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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풍속도
모두들 한 해를 보내느라 분주한 때,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주소를 보니 둘째딸로부터 온 글이다.
또 한 해가 가고 있네요. 금년이 몇 번째이던가요? 우리의 연말파티-. 이번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려 합니다. 항상 테마가 있었죠. 올해의 테마는 다소 난해하지만 ‘가발 혹은 모자’입니다. 의상의 칼라는 자유이되 연말 모임의 성격에 맞으면 됩니다. 그 의상에 어울리는 가발이나 모자를 멋지게 연출하는 것이 포인트. 새롭다거나 놀랍다는 변화를 주어야겠죠. 나중에 보더라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멋진 감각을 기대하겠습니다.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각자 준비해 오실 선물이 있습니다. 예년과 달리 추첨 없이 각자의 선택에 맡깁니다. 선정의 기준은 다양합니다. -나에게 가장 고마웠던 사람. 금년 한 해를 가장 열심히 산 사람. 새해를 격려해주고 싶은 사람. 우리 가족의 화합에 가장 중심 역할을 한 사람- 아이들 세 명도 멤버에 포함시킵니다.(윤태, 승재, 해원) 선물을 두세 개씩 받는 분도 계실 테고 당연히 하나도 못 받는 분도 계시겠죠. 그렇다고 삐치지는(?) 않을 만큼 우리 모두 성숙한 사람들이니까요. 선물의 가격도 제한하지 않겠습니다. 단, 그 사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간단하지만 진지한 코멘트를 준비해오시기 바랍니다.
메일이 한꺼번에 가족들에게 전해지면서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항상 새로움과 감동을 좋아하는 첫째 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며느리는 직장에서 이 글을 읽으며 웃음을 터뜨리자 주위의 동료들이 모여들어 조용한 직장 분위기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고 한다. 그리곤 당장 이벤트 회사에 전화를 걸어 가발을 빌리고자 상담을 했다던가. 반면, 평소 이런 행사에 별 관심이 없는 셋째 딸은 원하는 사람들만 연출하면 되지 않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털어놓았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이 나이에 평생 써보지 않던 가발이나 모자를 쓰는 것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너나없이 준비에 몰두하였고, 그 세세한 내용은 비밀에 부쳐져 서로를 더욱 궁금하게 하였다.
12월 21일 저녁 일곱 시, 둘째딸 집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던 롱코트를 꺼내어 몸에 걸쳤다. 중절모자에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보니, 옛날 드라마 ‘야인시대’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과 흡사했다. 모임장소에 들어서니 모두 모여 있다가 나를 맞는 현관에서부터 폭소가 쏟아졌다. 나 또한 가족들 하나하나의 모습에 감탄하며 우리의 행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외손자 한 녀석은 타조 털로 만든 가발을 쓰고 있어 마치 도깨비 같았고, 또 한 녀석은 완벽하게 산타클로스의 복장으로 성탄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었다. 둘째딸은 60~70년대의 히피풍의 복장에다 긴 곱슬머리 가발에 두건까지 두르고 있어서 이 애비조차도 누구인지, 몇째 딸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변신을 재미있어 하며, 벽면의 장식을 배경으로 가발과 모자를 번갈아 바꾸어가며 사진에 담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다. 아들은 우연히 나와 같은 컨셉의 복장을 해서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며느리는 행사를 마치고 내게 보낸 메일에서 ‘다들 잘 준비해 오셨지만 특히 아버님과 애아빠의 야인시대(?) 세트는 정말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의상 컨셉이 맞아서도 그렇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부자지간이기에 남달라 보였고, 그날따라 더 닮아 보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도훈(나의 손자)이도 그런 모자를 하나 사서 씌우고 의상에 맞출 걸 하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라고 했다. 사진촬영을 끝내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들 모여앉아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탁에는 아기자기한 테이블 데커레이션이 분위기를 높여 주었고, 곳곳에 놓인 촛불로 전등을 대신한 실내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선물 증정을 앞두고는 설렘과 약간의 불안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과연 누가 내게 선물할 것인가. 적어도 저 사람은 나에게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다가도, 혹시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나 좌불안석이 된다. 그동안 이리저리 전화해 한 표 부탁한다며 장난기 섞인 사전 선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받는 것 못지않게 선물 대상자를 고르는 것 또한 고민거리다. 저 사람에게 하자니 다른 사람이 서운해 할 것 같고, 누구에겐 왠지 아무도 안 할 것 같아 내가 챙겨줘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등, 누구 하나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는 이가 없으니…. 선물 증정은 뒷얘기가 무성한 가운데 모두를 긴장시키며 막이 올랐다.
