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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慧明華
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3.06.11. AM9시)
입법계품(入法界品)4
해탈장자(解脫長子) 1
모두들 반갑습니다. 오늘은 예정 없이, 늘 요즘에 아프고 나서는 모든 것을 예정 없이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마침 일요일이라서 도수치료도 없습니다.
도수치료를 받는 날은 두 시간 받고 한 시간 쉬어야 되고 세 시간을 아주 힘들게 지내기 때문에, 욕심은 나는데 엄두가 나지를 않아서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또 어떻게 할지는 모르는데 아무튼 여러분들이 기다렸다가 동참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우리가 화엄경과 이렇게 인연을 함께 한다고 하는 이 사실이 너무너무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제가 지금도 치료를 많이 받고, 지금 몸은 정상과 비교해 보면 한 20프로 정도 될까 말까, 내 스스로 느끼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고 음성도 마음에 안 들고 여러 가지 상황이 안 좋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우리는 화엄경 공부하면서 살아야 그것이 꿈이고 희망이고 보람이고, 그 인연 그 공덕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특히 저 같은 경우는 화엄경 공덕으로 이 정도라도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한시라도 잊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할 수 있으면 해야 됩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도수치료가 없어서 이렇게 마음놓고 시작을 했습니다.
또 시원찮은 음성이지만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
(오신 분들의 이름을 더 부르심)
김여래성님 예 ‘큰스님 목소리 좋습니다’ 뭘요.
‘비도 오고 좋습니다’
비도 오고 그래서 아침 운동도 못 나갔습니다.
핑계 댈 거리는 많아요. 그렇습니다.
*
주저리 주저리는 그쯤하고 오늘은 화엄경 63권 입법계품 4,
페이지 수는 47쪽 할 차례입니다.
6. 해탈장자(解脫長子)
선재동자가 해탈장자를 친견하는 내용입니다.
제5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선지식
1) 가르침을 의지하여 다음 선지식을 찾다
(1) 모든 보살의 갖가지 법의 문을 생각하다
모든 보살의 갖가지 법의 문을 생각하다.
이시(爾時)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사유제보살무애해다라니광명장엄문(思惟諸菩薩無礙解陀羅尼光明莊嚴門)하며 심입제보살어언해문(深入諸菩薩語言海門)하며 억념제보살지일체중생미세방편문(憶念諸菩薩知一切衆生微細方便門)하며
이때에 선재동자는 모든 보살들의 걸림 없는 지혜다라니의 광명으로 장엄한 문을 생각하며, 모든 보살들의 말씀 바다 문에 깊이 들어갔으며, 모든 보살들이 일체 중생을 아는 미세한 방편문을 기억하며,
관찰제보살청정심문(觀察諸菩薩淸淨心門)하며 성취제보살선근광명문(成就諸菩薩善根光明門)하며 정치제보살교화중생문(淨治諸菩薩敎化衆生門)하며 명리제보살섭중생지문(明利諸菩薩攝衆生智門)하며
모든 보살들의 청정한 마음의 문을 관찰하며, 모든 보살들의 착한 뿌리의 광명문을 성취하며, 모든 보살들의 중생을 교화하는 문을 깨끗이 다스리며, 모든 보살들의 중생을 거둬주는 지혜의 문을 밝히며,
견고제보살광대지락문(堅固諸菩薩廣大志樂門)하며 주지제보살수승지락문(住持諸菩薩殊勝志樂門)하며 정치제보살종종신해문(淨治諸菩薩種種信解門)하며 사유제보살무량선심문(思惟諸菩薩無量善心門)하니라
모든 보살들의 광대하게 좋아하는 문을 견고히 하며, 모든 보살들의 훌륭하게 좋아하는 문에 머물러 지니며, 모든 보살들의 가지가지 믿고 이해하는 문을 깨끗이 다스리며, 모든 보살들의 한량없는 착한 마음의 문을 생각하였습니다.
선재동자는 이러한 보살들이 갖추어야 할 경계들, 문들 그런 것을 생각했다.
(2) 수행의 이익을 드러내다
서원견고(誓願堅固)하야 심무피염(心無疲厭)하며 이제갑주(以諸甲冑)로 이자장엄(而自莊嚴)하며 정진심심(精進深心)이 불가퇴전(不可退轉)하며 구불괴신(具不壞信)하야
서원이 견고하여 고달픈 마음이 없으며, 모든 갑주로 스스로 장엄하며, 정진하는 깊은 마음은 퇴전할 수 없으며, 깨뜨릴 수 없는 신심을 갖추었습니다.
