앗기고, 집중력에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관중들이 제각각 내는 크고 작은 소리와 대규모 응원단이 일시에 내는 우레같은 소리는 선수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천지차이다. 아무리 신경쓰지 않고 플레이에 집중하려 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설사 응원팀이 수비하는 동안에는 조용히 한다고 해도, 그 동안 상대팀 응원단이 마찬가지로 큰 북을 두들기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경기 내내 소음이 계속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농구장에서 하프타임과 작전타임 때만 치어리더 율동이 펼쳐지는 것은 단지 그녀들의 체력이 모자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선수들과 관중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측면이 더 크다. 어쩌면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대규모의 응원이 선수들에게 힘이 되기보다는 더 좋은 플레이를 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야구장의 붉은 악마?
김상경(회사원, 가명) 씨는 야구장에서 탁자지정석에 주로 앉는 편이다. 그가 탁자석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급적 응원단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하게 보고 싶다. 야구장에서는 경기에 집중해서 보는 게 소신”이라는 게 김 씨의 얘기다. 그는 “단체 응원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존중하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끄러워서 싫다”고 잘라 말한다.
김 씨 외에도 탁자석을 선호하는 관중들의 상당수는 “단체 응원을 피해서” 또는 “경기에 집중하고 싶어서” 탁자석에 앉는다고 이야기한다. 탁자석은 보통 일반 지정석보다 티켓값이 배 이상 비싸지만, 이들은 경기를 보다 마음 편히 보기 위해 가외의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야구 인기의 증가와 함께 김 씨처럼 ‘응원보다는 관전을 선호하는’ 관중의 숫자 또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분명 야구장은 ‘야구를 보기 위해서’ 찾는 곳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야구장에 오는 사람도 있는지 모르지만, 관중이 야구장을 찾는 본연의 목적은 ‘야구 관전’이다. 하지만 일부러 탁자석에 앉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일반석에서는 ‘야구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야구를 보기 위해 찾은 야구장에서 야구를 마음 편히 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학생인 허기룡(가명) 씨의 경우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 자신은 응원하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지만, 응원을 좋아하는 여자친구 때문에 주로 일반석에 앉는다고 한다. 조용히 야구를 보기 원하는 허 씨 입장에서 일반석은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시야를 가리는 응원단과 딱따구리가 뇌를 쪼듯 계속해서 울려대는 막대풍선 소리도 고역이지만, 무엇보다도 수시로 기립해야 한다는 게 허 씨를 힘들게 한다. 본인은 자리에 앉아 있고 싶어도 앞 사람이 전부 일어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 응원단은 일반석에 앉은 관중 모두가 단체 응원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때로는 강요가 지나쳐서 소수에 대한 폭력이 될 때도 있다. 올해 한 서울 구단의 응원단장은 일반석의 한 관중이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자 대놓고 “거기 하늘색 티셔츠 입은 분, 빨리 일어나서 같이 하세요!”라고 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여기에 다른 관중들까지 가세해서 함께 응원하지 않는 관중을 비난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건 월드컵 기간에 광화문 역 앞을 지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붉은 악마’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야구장에 출입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야구를 ‘관전’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건 VIP석이나 탁자석에 앉은 관중만이 아니라, 일반석이나 외야석에 앉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일반 관중석은 응원단이 전세 낸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응원에 동참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응원을 강제할 일도 아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은 자기 돈 내고 야구장을 찾은 관중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런 단체 응원은 개인의 자율성과 개성,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적 변화를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과거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응원단이 리드하는 단체 응원이 어느정도 효용 가치를 지녔던 게 사실이다.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 억눌린 사람들은 야구장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지 알지 못했고, 응원단장의 호각 소리와 안무, 구호는 관중들에게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좋은 가이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의 프로야구 젊은 관중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누가 가르쳐주는 대로 무작정 따라가는 대신, 자신들이 스스로 가장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찾아내서 마음껏 자기 개성과 끼를 표출한다. 방송사 카메라가 일일이 잡아내기 벅찰 정도로, 특이한 복장과 분장, 센스가 돋보이는 피켓을 손수 만들어 응원에 활용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응원단 지휘에 맞춰 일제히 막대풍선을 두드리고 합창하는 ‘단체’로서의 응원보다는,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개인’으로서의 응원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응원단이 없으면 야구장 분위기가 썰렁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일주일 동안 단체 응원이 중단된 적이 있다. 당시 경기를 관전했던 이주리(방송사 직원, 가명) 씨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처음에는 뭔가 허전했다. 하지만 이닝이 계속됨에 따라 응원단이 없는 자리를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합심해서 메워주고 있었다. 이런 게 팬들의 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허기룡 씨의 의견도 비슷하다. 그는 “국장이나 현충일 때 응원을 하지 않아도 개인들이 알아서 잘 응원하기 때문에 야구 보는 즐거움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야구를 즐기고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인 이성우(회사원, 가명) 씨 역시 “야구장이 가족들 간의 야유회 같은 분위기로 변화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의외로 많은 야구팬들은 대규모 단체 응원 없는 야구장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고대하고 있었다.
