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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그녀를 처음 만나던 그 겨울......
오랫만에 산밭엘 올라왔다.
다 말라 비틀어진, 지겨웠던 잡초들이 나무 묘목들 사이골에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달에 뿌려둔 밀씨가 궁금하기도 했고, 오랫만에 시간이 나서 산책 삼아 눈길을 마다않고 올라왔는데 내리는 눈송이가 심상치않다.
지난달에 씨를 뿌린 밀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파아란 새싹을 틔웠다.
밀 농사를 지어본 기억이 워낙 오래전이다 보니 파종 방법도 다 잊어 버리고 새싹이 추워지기 전에 나오는 줄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밭에 와보니 이 추운날에 새파람이 어찌 이리도 생소하게 느껴지는지....
벌써 극성 맞은 까치가 흙을 파해처 놓은곳이 보이긴 하지만 새싹은 골고루 잘 올라와 있었다.
어쨓든 내년엔 제대로 된 누룩을 만들어 제대로 약주를 만들 생각에 벌써부터 입가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아침부터 눈이 내리곤 있었지만 어느결에 제법 쌓이며 파란 새싹을 뒤덥고 있었다.
올 겨울엔 동해방지로 감나무 밑 둥치에 집으로 감싸주는 작업을 또 차일피일 미루다 이 눈보라속에서야 " 아이쿠 또 늦어 버렸구나....." 하고 탄식만 늘어 놓는 꼴이 되었다.
다음주에는 시간을 내어 집으로 정성들여 싸주어 추워지는 겨울을 잘 보낼수있게 해주어야겠다.
갑자기 굵어진 눈송이가 금새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덥고, 아직은 질펀한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눈앞에 들어온 풍경에 잠시 옛일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살을 붙이고 평생을 살아야만 하는줄 알고 자랐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도 하나, 둘 도시로... 도시로... 떠날때 쯤에 홀연 나도 이곳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한동안 이곳을 떠난적이 있었다.
이곳을 떠나 그렇게 숨 막히던 도시에서 십,수년을 살며,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수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가끔씩 꿈속에서 이 곳, 즉 유년시절 뛰어놀던 낮익은 동리쪽 다랭이진 논과 어린시절 밥만 먹으면 낮이나 밤이나 뛰어나와 놀던 뒷동산을 그리워 했었는데...
지금 내 발치 아래엔 그때의 다랭이진 논과 흰눈으로 곱게 덥인 뒷동산이 모두 한눈에 들어 왔다.
다랭이진 맨 아래논엔 초겨울부터 논 주인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밤낮으로 몰래몰래 물을 받아 꽁꽁 얼린후 홍수때를 대비해 큰돌에 얼기설기 매어놓은 강가의 철사줄을 동맹이로 짓찌어서 끊어다 날을 달아 만든 나무 썰매를 타고 놀던 논배미도 지금은 경지 정리로 모양만 조금 바뀌었을뿐 아직도 그대로이다,
유난히 묘지가 많았던 얕은 뒷동산은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 였었고, 지금은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 묘지 숫자가 더 많아진 뒷동산도 그대로 있다. 그때는 우리들의 낙원이었지만 지금 아이들은 일년내내 이곳을 단 한번도 찾지않는다.
지금 아이들의 놀이 대상으로서 자연속의 즐거움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할뿐더러 너무 오염되어 있기도 하다. 아마 지금의 아이들은 이곳의 존재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음을 이해할수도 없을 겄이다.
지금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뒷동산엔 어른키보다 더 큰 잡초만 을씨년스럽게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을뿐이다, 내가 죽을 때 까지 그곳에서 뛰어놀런 유년시절을 잊지못하는 것이 또한 내겐 아주 작지만 큰 행복이리라...
내게 풋사랑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기나긴 기다림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일도, 이렇게 눈이 내리던 유년시절의 겨울방학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 풋사랑을 만날수있음 또한 내겐 커다란 행복이다.
아침부터 소담하게 내리던 눈은 막 방학을 시작한 우리들에겐 거의 축복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눈 싸움은 물론이고, 토끼잡이와 눈썰매 타기, 새탑시기 만들어 참새 잡아 구어 먹기, 밤엔 초가집 처마밑에서 추위를 피해 들어온 참새굴속을 들쑤셔서 참새잡아 구어먹기... 그리곤 따뜻한 사랑방에 모여 유난히도 일찍 찾아오던 그 시절의 겨울밤, 낭만속의 긴밤과 긴 이야기들... 무척 춥고 배고팟지만 곤한 잠속, 꿈길에서의 따뜻하고 배부름을 위한 꿈속에서의 시간여행 등등.......
아마 지난 밤부터 내렸음직한 눈은 무릅까지 푹 빠질 정도로 온 세상을 뒤집어쒸우고 있었다.
점심으로 고구마 몇 덩이와 살얼음이 까실까실한 동치미 국물에 배를 불리고 난 한참후에서야 그쳤는데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눈이 그쳤고, 희뿌옇게 맥을 못추고 있던 늦으막한 오후 햇살과 함께,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무엇에 홀린듯 흰 세상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늘 그랬듯이 그런날엔 손에 잡히는대로 눈 뭉치를 만들어 아무에게나 집적 거리며 눈 싸움을 청하기 마련이었다.
