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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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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찰 스크랩 고불산의 대불(大佛) 공주 성곡사(2/2)
현림 추천 0 조회 308 14.11.30 22:18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고불산의 대불(大佛) 공주 성곡사(2/2)

@고불산 성곡사는 지형(地形) 지세(地勢)를 잘 이용하여 많은 대불(大佛)을 조성해 놓은 것이 특색이다.

사실 어느 왠만한 큰 사찰이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대불을 조성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참으로 이런 대불사를 완공하신 관묵스님의 서원에 절로 감탄을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큰 대불을 조성해 놓고도 이를 알려 줄만한 안내 책자 하나 없는 것이 아쉽다.

더구나 관리도 그렇지만 이 큰 부지에 일주문이나 해탈문 등과 같은 일체의 문루(門樓)를 왜 세우지 않았는지 궁금증이 남는다.

아마도 먼 훗날을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고자 비장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천불전을 내려와 이제 미륵불과 와불(臥佛)쪽으로 향했다.

 

 

 

 

 

 

 

 

 

 

 

성곡사 천불전 앞 요사체에 세운 포대화상

 

 

 

 천불전을 내려오면서 바라 본 운무 속의 미륵

 

 

와불과 미륵불

 

 

 

 

 

와불(臥佛)은 부처의 열반상(涅槃相)이다.

열반상이라 함은 화신불(化身佛)의 八相의 하나로 세존이 입멸(入滅)하는 相이다.

佛께서 80년간 중생을 교화하고 화연(化緣)이 이미 진(盡)하여 중천축국(中天竺國)의 구시나성(拘尸那城)

발제하변(跋提河邊)에서 一日一夜를 대열반경을 설하여 마치고 머리는 北으로 얼굴은 西족으로 향하고

우협(右脇)으로 누어 역순(逆順)으로 4공정(四空定)과 멸진정(滅盡定)에 들었으며

또한 제선정(諸禪定)을 초월하여 마침내 제4선정(第四禪定)에서 입멸(入滅)하니

때는 2월15일 중야(中夜)였다.

이때에 사변(四邊)의 쌍수(雙樹)가 흰 꽃을 피어 백학(白鶴)의 무리가 모인 것과 같았다.

 

 

 

 

곧 轉輪王(전륜왕)의 다비식(茶毘式)으로 金棺에 옮기고 모든 大力士들이 금관을 들고

구시나성(拘尸那城)을 구잡(九?:9번 돌음)한 뒤에 다비소에 이르렀다.

7일을 지난 뒤에 대전단(大?檀)을 쌓고 향촉(香燭)을 던져 태우려하나 불이 붙지 않았다.

아누루타(阿누樓馱)가 말하기를 “이는 가섭이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때 가섭(迦葉)과 오백제자는 기사애산(耆사崖山)에 있으면서 여래의 열반하심을 알고

여래의 최후를 예배코저 하였으나 7일을 경과한 뒤에 다비소에 참예하였는데

여래가 金棺에서 이때 雙足(쌍족: 두발)내어 보게 하였다.

 

 

 

 

이때 모든 力士들이 칠보(七寶)의 큰 횃불을 던지니 모두 진멸(殄滅:끄저버림)하였다.

가섭이 말하기를 “人天의 횃불이라야 한다.” 하였다.

어떻게 여래의 寶棺(보관)을 다비할 수 있었는가 어찌할 바 모를 때 여래께서 대비력(大悲力)을 내어

스스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갔다.

심흉(心胸:가슴) 가운데 불이 관(棺) 밖으로 뛰어나와 점점 다비(茶毘)되어 7日만에 향루(香樓)와 보루(寶樓)가 다 타버렸다.

8국의 모든 왕들이 다투어 사리(舍利)를 취하고저 하여 모두 군사를 일으켰다.

도로나(徒盧那) 바라문이 사리를 제왕에게 나누어주니 모두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 한다.(후반열반경 소승대열반경)

 

미륵불

 성곡사의 이 미륵불은 자세한 내역이 없어 그 크기를 알 수 없다.

국내에서 최대 미륵불을 꼽는다면 단연 속리산의 미륵대불이다.

속리산 법주사의 미륵대불은 높이 33m로 그 무게 또한 160톤에 이른다고 한다. 

