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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모가디슈 깻잎감성
1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3419109
2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3419731
3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3420673
5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3426537
번외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3439405
6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3450748
글씨 더 많음
이번엔 인간도 졸라많음
짱짱짱김
~ 전편요약 ~
한층 격해진 사회주의 정부의 개혁 밀어붙이기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노답 3형제
이슬람 원리주의의 무장화
사실상 내전 상태의 아프가니스탄
외부 (파키스탄, 이란)의 영향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원죄 2 소련의 침공
소련 : 등산이 제일 싫었어요
원죄즈들의 한치 앞도 모르는 아프가니스탄 반군 지원
여기서부터는 너무 역사가 중첩적이고 복잡하고 이권에 따라 시각에 따라 엄청나게 해석이 갈려
미리 말하자면 역사는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고 나도 내가 가진 가치관이나 시각에 따라 달라짐
그래서 이 글도 전반적으로 나의 시각이 들어갔으므로 이것만 가지고 정보를 해석하지 말고 참고만 해줘~
제 전공이 이쪽은 아니라 다소 과장되거나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참고용으로만 읽어 주세요~
자세한 내용과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사항은 책과 다큐멘터리를 추천드립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
바로 고아야
전쟁이 끊이지 않던 인류는 이 수많은 전쟁고아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걸 만들었어
구호단체를 만들고 학교를 짓고 무상원조를 하고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은 1개 대대병력을 수원시 서둔동 지금의 농촌진흥청에 주둔한 뒤 고아원인 앙카라 학원을 세워 전쟁고아 640여명을 돌보는 등 인도적 지원활동을 펼쳤다.
https://www.yna.co.kr/view/AKR20130625101500061
자이툰부대는 각종 장비와 물자 지원은 물론 자이툰 병원과 컴퓨터·제빵기술 등을 교육하는 기술교육센터와 문맹자 교실 등을 운영, 현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또 현지 주민들의 생활기반인 상·하수도 정비와 학교 개·보수, 도로 포장, 마을회관 신축 등 사회 간접시설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80083622
앞서 우리나라가 특이케이스라고 말한적 있는데 이 부분에서도 특이해
우리나라는 최초로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공여국 클럽에 가입한 케이스야
(후원을 해주다가 받게;;;된 나라는 종종 있음..반대가 사실상 우리나라밖에 없어서 그렇지)
아프가니스탄은 1970년말부터 사실 아직까지도 전쟁이 끊이질 않아았음
엄청난 규모뿐 아니라 사상자를 차별하는 것이 전쟁 피해의 숨은 특징이다. 현대전에서는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고 다친다. 유니세프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는 민간인이 전체 사망자의 34%였지만 1990년대 이후는 90% 이상을 차지한다. 어린이, 가난한 사람, 장애인, 노인, 여성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것도 당연지사.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이라크 전쟁 때문에 2만5천 명 이상의 어린이가 숨졌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5062.html#csidx2c6543254c01f0a80fb24f58316f33d
현대전의 역설적인 특징은 기술과 무기의 발달로 민간인 사상자를 더 많이 낸다는거야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은 과부와 전쟁 고아가 많이 발생했지 어마어마하게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은 대략 150만으로 추산되는 민간인 사망자를 낳아
이슬람교에선 살아남은 남성이 남편 잃은 과부와 그 아이들을 거두어 가족으로 삼고 보호하는게 일종의 사회복지 시스템이야
이게 바로 무함마드가 허락한 일부다처제의 원래 목적이지 "여성이 혼자 살기 버거웠던 시대에 과부들과 재가하려 먹여살려라"
(실제 무함마드의 많은 부인중 일부는 재혼한 과부야)
내전 과부가 둘째, 셋째 아내로 재혼하는 일은 시리아에서 지극히 흔한 일이 돼버렸다.
모하메드는 "시리아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많다"면서 "내 친구 4명도 전쟁 과부들의 평판을 지켜주기 위해 둘째 아내를 맞아들였다"고 말했다.