서원이 견고하여 고달픈 마음이 없으며
서원이 견고하여 고달픈 마음이 없으며, 아, 이것은 정말 저보고 하는 말씀입니다. 서원이 견고하다면 뭐 피곤하다 아프다 어렵다 그런 핑계가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그것은 서원이 견고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서원이 견고하여 고달픈 마음이 없으며
모든 갑주로 스스로 장엄하며
갑주(甲冑)라고 하는 것은 전쟁터에 나아갈 때 옛날 장군들이 입는 옷들입니다. 화살을 맞아도 화살이 뚫고 들어가지 않고 예를 들어서 심지어 총알을 맞아도 총알이 뚫고 들어가지 않는 옷들이죠. 그러한 것으로써 스스로 장엄하여
정진하는 깊은 마음은 퇴전할 수 없으며
정진하는 깊은 마음은 퇴전할 수 없으며, 모든 갑옷으로 스스로 장엄하였다, 그래야죠. 정진하는 깊은 마음은 퇴전할 수 없다.
깨뜨릴 수 없는 신심을 갖추었습니다
기심견고(其心堅固)가 유여금강(猶如金剛)과 급나라연(及那羅延)하야 무능괴자(無能壞者)하며 수지일체선지식교(守持一切善知識敎)하야 어제경계(於諸境界)에 득불괴지(得不壞智)하며
마음이 견고하기가 마치 금강이나 나라연(那羅延)과 같아서 파괴할 이가 없으며, 일체 선지식의 가르침을 지니어 모든 경계에서 깨뜨릴 수 없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일체 선지식의 가르침을 지니어 모든 경계에서 깨뜨릴 수 없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보문청정(普門淸淨)하야 소행무애(所行無礙)하며 지광원만(智光圓滿)하야 보조일체(普照一切)하며 구족제지(具足諸地)의 총지광명(總持光明)하며 요지법계(了知法界)의 종종차별(種種差別)하며 무의무주(無依無住)하야 평등무이(平等無二)하며
넓은 문이 청정하여 행하는 데 걸림이 없으며, 지혜의 광명이 원만하여 모든 것을 두루 비추며, 모든 지위의 모두 지니는 광명[總持光明]을 구족하여 법계의 갖가지 차별을 알며, 의지함도 없고 머무름도 없어서 평등하여 둘이 없었습니다.
자성청정(自性淸淨)하야 이보장엄(而普莊嚴)하며 어제소행(於諸所行)에 개득구경(皆得究竟)하며 지혜청정(智慧淸淨)하야 이제집착(離諸執着)하며
자기의 성품이 청정하여 두루 장엄하고 모든 행하는 바가 끝까지 이르렀으며, 지혜가 청정하여 모든 집착을 여의었습니다.
지혜가 청정하여 모든 집착을 여의었습니다.
그래요, 지혜가 뛰어나다면 무엇에 집착하겠습니까?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할 까닭이 없지요.
지시방차별법(知十方差別法)하야 지무장애(智無障礙)하며 왕시방차별처(往十方差別處)호대 신불피해(身不疲懈)하며 어시방차별업(於十方差別業)에 개득명료(皆得明了)하며 어시방차별불(於十方差別佛)에 무불현견(無不現見)하며 어시방차별시(於十方差別時)에 실득심입(悉得深入)하며
시방의 차별한 법을 알아 지혜가 걸림이 없으며, 시방의 차별한 곳에 가되 몸이 고달프지 않으며, 시방의 차별한 곳에 가되 몸이 고달프지 않으며, 시방의 차별한 업을 다 분명히 알며, 시방의 차별한 부처님을 모두 다 환히 보며, 시방의 차별한 시간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청정묘법(淸淨妙法)이 충만기심(充滿其心)하며 보지삼매(普智三昧)로 명조기심(明照其心)하며 심항보입평등경계(心恒普入平等境界)하며
청정한 묘한 법이 마음에 가득 차고, 넓은 지혜의 삼매가 마음을 밝게 비추며, 마음이 평등한 경계에 항상 널리 들어갔습니다.
