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7일(수)
* 시작 기도
주님...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언약을 너무 쉽게 생각하여서 언약 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언약은 깨져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가 없으시기에 그 언약을 깨트리지 않으시고 모압에서 다시 갱신을 하셨습니다.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그들의 인도자가 되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쉐마하면서 언약 안에 머물러야 하건만 그들은 또 다시 쉐마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언약을 맺도록 하여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갱신하셨습니다(수 24장).
이렇게 끊임없이 불의를 행하는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언약을 갱신하여 언약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은 실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 또한 제2 제3의 이스라엘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불의함은 마땅히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에 들어가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새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아들의 생명을 주셔서 그 생명으로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들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인함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를 힘입어 파레시아로 담대히 아버지 품으로 나아갑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죽었듯 이 시간 나의 옛 사람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2:1-8
제목 : 여호야다가 교훈하는 날 동안에는
1 예후의 제7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40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6 요아스 왕 제23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 나의 묵상
제사장 여호야다의 혁명이 성공하여 아달랴가 축출당하고 요아스가 왕이 되었다.
요아스는 북이스라엘의 예후가 다스린 지 7년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40년을 다스렸다(B.C. 835-796).
그의 어머니는 브엘세바 사람 시비아였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하지만 산당은 없애지 않아 백성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였다.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성전을 수리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바친 모든 헌금, 곧 의무적인 예물과 서원예물과 자원예물을 회계 담당자(아는 자)로부터 받아 그것들로 성전의 훼손된 부분을 수리하여야 했다.
그러나 요아스가 왕이 된 지 23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은 성전의 훼손된 부분을 수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을 성전수리의 직임에서 해임시켰다.
이제 회계 담당자들은 백성들로부터 모은 예물을 제사장에게 주지 않고, 직접 성전수리를 담당하는 자에게 줄 것이다.
이에 제사장들은 회계담당자들에게 돈을 받지 아니하고 성전수리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요아스는 7세에 왕이 되어 40년간 예루살렘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는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하였다.
여기서 ‘교훈하다’(히, 야라)의 본래의 뜻은 ‘계시로 인도하다’이다.
또한 ‘인도하다’ ‘가르치다’의 뜻을 가진다.
따라서 여호야다는 다름 아니라, 그가 요아스를 왕으로 기름 부을 때 주었던 율법 책으로 그를 가르친 것이다.
(11:12)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한편 말씀으로 교훈을 받은 요아스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훼손된 성전을 수리하도록 명한다.
여호와의 성전은 요아스 직전 바알을 숭배한 아달랴가 다스리면서 훼손되었다.
이에 성전의 수리를 명한 것이다.
(대하 24:7) 이는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파괴하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들을 바알들을 위하여 사용하였음이었더라.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예물을 회계담당자(NIV, treasurer)를 통해 받았다.
백성들이 드린 예물은 의무적인 예물(출 30:11-16; 38:25-26), 서원예물(레 27:1-24), 자원예물(레 22:18-23; 신 16:10)이었다.
그러나 요아스가 왕이 된지 23년이 되도록 성전의 수리는 이행되지 못하였다.
그러자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다른 제사장들을 불러 그 책임을 묻고 성전수리의 직임에서 그들을 해임시켰다.
이때는 요아스가 30세가 된 때로 제사장 여호야다는 나이가 들어 무력해졌다.
요아스는 성전수리가 지체됨을 이유로 자신과 국가를 제사장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와 ‘야다’(알다)의 결합어이다.
그는 요아스를 계시로 인도하였는데, 계시의 근거는 여호와의 말씀(율법책)이다.
요아스가 계시로 인도함을 받는 동안 그는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하지만 여호야다의 사후에 그는 말씀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였다.
(대하 24:17-18)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부재,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히, 야다)이 없음으로 인해 멸망의 길로 갔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히, 야다)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신약시대 계시로 인도하는 '여호야다'는 진리의 영, 성령이시다.
성령은 영생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께서 선포하신 영생의 말씀은 그가 승천하신 후 보내신 성령에 의해 실재 되는 것이다.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질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따라서 성령은 계시로 인도하는 진리의 영이다.
진리의 영이 인도하는 진리는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영생이다.
여기서 영생의 본질은 만물 위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사귐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리하여 아버지 집에 거하게 하며, 창세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보게 한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 아버지 집을 떠난 자는 스스로 보기에 탕자이다(눅 15:13).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잃어버린 자요, 죽은 자인 것이다(눅 15:24).
모든 사람은 아버지 집, 곧 거할 성읍을 찾아 유리방황한다.
그 곳에 들어가기까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주리고 목이 말라 그 영혼이 피곤하다.
그런 인생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적이 나타났다.
곧 목이 말라 부르짖는 자를 진리로 인도하여 거할 성읍, 아버지 집으로 이끄신 것이다.
그는 진실로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시 107:4-9)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런데 이처럼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영생을 얻은 자는 성전이다.
신약시대 성전은 부활하신 아들의 몸이며(요 2:21), 그와 함께 일으킴을 받은 영생 얻은 자이다(골 2:12).
이제 성전은 성령이 거하는 성도의 몸이며(고전 6:19-20), 그들이 모인 영생의 공동체이다(고전 3:16-17).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은 새 언약의 규정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는 자이다(고후 6:16).
새 언약의 규정은 큰 자나 작은 자가 각각 하나님을 아는 사귐에 이르는 것이다(히 8:11).
영생을 얻은 자는 날마다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성전을 거룩하게 한다.
곧 보혈을 힘입어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런데 그런 성전을 더럽히는 아달랴의 역사와 바알신앙의 위협이 현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물을 다 바쳐 성전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드리는 예물은 가장 귀한 것, 몸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이다.
그 때에 우리 각자와 우리가 속한 영생의 공동체는 거룩한 성전이 된다.
곧 하나님과 그 아들과 더불어 갖는 완전한 사귐과 교제가 이루어진다.
성전이어야 할 나는 그 성전인 아버지 품을 박차고 나간 탕자였다.
그렇게 탕자가 된 나는 유리방황하며 먹을 것이 없어 돼지를 치고 그들이 먹는 쥐엄열매라도 먹고자 하였으나 그조차 마음껏 먹을 수가 없는 거지 중에 상거지였다.
내게 닥친 고난이 나를 아버지 집을 바라보게 한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조차 배부르게 먹지 않는가?
그 생각이 들자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 집을 향하여 걸음을 떼었다.
물론 집이 가까워 오자 고개를 들 면목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데 누군가 나를 덥석 안는다.
눈을 떠서 다시 보니 바로 나의 아버지가 아닌가?
이렇게 아버지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인생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가장 밑바닥 인생 곧 고난의 극치를 달릴 때 아버지 집을 사모하며 바라보게 되었고 돌아서서 아버지 품으로 나아갈 때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함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얻을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얻었다.
무엇보다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생명을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가 아버지 집 곧 성전을 박차고 나간 탕자였습니다.
이런 나는 아버지 보시기에 잃어버린 자요 죽은 자입니다.
그럼에도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여 나를 당신의 품으로 보듬어 안아주셨습니다.
아주 진멸됨이 마땅한 자인데 그런 나를 어떻게 다시 살리셨는지요?
이것이 바로 죽음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임을 믿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사는 자, 주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 내게 은혜입니다.
이는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과 신실하심입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가능하겠습니까?
나는 ‘없음’이요 무(無)입니다.
나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내 안에 영원한 생명으로 거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성전으로 존재합니다.
나를 받아주신 그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