다마스쿠스에 사는 아부 아드난이라는 40대 남성은 집세를 내지 못한 젊은 과부 세입자를 둘째 아내로 맞아들였다. 사실상 매매혼이 시리아 전역에 만연하다.
시리아 정부통계에 따르면 혼인신고 가운데 일부다처 혼인 비율은 지난해 30%를 차지했다. 혼인신고 세 건 중 한 건꼴이다. 내전 이전 2010년 이 비율은 5%밖에 안 됐다.
일부다처 결혼 급증은 모하메드의 말대로 내전으로 과부가 양산된 탓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160912151700108
현대적인 여성관이 대부분 부재한 이슬람권에선 사실상 아직까지 먹히고 있는 나름의 전통 사회복지임...
그런데 엄마까지 다 죽어서 고아가 된 애들도 있잖아? 혹은 전쟁으로 인해 사실상 가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래서 전통주의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마드라사를 통해서 이런 전쟁 고아를 거두어 키웠고 교육시켰음
마드라사의 의미는 원래 이슬람 학교라는 의미야 평범한 학교를 지칭하거나 혹은 서구식 학교에 대비되는 이슬람식 학교를 지칭함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파키스탄 사우디 미국 영국 등 많은 곳에서 무슬림들은 마드라사를 세웠고
이 학교인 마드라사를 통해 전쟁 고아나 전쟁 빈민이 된 아이들을 기르고 교육하며 사회화시켰어
1980년대 후반은 본격적인 냉전 해소의 시대야
냉전 체재가 누그러지고 군비 경쟁을 축소했고 공산권은 개혁 개방 정책을 폈지
이념은 더이상 큰 문제가 아니고 포용과 평화의 시대가 온거야
88올림픽의 주제가는 이 시대정신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음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새시대를 열자"
이게 바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까지의 전세계적 #Mood
아프가니스탄은 제외하고....
아니 사실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해 강대국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불씨들을 제외하고
강대국들끼리 서로 화해하고 뽀뽀하고 쇼하고 행복하고 이제는 평화로울거고...이런 환상들만 잔뜩 뿌렸지
정작 자기들이 냉전으로 이곳저곳 뿌려 놓은 불씨들이 점점 커져 수많은 분쟁 반목 학살로 이어질지 모른채
지들끼리 화해하고 지들끼리 서로 기프티콘 뿌리고 지들끼리 단톡방파서 수다떨고
막상 진짜 위협에 놓인 수많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예측 없이 지들끼리 하하호호한 한 측면이 분명 있음
물론 냉전 해체로 평화를 얻고 더 나은 환경에 놓인 국가도 정말 많지만 반대의 케이스도 있다 이거지
실제로 오히려 냉전체재의 해체 이후 민족분쟁과 학살이 엄청나게 늘었어 특히 약소국 위주로
미/소 등 서방과 공산권 강국들이 빠져나간 공백, 그들이 힘과 돈으로 짓누르고 있던 많은 민족 인종 종교 갈등들이 터짐
특히 소련의 해체 이후 소련의 파워+군사력으로 짓누르고 있던 연방이 붕괴되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구공산권 혹은 소련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그랬어
우리가 알고 있는 발칸반도, 소말리아, 체첸 등등이 이때 더 크게 불거진거야
지금의 아프가니스탄도 사실은 소련의 해체와 냉전 붕괴로 인한 후폭풍을 맞은거고
미국과 소련 양대국이 89년 역사적인 냉전 종식을 선언했지만세계 각지에서 무력 분쟁은 오히려 그 이후 더 속출했다.이른바「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무너진 탓이다.빈발하는 테러도 결국 「분쟁의 산물」이다
[출처: 중앙일보] 脫냉전이후 오히려 격화된 지역분쟁 https://news.joins.com/article/3300480
소련이 물러나자 아프가니스탄엔 뭐가 남았을까?
