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정호승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오늘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고
네가 내 오른뺨을 칠 때마다 왼뺨마저 치라고 하지는
못했으나 다시 또 배는 고파 허겁지겁 자장면을 사먹고
밤의 길을 걷는다
내가 걸어온 길과 걸아가야 할 길이
너덕너덕 누더기가 되어 밤하늘에 걸려 있다
이제 막 솟기 시작한 별들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감히 푸른 별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머리 위에 똥을 누고 멀리 사라지는 새들을 바라본다
검은 들녘엔 흰 기차가 소리없이 지나간다
내 그림자마저 나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어젯밤 쥐들이 갉아먹은 내 발가락이 너무 아프다
신발도 누더기가 되어야만 길이 될 수 있는가
내가 사랑한 길과 사랑해야 할 길이 아침이슬에 빛날
때까지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부러진 나무젓가라과 먹다 만 단무지와 낡은 칫솔 하나뿐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시인의 시 이야기]
정호승 시인은 내가 아는 한 ㅁ낳은 시인들 중에서도 가낟 돋보이는 시를 쓰는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의 시는 전혀 어렵거나 낯설지 않습니다. 가장 쉬운 시어로도 깊이 있는 시를 쓸 줄 아는 우리나라 시인들 중 대표적인 시인이니까요.
이 시<다시 자장면을 먹으며>에도 시인의 이런 시적 스타일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시에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삶의 시련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실패가 따르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과 좌절과 눈물과 한숨을 쉬게 마련이지요. 아마 시인 자신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쓰라린 감정마져도 쉬운 시어로 풀어내며, 새로운 날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는 시를 빚어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만일, 당신이 실패와 좌절로 인해 고통스럽다면, 이 시를 읽어보세요. 이 시를 읽고 나면, 나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발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머잖은 훗날 행복의 웃음을 짓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위로와 평안의 시》
엮은이 : 김옥림, 펴낸이 : 임종관
김옥림 :
-시, 소설, 동화, 교양, 자기개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교육 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침이 행복해지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안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365일 마음산책》, 《법정의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멋지게 나이 들기로 마음먹었다면》,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마음에 새기는 명품 명언》, 《힘들 땐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법정 시로 태어나다》, 《이건희 담대한 명언》 외 다수가 있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