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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김해] 이만주 문예비평가 = 한여름밤의 꿈이었고 판타지였다. 국립김해박물관 용광로 광장에서 열린 한여름밤의 콘서트 <바다海로 가야加耶>는 정겨웠다. 보통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콘서트, 대중에게 다가가는 음악회였다.
이렇게 멋지고 즐거운 음악회는 고대 찬란한 다문화 국가였던 가야, 그중에서도 김해를 중심으로 한 해양왕국 가야의 전통, 박물관을 참된 ‘커뮤니티 문화센터’로 이끄는 의식 있는 윤형원 관장, 포용성의 철학을 갖고 서울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김희준 단장과 어떤 곡이든 수용, 소화하는 권주용 전임지휘자의 덕택이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2025년 특집전 <크리스탈水晶 가야加耶-선과 면, 빛으로 재해석한 가야의 보석>을 5월 20일에 시작하여 7월 31일까지 개최하는 중이다. 변한과 가야에서 사용되던 크리스탈(水晶) 목걸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색의 장신구 224점이 선보여 이제까지 철(鐵)로 상징되던 ‘강인한 가야’를 뛰어넘어 ‘아름다운 가야’의 면모를 새롭게 보여준다.
이번 음악회는 이런 전시회 도중인 7월 11일 밤, 박물관 용광로 광장에서 열려 더욱 의미가 있었다. 관객은 김해 시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늘 그렇듯 윤형원 관장의 역량과 넓은 인맥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박물관문화향연 사업의 일환으로 올해는 ‘박물관 속 춤’이 주제이다. 콘서트 <바다海로 가야加耶> 역시 외국인 여성들로 구성된 무용단 댄스 가르모니아가 비제(G. Bizet)의 <카르멘 서곡(Carmen Overture)>에 맞춰 열정과 바다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춤으로 흥겹게 서막을 열었다. 콘서트는 매 레퍼토리마다 성악과 기악이 서울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 소프라노 이지영이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를 불러 관객들을 한여름 밤의 환상 속으로 인도했다.
‘금 바다’라는 뜻의 지명 김해(金海)와 해양왕국이었던 가야에서 이름 짓게 된 콘서트의 제목 <바다海로 가야加耶>에서 느껴지듯이 이번 음악회는 ‘바다’가 주제가 되었다. 따라서 바다가 소재가 된 가곡들이 수 편 가창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곡 <가고파> 완창을 들을 수 있었음은 뜻밖이었다. <가고파>는 이은상이 1932년에 발표한 시에 1933년 20세의 김동진이 작곡한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으로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가고파>는 본시 10연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 4연까지만 작곡되어 불리어 왔다. 김동진은 1973년 나머지 5연에서 10연까지를 연가곡으로 작곡했다. 하지만 보통 4연까지만 애창되었다.
- 5연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 6연 생략
- 7연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 8, 9연 생략
- 10연 (마지막 연)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깨끗이도 깨끗이
10연까지의 이은상 시가 정지용의 시 <향수>와는 또 다르게 아름다워 모국어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한다. 이 <가고파>의 완창을 김동원 테너의 노래로 들을 수 있었음은 그 밤의 특전이었다. 후반부에 김동원이 부른 <내 가슴에 바다가 있다>도 가슴에 사연을 품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큰 울림을 주었다.