1. 수많은 사상자
2. 많은 이산가족 전쟁고아 과부
3. 수많은 무기
그리고
4. 지역마다 생겨난 무장군벌과
5. 남겨진 사회주의 정부
소련이 퇴각하자 무자헤딘은 다시 정부를 공격했음
당시 정부는 나지불라 정부로 나름 유화책을 피면서 무자헤딘과 협장하려 했어
우선 국가명도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에서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으로 변경했고
공산당 1당 독재 철폐+지역색 존중한 연합 정부도 제안함
(정확히 말하면 소련 철수 직전에 ㅇㅇ)
그러나 무자헤딘은 이 제안을 전부 걷어찼고 소련이 떠난뒤 다시 내전이 발발해
나지불라정권은 소련이 남겨준 막대한 무기와 물자 그리고 경험 많은 군대가 있었고
무자헤딘은 파키스탄과 사우디를 통해 미국과 영국 등이 지원한 물자와 전사들이 있었지
얘네 다 개별 무자헤딘 세력임
1. 이슬람 수니파 타지크족 판지마르 마수드 2. 정부군이었다 전향한 이슬람 수니파 우즈베크족 도스툼 3. 하자라족 통일한 이슬람 시아파 마자리 4. 파슈툰족 과격파 헤크마티아르 5. 타지크 북부동맹 대통령 라바니 6. 이슬람 수니파 파슈툰족 압둘 하크
게다가 무자헤딘은 한 지도자와 한 가치 아래 모인게 아니라
부족/종파/지역별로 나뉜 지역군벌이라 이미 이때부터 반목이 시작되고 있었음
위에 내가 설명 단거만 봐도 부족에 위치에 종파에...
진짜 다 다루려면..나 손가락 부러져...중요한 사람들만 글 중간중간 몇 다룰까함 저기에 사진 없는 군벌도 있고
양측의 내전은 굉장히 팽팽했고 이는 결국 양측에 피해자가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야
무자헤딘도 정부군도 각종 전쟁범죄에서 자유롭지 못했어
3년을 넘긴 내전은 나지불라 정권의 군부 쿠데타 실패로 인한 숙청과 이로 인한 경험 많은 전력손실
소련이 해체로 나지볼라 정권을 받쳐주던 소련의 지원이 끊이자 점점 기울었어
그리고 결국 1992 무자헤딘은 정부군을 몰아내고 무자헤딘 정권을 세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근데 이때 이미 또 비극이 터져
앞에서 무자헤딘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라고 했잖아
정부군과 내전을 하면서도 동시에 군벌들끼리 분열과 갈등을 반복함
1992년 수도 카불을 둘러싼 5개의 군벌
여기서부터 혼란과 카오스야 잘 따라와봐
나지불라는 UN 안전지대로 피신하면서 정권을 내려놨고
수도 카불은 무주공산이었음
그리고 카불을 두고 크게 양쪽이 갈라져 싸웠지
vs
마수드 (보라돌이) 도스툼 (빨강이 not 빨갱) WIN
1992년 마수드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성립하고 각 군벌들과 평화 협정을 맺어
이때 대통령은 하자라족 무자디디 수상은 헤크마티야르로 협력해 정부를 꾸려나가
자고 했는데 바로 분열 이남
헤크마티야르 (초록이) 가 변심해 대통령 무자데디에게 로켓포를 쏴버림 그리고 큰 세력을 이용해 카불을 무단점령함
어렵게 맺은 평화협정은 나가리되고 또 군벌 간 전쟁이 발생해
vs
마수드 (보라돌이, 라바니 세력) 도스툼 (빨강이 not 빨갱) 마자리 (노랑이) WIN
새로운 대통령으로 브루하누딘 라바니를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연방 공화국을 탄생시킴
그리고 이때 헤크마티아르가 카불에서 쫒겨나면서 굉장히 잔혹하게 시민들을 학살해 사망자만 1만명이 넘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점점 전쟁에 지쳐갔고 군벌들은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더 분열되고 있었어
어찌저찌 연방 공화국을 탄생시키긴 했는데 또 내분이 일어나
연방제 도입에 의견차로 마수드와 연합하던 세력이 이탈한거야
하자라족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유독 극심히 차별받던 부족임
일단 외관도 이란계가 대다수인 타 부족과 다르게 몽골피가 섞여서 외모가 상당히 이질적이고
종교도 이슬람교지만 수니파와 정 반대인 시아파 (이슬람교는 타 종교보다 타 종파와 더 분쟁이 잦아)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통치를 받게된 시기도 굉장히 늦어 19세기부터야
그만큼 더 이질적이고 더 다르고 더 차별을 받은 민족인데