동산엔 벌써 수줍게 눈 썰매를 타는 여자아이들과, 그나마 선 머슴아 같은 여자아이들도 끼어있는 눈 싸움은 골목단위 또는 마을단위로 눈 싸움을 했었다. 기억에 눈이 오는 날은 조금은 날씨가 포근했었다. 아주 추운날엔 눈이 잘 뭉쳐지지 않았지만 그런날처럼 포근한 날엔 오후 햇살을 머금은 눈은 쥐는대로 바로 뭉처져 아이들의 함성과 함께 눈싸움의 정점을 이루었고 그 싸움은 이른 겨울 저녁짓는 연기와 사랑방에 굼불때는 청솔가지 연기가 다랭이진 논위로 낮게 스며들며 어둠이 묻어나고, 밀어 닥치는 추위에 꽁꽁 언 손을 녹이던 장작불도 사그라들기 시작하고, 아이들 등위로 모락모락 올라오던 김의 열기가 어느새 부터인가 찬 기운으로 바뀌며 물에빠진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때쯤에는 장작불도 다 꺼지고 만다. 그런후에야 그날밤 참새잡이나 밤사냥(?)을 굳게 약속을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렇게 짧은하루의 긴 해를 마무리하고서야 파장을 맞곤했다.
그날은 이웃 마을인 희여물하고 눈 싸움이 크게 벌어져 지원군으로 동산에서 눈썰매를 타던 여자아이들까지 다 불러 들여 한 구석에 숨어앉아 실탄(눈뭉치)을 만들어서 날라다 주는 그런 큰 싸움으로, 그야말로 전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도 그 틈에 끼여 그 싸움에 열중을 하고 있었고, 온통 그 놀이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대부분 논둑아래 몸을 숨기고 적(?)에게 직접 노출 되지않게 서로 밀고 당기면서 영역을 차지하는 싸움인데 세가 불리해서 밀리면 그곳 진지는 포기하고 다른곳으로 피하기도 하고 다른곳이 열세에 몰리면 지원도 나가는 그야말로 작전까지 필요한 그런 눈 싸움이었다. 어느틈에 날아왔는지 정신이 번쩍들고 눈물이 쏙 빠질만큼 얼굴에 정통으로 한방 맞았다.
누구에게 맞았는지도 알수없었지만 화끈거리는 아품과함께 화가 머리끝까지 솓아올랐다.
앙갑음을 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눈 뭉치를 던지기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야!"
하는 짧은 비명이 들려왔고, 나는 다른 눈덩이를 피하려다가 미끄러져 논둑 아래로 곤두박질해서 넘어지고 말았다.
"와하하하~~~~~~~!"
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새끼들아 누구 넘어지는거 처음봤나 왜 웃고 지랄여?"
나를 놀리느라고 그러는줄 알고 계면쩍게 웃으며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일어섰는데, 옆에있는 녀석들이 또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아니 이 녀석들이 지네편이 넘어졌는데 뭐가 좋다고 웃고 지랄여 지랄이....승질나게시리..."
하면서 녀석들에게 한방먹일 생각으로 눈뭉치를 웅큼쥐고 돌아섰는데, 녀석들은 나에겐 관심도없이 상대쪽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문득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해있는 곳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엔 빨간 핏빛덩이 하나가 흰 눈위에 뭉쳐저 있었다. 한참을 지나도 핏빛덩이는 움직이질 않았지만 녀석들은 여전히 좋아라 서로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키득거림도 잠깐, 그 빨갱이(나중에 난 아이를 빨갱이라고 불렀다)는 통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그때 까지도 그 새빨간 피빛덩이가 사람인줄도 몰랐다.
"어째 안 일어난댜?. 혹시 뒤진거 아녀?"
"설마 한대 맞았다고 뒤지기야 할라구..."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아인 내가 던진 눈에 맞아 쓰러진거였고, 너무 오랫동안 그 아이가 꼼작을 하지않자 모든 시선이 내게로 날라왔다. 특히 상대쪽 아이들이 하나둘 그 빨갱이곁으로 다가서며 모여 들며 수군거렸다.
"느그덜 또 눈속에다 돌맹이 넣었냐? 워쩨 이리도 꿈쩍을 안한댜?"
"아녀 임마 이 눈속에 돌맹이를 어떻게 찾는다고 그랴.."
가끔 싸움이 격렬해지면 눈덩이 속에 들어갈만한 돌맹이나 화장실에서 퍼온 오물을 넣어 던질때가 종종 있었다. 하나 둘 아이들은 그 빨간 핏빛옷을 입고 쓰러진 아이곁으로 모여들었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야! 니가 맞혔으닝께 니가 알아서 흔들어봐 뒤졌나 살았나..."
"먼소리여 내가 야를 맞혔다고?"
"에이 재수없게 시리.."
"야. 안 뒈졌으면 일어나봐.."
크게 흔들어도 꿈적을 안한다,. 이거 진짜로 뒈진거 아녀? 속내로 겁이 덜컥난다..만약에 이게 뒤졌으면 난 워쪈다냐...그나저나 못보던 기집앤디...누군지도 알수 없고 속이 탔다. 아이들의 시선은 나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자꾸만 강요를 하고(아마 죽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던 때였었지만 그것이 그래도 얼마나 무서운지는 짐작으로 알고 있었는지라..모두 내게 책임을 물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강요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속으로 곱씹은 고통은 엄청 커다란 고통이었다. 얼마후 부터는 겁먹은 기집애들의 훌쩍임이 들려 왔고, 이젠 더이상 바라만 보고 있을순 없었다. 나는 더 마음이 조여 왔다.