정상급 성악가인 테너 임철호, 소프라노 이명희도 솔리스트로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선율의 국내외 가곡을 불러 감동을 주었다. 소프라노 이명희와 테너 김동원은 실제로 부부이다. 둘은 헝가리 태생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Franz Lehar)가 작곡한 오페레타 <즐거운 과수댁(Die Lustige Witwe, Merry Widow)> 중에서 여주인공 한나(Hanna)와 옛 연인인 다닐로(Danilo)가 재회하여 부르는 유명한 이중창의 왈츠곡 '입술은 침묵하고(Lippen Schweigen)'를 오페라처럼 연기해 가면서 불렀다. 부부인 두 사람의 이중창은 황금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특별 출연한 튀르키예 플루티스트인 셀린 쿠펠리(Selin OYAN KUPELI)는 의외의 두 곡을 연주했다. 아제르바이잔 출신 안드레이 바바예프(A. Babayev)가 작곡해, 역시 아제르바이잔의 전설적인 가수 레쉬드 베흐부도프(R. Behbudov)가 불러 유명해진 과 독일의 크리스토프 글루크(C. W. Gluck)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 2막에 나오는 춤곡인 '춤추는 샹젤리제(Danse des Champs Élisées)'를 연주했다. 그녀는 음악학 박사이면서 튀르키예 자나칼레 온세키즈 마르트(Canakkale Onsekiz Mart) 대학의 음악 및 공연예술학과 현직 조교수이다. 그녀의 플루트 연주는 한여름 밤을 청아하게 했다. 더욱이 연주 의상으로 한복의 치마, 저고리를 입고 나와 친근감을 주었다.
그 밤, 음악회의 특별한 이벤트는 제임스 정이 한국 대중가요, 김목경 작곡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팬플루트로 취주한 애절한 연주였다. 클래식 음악회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중가요의 등장과 팬플루트의 공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팬플루티스트에 하모니시스트이기도 한 그는 이스라엘 민요 <하바 나길라(Havah Nagila)>를 하모니카로 연주해 연이어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렇게 관현악단이 대중가요를 연주할 정도로 서울오케스트라는 열려 있다. 서울오케스트라는 물론 클래식 음악 연주를 바탕으로 하지만 재즈, 발레, 탱고,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을 통해서 ‘관현악단의 대중에게 다가가기’를 시도한다. 2010년에는 한국 전래동요의 편곡을 공모하여 연주할 정도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있다. 또한 입장권 수입의 30%를 문화 소외계층에게 기부할 정도로 자선과 독지의 철학을 실행한다.
한여름 밤인데도 그날따라 맑고, 섭씨 26도의 날씨로 선선해 음악회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용광로광장은 툭 터진 것도 아니고 외벽이 가까이 답답하게 둘러싸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야외 콘서트 장소로는 최적이다. 여기에는 애석한 사연이 서려 있다. 건축가 김수근의 뒤를 이어 1986년부터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가 된 후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설계하며 특히 국립대구박물관, 경기도립박물관 등 한국의 중요 국공립박물관 설계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던 장세양 건축가는 국립김해박물관을 설계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마지막 걸작이 된 국립김해박물관의 1998년 준공을 보지 못하고 과로로 인해, 설계를 마친 1996년 49세의 나이로 갑자기 타계했다. 1947년생이니 살아있었더라면 올해 78세로 아직 건강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고, 자기가 설계한 국립김해박물관의 용광로광장이 이렇게 멋지게 야외 콘서트 장소로 활용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리라.
<바다로 가야> 후속 행사로, 이튿날 전국에서 모인 일행 40여 명은 가곡 <가고파>의 진원지라는 마산 앞바다 돝섬(돼지섬)을 찾았다. 배를 타고 건너간 돝섬에서 우리는 다시 <가고파> 완창을 들을 수 있었다. 윤형원 관장은 본래 테너 성악가다. 그의 친구인 대구남성합창단 멤버 김영규 님 역시 테너다. 또 그날 동행한 우리나라 석탑 연구의 최고 전문가인 전 국립해양유산연구소장 소재구 님도 테너다. 세 테너는 돝섬의 황금돼지 조각상 앞에서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빅 스리 테너(Big Three Tenor) 못지않은 솜씨로 <가고파>를 10연까지 완창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섬이지만 일행은 정상까지 올라갔다. 돝섬에서 건너다보이는 마산의 외진 산에서 권혜경이 부른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의 가사로 되어 있는 가요 <산장의 여인>이 탄생했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산장의 여인>이 부르고 싶어졌다. 자원봉사 안내인에게 <산장의 여인>을 부르겠다고 자청했다. 바다와 섬이 이루는 분위기 때문인지 본시 노래를 잘 부를 줄 모르는 나이지만 의외로 노래가 잘 되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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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공연리뷰] 국립김해박물관 여름 콘서트, '바다海로 가야加耶' - 더프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