이 흩어져 있던 하자라족을 뭉쳐서 군벌화 시킨게 바로 이 압둘 마자리야
하자라족 외모 확실히 우리가 아는 아프간 사람들과 좀 다름
그만큼 아프가니스탄은 완전 다른 부족이 섞여사는 다민족국가임
압둘 마자리는 차별 받던 하자라족의 권리를 위해서 연방 정부를 지지했지만
내각 구성 비율에 대한 의견차로 대립했고 도스툼 또한 라바니/마수드 세력을 견제해 이탈했어
얘는 포기도 않고 계속 카불을 공격했고
이젠
이렇게 셋이 편먹고 마수드 라바니 세력과 싸웠어
이렇게 서로 싸우고 갈라지고 계속 내전이 지속되자 많은 아프간 사람들은 무자헤딘에도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었어
참고로
얘는 어떻게 혼자서 매번 이렇게 잘 싸우냐
소련과 전쟁당시 미국와 영국의 지원이 모조리 파키스탄으로 갔고 파키스탄은 얘한테 지원을 많이 몰빵했음
파키스탄이랑 칭긔칭긔였거든 게다가 다수인 파슈툰족 군벌로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지방을 꽉 잡고 있었지
사실상 원죄즈들의 피디픽이라면 피디픽인데 하필 골라도 얘를 고른 탓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더 고통에 빠짐
군벌 중에서 잔학하고 인권탄압하기로는 원탑임 가장 많이 대립했던 마수드 세력이 가장 온건파였고
이런 내전들은 또 다시 전쟁 고아를 만들고 비극을 만들지
아까 같은 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마드라사들 자연스럽게 더 커지고 세력화됐어
아 맞다 내가 마드라사 출신중 제일 유명한거 말 안했나
정확하게 말하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에 걸친 파슈툰족 지역의 마드라사에서 어린 신학생들이 결성했어
탈레반의 초기 구성은 일부 무자헤딘+극단주의 마드라사의 신학생+수많은 파슈툰 전쟁고아였음
[세계를만나는시간NOW]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with 알파고시나씨 (국제 정세 유튜버+아시아엔 기자)
6분부터
https://www.youtube.com/watch?v=SsSMIBxY1Y8
"(사회주의 정권이 소련에 도움을 요청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오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소련과 대항헤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견제한 미국이 (아프간)과 정서가 비슷한 파키스탄을 통해 무장활동 반정부 활동을 암암리에 지원했어요
그 지원했던 단체중 하나가 탈레반입니다" - 정확히 말하면 일부 단체가 모태고 나중에 일부가 또 섞임-
"전쟁중 불완전한 상황을 틈타 탈레반이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디는거네요? 탈레반에 처음 결성된게 1994년입니다"
"네 94년인데 그전에 뿌리가 이미 있는거죠
소련군이 나가고 난 뒤에는 단체들이 내전에 들어갑니다 그 단체중에서 학생들이 만들었던 거에요
탈레반의 의미도 학생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신학교에 다니는 애들이에요 그때는 칸다하르 출신의 신학교 학생들
그 학생들이 따로 탈레반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나머지 단체를 제압하고 정권을 잡은게 94년입니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산촌에서 파키스탄 난민캠프로 도망가 생활하던 아프간 젊은이들이 1994년에 결성해 96년 정권을 잡았지만, 결성 당시부터 파키스탄군의 첩보기관인 통합정보국(ISI)의 고문단이 전쟁에서부터 국가 운영까지 조언했다. 파키스탄은 탈레반을 지원하면서 아프간을 간접 지배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856190
게다가 이 탈레반의 더 큰 문제는 아프간에서만 새는 바가지가 아니었단거야
밖에서도 새는 바가지 바로 파키스탄과 아프간을 동시에 조지는 세력이 되어버린거임
원인은 뭐 다 아는..걔..원죄1 듀랜드..그거 ㅎ,,
이는 바로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칩니다 미군이 죽어라 때려도 바퀴벌레마냥 박멸되지 못한 이유
자 여기서 소환 해봅니다
원죄즈 업보즈...