"에이 설마 뒤지기야 했을 라구..."
"야 안 일어나?"
나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떨리는 손으로 그 빨갱이를 흔들어 보는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 캬~~오!!"
어떤 소리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 갑자기 일어나며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바람에 너무 놀라 나는 엉덩방아를 찌며 넘어졌고, 어느틈엔가 내 얼굴과 목덜미 사이로 차가운 눈을 한 주먹, 아니 한 웅큼 집어넣고는 의기 양양하게 큰 소리로 웃고 있는 여자 아이모습이 얼마남지 않은 저녁해를 빨간 털코트로 반쯤 가리고 내 앞에 무릅을 포개고 않아 있었다. 나는 어쩔줄 몰라 넉이 나간 모습으로 엉거추춤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하얀이를 들어내고 웃고있는 인형같은 그 아이 얼굴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볼수가 있었다.
"많이 놀랬니? 바보같이.."
정신을 차리고 그 빨갱이를 바라 보았다. 어느 바람결에 실려 왔는지는지 하얗게 밷아내는 하얀 입김사이로 생전 처음 맏아보는 곱디고운 아뜩함으로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어느덧 살갓을 애일듯하던 바람끝이 무뎌지고,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은 그늘진 깊은산속 골짜기 도랑의 언눈까지 녹여 내렸다.
골자기 버들강아지 고운 솜털위로 부서진 하얀 햇살은 어느덧 봄의 시작을 말해주었다.
개학을 했고, 봄 방학도 끝났으며,
새 학년이 시작 된지가 달포 가까이나 지났는데 그 아이로 부터 편지는 오지 않았다.
학교를 끝내기가 무섭게 집으로 곧장 달려와 편지함을 흘끔 거리거나,
내게 혹 편지 온것이 있으면 꼭 잘 간수 해달라고 할머님께 여러번을 일러 두었다.
그 아이가 서울로 가면서 꼭 편지 할테니까 답장 해달라는 말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아이의 편지가 무척 기다려졌다.
일찍 학교를 파한 날이면 우편 배달부 아저씨를 기다리는것이 일과처럼 되어 버렸다
난생 처음 맡아본 아뜩한 비누냄새 뿐 아니라 그 아이에게선 늘 좋은 냄새가 났다.
그날 그렇게 눈 싸움을 하고난 이후 난 그 아이한테 쏙 빠져 들게 되었다.
나혼자 뿐만 아니고 우리들 모두가 그 아이의 포로(?)가 되어버렸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 아인 처음 보는 시골 아이들의 놀이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우리가 보기엔 별 재미가 없는 놀이인데도 아주 즐거워 했다.
그날 이후 우리들은 아침만 먹으면 윗 마을로 그 아이를 보러가는 일이 잦아졌고,
그 아이의 환심을 사기위해 말없는 전쟁이 시작 되었다.
참새를 잡아 다 보여 주는 녀석,
언땅을 해집고 돼지 감자를 캐어다 주는 녀석,
갓 삶아 따끈 따끈 따뜻한 고구마를 가져다 주는 녀석,
밤을 구어오는 녀석,
은행알을 구어 오는녀석...
한마디로 그날 이후 우리들은 빨간 코트에 털실로 짠 벙어리 장갑을끼고 다니는
그 아이의 열병을 앓아야 했다.
가끔 우리들이 건네준 고구마나 밤을 먹으르려고 장갑을 벗을때 마다 느낀 것이지만,
작고 하얀손은 눈이 부셨다.
이웃 마을에 다른 여자 아이들과 함께 다녔지만,
시커멓게 그을리고 손등이 갈라진 이곳 아이들의 손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 하얗고 이뻤다.
아마 천사의 손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상상을 해 보았었다.
실제론 그 아이가 우리들과 머물었던 시간은 이십여일 남짓했는데도,
우리들은 마치 몇달은 된듯한 착각속에 빠져 들었으며,
어쩌다 그 아이가 늦께 나타나는 날에는 모두들 사소한 일로 싸움을 벌일 정도로 신경전이 치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그 아이를 향한 마음으로 모두가 연적(戀適)이 되어 버린샘인데..
누구하나 겉으로 내색을 하진않았다.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그 아이의 환심을 얻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우리들중 어느 한 녀석에게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살갑게 대해주는 일이 일어 날때에는
질투에 눈먼 우리들은 그 아이에게 공연히 트집을 잡아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행동이 질투였음을 알수 있지만,
다른 녀석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놀고있는 그 아이를 본다는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도 그아이를 괴롭히면서도 다른 녀석들이 그 아이를 괴롭히는것이 무었보다도 싫었지만 한편으론 내색도 할수가 없었다.
나중엔 늘 눈물바다가 되어 집으로 울며 쫏겨 들어갔고,
그 아이 외삼촌의 불호령에 쫏겨 도망내려 올때마다 흘끔 거리며 뒤돌아 보면,
그 아인 외삼촌 등뒤에 바짝붙어 도망가는 우리들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불호령에도, 마을 내려 오는 중에도, 그아이에게 비칠 내 모습을 생각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뒤뚱거리며 넘어지거나, 논 두렁에 미끄러져서 얼음 물속으로 발이 빠져도 허둥거리게 되곤 했는데,
그런 행동은 또 영락없이 녀석들의 놀림감이 되곤했다.
