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추가 좋아
장성호
내가 기억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추, 혹은 고추란 말이라도 입에서 떠난 날
이 없고, 또 나와는 두터운 인연이 있기에 늘 고추란 말만 들어도 좋
다. ‘젊어서는 파란 주머니에 하얀 은돈을, 늙어서는 빨간 주머니에 노란
금돈을 가득 담은 주머니가 무엇이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하며 즐겁
게 놀던 천진난만한 시절 동무들과 모여서 겨울에는 안방에서, 따뜻한 봄날이면 양지
바른 곳에서, 수수께끼 놀이 맴 돌기 놀이를 했다.
수수께끼 놀이에 빠지면 때 가는지도 모르고, 맴돌기 경기를 하다보면 온 세상은 우
리가 돌던 반대 방향으로 신나게 돌아가며 신비로운 요지경 속으로 우리들을 끌어들인
다. 여기에 빠진 우리는 서로 어울려 끌어안고 쓰러져 뒹굴며 바라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제멋에 겨워서 춤추며 뱅뱅 돌아간다.
옛 여름날 보리밥 한 숟가락에 맵지 않은 풋고추 하나 골라 고추장 찍어 먹으면 얼
마나 맛이 좋은지 입안의 혀는 장구채처럼 돌아간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매운 고추
골라 동생에게 주고 먹어봐 맛있어" 하니, 턱 믿은 동생, 입에 넣고 먹다 말고 숟가
락도 내던지고 입안의 밥도 사방에 뱉으면서 펄펄 뛰며 운다. 나는 껄껄 웃으며 옷에
묻은 밥을 터느라 후닥닥거리고, 아버지는 밥상 넘어질 까봐 상을 잡고, 어머니는 울
음 달랄 물 뜨러 가시느라 뛰고, 고추 장난 한번이 점심상에 혼란이 일어났다. 60여년
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나면 혼자서 웃는다.
‘고초(苦草) 당초(唐草) 맵다 해도 시어머니 시집살이 보다 더 할 손가…’ 옛날 시
집살이 얼마나 심했기에 같은 처지의 젊은 여인들 물동이 이고 우물가에 모이면 눈물
어린 구성진 고추타령을 한숨으로 불렀다. ‘작은 고추가 맵다' '고추 먹은 소리하
네’이런 것은 주로 어른들이 어떤 일에 비유하여 흔히 쓰던 말이다. '얼큰해서 좋다,
매워서 싫어' 하는 호감, 즐김, 싫음 속에서 인간 노소의 입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고추다.
내가 어려서 몇 살 때인지 몰라도 어머니가 내 저고리 깃 뒤에 바늘로 고추 하나를
꿰매 달고 업고서 외가에 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옛날에는 아기를 낳으면 사립문에
금줄을 쳤는데 여자 아기면 솔가지와 숯을 끼우고, 남자 아기면 고추를 한가지 더 끼
웠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마당에서 고추를 태워 독한 매운 냄새를 퍼지게 하고 사
립문에 고추를 달아 놓았다. 고추를 금줄에 끼우는 것은 양을 표하는 것이고 저고리
깃에 꿰매 달고 삽작에 매달며 마당에서 태워 독한 연기를 피우는 것은 고추는 병마를
쫓는 마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 시골에서는 약 20여 평씩 고추 농사를 하여 양념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때는 누
구나 이 정도 밖에는 고추 농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주곡농업에서 경제성 높은 농업
으로 탈바꿈하고 싶어, 1965년 봄 200여 평의 밭에 고추씨를 비닐과 농약이 없던 시대
라 노지에 직접 파종했다.
생전 처음 넓은 면적에 고추를 심은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곡식이 있어야 먹고살
지 고추만 먹고사는 재주 있나' 하며 비웃기도 했다. 또 어머니로부터 심한 야단도 맞
았다. 이 해는 봄부터 전국적으로 심한 한해가 와서 전답의 모든 곡식 다 큰 흉년을
당했다. 고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고추밭은 다행히 삼면에 물논이 있어
흉작은 면했다. 가을 내내 따다 말려 담아 놓은 고추 가마니는 밖에는 쥐에 볶여 못
있고 안방 윗방을 식구들이 겨우 잘 자리만 남기고 다 차지했다.
