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살이 vs 미국살이
1. 돈은 벌어주지만 곁엔 없기 vs 시간은 내주지만 우리끼리 떠안기
① 시간은 내주지만, 손이 필요할 땐 핵가족 내에서 해결하는 미국
"한국은 가족 중심, 미국은 개인주의"라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시죠?
그런데 미국에서 살다 보면 이 말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미국 사람도 가족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더 눈에 보이게 챙겨요.
아이들 축구 경기, 야구 경기에 부모들이 정말 열심히 갑니다.
세네시만 돼도 "아이 픽업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라는 말도 꽤 들어요.
가족 저녁, 주말 바베큐, 생일 파티,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파티...
가족 사랑이 "오후 4시 축구 경기", "토요일 바비큐" 같은 식으로 캘린더에 행사 일정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어요.
"승진하면 출장이 늘어서 애들 경기를 못 봐요"라며 승진을 미루는 사람, 더 큰 자리를 위해 이사해야 하는데
"가족이 여기 뿌리내려서 안 가겠다"는 사람도 꽤 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서 돈을 덜 버는 선택이 생각보다 흔해서 놀랐어요.
그런데 가족이 감정적으로는 가까운데, 막상 진짜 손이 필요한 순간엔 핵가족 내에서 해결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누가 아플 때, 부모가 늙어갈 때. 한국이라면 가까이 사는 부모형제가 달려와 메워주는 일을
흔하게 보는데, 미국에서는 흔하진 않아요.
베이비시터, 데이케어, 요양 서비스. 형편이 안 되면 그냥 둘이서, 혹은 혼자서 다 짊어져요.
주말 경기엔 그렇게 모이던 가족이, 정작 위기 앞에서는 각자의 집과 각자의 도시로 흩어져 있습니다.
대륙이라서 그런 것도 있나 싶어요.
② 등골 빼서 벌어주지만, 곁엔 있어줄 여유가 없는 한국
한국에서 "가족을 위한다"는 말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가족 구성원이란, 가족과 매일 저녁을 함께 먹는 사람이라기보다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에 더 가까워요.
좋은 직장을 갖고, 돈을 벌고, 부모님을 챙기고, 자녀 교육을 고민하고, 집을 마련하고, 가족이 흔들리지 않도록 버티는 것.
그래서 한국에서는 "가족 때문에 승진을 포기했다"는 말은 가족을 위한 결정으로 안 보일 확률도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승진하고 돈 버는 것 자체가 이미 가족을 위하는 방식이라,
그걸 내려놓는 결정이 오히려 책임을 저버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다 아는 이 선택지의 모순은 가족을 위해 일하다 보면 정작 가족과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거죠.
부모님은 "우리는 괜찮으니 너만 잘되면 된다"고 하고, 자식은 "나중에 더 잘해드려야지" 생각하죠.
배우자 간에도 시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나중"을 위해 지금은 계속 바쁩니다.
가족을 너무 사랑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자꾸 뒤로 밀려요.
사랑은 있는데 자리가 없습니다.
마음은 있는데 시간이 없고요.
2. 운동은 하되 아파도 병원 못 가기 vs 운동은 못 해도 죽을 땐 살려주기
① 운동은 평소 생활인데 병 걸리면 얄짤 없는 미국
미국에 살면서 제일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정말 운동을 많이 한다는 거였어요.
운동이 대단한 새해 결심이 아니라 그냥 생활 안에 들어와 있어요.
게다가 운동하기가 생각보다 부담이 없어요.
플래닛피트니스 같은 프랜차이즈 헬스장은 한 달에 2~3만 원밖에 안 하고,
주말이면 동네 5K 마라톤이나 파크런 같은 행사가 흔하고,
회사에서 헬스장 비용을 일부 대주는 웰니스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축구·야구·수영을 기본으로 하고요.
애슬레저 차림으로 마트에 장 보러 가도 전혀 안 어색할 만큼, 여기선 운동이 패션이자 일상이에요.
(물론 모두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은 지역·계층 차이가 커서 누군가에겐 운동도 시간과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그런데 살다 보면 다른 면이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병원 가는 일이 너무 어렵거든요.
아프다고 그냥 가면 되는 게 아니에요.
보험을 확인하고, 내 보험을 받는 병원인지 보고, 예약을 잡고,
코페이(매번 내는 본인부담금)와 deductible(보험이 보장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먼저 채워 내야 하는
자기부담 한도)을 계산하고, urgent care(예약 없이 가는 즉시진료 클리닉)를 갈지
primary care(평소 다니는 주치의)를 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몸이 아픈데 의사를 볼 수 있을 때까지 행정적인 절차가 너무나 많아요.