그렇게 그해 겨울이 다 지나가고, 그 아이가 서울로 떠나가기 이틀전 쯤으로 기억이된다.
뒷 동산에서 커다란 소나무에 밧줄을 걸어 그네를 메고 있을때 그아이가 우리들 곁에 찾아 왔다.
"야 , 저기 빨갱이 온다..."
우리들은 여전히 그 아이를 빨갱이라고 불렀다.
이 삼일 안 보이기에 서울로 가버린줄 알았었는데, 그런것이 아닌 모양이다.
가까이 다가 온 그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얼굴도 꺼칠해져 있었고, 더이상 숨막힐것 같은 비누향도 나지 않았다.
"워디 아픈 모양인디? "
"그러게 말여..."
그동안 놀려먹은 일에 모두들 안쓰러웠는지 그날은 얌전이 그 아이와 놀아 주었다.
늦은 겨울 오후 흐린하늘 아래 굼불때는 청솔가지 연기가 땅위로 낮게 깔리고,
구름인지 안개탓인지 해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아이고.. 눈올랑가 보다... 난 먼저 갈팅게 느그덜은 더 놀다 와라잉?"
"나두 쇠죽 쒀야뎌.."
그렇게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거짓말처럼,
나와 그 아이 단둘이만 남게 되었다.
그냥 굵게 꼬아놓은 사내끼(새끼)줄만 만지작 거릴뿐 막상 단둘이 있게 되니 어떻해 해야 할런지 알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 아이에게 들려 줄려고 며칠밤을 준비했던 말들은 한마디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연신 마른침만 삼키고 있는 내 모습에 나 자신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동안 열병처럼 앓아온 것은 그냥.. 그 아이에 대한 야릇한 마음속의 꿈틀거림뿐....
잠깐의 시간 이었겠지만, 왜 그리 길게 느껴 지던지...
그렇게 낮께 갈린 저녁 연기위로 가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네를 메어놓을려고 뒷동산 제일 높은 소나무밑에 또아리를 틀어놓은 새끼줄 더미가 있었고,
새끼를 틀려고 마을에서 가져다 놓은 볏집더미가 소나무 아래 널부러져 있었다.
볏단을 깔고 마주 앉아 얼마를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그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모래 서울 가.."
"............"
"나 모래 서울 간다고.....!" 퉁명스럽게 내 뱃는다.
"응?..그려? .... 왜 더 놀다가지 벌써 서울엘 간다냐..?"
"개학이 얼마 안 남았잔니 이 바보야... 숙제도 할것이 남아있고..."
무슨말을 해야 하는 걸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도 할말이 없다.
눈발이 제법 굵어 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미칠 안보이던디 워디 아팠었냐?"
"응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꼼짝도 못했는데.. 서울 올라 가기전에 누구 좀 볼려구...."
"......"
"누굴 볼려구?....."
"있어...."
가지런이 고개를 떨구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근 이십여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아 왔지만 그날처럼 그렇게 조용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너 있잔어..."
" 응?.. "
" 내가 서울 가서 편지 하면 답장 해 줄거지?"
"............"
"응? 할꺼야? 말꺼야?" 제법 신경질 적으로 쏘아 붙인다.
몰론 답장을 하지 왜 않하겠냐... 그러고 싶었지만 입안에서만 맴돌뿐 마음만 까맣게 타 들어 갔다.
"내가 답장을 왜 하는디..."
그렇게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 뱉고는 뒤도 안 돌아 보고 뛰어 왔다.
후끈 거리는 얼굴과 쿵쾅거리는 가슴속은
찬 바람과 이미 함박눈이 되어 내리는 눈길을 뛰어오는 동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답장 꼭 해야 돼............!"
등뒤로 어렴풋이 들려오던 그 아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 뒤론 그 아이를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아본 일이지만 그 아이 아버지가 내려와서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가 지고 할미꽃이 온 뫼잔등에 흐드러 지게 피었다 지도록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해엔 때 이른 장마가 시작 되었었다.
비가 잠기 그친 틈을 타서 물기도 덜 마른 빨간 산딸기를 따먹으러 산골짜기를 헤매다 지쳐
뫼잔등에 잠시 누어쉬다가 문뜩...
눈도 뜰수 없는 따가운 햇살과 숨이 턱턱 막히는 지열과 매미 울음소리에 귀속이 멍해질때쯤에서야 여름이 온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그 아이의 편지만을 기다렸다,
밥맛도 없고 도데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여름 방학에 혹시 그 아이가 오면 줄 마음으로 주머니속엔 작은칼과 목각인형을 깍을 나무 조각을
넣고 다니며 기다림에 지칠 때마다 나무 조각을 깍아 내었는데,
손때가 까맣게 묻은 나무를 깎아내면 하얀 나무 속살이 보이는데,
그 것은 마치 그 아이의 하얗던 손처럼 느껴지곤 했다.
왜 편지를 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답장은 무슨 답장이냐며 너무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해서 그러는걸까?
별의별 상상을 다 해보지만 알수가 없었다.
분명히 편지는 할거야..
가면서 꼭 답장 해줄꺼냐고 다짐을 했잔여?.......
혹 우리집 주소를 모르는건 아닐까.
내려올때는 그먼 서울에서 혼자 내려왔다는데 설마 내 이름하고 주소를 모를려구...