여성과 가족 친화적인 야구장, 꿈이 아니다
대한야구협회 구경백 홍보이사는 “구단들이 응원단을 운영하기 위해 연간 들이는 비용은 많게 잡으면 3억원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 OB 베어스의 창단 작업을 주도하며 선진적인 팬서비스와 구단 운영의 모범을 몸소 보여준 바 있다. 구경백 이사는 “치어리더를 비롯한 대규모 응원에 들어가는 비용을 여성과 가족 관중을 위한 팬서비스 비용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면서, “프로야구는 점차 여성과 가족 친화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응원문화만 제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 구단들이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해 구 이사는 “야구장이 여성-가족 중심으로 바뀌면, 구단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응원단 앞에 두고 막대풍선 두들기는 것보다는, 여성이나 가족 단위 관중들이 야구장에서 먹고 마시고 각종 용품을 사는 데 쓰는 비용이 구단으로서는 훨씬 이익이다. 응원단 비용을 이들 고객층을 공략하는데 쓰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다. 야구장에서의 폭력이나 욕설과 같은 험악한 일이 줄어들고, 야구장 분위기가 한결 안전하고 편안한, 가족적인 분위기로 변화하는 것도 부수적인 소득 중 하나다.
물론 지금 당장 응원단을 없애고 단체 응원을 폐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직도 단체 응원을 선호하는 팬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게 현실이고, 구단 응원팀 직원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응원전에서의 승리를 경기에서의 승리만큼이나 중시하는 팬들의 성향 상, 특정 팀이 다른 구단보다 먼저 응원단을 폐지하는 결정을 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여성과 가족 단위 관중이 점차 증가하는 지금의 프로야구에서 언제까지나 현재와 같은 방식의 응원단이 존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녀시대가 언제까지나 소녀일 수는 없고 원더걸스가 언젠가는 원더우먼이 되듯이, 프로야구의 응원 문화도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치어리더와 응원단장, 막대풍선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여성과 가족 관중 중심으로 변모하는 프로야구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옥주현이 요가를 하고 바다가 뮤지컬을 하며 늙었을 때를 미리 대비한 것처럼, 구단들도 변화에 발맞춰 미리 새로운 응원 문화와 팬서비스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과거 남성 관중들을 위해 마련된 치어리더 응원을 여성 관중들을 겨냥한 새로운 형태로 개선하거나, 야구 관전에 보다 집중하기를 원하는 ‘프리미엄 관중’들을 보다 배려하는 방식의 관중석 운용이 필요할 것이다. 응원단 유지에 들어가는 예산을 점진적으로 팬서비스를 위한 예산으로 전환해 나가는 준비도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게 해서 장기적으로는 현재와 같은 응원단이 사라진 이후를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자. 치어리더의 섹시한 율동과 응원단의 호루라기가 사라진 야구장을. 그 자리는 관중들이 저마다 준비해온 피켓과 응원 구호와 기립 박수가 대신한다. 춤추고 싶을 만큼 흥겨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어서서 추면 되고,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단장이 시키지 않아도 지르면 된다. 어린 아이와 부모가 함께 따사로운 햇살 아래 테이블에 앉아 두 마리 치킨을 뜯는다. 중요한 상황에서는 고요한 적막이, 환상적인 플레이 때는 떠나갈 듯한 환호가 쏟아져 나온다. 이게 바로 ‘여성과 가족 친화적인’ 야구장의 모습이다. 꿈같은 얘기가 아니다. 조만간 원하지 않아도 오게 될 현실이다. 팬들도 지금부터 이런 변화를 미리 준비하고, 마음속으로 꿈꿔 보는 것은 어떨까.
응원 횟수 0
첫댓글 솔직히 응원안하고 야구만 보는건 집에서 TV로 보는게 훨 낫지;; 치어리더 없으면 그게 야구장인가...
전 개인적으로
외야에서 응원할때가 그리워요... 요즘은 내야에 응원석이 있어서
함성소리가 넘 시끄러워서 그런지
집중이 잘 안되고... 싫더라구요
집에서 티비로 보라구요
싫어용 
치어리더 보기 싫으면 외야나 포수 뒷편에서 보면 될것을...ㅋㅋㅋ
응원단상 쪽이 시야도 훤하고~ 잘 보이죠~
아무리 여성관중이 많아졌다고 해도 아직은 절대적으로 남성이 많은데...
제가 생각하기에 치어리더는 야구장의 약방의 감초처럼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가 되버린듯하네요 ㅎㅎ 전 야구장에 응원하는 맛으로가는데...그리고 제 주위사람 중 상당수도 야구도 야구지만 응원하는 맛에 가는분 많던데^^
그럼... 원래 여성관중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던 농구장은?? 이 기사는 다소 억지스러운면이 있네요.
맞아요 !! 프로농구장 가면 대다수가 학생+여성관중... 치어리더 공연은 야구장보다 훨 많은데.. 이 글 쓴 기자양반은 이런 건 어찌 설명 할라구 ??? 전국 치어리더 언니야들한테 몇 대 맞을 소리만 써 놨군요 .. 쩝 ~~
이것이 진정한 한국야구의 응원문화인것을....
남자들이 치어리더 하면 여성팬들이 좋아할까요? 아닐 것 같은데... 단체 응원은 저도 싫어하고 강요되는 응원이나 막대풍선 소리도 좋아하진 않지만, 다른 이들의 응원 문화야 어쩌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늘 지정석에 앉아서 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