탈레반 정권까지 써보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안되겠다
분명 많이 쳐내고 단순화 하는건데도 정말 너무 복잡하고 기네
~ 다음 예고 ~
드디어 시작된 역대 최악의 인권 탄압+문화 말살 정권
북부동맹 vs 탈레반
전세계가 충격에 빠진 911테러
의도치 않게 탈레반을 계속 살려주는 원죄즈
제 전공이 이쪽은 아니라 다소 과장되거나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참고용으로만 읽어 주세요~
자세한 내용과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사항은 책과 다큐멘터리를 추천드립니다.
TMI1
오늘 소개한 군벌 세력중 도스툼은 아직 살아있고
이미 정부군과 함께 민병대 조직해서 탈레반과 싸우다 정부군이 무너져서 도망침
그리고 어제 계속 반탈레반 항전 한다고 자기가 끌어모을 수 있는 군사 끌어모았다곤 함
전세가 너무 기울긴 했는데...실책도 많고 잘못도 많은 군벌이지만 이이제이 그거 좀 됐으면
TMI2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1/08/18/mujahideen-resistance-taliban-ahmad-massoud/
탈레반에 대항한 무자헤딘의 저항은 이제 시작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1998년, 제가 겨우 9살난 아이던 때를 기억합니다. 판지시르 골짜기의 한 동굴에 저의 아버지이자 무자헤딘 지도자셨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께서 병사들을 불러 모았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제 아버지의 친우이자 프랑스에서 온 철학자인 베르나드-헨리 레비의 훈시를 들었습니다. 그는 그때 "당신들이 당신의 자유를 위해 싸울때 당신들은 동시에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선 탈레반과의 싸움을 이어가는 내내 이 말을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2001년 9월 9일 탈레반과 알카에다에 의해 살해당하시던 바로 그 순간까지도 아버지께선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은 물론 서방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 공동의 싸움은 제 고향 땅이 그 어느 때보다 어둡고 긴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때 가장 절실합니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를 준비를 마친 저는 이 글을 오늘 판지시르 계곡에서 씁니다. 탈레반과 다시 한번 싸울 준비가 된 무자헤딘 전사들과 함께 말입니다. 저희에겐 이런 때가 올 수 있음을 알고 아버지대부터 끈기있게 모아온 무기와 탄약이 있습니다.
또 지난 72시간 동안 판지시르의 저항에 함께해달라는 호소를 듣고 합류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무기도 있습니다. 지휘관의 항복에 역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합류한 아프가니스탄군 장병들과, 무기를 들고 판지시르의 골짜기로 달려오고 있는 장병들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의 전 장병들 또한 우리의 투쟁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탈레반 군벌들이 공세를 걸어오면, 우리는 당연히 맞설 것입니다. 그들이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우리의 모든 거점마다 국가저항전선의 깃발이 20년 전 그때처럼 당당히 휘날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군세와 보급 역량이 충분하지 못할 것임을 압니다. 서방에 있는 우리의 친구들이 지체 없이 보급품을 전달해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원은 빠르게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비록 전장을 떠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2차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기 전, 사면초가에 몰린 영국을 지원하며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민주주의 병기창"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서방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친구들이 워싱턴과 뉴욕에, 또 미국 의회와 바이든 행정부에 우리를 위해 탄원해주기를 간청합니다. 제가 유학한 런던에, 샹젤리제 정원의 길에 올 봄 저의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그를 기려준 파리에 탄원해주기를 간청합니다.