아니면 편지를 보냈는데, 아버지나 엄니가 없앤건가?
마치 자기 최면이라도 걸린듯 그렇게 혼자 상상해보고 위로를 해보았지만
가슴속만 점점 더 타들어 갈뿐 그 답은 알수가 없엇고 끝내 편지도 오지 않았다.
겨울 방학이 시작 되었지만 그 해엔 그 아이는 내려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미완의 아품으로 내 가슴속에 남겨진체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그뒤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서야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조금씩 털어 낼수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난생 처음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것은 많은 시간이 흐른뒤였다.
부모님의 심한 반대로 농업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나는, 핑계일지는 모르지만, 학교 공부에 큰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고교에 입학하자마자 한 학기도 체우지 못하고 시작한 방황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이어졌으며, 결국은 대학 진학은 생각지도 못하고, 말성 많았던 고교를, 그나마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 방황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으며, 나중에 추호도 후회같은 것은 하지 않으리라 자신이 있었다.
담배도 이시기에 배웠으며, 많은 갈등속에서 술에 취해 밤 안개 가득한 들판을 헤메는 일로 밤을 밝히며 살았었다. 아마 나쁜짓이란 나쁜짓은 그 시절 다 해본 듯하다. 무대가 시골 촌 구석이라서 한계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때의 일은 지금은 물론, 내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짐이고,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내자신을 타이를 수 있었던 모티브가 되었던점에선 비록 상처투성이지만 값진 교훈을 얻었던 학창시절의 사건들이었다. 그렇게 고교시절 내내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살았다.
군 제대무렵 다시 대학을 가려고 공부를 시작할 때 까지는, 아주 바보같은 생각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졸업식도 하기전 추운 겨울에 달랑 가방 한 개만 들고 우리들은 서울행 기차를 탔다.
영등포 역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건 난생 처음보는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들이었고, 아무 준비없이 올라온 서울은 우리들에게 쓰라린 경험을 안겨 주었다.
막연히 서울에 대한 동경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처참하게 깨어졌으며, 그 동경은 점차 원망으로 이어졌다. 지금 생각이지만 아마 그때 그 쓰라림이 다시 귀향을 마음 먹게한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때는 삶의 가치관도 뚜렸이 없었고, 목적 의식도 없었다.
성인으로 거듭 태어난 시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누구하나 귀뜸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우리들 중
누구하나 해답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쨋든 인생이란 다 살아봐야 어떻게 살았다고 판단을 해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는 그냥 되는대로 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때 분명 사회의 선배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겠지만,
그런 소리 따위는 귀에 들어 오지도 않았고,
듣고 싶지도 않을 만큼 내 사고는 피폐해질 때로 피페해져 있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찾아간곳은 미리 올라온 다른 친구들이 있는 가리봉동의 쪽방이었다, 그 당시에는 쪽방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고, 어떻게 사람사는 집구석을 이렇게 지어놓았는지 한심할 따름이었지만 그나마 추운 겨울에 얼어죽지 않고, 칼잠을 자면서 보낼 수가 있었다.
그해 겨울은 내겐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며칠지나지 않아 몇푼 쥐고 올라온 돈도 다 떨어지고, 집에 내려갈 차비도 없고, 그야말로 굶지않기위해서라면 무었이든 해야 할 노릇이었다. 기숙사가 있는 회사에 일자리를 간신히 얻어 취업을 했는데..
86년 노동운동에 한창 빠져들었을때, 내가 줄기차게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마도 그때의 열악했던 환경이 가슴 한 구석 어딘에가 남아,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돼지 우리같은 숙소...
마치 삶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만으로 일을 해야하는 절박감에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보내던
보상받지 못할 내 청춘의 시간들....
방탕하게 학교에 다닐 때에는 불과 몇 개월후의 미래가 이런 모습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또 그런 모습에서 거부할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우리"에서 "나" 홀로 빠져나와 홀로서기까지의 힘든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들게 연명하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나온다면 돌아갈곳은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과
겨우 칼잠을 잘수 있는 가리봉 쪽방이 전부였던, 마음마져 가난했던 그 겨울,
그래도 새로운 간섭에 익숙치 않았던 우리는 가리봉동의 쪽방을 선택했고, 밤엔 무한한 밤의 여신에 홀리기라도 한듯 서울의 밤 거리를 이유없이 헤메고 다녔다.
그럴 즈음에..오늘처럼 그 황망한 도심에 첫눈이 내리던날
그녀를 다시 만났다.
추운 어느 토요일 밤,
서울에 올라와있는 친구들 몇몇의 모임이 있다는 연락이 되어 종로 어디쯤으로 기억되는 곳을 찾아간적이 있었는데..가리봉동을 떠나 종로에 다다를 때쯤해서부터 첫눈이 밤 하늘을 하얗게 가르며 내렸었다.
그날 나는 빨간 코트와 눈처럼 흰 피부의, 전혀 기억에도 없는 우리들의 어린시절 친구를 소개 받았다.
어린시절 내가 짝사랑했던 그 아이에 대해 기억해낼만큼 생활이, 아니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었고, 또 그 아이가 이 서울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마져 까맣게 잊고 있을 때였으므로 난 빨간코트의 그녀가 그 아이일거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체, 눈으로 인해 차가 일찍 끊어진 밤 거리를 우리는 우리들의 안식처인 가리봉동 쪽방을 찾아 그 밤을 하얗게 지새며 걸어서 걸어서 돌아왔었다.
