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각 도 수군을 총지휘하기 위하여 두었던 정3품 외관직 이라는
엄청난 위치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마침 이때 선조는 이순신에게 부산을 공격하라고 하지만 이순신은 지형적으로 불리하고 이중간첩인 요시라의 계략에 속지않고
어쩔수없이 어명을 거절하게 되어 하옥되고 그 자리는 원균이 올라가게됨
원균은 당시 일본의 주둔지인 부산을 치기로함
원균은 부산의 적 본진(本陣)을 급습하려고 삼도 수군 160여 척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하였다. 7월 14일 원균은 부산 근해에 이르러, 이 사실을 미리 탐지한 적들의 교란작전에 말려들어 고전하였다.
더욱이 되돌아오던 중 가덕도에서 복병한 적의 기습을 받아 400여 명을 잃었다.
원균과 여러 장수들은 응전했으나 적을 당해낼 수 없어 대부분의 전선들이 불타고 부서졌다.
육지로 도망간 조선수군들은 휴식을 취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에 거의 전멸하게됨
전라우수사 이억기장군 배흥립장군 최호장군은 전사하게 되고 김완(조방관)장군은 일본에 포로로 붙잡힘(나중에 탈출함)
물론 원균도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하게됨
경상좌수사 배설장군만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12척의 배를 이끌고 부대를 이탈하고 도망을 간다.
이로써 조선 삼도수군은 일시에 무너지고 일본군은 남해 일원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서해로 진출하게됨
이때 겨우살아나온 김식에게서 패전보고를 받고 선조는 크게놀라 백의종군하고있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구통제사로 임명하여
수군을 수습함
여기서 배설장군이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탈영을 한것인가 후퇴를 한것인가 의문점이다.
사실 배설장군은 끝까지 싸우라는 명령을 듣지않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한산도로 가서
군량·무기·군용자재를 불태우고 백성들을 대피시킴
이로써 4,5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이룩한 한산진의 철통 요새는 하루아침에 아군의 손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칠천량해전 조선수군이 임진왜란.정유재란에서 패배한 유일한 해전
이순신장군은 전선을 모두잃고 향병들을 모아 다시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도중 배설장군이 12척의 배를 숨겨놓았다는 정보를 얻은 이순신은 배설장군을 찾아가 전선을 어디에 두었냐고
하여 배설장군은 그 위치를 알려주고 이순신 밑으로 들어가게되는데
그 12척의 배가 바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판옥선이다.
만약 배설장군이 명령을 끝까지 완수하고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면 그 12척의 배도 산산조각이 났을것이다.
물론 그 배위에 타있던 병사들까지도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명언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판옥선 12척으로 왜군의 333척의 이르는 군인을 막아낸 엄청난 해전 그러나 그곳에서도 배설장군은
12척의 배로 어떡해 333척을 막느냐면서 또 다시 탈영을 하게되어 결국 권율에게 잡혀 처형당함
난 배설장군이 잘했다는게 아니라 배설장군이 정말 충성스러운 장군이였으면 어쩔까 한다
333척이 아무 방해도 받지않고 서해로 진출해서 도상하여 서울로 들어왔다면 역사가 바뀔것인데..
시도는 좋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을 구한 비운의 장수 배설장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첫댓글 그냥 배설은 운좋게 전함을 수습할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될 뿐이구요...실제로는 굉장히 무능한 장군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심정도 이해가 가는게, 저정도 수치는 못막는게 당연하거든요; 어찌보면. 그냥 살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했던 인물이라고밖에 볼수 없습니다. 전세가 불리하자 자신의 전함을 수습해 물러난것과(기지도 같이 불태우고..) 이순신에게 자신의 함대를 내주고도 두려워 도망쳐 버린것을 보면 말이죠.
그저 안타깝군요..
솔직히 장수된자로서 탈영은 말도안되지만 상황이 어이없긴 했을거에요 .12척이로 수백척 하고 싸운다고하니..미친사람이라고 생각햇을지도..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