수백만의 아프간인들이 당신들의 가치를 공유함을 알아주십시오.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 오랜 기간 싸워왔습니다. 여자아이들이 의사가 될 수 있는, 언론이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는, 우리의 청년들이 춤추고, 노래를 듣고, 과거 탈레반이 공개처형장으로 사용했던 (또 곧 그렇게 사용할지 모르는) 경기장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를 보러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말입니다.
탈레반은 아프간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탈레반의 통치 하에서라면 아프가니스탄은 분명히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의 배양실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해치기 위한 음모가 이곳에서 다시 부화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건, 저와 저의 무자헤딘 전사들은 아프가니스탄 자유의 마지막 보루인 판지시르를 지킬 것입니다. 사기는 높습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앞으로 무슨 일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지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 많은 무기와, 탄약과, 물자가 필요합니다.
미국과 미국의 민주주의 동맹들은 아프간인들과 함께 단순히 테러리즘과의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이제 오랜 기간 함께 공유해온 이상과 투쟁의 역사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자유를 위해 도울 수 있는 것은 아직도 많습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입니다.
판지시르에서 마지막 항전 준비중인 마수드가 가장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문을 냈음
길지만 한번쯤 읽어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가져옴
잘보고있어!
글 너무 잘 읽었어!
기고문 눈물난다... 너무 마음아프고..
22..
여시야 너무 고마워
초록이 왜 그렇게 잔인해 다들 제발 좀...
와 ㅜㅜ 진짜 이런거 궁금하긴했어도 찾아볼 엄두도 안났는데 이렇게 쉽고 재밌게 써줘서 1편부터 흥미돋게 달림...여샤 짱이다 고마웡
기고문...부디 당신들이 승리하길 기도하겠습니다
기고문 너무 맘아프다........ 여샤 글쓰느라 고생일텐데 너무너무 고마워!!!
기고문.... 제발 아프간 시민들이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길..
와 이해하기 쉽게 써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 고마웡~!
기고문 보고 질질 울고 있다....ㅠㅠㅠㅠㅠㅠ 여샤 진짜 다시한번 이 글 써줘서 너무 고마워 내가 정말 찾고 있던 바로 그 글이야!
중간이 군부세력 갈린 게 복잡해서 스크롤 몇번이나 올렸다 내렸다 읽었다... 여시 설명 아니엇음 이 복잡한 역사 알아볼 엄두도 못 냈을 거야
아 이래서 조까지 지원해도.:.
마수드 기고문 ㅜㅠㅠ 하... 탈레반이 이렇게 나왔네
잘보고있어 여시!! 고마웡
여시 오늘 올라온 글 보고 정주행 하고있는데 난 단순히 이슬람 교리가 일부다처제인줄 알았어! 일부다처제에서도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을줄은 생각도못했네 여샤 너무고마워 또 마저 보러간다!!
여시 고마워 잘읽었어!
기고문 눈물난다..
여자아이들이 의사가 될 수 있는, 언론이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는, 우리의 청년들이 춤추고, 노래를 듣고, 축구 경기를 조러갈 수 있는 사회….
와 진짜.... 원죄즈 넘 짱난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시리즈 기다리시는 여시 있을까봐 댓글 달아요 ~ 현생이 바빠지기도 했고 또 이 글 쓰기 시작했언 이유는 무언가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혐오를 해소시켜주고 싶어서였어요 꼬박 네다섯시간을 투자해서 쓰거나 읽었던 글 책을 다시 읽고 다큐를 복습하면서 저도 나름대로 즐거웠구요 그런데 무지의 혐오를 저 하나의 글만으로 해소하기엔 모자라고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역량이 모자란 사람이구나 싶어서 가치판단하기에 예민한 최근 글은 다 쓰고 지워버렸어요 아마 더 쓰지 못할거같아요 바쁜 현생이 해결되면 다른 글을 쓸 순 있겠지만 스크랩 원하던 여시들 있었는데 필요하다면 어디로 가저갈지 말씀해주세요~
영화 그을린 사랑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