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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영박물관
개요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1759년 현재의 자리에 개장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서유럽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꼽힌다.
영국의 여러 주요 박물관들처럼 입장료는 무료다.
박물관에는 입장료 대신 박물관에 기부해 달라는 차원에서 입구나 출구에 기부함이 놓여있다.
기부인 만큼 돈을 내는 것은 자유이며,
내는 사람들은 보통 5파운드나 10파운드 지폐 한 장을 넣는다.
세계적인 박물관이고 전 세계에서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만큼 기부액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유지, 보수 비용이 워낙 커서 영국 정부 예산에서 일정 부분 지원받는다.
한국에서는 박물관 입장료가 그렇게 비싸지 않지만
외국의 여러 사설 박물관들은 유지비 때문에 입장료가 높은 경우가 많아 5파운드도 저렴한 편이다.
입장료가 무료인데다 상당한 질의 컬렉션을 보유한 세계적인 박물관이라서
매년 수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입장 인원이 많으면 줄을 서야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박물관이었으나,
대영제국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뻗어나감에 따라 타국에서 영국 본토로 가져오는 유물들이 늘어났고,
소장한 유물들을 수용하기 위해 점차 부지를 넓히고 규모를 키운 결과 오늘날의 크기에 이르렀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K.622), 3악장 론도알레그로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3. Rondo Allegro, K.622
대영 박물관 (British Museum)
영국 런던에 위치한 대영 박물관은
영국의 박물관이 아닌 전 세계 인류의 역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18~19세기,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은 세계 각지의 문화재와 미술 작품들을 끌어 모았고,
현대 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컬렉션을 완성했다.
현재 소장된 유물은 약 800만 점에 이른다고 한다.
대영 박물관은 의사이자 박물학자였던 한스 슬론 경이
1753년 국가에 기증한 8만 점의 소장품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왕실의 장서와 귀족들의 기증을 받아 컬렉션이 다양해졌고,
1759년 세계 최초의 국립 박물관으로 몬태규 하우스에 개관하였다.
소장품이 계속 늘어 1852년에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었으며
2000년에 중앙 광장을 유리 천장으로 뒤덮은 그레이트 코트가 정비되었다.
전시는 고대 이집트를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그리고 영국에 이르는
전 세계 유물을 총 망라하고 있으며 대표 유물들만 찾아봐도 서너 시간은 걸리는 세계 최대 박물관이다.
명칭
대영박물관의 영어 명칭은 '브리티시 뮤지엄(the British Museum)'으로,
일반적으로 '대(大)'로 번역하는 'Great' 등의 수식어는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박물관 측의 공식 한국어 안내문에서도 '대영 박물관'으로 표기한 바 있고,
국내 대다수 언론이나 서적에서도 대영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중국과 일본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번역명은 한자어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이다.
일각에서는 원어를 살려 '대영박물관' 대신 '영국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며,
일부 여행 가이드북이나 교과서 등에서는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국박물관'이라는 명칭은 '영국 소재의 박물관'이라는 일반명사로 혼동될 여지가 있으며,
어휘 브리튼(Britain)을 '영국'으로 번역하는 것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대영"을 그저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번역어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래 '영국'은 '영길리' 즉, 잉글랜드의 음역이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연합 왕국)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영국 전체 중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연합 왕국을 '영길리국(英吉利國)' 즉 '영국'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구분을 위해서 연합 왕국 전체를 지칭할 때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도 했으며,
이것이 '대영박물관'이라는 번역의 유래가 되었다.
이 밖에 음차하여 '브리티시박물관'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국립중앙박물관 국제교류홍보과의 한 보도자료에서는
'영국 브리티시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박물관’을 왜 ‘대영박물관’이라 부르나
[강상헌의 바른말 옳은글]
식민지배 언어적 잔재일 뿐, 영국박물관으로 불러야 마땅
강상헌 언론인
2012.05.13
구시대 명칭 ‘대영박물관’이 우리 사회의 의식 밑바닥에 너무도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인가?
심지어는 영국인들마저도 어색(語塞)하게 생각하는 그 이름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당연하다.
‘대일본제국’이란 말은 식민지시대를 살았던 선배 세대에게 익숙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해방되던 날 태극기를 처음 보았고,
공식적으로는 우리말 이름으로 처음 통성명(通姓名)을 했다는
그 마음에 새겨져 있을 상처의 깊이는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겠다.
대영제국(大英帝國)이란 말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들었다.
무력(武力)으로 세계를 석권했던 영국을 지난 시기에 불렀던 단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도 했다. 이 ‘대(大)’자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일제가 본보기로 영국을 설정한 까닭은 효과적이었겠다.
자신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도 ‘저 대영제국을 보라’는 깃발은 설득력이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말이다.
영국과도 같은 힘을 지닌, 또 세계를 ‘다스릴’ 이유를 가진 대(大)일본을 과시하기 위해
일본이 내걸었던 대영제국이라는 깃발로 우리는 그때 과거의 영국과 만났다.
대미국 또는 대중국이란 말은 없다.