여래지혜지소조촉(如來智慧之所照觸)하며 일체지류(一切智流)가 상속부단(相續不斷)하며 약신약심(若身若心)이 불리불법(不離佛法)하며
여래 지혜의 비추는 바이며, 일체 지혜의 흐름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며, 몸과 마음이 불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불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약신약심(若身若心)이 불리불법(不離佛法)이라, 약신약심이 불리불법이라. 몸도 마음도 불법을 떠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불법을 떠난 적이 없다.
일체제불(一切諸佛)의 신력소가(神力所加)며 일체여래(一切如來)의 광명소조(光明所照)며 성취대원(成就大願)하야 원신(願身)이 주변일체찰망(周徧一切刹網)하며 일체법계(一切法界)가보입기신(普入其身)하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 가피(加被)하고, 일체 여래의 광명으로 비추어서 큰 서원을 성취하고, 서원의 몸이 모든 세계에 두루 하며, 일체 법계가 다 그 몸에 널리 들어갔습니다.
*
예, 미스 박님 ‘주말에도 화엄경공부 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영산월님, 대광화님, 보리수님, 여하늘바람님 ‘큰스님 힘있는 강의 근사합니다’ 무량화님,
미국 시애틀에서 ‘토요일입니다 시애틀에는 토요일입니다’
아, 시애틀 우리 도반 일면스님이 서미사 절을 그렇게 크게, 어려운 여건에도 그렇게 크게 잘 지어놓고 포교를 잘하셨는데 열반에 드셨다고 했습니다. 경진생인가 그렇죠.
그 스님도 경진생이라, 연세가 꽤 든 연령입니다. 그래요. 참 좋은 스님인데.
만월심조옥선님 無相行님 영산월님 법화심님 이영숙님 공덕행님 진공안님 이런 등등이 일요일날 아침에 이렇게 화엄회상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합장하시고) 사람이 우선이고 사람이 제일 반갑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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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 가피하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 가피하고
일체여래의 광명으로 비추어서 큰 서원을 성취하고, 서원의 몸이 모든 세계에 두루 하며,
서원의 몸이 모든 세계에 두루 성취하며
일체법계가 다 그 몸에 널리 들어갔습니다.
2) 해탈장자를 친견하고 법을 묻다
(1) 선지식을 친견하여 이익을 얻다
점차유행십유이년(漸次遊行十有二年)에 지주림성(至住林城)하야 주변추구해탈장자(周徧推求解脫長者)라가 기득견이(旣得見已)에 오체투지(五體投地)하며 기립합장(起立合掌)하고 백언(白言)호대
점점 걸어서 12년 동안을 다니다가 주림성(住林城)에 이르러 해탈장자를 두루 찾았습니다. 이미 장자를 친견하고 나서 오체를 땅에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서 합장하고 말하였습니다.
오체투지(五體投地)하고 기립합장(起立合掌)하고 백언(白言)
절하였습니다.
해탈(解脫)장자를 찾아오는 데는 12년이나 걸렸다.
그래요. 우리는 불법을 만난 지 얼마만에 화엄경을 만났습니까? 이 훌륭한 화엄경을 과연 얼마만에 만났습니까?
어떤 이들은 몇십 년 걸렸을 수 있고 어떤 이들은 1년도 채 안 돼서 화엄경을 만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삼년 만에 만났을 수도 그런 것은 각각 다 인연이 다릅니다.
그것을 시절인연이라고 그래요, 절에서는.
불교에서는 그것을 시절인연이라.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불교에서 쓰는 말인데 너무너무 근사하고 아주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때도 인연이 있어요, 시절인연(時節因緣)
그걸 시절인연이라.
그래서 옛날에는 화엄경, 화엄경 들었어도 시절인연이 안되면 화엄경에 귀가 기울여지지 않고 눈이 열려지지 않았는데 또 오랜 세월이 지나니까 어느 날은 화엄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화엄경이 이 세상에 제일 좋은 가르침이다’ 라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하고도 그렇지만 사람하고도 그래요.
사람하고의 인연도 그렇고 절하고의 인연도 그렇고 불교하고의 인연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다 때가 있습니다.
자연을 봐도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봄에 일찍이 잎이 피는 것도 있고, 여름이 가까우면 잎이 피고 싹이 나는 것도 있고, 가을이 되면 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도 있고 모든 게 다 시절 인연이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요 우리가 그걸 알아가지고 너무 조급하게 욕심낼 것은 아니다, 치료하는 것도 그래요.
