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발명한 여러 개의 달력이 있습니다. 음력을 사용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달력이 있고, 유대인의 달력도 있으며, 널리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태양력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1582년에 제정한 ‘그레고리력’입니다.
아마도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방마다 새 달력을 걸어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달력을 들춰보며 금년은 어떤 일들이 있을까 생각해 본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달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달력은 “태초에”라고 부르는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어떤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또한 더 이상 시간이 필요 없게 될 때 그 달력은 끝이 납니다.
라틴어로 ‘랠린더’라는 말은 옛 로마 사회의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돈을 갚아야 할 사람이 갚아야 할 때가 이르렀을 ‘그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재림때 우리 모두가 그 심판대 앞에 서서 우리가 사는 동안에 행한 모든 일을 고해 청산하게 될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달력의 창시자인 고레고리 교황의 이름의 뜻이 “잘 살피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해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을 하나님이 살피고 있다는 의식을 잊지 맙시다.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
(본문:롬2:6-11)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성경의 선포는 우리의 삶에 긴장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사람들은 더욱 방자히 행하게 될 것이고, 악이 미화되는 경향을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외경심을 갖게 하고, 부단히 자기를 돌이켜 보도록 촉구하는 것이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1. 행위대로 갚으시는 하나님(계22:12)
1)드러나는 행위
하나님의 심판에는 철저한 원칙이 있는데, 성경은 이것이 '행위'라고 가르칩니다. 원칙이란 지켜질 때에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법이며,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원칙에 충실한 분이십니다. 일반적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할 때에는 검사의 논고가 먼저 있게 마련입니다. 범법 사실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근거 자료가 제시되지 않으면 그가 설사 범법자라 할지라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죄가 있음에도 무죄로 방면되는 사례들이 더러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그분은 재판하시기 위해 검사의 논고나 근거 자료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그분이 각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땅 끝까지 살피신다고 가르칩니다.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공개적으로 행한 일이든 은밀하게 행한 일이든 각 사람의 행위는 밝히 드러납니다.
2)심은 대로 거움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이라는 잣대로 진행이 되며, 그 유일한 근거는 믿음으로 심은 행위입니다. 아무도 그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땅에 콩을 심으면 틀림없이 콩이 나고, 팥을 심은 곳에서는 팥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이와 같습니다. 악을 뿌리고 거두는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육체를 위해서 뿌린 사람은 썩어진 것을 거둡니다. 아무리 특별한 사람일지라도 거기서 영생을 거두기란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심은 그것을 거두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심은 것인가 숙고해야 합니다. 적당주의라든가 편의주의도 지양해야 합니다. 종자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경작에 임하는 태도도 중시됩니다.
2.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롬3:22)
1)차별 없는 구원
하나님의 행사는 공정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람이 행하는 일들은 떼로 편파적일 수도 있고, 공정성을 결하는 경우들이 태반이나, 하나님의 행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하여 성경은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종이나 피부 색깔, 중교, 이념 등에 차별이 없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그 동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란 말은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함축한 용어입니다. 둘째는 구원의 방법에 차별이 없습니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습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문명인도 야만인도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2)성역 없는 심판
하나님의 공정성은 심판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세계에서는 불의에 가담하고서도 합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들을 가리켜서 흔히 '성역'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의 비호 아래 있는 사람들이 대개 이러한 유형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는 어떤 형태의 성역도 없습니다. 비호를 받는 특별한 집단도 없고, 제거가 요구되는 특별한 대상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기준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심판을 받습니다. 교회에서 중직에 있었다고 면죄부를 갖는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는 심판의 시발점이 오히려 '교회'라고 증거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삶의 기준에 적합한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3.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살전2:4)
1)각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심
세상 법정에서는 사람을 재판할 때 심증만 가지고서는 유죄 판결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물증이 확보되어야 하고 정황 증거가 충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정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물증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증인이나 정황 증거에 대한 보전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그분 자신이 친히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감찰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어떤 요소들이 들어 있는지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밝혀 아십니다. 아무도 그분의 눈을 속이거나 피하여 숨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잠재의식 가운데 숨어 있는 것들조차도 하나님은 세세하게 알고 계십니다.
2)임의로 판단하심
대중 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여론의 위력이 어떠한가를 날마다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특히 여론의 향배에 따라서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분야나 계층의 사람들이 항상 이것을 의식하면서 행동합니다. 심지어는 법정에서 행해지는 재판까지도 여론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여론과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됩니다. 즉 어떤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이나 주장은 참작할 가치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무도 주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아무도 주의 모사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롬11:34). 절대주권으로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그분은 임의로 판단하시고 행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심판은 날이 갈수록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최상의 대비책은 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인데, 성경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그 내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루하루를 신앙적 삶으로 채워 간다면 심판의 날은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술수는 결코 통하지 않는 곳이 주의 법정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존재 목사님 오늘도 함께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