그렇게 몇 번의 모임이 더 이어진 후 조금은 말을 건낼 수도 있을 만치 어색함이 밀려나 있었지만,
그녀는 늘 뒤에서 다소곳이 앉아 술잔으로 입술만 적실뿐이었고,
우리들의 이야기에 아주 재미있어 하는 눈치만 보였을뿐 늘 듣고만 있었다.
그냥.. 오고 가는.. 정도의 눈인사만 건낸체 그 겨울을 보냈었다.
그때는 어느정도 서울살이에 적응을 했었을때였었지만,
그 지독하게 춥던 겨울도 그렇게 천천히 봄에 밀려 나고 있었다.
이듬해 화사한 봄날 어느 모임날에..
늘 서둘러 나가는 습관 때문에 그날도 미리 모임장소에 나가게 되었는데,
나 보다 먼저 나와있던 그녀와 단둘이 있게 된적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숫기가 없어 눈 인사만 건내고 나는 그냥 물잔만 만지작 거리고 앉아 있었는데..
내 앞자리에 앉은 그녀가 유심히 나를 보고 맑게 웃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늘 미리 나오는 것 같아서.."
"?"
"그때는 정말이지 고마웠었어...이제야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네..하하.."
"??"
"무슨?..언제?"
"기억 안나니...?"
"??"
"옛날에 애들이 나 많이 놀릴때 네가 그래도 많이 감싸 주었었잔니......눈이 엄청 내리던 겨울 방학때..."
문득...
문득...
혹시?..아련한 기억속의 그 아이..그 빨갱이?......정말일까?
" 그럼 혹시........옛날의 그 빨갱이?"
"아직도 나를 빨갱이라고 기억하고 있는거니?... 하하하....."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려 앞이 보이질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통에 그녀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끊났지만, 모임시간 내내 난 그녀를 똑바로 처다볼 수가 없었다. 가끔 눈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면 알 듯 말 듯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길 속에서 그 옛날 눈 싸움하던 그 시절의 빨갱이 모습을 하나,둘 찾아 낼 수가 있었다..
그녀 또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첫 모임에서부터 나를 알아 보았다고 나중에 그녀에게서 들어서 알 게 되었다..
그녀의 감정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그 순간 내 가슴은 다시 오랫동안 가슴한 구석에 묻혀있던
그 아이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떠오르며 겉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그날밤 내내 허둥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아니,
그 아이가 나를 이제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오랜시간 분을 삭이지 못했던 원망과 미움은 어느새 녹아내리고, 가슴 저 구석에 뭍어두었던 그리움이 솓구쳐 올라와 그날 밤,
밤새 비운 술잔속에 그녀의 눈망울을 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그렇게 그녀와의 재회는 그 지옥같던 서울을 하루 아침에 바꾸어 놓았다.
아직도 첫눈 만큼은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
시간이란 참으로 신비함마져 간직한 듯하다..
이렇게 아카시아 향내가 밤 하늘에 스며들 때마다 쓸어내렸던 가슴 깊은곳의 아픔으로 몸부림치며 보낸 세월이 적지 않았었는데도 지금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단상처럼 아픔도 무디어만 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를 다시 만난 이후 서울이란 곳이 달리 보였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그리워했던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이젠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볼 수가 있는 희망의 도시로 내게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모임은 한동안 계속 되었고, 모임을 기다리는 한달은 너무 길고 긴 시간이었다. 혹여 특별한 일로 중간에 한두 번 만나게 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없는 일을 찾아 구실을 만들고...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그녀를 만나면 난 의식적으로 그녀와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단 같은 자리 바로 옆에 누군가를 가운데 두고 떨어져 앉으면 그녀를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맞은편 자리..
두 세명 건넌 자리에서 그녀의 비누 냄새를 몰래 느끼곤 했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그녀를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야릇한 행복감에 휩싸여 마냥 즐거워만 했었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녀는 같은 모임에 참여하는 친구중 한 녀석과 이미 연인 사이임을 나중에 알았고, 난 그 모임에서 이단아가 될수밖엔 없었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고, 질투에 눈 먼 내 정신과 육신은 평온을 잃기 일수였다.
어찌보면 내가 배산감을 느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음에도 난 배신감에 나날이 피폐해져 갔다.
그렇게 또 그녀와의 속앓이로 무딘 시간을 흘려 보내면서 그 속앓이로부터 조금이나마 위로 받았던 것은 늘 끼고 다니는 책속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때 읽은 책들은 주로 노동운동에 관련된 책들이었는데,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홉켤래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도시 노동자의 삶을 그린책으로 한 평생을 살면서 남겨진 것은 아홉켤레의 구두밖엔 없는 가난한 도시 노동자의 삶을 우회적으로 그린 내용이었다. 지금은 자세한 내용도 기억에 없지만, 그 당시 그책은 내게 너무 많은 감동을 주었다.
알 수 없는 분노로 가슴은 들 끓었으며 열병처럼 관련 서적을 찾아 쪽방 구석에서 탐독을 하곤 했었다.
난 그렇게 도시의 한 일원으로, 아니 단지 나도 그처럼 가난한 도시 노동자의 한 일원으로 영혼을 녹여가며 구두를 장만하기 위해 서둘고 있었다.