치료하는 것도 나는 좀 욕심이 나서 빨리했으면 좋겠는데 ‘아유 진도가 참 빠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아요.
나는 또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게 또 시절인연이 있는데, 제가 시절인연을 말하면서도 그 시절인연에 대해서 내 개인의 욕심을 개입시키는가 봅니다. 그래요, 그거는 고쳐야 할 일이지요.
성자(聖者)여 아금득여선지식회(我今得與善知識會)가 시아획득광대선리(是我獲得廣大善利)니 하이고(何以故)오 선지식자(善知識者)는 난가득견(難可得見)이며 난가득문(難可得聞)이며난가출현(難可出現)이며 난득봉사(難得奉事)며 난득친근(難得親近)이며 난득승접(難得承接)이며 난가봉치(難可逢値)며 난득공거(難得共居)며 난영희열(難令喜悅)이며 난득수축(難得隨逐)이어늘 아금희우(我今會遇)하니 위득선리(爲得善利)로소이다
“거룩하신 이여, 제가 이제 선지식과 한데 모였으니 이것은 제가 광대하고 훌륭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식은 보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렵고, 나타나기도 어렵고, 받들어 섬기기도 어렵고, 가까이 모시기도 어렵고, 대하여 뵙기도 어렵고, 만나기도 어렵고, 함께 있기도 어렵고, 기쁘게 하기도 어렵고, 따라다니기도 어려운데, 저는 이제 만났사오니 이것이 훌륭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해탈장자를 찾는 데만 12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선재동자가 토로하는 심정을 이야기한다.
거룩하신 이여, 제가 이제 선지식과 한데 모였으니 이것은 제가 광대하고 훌륭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선지식을 만난 것이 광대하고 훌륭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도 그걸 느껴야 됩니다.
왜냐하면 선지식은 보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렵고, 나타나기도 어렵고, 받들어 섬기기도 어렵고, 가까이 모시기도 어렵고
화엄경을 우리가 늘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데, 자꾸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하다 보면 아이구 화엄경이 이렇게 큰 보물이고 큰 보물이라는 것이 나에게 가까이 있고, 어쩌면내 주머니 안에 있고, 내 이웃에 있고,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고, 또 이렇게 화엄경을 공부하는 도반들이 있고, 스님을 위시해서 도반들이 함께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래서 거기서 조금 마음을 좀 더 쓰자면 도반들을 자꾸 많이 만드는 것, 그것 참 좋은 보시입니다. 큰 보시예요.
법보시에 해당되는데 이런 화엄경과의 인연을 맺어주는 것, 어디 법회있다면 차도 태워다 주고 점심도 사주고 커피도 대접하고 아주 친절하게 한 1년간 공을 들이세요.
1년간 공을 들여서 화엄경에 푹 빠지도록 한다면 큰 소득입니다.
도반들에게 친척들에게 형제자매에게 1년간 공을 들여서 화엄경에 눈을 뜨게 하고 화엄경에 푹 빠지게 한다. 그래서 만약에 나보다 화엄경을 더 좋아한다, 더 깊이 이해한다, 오히려 무비스님보다도 화엄경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이쯤 되면 그 공덕이 얼마겠습니까?
그런 노력을 하자는 말씀을 간혹 드리죠.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지만 그런 욕심은, 화엄경을 널리 펴자고 하는 욕심은 있어야 됩니다. 우리 불자들이 그거 있어야 돼요.
부처님도 당신이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만중생들에게 널리 펴고자 하는 전법활동, 그것 또한 욕심이라면 욕심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 원력이라면 원력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그 점이 조금 소홀하고 부족한 점이 있어요. 아 참 ‘듣기도 어렵고, 나타나기도 어렵고 받들어 섬기기도 어렵고, 가까이 모시기도 어렵고, 대하여 뵙기도 어렵고, 만나기도 어렵고, 함께 있기도 어렵고, 기쁘게 하기도 어렵고,따라 다니기도 어려운데, 저는 이제 만났사오니 이것이 훌륭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이 내용이 좋아서 강설에도 거듭 또 한 번 더 써 놨네요.
