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영적인 회복
죄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마음과 영혼에 그리고 신체에도 상처를 남긴다. 나의 죄는 나뿐 아니라 너도 우리도 다치게 한다. 거기에 반복된 죄는 자신의 사고방식과 마음을 왜곡시킨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 병자처럼 된다. 그는 38년 동안 성전 물이 출렁이기를 누워서 기다리기만 했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에 핑계를 댄다. 성전 물이 출렁거려도 아무도 자신을 그리로 데려가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요한 5,7), 병을 낫게 해준 분께 감사하기보다 안식일 규정 위반에 자신이 고발당하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지목한다(요한 5,11.15).
우리에게는 38년이 아니라 50년 60년 무한 반복되는 죄가 있다. 상처가 오래되고 그리 깊으니 왜곡된 내가 본래 나인 줄 안다. 어쩌면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통회하고 뉘우친다는 고백이 그걸 시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건 자신을 속이는 거다. 나는 내 죄를 알고 있다. 죄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져 그게 죄인 줄 잊어버린 거다. 지식이 아니라 성찰을 게을리하고 그래서 점점 양심이 무뎌지고 영혼의 눈이 흐려진 거다.
물러진 신앙과 무뎌진 양심은 예수님 안에서 회복된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주님 앞에 나오면, 그분 앞에 나와 진심으로 잠시라도 머무른다면 무뎌진 양심은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내 죄를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외면하거나 방치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예수님은 다시 만난 그 병자에게 이렇게 권고하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 5,14) 그리고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그 여인에게도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요한 8,11) 단단히 이르셨다. 그 시대 사람답게 예수님도 병은 죄의 결과라고 여기셨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안 되는 거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신 것이 아니라 죄를 없애고 그를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신 거다. 걸어가지도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는 그를 반듯하게 걸어가게 해주셨다. 그의 왜곡된 마음과 영혼이 온전해졌다. 그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우연히 운이 좋아 그리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날인 안식일에는,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을 만나면 모두가 회복되고 온전해진다. 우리 그리스도인 일요일을 주일(主日)이라고 부른다. 주님의 날이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고, 하느님이 창조를 끝내고 쉬셔서 완성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낸다. 형편상 주일이 어려우면 일주일에 하루라도 시간을 내서 하느님 앞에 나아온다. 아무리 바빠도 내 영혼까지 방치하면 안 된다. 내 생명의 주인님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소작인이고(마르 12,1-12) 생명의 관리자라서 나중에 주님 앞에서 셈을 하고 모두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만의 독특한 생각이 아니라 인류 보편 가치라고 믿는다. 영적 건강이 회복되어야 한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범죄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건 이제 상식이 됐다. 개인의 영적 회복과 건강이 건강한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 거다. 최소한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회복되고 강건해져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그 물처럼(에제 47,1) 하느님 백성으로부터 그런 선한 영향력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예수님, 주님은 제 생명의 주인이고 제 영혼의 의사이십니다. 저는 제 죄를 알고 있습니다. 묵어서 제 영혼의 일부처럼 된 죄, 방치해서 잊어버린 줄 알았던 죄 모두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회복되기 위해 필요하다면 벌도 받겠습니다. 좋아지기 위한 것이니 그 아픔은 쾌통이고 온전해지기 위한 것이니 재활의 고통이라고 여기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이시니 제가 바른길을 따라가게 도와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