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상치꽃 아욱꽃」을 배달하며
얼마 전 처음으로 오이꽃을 보았습니다. 아, 오이도 꽃이 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의 무지와 무심에 웃음이 났습니다. 오이꽃은 늘 오이꽃처럼 피어왔던 것이니까요. 상치꽃이 ‘상치 대궁만큼’ 웃고 아욱꽃이 ‘아욱 대궁만큼’ 웃듯이 우리도 우리가 웃을 수 있을 만큼 웃고 사는 듯합니다.
다만 이 시를 쓴 박용래 시인은 사람으로 태어나 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울었던 이였습니다. 생전 시인과 가까웠던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울지 않던 그를 본 것이 두 번밖에 되지 않았다고 회고할 만큼. 그는 갸륵한 것과 소박한 것과 조촐한 것과 조용한 것과 알뜰한 것 앞에서 울었고 한 떨기의 풀꽃, 고목의 까치 둥지, 내리는 눈송이, 시래기 삶는 냄새에도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가난과 애달픔으로 울지 않았고 외로움에도 울지 않았다 하고요.
큰 웃음소리가 마치 큰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시배달을 통해 제가 전해드리고 싶은 것도 바로 이 웃음이거나 울음일 것입니다.
문학집배원 / 시인박준
1983년 출생. 2008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산문집『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시 그림책『우리는 안녕』. 제7회 박재삼 문학상, 제29회 편운문학상, 2017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제31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작가 : 박용래 / 위의 이미지는 시인 박용래님입니다 클릭 要
출전 : 박용래, 「상치꽃 아욱꽃」 (창비, 1984)
출처 / https://munjang.or.kr/
첫댓글 오래 배달이 중단되어 아쉬웠는데,
다시 배달이 시작되어 고맙고 반가워서 얼른 별뜨락에 올립니다...^^
오래 된 시집이라서 교보서점과 여러 서점을 찾아 봐도 안 보입니다.
시집 대신 찾은 박용래님에 대한 소개 글입니다. 귀한 글이라 천천히 읽어 보려고 올려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