거룩하신 이여, 제가 이제 선지식과 한데 모였으니 이것은 제가 광대하고 훌륭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광대하고 훌륭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화엄경이 광대하고 훌륭한 이익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느끼고 알고 평소에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고, 큰 이익이라면 여러 사람에게 나누고 형제자매에게 나누고 가족들에게 나누고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래 여러 사람에게 나눠줌으로써 그것이 여러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이익이 되는 줄로, 그렇게 느껴져야 되는데 그렇습니다.
다른 것 예를 들어서 어떤 백화점에 가니까 새 물건이 나왔더라, 그래서 눈이 번쩍 뜨여서 뭘 하나 샀다, 카드를 몇 십만원짜리 몇 백만원짜리 긁었다, 그래가지고 돌아가가지고 자기도 좋아하지만 친구들에게 아니면 자기 형제자매들에게 자랑한다, 자랑해서 데리고 와가지고 그 물건을 사게도 한다,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몸에 걸치고 내 입에 넣는 음식들은 우리가 그렇게 아주 열심히 행동에 옮깁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고 크게 마음에 썩 와닿지도 않는 이런 법을 가지고, 화엄경의 가르침을 가지고 ‘아 이것은 친견하기도 어렵다, 이름을 듣기도 어렵다, 세상에 나타나기도 어렵다, 받들어 섬기기도 어렵다, 가까이 모시기도 어렵다, 마주 대하여 뵙기도 어렵다, 만나기도 어렵다, 함께 있기도 어렵다, 기쁘게 하기도 어렵다’ 이런 마음을 낼 수 있다면 대단한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그런 과제가 당장에 안된다고 해서 실망할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일단은 내 혼자만이라도 열심히 좋아하고 또 읽고 두 번 읽으면 또 뜻이 달리 와닿아요. 세 번 읽으면 또 뜻이 달리 와닿고, 네 번 읽으면 뜻이 달리 와닿고, 성인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습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언제나 한 가지로만 그렇게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2) 보리심을 발한 까닭을 밝히다
성자(聖者)여 아이선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호니 위욕사일체불고(爲欲事一切佛故)며 위욕치일체불고(爲欲値一切佛故)며 위욕견일체불고(爲欲見一切佛故)며 위욕관일체불고(爲欲觀一切佛故)며 위욕지일체불고(爲欲知一切佛故)며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먼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부처님을 섬기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을 만나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을 관찰하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을 알기 위함입니다.”
보리심, 불심을 내었다. 왜 내었느냐?
모든 부처님을 섬기기 위하고, 모든 부처님을 만나기 위하고,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하고, 부처님을 관찰하기 위하고, 알기 위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위욕증일체불평등고(爲欲證一切佛平等故)며 위욕발일체불대원고(爲欲發一切佛大願故)며 위욕만일체불대원고(爲欲滿一切佛大願故)며 위욕구일체불지광고(爲欲具一切佛智光故)며 위욕성일체불중행고(爲欲成一切佛衆行故)며
“모든 부처님의 평등함을 증득하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큰 서원을 내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큰 서원을 만족하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빛을 갖추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여러 가지 행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위욕득일체불신통고(爲欲得一切佛神通故)며 위욕구일체불제력고(爲欲具一切佛諸力故)며 위욕획득일체불무외고(爲欲獲一切佛無畏故)며
“모든 부처님의 신통을 얻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여러 힘을 갖추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위욕문일체불법고(爲欲聞一切佛法故)며 위욕수일체불법고(爲欲受一切佛法故)며 위욕지일체불법고(爲欲持一切佛法故)며 위욕해일체불법고(爲欲解一切佛法故)며 위욕호일체불법고(爲欲護一切佛法故)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듣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받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지니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기 위함이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그 까닭을 전부 이렇게 나열해 놓았죠.
