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은 참으로 좋은 아버지시고 사랑과 자비를 넘치게 베푸시는 분이라고 설교한다. 그런데 그런 분에게 가고 얼굴을 맞대고 그분을 만나는 시간이 반갑지 않고 꺼려진다. 건강검진 결과를 보러 의사를 만나러 가거나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이 된 느낌이다. 그렇다, 그날에 하느님과 나의 온 삶에 대해 셈을 하고, 그에 따른 심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 거 같다. 그런 날을 기쁘게 기다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있기는 할까? 그러니 입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마음은 하느님과 만남을 반기지 않는다.
하느님은 언제나 용서하신다. 용서는 내 허물을 덮고 내 죄를 지워 흔적까지 없애는 것이다. 지워져서 아무도 모른다. 그것들은 하느님 사랑의 심연, 사랑의 깊은 연못에 던져져서 아무도 찾지 못한다, 하느님도. 그런데도 나는 그걸 기억하고 있다. 용서받았음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내 기억에는 그것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내 마음 안에는 그 아픔과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두고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다.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시편 51,5)
하느님은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이 말씀을 믿고 또 믿는다. 그래도 내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하느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이렇게 약속하셨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이사 65,17-18) 하늘나라에는 선(善)만 있다. 내 잘못과 죄는 거기에 없다. 보잘것없는 내 작은 선행들만 잘 보관되어 있다. 누가 훔쳐 가거나 좀 먹거나 녹슬 일도 없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마태 6,20)
나는 말과 마음이 같지 않고 행동은 더더욱 아니지만, 예수님 말씀은 곧 그분 마음이고 또 그대로 되었다. 예수님은 내가 당신과 함께 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그분의 십자가 희생으로 없어진 세상의 모든 죄 안에는 당연히 내 허물과 잘못과 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정말 염치없지만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뵙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고 가슴 떨리는 설렘이다. 거지꼴로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가장 비싼 옷과 반지로 그를 당신 아들 품위에 다시 올려놓고 임금이 온 거처럼 큰 잔치를 베풀었다는 그 이야기는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래도 내 기억이 다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겠나, 잘 짊어지고 가야지. 그러면서 계속해서 선한 마음으로 의로운 것만 생각하고 그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 그것으로 내 죄들이 상쇄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는다. 상급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바로 거기에 하느님과 하느님을 사랑한 영혼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모스 예언자가 권고한다.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너희 말대로 주 만군의 하느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아모 5,14) 하느님께 속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예수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완전히 뵐 때까지 매일 제 십자가를 잘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희망이 작아지지 않게 지켜주시고 저를 아드님께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