물론 가끔 모임에 나가 그녀를 훔쳐보는 일로 그녀에 대한 그리움의 갈증은 해갈을 할 수가 있었지만, 여전히 난 심한 배신감에 술에 찌들어 모임을 뒤집어 놓곤했다.
서울이라는 곳에서 처음 맞이한 두해는 이렇게 엉망으로 뒤엉켜 버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군 문제로 고향으로 내려가 군복무를 마치고는 이내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리라 마음먹고 부모님과 친구들의 취업권유를 막무가내로 뿌리치며 금강 자락에서 낚시로 시간을 낚고만 있었다.
그무렵 여자 친구들은 결혼을 위해 집에서 잠시 신부수업중이었고,,
남자 친구들은 군 제대후 복학을 준비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늘 친구들로 벅적 거렸다.
4월에 제대를 했으니..
따뜻한 봄 햇살에 낚시를 하기엔 좋은 시기였으므로 주로 강기슭 바위틈에서 낚시대를 드리우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역시 그무렵 서울에서 모임을 했던 대부분의 친구들도 제대 후 고향에서 만날 수가 있었고, 다시 반가이 만나 술잔도 여러날 기울였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이곳에 내려와 있게 된지가 일년이 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간추린 이야기로는 내가 서울에서 내려오고 난 후 얼마지 않아 그녀는 백혈병으로 입원을 하였고, 얼마후엔 놀랍게도 그녀에게 남겨진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물론 그녀의 병은 우리가 다시 만난 훨씬 그 이전부터 앓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녀석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두어명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녀가 어렸을적 찾아왔던 외삼촌집에서 요양중이란 소식을 접해 들었다.
문득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다.
며칠동안 밤마다 그 집앞에서 서성거렸다.
가끔 문틈으로 보이는 움직임으로 그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주일이 지났을까..
저녁 나절..
그 집앞을 지나다 마루에 걸쳐 앉아있는 그녀를 보았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얼굴,,
화사하게 차려입고 어깨에 걸친 빨간 외투...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쏟아지는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울지마!...
내려 오면서 늘 니 소식 듣고 있었어...제대 했다면서.."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한체 흥분된 마음이 진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응, 요즘 좀 그래..이렇게 내려 왔으면 연락이라도 할 일이지.."
"가끔 이 앞으로 지나가는 것 보았어...두어번 불렀는데도 그냥 지나치길레 날 피하는줄 알았지.. 그리고,,,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 줄 수 있겠니?"
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요즘 낚시 다닌다면서.... 나좀 강까지 데려다 줄 수 있어?, 낚시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강이 너무 보고 싶어...."
다음날 그녀를 데리고 강가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밤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었다. 아침 일찍부터 낚시줄을 다시 손보고 낚시대도 닦아놓고..
부산을 떨었다,
지금가면 시간이 너무 이르겠지?. 아냐 그애가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라....
그녀를 태울 자전거 뒤쪽에 푹신한 작은 방석도 얻어놓고,,
대문간을 서성거렸다.
아침 이슬이 걷힐무렵 그 집앞으로 향했다.
먼 발치에서도 대문앞에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하늘에서 선녀가 잠시 내려와 서 있는 듯 하얀 얼굴의 그녀는 눈이 부셨다.
그녀를 조심스레 자전거 뒤에 태우고 낚시 가방은 핸들에 걸어두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신작로를 따라 강가로 향했다.
자전거에 앉자마자 내 허리를 잡은 그녀의 손엔 유난히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그녀에게 느꼈던 배신감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난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그녀를 태우고 강가에 다다랐을 땐 온통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했다.
"아카시아 향기 너무 좋지?"
"그래.. 아까부터 어떤 향기가 이렇게 좋은가 했는데 아카시아 꽃 향기였구나..
너무 좋다,,
난 너의 냄새인줄 알았어.."
그때서야 난 그녀에게서 상큼한 비누내음이 나지 않음을 알았다.
큰 돌들 틈으로 그녀를 조심스레 물가 바로 아래까지 내려주고 편안한 자리를 찾아 그녀를 앉혔다.
낚시대를 던지긴 했어도 난 그녀의 동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고,
간혹 물고기라도 낚아 올릴라치면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그렇게 두어시간 같이 하는 동안 둘만의 대화도 온통 아카시아 향기에 묻혀 버렸다....
그녀가 너무 힘들어 했으므로 바로 집으로 돌아 왔지만, 그녀 외삼촌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아픈 사람을 어데 데리거 갔다 오는거냐고, 집에서는 아픈 사람이 없어져 서울에 연락하고 난리가 났었노라고..
그러게 그녀와는 눈인사도 못나누고 헤어졌다.
그날 아카시아 향내 진동하던 강가에서 그녀와의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나눈 둘만의 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 오늘처럼 아카시아 행내 진동하는 날에는 그때 그 시간속으로 추억여행을 떠나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그녀를 기억하게 되곤 한다.
그 다음날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그녀는 서울 병원으로 올라가고, 난 그녀와의 마지막 햇살을 나눈 죄로 많은 시간 괴로워 해야만 했다.
그렇게 이십여년의 시간이 지나고...........
난 이렇게 오늘처럼 아카시아 향기 잔2잔히 내려 앉는 밤엔 그녀를 기억해 냄으로 내 아름다운 첫 사랑의 그녀를 다시 만나곤 한다.