위욕여일체제보살중(爲欲與一切諸菩薩衆)으로 동일체고(同一體故)며 위욕여일체보살선근(爲欲與一切菩薩善根)으로 등무이고(等無異故)며 위욕원만일체보살바라밀고(爲欲圓滿一切菩薩波羅蜜故)며
“일체 모든 보살 대중과 같은 몸이 되기 위함이며, 모든 보살의 착한 뿌리와 평등하여 다름이 없기 위함이며, 모든 보살의 바라밀다를 원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위욕성취일체보살소수행고(爲欲成就一切菩薩所修行故)며 위욕출생일체보살청정원고(爲欲出生一切菩薩淸淨願故)며 위욕득일체제불보살위신장고(爲欲得一切諸佛菩薩威神藏故)며 위욕득일체보살법장무진지혜대광명고(爲欲得一切菩薩法藏無盡智慧大光明故)며
“모든 보살의 수행을 성취하기 위함이며, 모든 보살의 청정한 서원을 내기 위함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위신(威神)의 장(藏)을 얻기 위함이며, 모든 보살의 법장의 끝없는 지혜와 큰 광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위욕득일체보살삼매광대장고(爲欲得一切菩薩三昧廣大藏故)며위욕성취일체보살무량무수신통장고(爲欲成就一切菩薩無量無數神通藏故)며 위욕이대비장(爲欲以大悲藏)으로 교화조복일체중생(敎化調伏一切衆生)하야 개령구경도변제고(皆令究竟到邊際故)며
“모든 보살의 삼매인 광대한 곳집을 얻기 위함이며, 모든 보살의 한량없고 수없는 신통의 곳집을 성취하기 위함이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곳집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해서모두 구경에 저 경지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위욕현현신변장고(爲欲顯現神變藏故)며 위어일체자재장중(爲於一切自在藏中)에 실이자심(悉以自心)으로 득자재고(得自在故)며 위욕입어청정장중(爲欲入於淸淨藏中)하야 이일체상(以一切相)으로 이장엄고(而莊嚴故)니
“신통변화의 곳집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모든 자유자재한 곳집에서 자기의 마음으로 자재함을 얻기 위함이며, 청정한 곳집 속에 들어가서 온갖 모습으로 장엄하기 위함입니다.”
이 장(藏)자, 냉장고, 창고 할 때의 장(藏)자가 화엄경에는 자주 등장을 하는데, 아주 마음에 쏙 들어오는 적절한 번역이 없어요.
누가 아주 좋은 번역이 있으면 좀 소개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장(藏)자 감출 장(藏)자 새겨져 있다, 어떤 데는 무늬가 나무에 새겨져 있는 것 그것도 장자입니다.
연꽃을 판자에 새겼다 그러면 그것도 장(藏)자예요. 연꽃이 판자에 감춰져 있다. 스며있다, 그런 의미도 되고, 물론 냉장고나 창고같이 되어서 그 속에 온갖 보물이 가득히 있는 경우 그것도 훌륭한 장자의 해석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뜻을 우리가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서 읽어야 되겠죠.
신통변화의 곳집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모든 자유자재한 곳집
여기는 곳집이라고 했습니다. 곳집 장자이기도 하니까요. 창고 장(藏) 곳집 장
자기의 마음으로 자재함을 얻기 위함이며, 청정한 곳집 속에 들어가서 온갖 모습으로 장엄하기 위함입니다.
성자(聖者)여 아금이여시심(我今以如是心)과 여시의(如是意)와여시락(如是樂)과 여시욕(如是欲)과 여시희구(如是希求)와 여시사유(如是思惟)와 여시존중(如是尊重)과 여시방편(如是方便)과 여시구경(如是究竟)과 여시겸하(如是謙下)로 지성자소(至聖者所)호이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제 이와 같은 마음과 이와 같은 뜻과, 이와 같은 즐거움과, 이와 같은 욕망과, 이와 같은 희망과, 이와 같은 사유와, 이와 같은 존중과, 이와 같은 방편과, 이와 같은 구경과, 이와 같은 겸양으로 거룩하신 이의 계신 곳에 왔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이렇게 해탈장자에게 토로합니다.