가을부터 천정부지로 치솟는 고추 값에 나는 장사들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받으며 봄
까지 버티었다. 고추가마니를 보면 모로 자도, 가마니를 안고 끼어 자도 좋았다. 비웃
던 동네 사람들도 이제 고추를 부러워했고 어머니 얼굴도 불그레한 고추처럼 환해졌
다. 봄에 가서 고추를 파니 좋은 논 열 마지기 값을 하루에 손에 쥐게 되었다. 고추 먹
고 맴맴 할 때 같이 나는 또 한번 요지경 속으로 빠졌다.
돈이 무엇이기에 이날부터 더욱더 동네 사람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고 가족이
생활고에서 벗어나 늘 웃음꽃이 가득한 가정으로 변했으니 돈의 위력이 큰 것인가, 인
간의 수양이 부족해서 인가, 알 수가 없네. 참사람이 되는 것은 물질로만 말미암은 것
은 아니다, 그러나 물질을 완전히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 평의 보리밭에서는 보리쌀 1되 밖에 생산하지 못 하는데 고추밭 한 평에서 고추
한 근을 따면 돈으로 따져 보리쌀 한말 값인데 어찌하여 주곡농업만 고집하나? 생각
끝에 경제성 높은 작물로 대체 해야지 하고 고추 200여 평을 심은 것이 나를 가난 속
에서 벗어나게 하고 경제적으로 기대의 몇 배 결과가 나타나 나의 앞길에 많은 변화를
준 것이다.
올해도 봄에 고향에 갔더니 이웃에 사는 분이 고추모 한판과 퇴비를 주어 뜰 앞마당
에 정성껏 심었다. 삼십여 포기의 고추는 1주일에 한 번 보니 자라는 것이 보이는 듯
하다. 마루에 걸터앉아 자라는 고추를 바라본다. 때가 되었나 잎과 꽃, 파란고추, 붉
은고추, 고추대에 매달려 어우러져서 하나의 꽃밭이 되었다. 고추씨를 심으면 어김없
이 작년에 자라던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고추가 달리는 신비로움과, 고추의 매혹, 그
리고 옛 고추농사 추억에 사로잡혀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어 바라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저 신비로움 속에서 살고 있으니 하나님의 천리(天理)와 자연의 섭리(燮
理)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고추야! 너는 네 몸을 원하는 사람이면 마음대로 필요한곳을 따다 '구미(味)의
소원을 푸소서.' 하는 마음으로 얌전 앉아 원하는 이를 기다리는 것 같다. 동글동
글한 원뿔형의 청홍색고추, 그리고 흰꽃, 청홍백(靑紅白) 삼색이 어우러져 모나지 않
게 사는 것은 질투 없는 융화로, 쓰고(苦) 맵고(辛) 단(甘)맛을 잘 조화 시켜 말로 표
현 할 수 없는 특유의 맛으로 세인(世人)의 입맛을 돋우는 것은 생전에 사랑과 관용을
베풀며 서로 돕는 은혜 속에서 살겠다는 마음의 표시로구나.
나는 이 자리서 바로 앉아 기도하고 싶다, ‘삼일간 마음을 잘 수양하면 천 가지 보
배를 얻는 것이요, 백년간 욕심내어 모은 재물도 잘못하면 하루아침에 티끌로 변한
다.’(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는 말이 있다. 오늘 이야말로 고추 너를 보는
내가 부끄럽다 내 평생 너와 접하고 살면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살았으니, 남은
세월 이나마 너처럼 사랑, 융화, 관용을 겸비한 인간으로 살기 원하면서……
2005/20집
첫댓글 흰꽃, 청홍백(靑紅白) 삼색이 어우러져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은 질투 없는 융화로, 쓰고(苦) 맵고(辛) 단(甘)맛을 잘 조화 시켜 말로 표
현 할 수 없는 특유의 맛으로 세인(世人)의 입맛을 돋우는 것은 생전에 사랑과 관용을
베풀며 서로 돕는 은혜 속에서 살겠다는 마음의 표시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