 

 

 

 

 

 

 

 

 

 

 

 

 

 

 

 

 

 

 

 

미륵불상에서 내려다 본 와불의 뒤모습

 

성곡사의 이 와불은 인터넷상에 떠도는 자료에 의하면 37m라고 하는데 확실치 않다. 

참고로 세계최대 와불(臥佛)은 미얀마의 양곤 차욱탓치파고다원의 와불을 꼽는다.

길이 67m, 높이 8m, 발바닥에는 108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보다 작은 것으로 미얀마의 마고 쉐달랴용 와불로서 길이 56m, 높이 18m이다.

일본이 동양 최대라고 자랑하는 후쿠오카 남장원의 와불은 길이 41m, 높이 11m이며 무게는 300톤이라고 한다.

국내 최대라고 일컫는 와불이라면 충남 부여의 미암사의 와불과 영천 만불사의 와불를 꼽는데

만불사의 와불은 길이 13m, 높이 4m이다. (미암사의 와불은 자료가 없어 알지 못했다.)

 

 

와불에 보이는 첫 조상은 용왕이고 그너머 흐리한 것은 약사보살상이다.

 

 

 

 

용왕

@와불을 중앙에 두고 앞에는 미륵보살의 입상을 두고 뒤편에는 용왕을 조성해 놓았다.

석가모니불 열반 이후 재림할 부처가 미륵불이라서 이해는 가는데 용왕을 여기에 조성해 놓은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미륵보살이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도하기 때문에 그 용화수의 용(龍)을 따서 그러러니 하고 별 생각없이 지나왔다.

그런데 불교대사전을 찾아 보니 용화(龍華)는 법원주림(法苑珠林)에

「미륵이 부처가 될 때 용화수 아래 앉게 되는데 꽃가지가 마치 용의 머리와 같아지기 때문에 이같이 이름한다」고 하였으며

또는「種子가 용궁에서 나왔기 때문에 용화수」라 한다고 했다.

 

 

 

다른 해설을 보면 용화수(龍華樹)는

범어 naga vrksa. 나가수(那伽樹), 용화보리수(龍華菩提樹)라고도 한다.

금사도과(金絲桃科)에 속하는 교목으로 인도 히말라야 동쪽 뱅갈지방, 인도반도의 동서쪽 안다마도 등에 野生하며

인도에서 많이 기른다. 미륵보살이 56억 7천만년 후에 이 세계에 출생하여 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한다고 한다.

범어(梵語)의 이름으로 奔那伽(분나가)라 한다.

미륵대승불경(彌勒大乘佛經)에

「가지는 寶龍과 같은데 온갖 寶華를 활짝 피운다」라고 하였으며,

대일경소7(大日經疏七)에 「奔那伽는 바로 龍樹華인데 미륵세존이 이 나무아래에서 성불한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龍華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龍宮에서 숭상하는 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며

서방에서도 그 種이 많이 있다고」라고 하였다.

 

 

 

약사여래

 

약사전 가는 길에 만나 돌부처

 

 

 

 

약사여래가 서 있는 옆 숲속에 조성된 포대화상

 

 

 

 

 

 

 

 

 

지장보살전을 내려가면서 바라 본 약사여래의 뒤모습

 

 

지장보살

 

 

 

 

 

 

 

 

지장보살전 옆에 수지장보살이란 명으로 또 하나의 지장보살을 두었다.

 

 

 

 

 

 

 

 

지장보살상 앞 청동향로

 

 

 

 

 

 

 

 

 

 

 

 

 

약사여래 쪽에서 망원으로 잡아 본 미륵보살 

 

와불에서 출발점인 요사체로 내려오면 승용차로서 지장보살과 약사여래상으로 갈 수 있다. 승용차로서는 10분 정도 거리지만

낙엽을 밝으며 만추의 풍광을 느끼며 걸어 보았다.

도보로도 약 20여분 거리에 불과했다. 아침보다는 운무는 조금 개였지만 여전히 하늘은 흐리다.

공주 성곡사는 서울에서는 생각보다 먼 거리였지만 운무속에 색다른 사찰의 멋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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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2.01 09:26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14.12.01 11:00

    나모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14.12.02 17:17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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