특히 전문의를 보려면 보통 주치의를 먼저 만나 의뢰서(referral)를 받아야 하는데,
그 예약부터가 몇 주에서 몇 달 뒤예요. 피부 트러블 하나 보려고 피부과를 잡는데 두 달이 걸리는 식이죠.
응급실은 더 무섭습니다. 한 번 다녀오면 몇백, 심하면 몇천 달러짜리 청구서가 날아오니까요.
그러다 보니 웬만한 건 그냥 버티거나, 약국에서 파는 상비약으로 때우거나, 구글로 자가진단을 하게 됩니다.
② 평소 운동할 틈은 없지만 병 걸리면 살려주는 한국
한국에서는 "일단 병원 가보자"가 가능한 말이죠.
오늘 목이 아프면 오늘 이비인후과에 가고,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갑니다.
동네에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피부과, 약국이 줄줄이 늘어선 풍경은 미국에서 살다 보면 거의 판타지처럼 느껴져요.
몸이 삐걱거리면 일단 갑니다. 검사하고, 약 받고, 주사 맞고, 물리치료 받고, 어떻게든 다시 굴러가게 만들어요.
자동차 정비소 같은 느낌.
대신 평소에 운동할 여유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일하고, 통근하고, 회식하고, 가족 챙기고, 밀린 카톡에 답하고,
겨우 집에 오면 이미 체력이 간당간당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할 삶이 없어요. 헬스장 등록으로 기부한 경험... 다들 있으시죠?
한국에서 운동은 자꾸 "해야 하는 일" 목록에 들어가요. 영어 공부, 건강검진, 재테크 옆에 끼어 있죠.
대신, 내가 골골대고 몸이 점차 늙고 허약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건강보험과 의료시스템이
나를 살려줄 거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습니다!
3. 끈끈하지만 퇴근 없이 살기 vs 칼퇴하지만 주말 없이 살기
① 끈끈하게 챙겨주지만 퇴근을 안 시켜주는 한국
한국 회식은 단순히 "일 끝나고 같이 밥 먹는 자리"라기보다 "일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누가 어디 앉는지, 누가 술을 받는지, 누가 먼저 빠지는지.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다 정보가 됩니다.
"오늘은 편하게 먹자"가 진짜 편하게 먹어도 된다는 뜻인지, "먼저 가도 돼"가 정말 먼저 가도 된다는 뜻인지.
회식 자리엔 메뉴판 말고도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위계가 풀리는 척하다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한국 회식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이 끈끈함이 실제로 사람을 묶어줄 때가 있습니다.
어색하게 시작한 술자리에서 의외로 진짜 속말이 오가고, 평소엔 어렵던 선배가 슬쩍 고민을 들어주고,
"우리 사람"이라는 소속감이 생기기도 해요.
잘 풀린 회식 다음 날엔 회사가 조금 덜 외로워집니다.
② 칼퇴시켜주는 대신 주말에 부르는 미국
미국 회식은 보통 더 짧고, 더 캐쥬얼한 것 같습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은 드물고,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덜합니다.
무엇보다 평일엔 칼퇴가 돼요. 6시면 진짜로 내 시간이 시작됩니다.
happy hour(퇴근 후 한잔), networking lunch(인맥 쌓는 점심), holiday party(연말 파티)가 있긴 하지만,
끝이 정해져 있고 먼저 일어나도 아무도 서운해하지 않아요.
해피아워가 있는 날에는 퇴근 후에 시작되지 않고 보통 일과시간에 포함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평일에 칼퇴한 대가는 주말에 슬그머니 돌아옵니다.
미국에서 사회생활은 늦은 밤이 아니라 주말 낮으로 자리를 옮겨요.
사장님 뒤뜰 바베큐, 동료의 집들이, "캐주얼한" 브런치 모임.
강요되는 자리는 아니지만, 초대장을 받았을 때 안 가기엔 FOMO(소외에 대한 두려움)가 생기기 쉬운 환경입니다.
그런데 가더라도 청바지 입고 맥주 한 캔 들고 웃고 있지만, 사실 거기서도 나는 계속 일하는 중입니다.
누구 옆에 서야 하는지, 어디까지 농담해도 되는지, 사장님 아이 이름은 기억하고 있는지.
복장만 편해졌을 뿐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예요.
사회생활이 다 그렇죠...! 나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하는 일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질문도 던지고, 대화가 죽지 않게 살려야 합니다.
한쪽은 술잔을 들고, 다른 쪽은 바베큐 집게를 들고 있을 뿐, 둘 다 사회생활은...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