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위로하고 기다리시는 예수님
하느님은 지금 여기에 살아계신다. 그분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름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님 제자들이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하얗고 긴 수염에 번쩍이는 의자에 앉아 계시거나, 아니면 우리 사람은 전혀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모양으로 천둥처럼 구름과 안개처럼 계시는 분으로 상상으로도 그려지지 않는 분이다. 반면에 예수님은 상상하며 그려볼 수 있는 분이다.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서 나자렛에서 사셨다. 그분은 우리 중 하나였다. 그분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그 관계를 점점 돈독히 해가며 부자 부녀 관계를 넘어 그분과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과 맺는 복음적 우정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과 가까워진다. 그분은 다른 위인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책이나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 살아계신다. 그분은 내 뒤에서 내 생활을 감시하며 잘못과 죄를 적발하고 책벌하는 경찰이나 검사가 아니다. 오히려 허물을 덮어주고 죄로 넘어져 깨진 무릎에 약을 발라주신다. 지쳐 쓰러진 나에게 힘내서 빨리 일어나라고 다그치며 재촉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당신도 내 옆에 앉아 내가 일어나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신다. 때론 너무 조용히 계셔서 안 계신 거 같다. 당신께 말을 걸어오기를, 문을 열어 맞아들여 주기를 기다리신다. 2천 년 전에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하셨던 그대로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하느님은 나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기다려 주신다.
그분은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 우리처럼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한 사람이셨지만, 그분 말씀과 행동 그리고 마음은 이 세상 사람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가지려고 하는데, 그분은 내어주려고 하셨다. 우리는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데, 그분은 여기를 떠날 준비를 하셨다. 그분은 때를 기다리셨다. 사람들이 당신을 붙잡아 살해하게 되는 때를 준비하셨다. 우리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그분 마음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상정보를 다 알아도 그분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당신의 그런 삶과 선택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믿고 고마울 뿐이다. 그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었고 그들의 모함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그분은 그러지 않으셨다.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게 아니라 그것이 당신이 세상에 태어나신 목적이고 살아가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외 다른 길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교우들은 신앙과 교회에서 위로와 평화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데, 교황님과 교회 지도자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선교사 제자’라고 하며 복음을 널리 전해야 한다고 한다. 선교사가 되거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례성사를 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그러라고 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이 말씀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개종시키라는 명령이 아니라 당신이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심을 증언하라는 명령으로 들린다. 세상에 계실 때 아버지 하느님이 당신과 함께 계심을 믿으셨던 거처럼 말이다. 내가 받은 위로가 너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고, 내가 받은 사랑과 자비를 너도 받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수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분이 제게는 주님이십니다. 죽을 때를 아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죽임을 당하는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영원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신비로운 문 같습니다. 이해하려고 괜한 힘 쓰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생명보다 소중한 이 믿음을 지켜주시고 믿는 대로 살 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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