그녀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시간을 지내고 있을 테지만 가끔은..
아직도 너를 그리워 하는 나를 기억하고 있겠지?
첫댓글 수려한 솜씨에 반해 단숨에 읽어 내렸습니다....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와 알퐁스 도데의 별을 처음 읽었을때의 정갈함이 느껴집니다....
형님도 소나기와 별을 좋아 하십니까?저는 학교 댕길때 매일 읽어도 재미 났습니다.
늘 이맘때쯤에는 가슴앓이를 하곤 합니다.
쫌길어서...시간 한가 할때로 패~스
저에게도 많이 길어서 한가할때 읽어야 겠네요.
다른 카페에 4회에 나누어 올린 글인데 오늘 한 군데로 모아 봤습니다. 너무 길어서 죄송 합니다..^^,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은 느낌입니다.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과찬 이십니다.. 잊고 싶지 않은 추억중 하나라서.. 글로 남겨 보았습니다.
농사를 짓는다고 말하지요? 농사만이 아니라 사랑도 지었군요. 한편의 동화였습니다. 풋풋한 내음이 곳곳에 베어 있어 향기가 전해 집니다. 누구나 추억 하나쯤 갖고 살지요. 마음의 보따리에 고이 싸둔 사랑 혹은 추억이 어느날 소식없이 ?아 온다면 여러 님들은 ........ 아 그런 사랑 하나 갖고 살고 싶습니다. 근 40여년 만에 고등학교 써클 모임에서 만나 좋아 했던 사람을 요즈음 생각지도 않게 만났습니다. 마음이 야릇하더군요. 곱게 늙어 가더군요. 궁금하여 물어 보았지요? '그 때 내가 너를 좋아한 것 알았느냐'고 부답이 더군요. 어제는 그녀와 둘이서 전시회에 갔다 왔다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호되게 꾸짖더군요?
꾸짖음이 노래 소리로 들림은 무슨 이유입니까/
가슴에 묻어두고 지내는 환(煥)은 영영 사그라 들기 전에 한번쯤 태워 보심(?)도 삶에 긴장감을 줄 듯 합니다.. 그냥 옛 추억으로만 만나 보심은 아마 사모님께서도 이해 하시리라 생각 됩니다만....앗... 아닙니다..ㅎㅎ, 저는 이글 올렸다가 지금까지도 종종 마눌 눈치를 보고 있씁니다...ㅠ,.ㅠ
문득, 단발머리들이 떠오르는 한편의 순정 동화처럼 깨끗한 느낌이었습니다...^_^
감사 합니다.. 가슴이 묻어두고 삽니다.
참 진짜 건달농사꾼의 또다른 세상을 봅니다 ^^*
심마니님요... 고맙습니다..
애잔하네요. 어렸을적 놀이도 비슷했던거 같구요. 글구보니 내 첫사랑은 어디에서 뭐할까? 퍽~~~ 별장지기님 한테 한대 맞는소리~~~ ㅎ ㅎ
몰레 한번 찾아 보셔유,.,,별장지기님께는 절대로 비밀로 하시구요...ㅎㅎ,
댓글들만봐도 윗글이 감미로운 사랑이야기란것이 감이 잡힙니다.
풋 사랑이었지요... 그래도 괴로고 힘든 시절 이었지만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이렇게 긴 글인 줄 모르고 읽어내렸는데 ... 하지만 쉼없이 단숨에 읽었어요 ... 설마 설마하면서 .. ㅎㅎ 저라도 이토록 가슴시린 사연을 겪었다면 .. 잊지 못할 것 같아요 ..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 깔끔하고 아름다운 글이었어요 ... ^^
네.. 아주 오랫동안 간직하고싶습니다..
지금의 사모님이시겠지 생각하며 고향에서 재회 했을때 드디어 인연을 맺으시는 구나 그럼 그렇지 생각하며 마지막을 읽어 내렸는데....ㅠ.ㅠ
마눌은 지금도 가끔 눈총을 줍니다.. 그여자가 그렇게 보고 싶냐고.. 물론 지금 당신하고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지요,,,
아카시아 향기 진동하는 알싸한 오월에 가슴한켠이 시려오는 애련함과 첫사랑의 추억이 눈앞에서 아른거립니다. 문득 거울을 봅니다. 그때의 그청년은 어디가고 흰머리 드문드문 난 세파에 시달린 보잘것 없는 인물이....
모습은 세월따라 변할지 모르나 가슴속에 자리잡은 아련함은 변치 말고 살수 있다면 하고 바래 봅니다.. 지나시는 길에 한번 들르셔요..^^
오늘은 비가와서 밭에 풀베다가 들어와 글을 읽었습니다.저도 초등학교 시절 처음 맡는 향이 나는 전학온 도시아이의 냄새를 기억합니다.오랜시간 목욕을 하지않아 냄새나는 나를 소녀에게서 멀리하며 몇분동안 몇마디 나눈것이 아직 기억이 납니다.님께서 잊혀지지 않을 비누냄새처럼...
그렇게 추억하나 가슴에 묻어 두고 나이를 먹나 봅니다.. 간만의 비로 저도 쉴수 있어습니다..
오랫만에 어른을 위한 동화 한편을 읽은 느낌입니다. 애잔하고도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 한켠에 간직하고 계신 건달농사꾼님...세월의 깊이만큼 글도 가슴을 아련하게 적시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