먼저 호명된 사람은 셋째 딸이었다. 며느리가 양털 시트커버를 선물함으로써 셋째 딸은 혹시나 하고 마음 졸였던 탈락의 공포(?)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밝은 얼굴이 되었다. 평소 둘 사이가 좋은 편이어서 어느 정도 짐작이 빗나가지 않았던 셈이다. 한두 사람의 차례가 지나고 큰딸의 호명 차례가 되었다. 항상 주목을 받는 첫째인지라 모두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데, 그는 써 온 글을 차분히 읽어갔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는 새로운 경험, 모두 가족이기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신 자신보다는 언제나 가족이 먼저이며 오로지 희생으로 살아오신 분, 내 모든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모아 어머니께 드립니다.” 하고 약간 목 메인 소리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선물을 전했다. 서로 어깨를 끌어안으며 모녀간의 애정을 새삼 확인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가족들은 뜨겁게 박수를 보냈다. 나는 외손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절 무척이나 아껴주십니다. 저는 이분을 존경하고 사랑해 이 선물을 바칩니다.” 외손녀는 막내둥이에 초등학생이다. 평소 이모들이 끔찍이 귀여워하고 있는지라 그중에서 뽑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뜻밖이었다. 어른들은 앞뒤를 살펴 신중히 결정하지만 아이들이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출하는 것 아닌가. 더욱이 ‘존경’이라는 단어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잊혀지고 있는데, 이토록 귀한 호칭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값진 선물인가. 이제는 내가 호명해야 할 차례다. 머뭇거림 없이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주 큰 목소리로. 모두들 의외라는 듯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버지는 의례히 딸이나 며느리를 선택할 것으로 짐작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는 오늘날까지 아들딸을 구별하지 않고 키워왔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저 네 번째 자식에 불과했을 뿐, 외아들이라 하여 조금도 우대해준 적이 없다. 딸들에게는 관대하고 아들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여 주위에서 역차별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었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해 있을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아들은 여태껏 한 번도 불평을 말한 적이 없다. 어찌 서운함이 없었겠는가. 그런 장남의 듬직한 품성과 부모 섬기는 마음이 우리 집안의 화목을 떠받쳐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선물을 주면서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온몸이 찌릿했다. 어렸을 적에 귀여워서 보듬고 안아주던 기억 말고는 처음 있는 부정(父情)의 표시였으니, 혹여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나 원망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풀어졌을까. 그는 애비의 체온을 가슴으로 느꼈을까. 순간, 시간이 멎은 듯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어떤 눈빛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하나뿐인 아들을 냉대한다며 평생 나에게 불만을 쏟아 붓던 아내도 막혔던 가슴을 조금은 쓸어내릴 수 있었을까. 선물 교환은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의외의 사람이 자신에게 선물했을 때의 기쁨도 커서 고맙다며 진심어린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선물은 한두 사람에 크게 쏠림이 없었다. 모두들 균형을 잃지 않도록 잘 재단하였고, 특히 우리 내외는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두 사람 분의 선물을 더 마련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손자손녀들도 선물을 주고받으며 차별 없이 투표권까지 행사한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마지막 행사인 ‘의상 연출상’ 시상자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결정했다. 두 사람으로 압축된 가운데, 변신의 폭이 가장 컸던 둘째 딸이 뽑혔다. 그는 푸짐한 상을 받아 들고 기뻐했다. 그 기쁨 속에는 성공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 보람과 감격도 함께 하였으리라. 나는 차점이었다. 이 나이에 테마가 있는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성의를 보여준 것이 득표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루한 줄 모르고 자정이 넘도록 한 사람도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배불리 먹고 잡다한 이야기 이외에는 아무 추억거리가 없었던 우리의 놀이문화. 우리의 연말 파티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테마는 가족들 하나하나를 새로이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배려하다보니 인선(人選)이 너무나 힘들었다는 고충을 털어놓으며, ‘정말 내가 우리 가족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는 셋째의 말에 우리 모두 공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새해는 더욱 찬란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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