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딩화면에 종종 등장하시는 로마 카탁느님ㅋㅋ
EB와는 참 다르게 =ㅅ= 서렉텀에선 로마로 빅토리 할 때쯤엔 모자라는 병종이 없더군요 슬슬 소아시아에서 중기마궁병 나오기 시작하는데 참 카탁은 언제 나올지 기대됩니다 ㅋㅋ.
Ala I Gallorvm et Pannoniorvm Catafractata
정복된 페르시아와 소아시아를 다스린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23년 서거하자 대왕의 왕국을 계승한 국가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제국은 캐터프랙트를 널리 받아들였다. 셀레우코스로부터 페르시아에 대한 지배권을 뺐어낸 파르티아도 전장에서 그들의 캐터프랙트에 대한 의존도가 궁기병에 못지 않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동쪽의 헬레닉 국가들과의 빈번한 전투에서 캐터프랙트의 존재를 알게 됐다. 로마군과 캐터프랙트간의 초기 몇몇 전투에서 캐터프랙트는 기원전 189년과 69년 Magnesia전투와 Lucullus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하며 로마 보병에게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원전 38년 유능한 로마장군 Publius Ventidius는 뛰어난 투석병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언덕위로 몰아쳐오는 파르티아 캐터프랙트를 물리쳤으며 파르티아 인들이 카르헤 전투(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파르티아에서 박살난 전투) 이후로 점거하고 있던 모든 로마 영토에서 후퇴하도록 만들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제위 시절 그리스 지리학자 Strabo는 캐터프랙트를 전형적인 아르메니아, 알바니아, 미디아 군대의 일종으로 여겼지만 Plutarch에 따르면 그들은 경기병이나 규율잡힌 보병대를 상대 할 때의 미미한 전술적 능력으로 인해 (로마인들에게)다소 낮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부 전선에서 계속되는 캐터프랙트와의 접촉과 다뉴브 전선에서 커져가는 사르마티아 창기병의 군사적 위협은 로마군이 점진적으로 캐터프랙트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로마군은 기원전 2세기 초부터 중기병을 사용했지만 로마 제국이 캐터프랙트가 실전에 배치하고 투입시켰다고 기록된 첫 사례는 기원후 2세기의 일이다. 로마군의 캐터프랙트의 도입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명백히 갈리에누스 황제다.(Gallorvm은 갈리에누스 황제의 약칭) 황제는 북부 전선과 동부 전선에서의 동시다발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동성이 뛰어난 부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272년 완벽하게 경기병으로 구선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군대는 계속해서 커져 가는 전장에서의 기동성의 중요성을 증명하며 Immae 전투에서 제노비아의 팔미라군을 패배시켰다.
이런 캐터프랙트와의 끊임없는 교전 때문에 4세기에 로마 제국은 Sarmatian Auxiliaries(사르마티아 보조병)같은 많은 수의 캐터프랙트 용병을 고용했다. 로마 제국은 제국군 캐터프랙트와 용병 캐터프랙트를 소아시아부터 브리타니아까지 제국 도처에 배치했고 2세기 브리타니아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에 의해 5500기의 사르마티아 캐터프랙트가 파견대가 파견돼있었다.
첫댓글 더러운 로마 카탁...!!
로마 유저로서는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