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공간 속으로 36]
대구 1세대 인테리어디자이너 박재봉
재즈클럽《올드블루》
박재봉 (1939.2.2~2022.8.23 / 헨디환경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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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구 동성로2길 옛 청호호텔 2층.
재즈클럽 《올드뉴》로 축적된 대구 재즈 문화의 시간 위에 약 530㎡ 규모의 락 앤 재즈카페 《올드블루》(대표 박재수)가 문을 열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 복도 끝에 다다르면 공간은 락 존과 재즈 존으로 나뉘고, 두 공간은 분위기뿐 아니라 인테리어 성격과 음향을 담당하는 스피커까지 서로 다르게 계획되었다.
당시는 단순한 실내를 연출을 통해 문화적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흐름이 뚜렷하던 시기였다. 일상적인 공간이 취미의 표현이나 컬렉션 진열에 머물렀다면, 명확한 목적을 지닌 장소에서는 주제를 설정하고 이미지를 구축하는 연출이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재즈 존에는 적벽돌과 고재, JBL 4344 스피커가 설치되었고, 락 존에는 모노톤의 대리석과 우드 패널, 흑경을 바탕으로 다트 게임 존과 중앙 바, 락 관련 포스터가 배치되며 동적인 이미지를 형성했다.
이 공간을 설계한 박재봉은 보이는 장면에 머물지 않았다. 그가 지향한 것은 장식이 아닌, 음악 문화와 음향 엔지니어링, 이를 감싸는 공간 감각이 하나로 작동하는 장소였다. 올드블루는 ‘세련된 카페’가 아니라, 소리를 중심에 둔 구조였다.
당시 대구에서 수준 높은 재즈 연주를 라이브로 듣는 일은 드물었다. 음악은 주로 기록으로 소비되었고, 현장의 경험은 제한적이었다. 올드블루는 그 간극을 메웠다. 다양한 뮤지션이 무대에 올랐고, 관객은 가장 좋은 상태의 소리와 공간 속에서 연주를 마주했다.
유진박을 비롯해 박성연, 임희숙, 말로, 웅산 등이 이 무대를 거쳤다. 공연은 해마다 7~8회 열렸고, 유진박 공연 당시에는 인근 일대가 혼잡할 만큼 관객이 몰렸다. 그러나 2007년 7월, 올드블루는 잠정 휴업에 들어간다. 공간은 사라졌지만 시간은 지워지지 않았고, 4년의 공백 끝에 기억은 다시 다른 장소에서 형태를 얻는다.
▪︎2011년 9월, 삼덕동 2가 삼덕소방서 맞은편 지하.
올드블루는 새로운 자리에서 재즈클럽의 명맥을 잇는다. 과거 박현기 선생의 인테리어로 갤러리 THAT이 자리했던 이곳은, 건물주가 박재수로 바뀌며 다시 음악을 받아들인다. 두 번째 올드블루는 복원이 아니라, 옮겨진 스피커와 가구, 소품을 통해 시간을 통과한 결과였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이곳은 ‘공연하고 싶은 공간’으로 알려졌다. 음향의 완성도와 연주자를 대하는 태도는 공간의 명성을 스스로 유지시켰다. 벽면을 채운 비틀즈 이미지와 LP, CD는 장식이 아니라 이 장소가 축적한 시간의 밀도였다. 비어 있는 무대는 언제든 음악이 시작될 것 같은 긴장을 품고 있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올드블루는 다시 문을 닫았고, 현재까지 영업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을 끝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번의 개점과 한 번의 폐업, 이어지지 못한 현재까지의 시간은 ‘음악을 위한 공간은 어떻게 태어나고, 무엇에 의해 유지되며, 어떤 태도로 기억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오늘날 빠르게 소비되는 ‘핫플’ 공간들이 짧은 수명을 갖는 이유는 시각적 자극에 집중한 공간이 사진으로는 강렬하지만, 운영의 지속성에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인증을 목적으로 한 방문은 재방문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유행은 더 새로운 자극으로 이동한다.
박재봉의 공간은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었다. 그는 기준을 먼저 세웠다. 공간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유지해야 할 환경으로 보았고, 그래서 다시 오게 되는 장소가 되었다. 공간의 수명은 길어졌고, 기억은 오래 남았다.
올드블루는 대구 재즈의 한 장면이자 박재수의 집요한 선택, 그리고 박재봉이 구현하고자 했던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 공간’의 실험이었다. 이곳은 단순한 재즈클럽이 아니라, 한 도시에서 음악과 공간을 대하던 형제의 태도가 시간의 흔적으로 겹겹이 쌓인 장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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