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참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욥기 3:20~21) 아멘! 이는 욥이 고난 가운데 하는 말입니다. 그는 차라리 자기가 나지 않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죽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마치 땅에 숨겨진 보배를 찾는 것보다 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욥이 이렇게 힘들었구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욥의 고난을 말로만, 머리로만 알았는데 조금이나마 그가 얼마나 괴로웠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함부로 판단합니다. 안다고 하면서도 위로가 아니라 상처를 줍니다. 욥의 세 친구처럼 말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재앙이 욥에게 내렸다는 것을 듣고 위문하고 위로하려고 찾아옵니다. 그리고 멀리서 욥을 보고 소리 질러 울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립니다. 왜냐하면 욥인 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욥의 모습이 처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아 있으면서 한마디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욥의 말을 듣고 그들은 욥을 정죄합니다.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며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로의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롭게 살았고 아직까지도 믿음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욥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위로가 이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위로한답시고 더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힘든 사람들의 아픔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가능하면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용히 곁에서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을 한다면 조심스럽게 그리고 세심하게 말을 하며 그들의 근심을 풀어주며 힘을 주어야겠습니다. 상처 입은 자에게, 고난 가운데 있는 자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는, 그리고 조용히 함께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