(3) 해탈장자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법을 묻다
아문성자(我聞聖者)는 선능유희제보살중(善能誘誨諸菩薩衆)하사 능이방편(能以方便)으로 천명소득(闡明所得)하사 시기도로(示其道路)와 여기진량(與其津梁)하며 수기법문(授其法門)하사영제미도장(令除迷倒障)하며
“제가 들으니 거룩하신 이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가르치시어 능히 방편으로써 얻은 바를 열어 밝히며, 그 길을 보이며, 그 나루터를 일러 주며, 그 법문을 주어 미혹한 장애를 제거하게 하고,
발유예전(拔猶豫箭)하고 절의혹망(截疑惑網)하며 조심조림(照心稠林)하고 완심구탁(浣心垢濁)하며 영심결백(令心潔白)하고사심청정(使心淸淨)하며 정심첨곡(正心諂曲)하고 절심생사(絶心生死)하며 지심불선(止心不善)하고 해심집착(解心執着)하며
남아 있는 화살을 뽑고, 의혹의 그물을 찢고, 마음의 빽빽한 숲을 비추고, 마음의 때를 씻어서 마음을 결백하게 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마음의 굽은 것을 바로하고, 마음의 생사를 끊고, 마음의 착하지 못함을 멈추고, 마음의 집착을 풀고,
어집착처(於執着處)에 영심해탈(令心解脫)하고 어염애처(於染愛處)에 사심동전(使心動轉)하며 영기속입일체지경(令其速入一切智境)하고 사기질도무상법성(使其疾到無上法城)하며 영주대비(令住大悲)하고 영주대자(令住大慈)하며
집착한 마음을 해탈케 하고, 물들고 애착하는 곳에서 마음을 돌리게 하고, 일체 지혜의 경계에 빨리 들어가게 하고, 위없는 법성(法城)에 빨리 이르게 하고, 크게 가엾이 여김에 머물게 하고, 크게 인자함에 머물게 하고,
영입보살행(令入菩薩行)하고 영수삼매문(令修三昧門)하며 영입증위(令入證位)하고 영관법성(令觀法性)하며 영증장력(令增長力)하고 영수습행(令修習行)하야 보어일체(普於一切)에 기심평등(其心平等)이라하니
보살의 행에 들어가게 하고, 삼매의 문을 수행하게 하고, 증득하는 지위에 들게 하고, 법의 성품을 보게 하고, 힘을 증장케 하고, 행을 익히게 하여 널리 온갖 것에 마음을 평등하게 하신다 하였습니다.
유원성자(唯願聖者)는 위아선설(爲我宣說)하소서 보살(菩薩)이 운하학보살행(云何學菩薩行)하며 수보살도(修菩薩道)하야 수소수습(隨所修習)하야 질득청정(疾得淸淨)하며 질득명료(疾得明了)리잇고
오직 원하옵건대 거룩하신 이여, 저를 위해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으며, 닦아 익힌 것이 따라서 빨리 청정하여지며, 빨리 분명하여지는 것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라고 이렇게 해탈장자를 친견하고는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스스로 해탈장자라고 하는 선지식을 찾아온 까닭을 밝히고 또 필요한 질문을 하고, 또 적절하게 대답해 주시기 위해서 ‘내가 그동안 공부한 것이 이런 내용들입니다’ 라고 하는 그런 것까지도 다 이야기를 하게 되죠.
모처럼 한 일주일도 채 안 된 날짜지만 너무 또 오래 쉰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 흐뭇하고 다음시간까지 이 내용이 늘 뇌리에 맴돌고, 또 여러분들도 ‘함께 하는 이들이 또 같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77명이 실시간으로 이렇게 동참하셨고 조회수는 110명이나 되고 그렇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신 분들 한 번 또 살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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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화님? 아유 저기 망월사에 다니는 다보화보살님 맞지요?
많이 선전해서 염화실 유튜브 방송에 들어와서 늘 조회를 하면 언제든지 그동안 우리 공부한 것이 다 뜨니까요. 언제든지 뜨고 항상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해서 나에게 큰 복을 짓는 일이 됩니다.
아 이걸 이 화엄경 같은 이런 법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면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이 되겠습니까?
그런 이치를 알아야 되고 그게 이해가 되어져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강좌를 열어서 또 문득 이렇게 핸드폰만 열면, 컴퓨터만 열면, 이렇게 서로 마주할 수 있고 우리 반가사유상 얼마나 근사합니까?
제가 이 반가사유상을 보급한다기에 얼른 신청했습니다.
똑같은 크기의 구리로 입힌 반가사유상도 같이 모셨습니다.
옆에 계시죠.
제가 불상 좋아하는 것은 옛날부터 익히 해오던 일입니다.
이런 불상 모습 한 번 보는 것만 해도 근사하잖아요
그리고 뒤에 죽림은 죽림정사가 인도에서 최초의 사찰 아닙니까? 그래서 죽림을 의미해서 대나무 숲을 실사를 해서 이렇게 배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간단하게 했는데도 해놓고 나니까 아주 근사해요.
보면은 죽림정사에 반가사유상이 계시고, 또 제가 있고, 거기서 화엄경이 흘러나오고, 여러분들 안부도 서로 나누기도 하고, 그런 경관이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하고 환희롭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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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