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을 한글로 해석하면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백조의 높은 뜻을 알리?]이다.
먼저 중국의 전설적인 농민사업가 량희삼을 소개한다.
어려서 동냥을 하던 산동의 농민의 아들 량희삼은 문혁때에 동북에 이주하여 연명하다가 개혁개방후에 돈을 좀 벌어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서 건설회사를 하나 만든다. 건설회사라고 해봐야 석재작업을 도급하는 자그마한 하청업체였는데 십년을 아글타글모아 5천만불자산을 가진 건설회사로 성장한다. 1996년에 북경도심의 장미화원별장단지의 석재시공을 도급하게 되는데 당시 장미화원별장단지 시행사는 자금여력이 없이 뒷문거래로 사업허가를 따낸 건달회사였다. 순진한 농민 량희삼은 겉모습만 뜨르르한 시행사에 속아 자체자금으로 시공하는 조건으로 시공계약을 땄다. 요즘 한국에서 실행되는 책임준공비스무레한 계약조건이었다. 량희삼은 건재회사도 소유하고 있고 또 자신의 건설사의 직원과 공인은 대부분 고향사람들이라 봉급은 년말까지 미룰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공은 위기에 빠졌다. 중국의 부동산개발은 사전분양이 되지 않아 건설도중에 자금줄이 끊길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데, 의류장사로 겉멋만 들었던 시행사는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다. 량희삼은 해당 사업의 최대의 채권자가 되었고 장미화원별장단지사업 경매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전 자산 5천만불을 들이밀고 해당 사업을 낙찰받았다. 그리고 시공을 계속하여 사업을 마무리하고 별장을 분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호재가 날아들었다. 북경시정부가 올림픽용 대지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도심에 별장건설을 장미화원을 끝으로 더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결정이었다. 장미화원의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량희삼이 밀어넣은 5천만불은 4억불로 불어나 그의 주머니에 들어왔다.
모두들, 이제 그가 북경의 부동산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겠다고 점칠 때, 량희삼은 두둑한 주머니를 둘러메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향의 동네옆에 2층양옥을 수백개를 지어 동네주민들이 원래 살던 초가집과 맞바꿨다. 처음에 동네사람들은 미심쩍어 하면서 저 양반이 헌집을 가지고 무슨 장난을 칠까?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가 결국에는 새 양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량희삼에 응하였다.
량희삼은 동네사람들이 모두 새 양옥으로 이사하자 불도저를 가져다가 낡은 집들을 싹 밀어버리고 거기에 축사를 지었고 거기에 중국의 4대명우중의 하나로 꼽히는 로서우를 꽉 채워넣었다. 그리고 동네사람들을 축산업으로 끌어들였다. 지금 그곳은 소똥으로 지렁이를 키우고 지렁이가 크면서 부숙된 소똥은 최고의 유기비료가 되고 지렁이로는 다시 지렁이를 먹이로 하는 양식장을 하면서 농촌의 순환경제를 실현하고 고향사람들을 먹여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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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원은 목포도심재생을 꿈꾸고 있었다. 언젠가 의원을 그만두면 목포도심에 사둔 부동산에 본격적으로 손대서 옛날 정취가 짙은 목포거리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브스때문에 그 디자인이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결국 오늘의 사단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이제라도 늦은 것 같지 않다. 그냥 의원직을 사퇴하라. 그리고 목포에 가서 자신이 디자인한대로 목포의 구도심을 개조하라. 나전칠기박물관을 만들어 기증하고 이런 저런 옛날정취가 묻어나는 가게와 점포들을 사들인 부동산에 디자인하여 문화재를 보존하면서도 운영 가능한 문화인들에게 헐값에 세를 주면서 목포를 살려내라. 나도 그 거리에 한문관련 도서관을 만들어놓고 중국의 고대한어와 한국의 한문 관련 서적들을 쌓아놓고 한문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책속에서 먹고 자고 싶다. 그렇게 후반생을 디자인하여 손 전의원을 찾아가면 그냥 주지는 못해도 헐값에 세는 줄것이라고 믿는다.손의원이 투기목적이 아니라 이런 디자인과 플랜을 가지고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다. 처마밑에서 지지배배하는 제비나 참새가 어찌 저 푸른 하늘을 높이 나는 기러기와 백조의 뜻을 알리오? 여의도의 참새들이야 안다는 것이 고작 아파트를 매입하여 시세차익이나 노리는 부동산투기겠지...
중문번역사 송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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