대영제국도 대일본제국도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遺物)일 따름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관성(慣性)이 우리에게 남았다.
간혹 그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대영박물관’이란 이름 말이다.
런던에 있는 영국의 국립박물관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을 이렇게 부른다.
왜냐고 묻는 이도 별로 없다.
혹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영국박물관의 관장이었던 데이비스 윌슨 박사는
“우리 박물관의 유일한 이름은 ‘영국박물관’이다”라고 방한(訪韓) 당시 필자에게 분명히 말했다.
일부 국가에서 ‘대영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자신은 모르겠다고 했다.
인터뷰 기사에 그의 직함을 ‘영국박물관 관장’이라고 썼더니
왜 ‘대영박물관’으로 쓰지 않았느냐면서 취재데스크와 편집기자가 확인하기 위해 각각 전화를 했다.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1983년 3월 8일 동아일보 참조)
일본의 언론도 과거 ‘대영박물관’이란 이름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공식적으로는 ‘영국박물관’을 쓴다.
일본어로 된 관광안내서 등에는 영국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이란 이름이 섞여있기는 하다.
유독 우리만 아직 거의 ‘대영박물관’이다. 필자는 이를 식민지배의 언어적 잔재(殘滓)로 본다.
Great Court : 여러 전시실이 연결되는 중앙홀 같은 곳
2000년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전시품
전시품이 워낙 방대해 전시 유물을 자주 교체하며, 연구 목적으로 빠지는 경우도 잦다.
리모델링이나 공사도 잦아서 관심있는 유물이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
이 점 유의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공식앱에서 추천하는 탑10 관람물은
로제타석(204), 아시리아의 사자사냥부조(214), 엘긴 마블(252),모아이(252),
왕의 머리(184), 아즈텍의 쌍두사(141) 스리랑카의 타라 불상(611),
데이비드 화병(331), 카테벳 미라(361), 루이스 체스맨(502)이다.
무료지도에 Don't miss 라고 유명 소장품이 나와있기도 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
구글 스토어나 앱 스토어에서 British Museum Audio 앱을 다운받아 사용하면 된다.
단 오디오 가이드 설명은 한국어가 없으므로
관심있는 유물에 대한 정보는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앱은 무료지만 컨텐츠를 보려면 4.99파운드를 결제해야 한다.
결제 전에는 일부 컨텐츠만 미리볼 수 있고 저렴한 옵션을 선택하면
해당되는 유물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결제 후에는 데이터를 미리 저장하고 오프라인으로 재생 가능하니
미리 설치하고 데이터를 미리 다운로드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디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서 한 바퀴 돌고,
관심 있는 유물 위주로 다시 관람하는 것이 시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입구에서 지도를 판매하는데 지도는 안쪽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다만 무료로 제공되는 지도는 흑백으로만 제공되고, 컬러 지도는 돈주고 사야 한다.
참고로 컬러 지도는 시대별로 색부분을 해두었기 때문에 보기 편하다.
하지만 오디오가이드 앱에서도 컬러 지도를 제공하므로
지도를 구입하기보다는 안쪽 도서코너에서 15파운드에 판매하는
한글판 가이드북을 구매하는 것이 낫다.
전시물은 전 세계에 걸쳐 지역별로 전시되고 있다
1. 이집트, 수단 전시관
2. 그리스, 로마 전시관
3. 중동 전시관
4. 아시아 전시관
5. 영국, 유럽, 선사시대 전시관
6.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전시관
☆: 타국이 반환을 요구하는 약탈문화재.
1. 이집트, 수단 전시관
기원전 6천 년의 신비를 가진 고대 이집트인의 문명과 그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조각들로
고대 이집트 세계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
로제타 스톤에 쓰여있는 고대 상형문자의 해독으로 알 수 있게 된 이집트의 역사와 종교
그리고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를 강하게 믿었고
죽은 후 부활하기 위해 죽은 몸을 미이라로 만들어 피라미드에 보관했다.
다양한 유형의 미이라들은 이집트인이 믿었던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미이라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 그리스 상형문자 해독의 실마리를 제공한 로제타스톤
로제타석(Rosetta Stone)
대영박물관의 명실상부한 간판급 유물이자 가장 유명한 유물.
1799년 7월 15일에 프랑스 육군 중위가 발견한 것을 후일 영국이 가져와 연구했으며,
이후 언어학자인 샹폴리옹이 로제타석을 통해 베일에 싸여 있던 히에로글리프 해독법을 깨우치면서
대대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내용은 대략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사제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을 찬양하는 내용이지만
똑같은 내용이 히에로글리프, 민중문자, 그리스 문자로 3번씩이나 반복해서 쓰여 있어서
비교대조를 통해 해독을 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로제타석 참조.
▲ 이집트 관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람세스 2세 흉상(Bust of Ramesses II)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석조 흉상.
1816년 조반니 벨조니가 룩소르 신전 유적에서 발굴해 영국으로 옮겨왔다.
이 흉상을 보고 인생 무상과 권력의 덧없음을 말하는 시 오지만디아스가 쓰이기도 했다.
흉상 오른쪽 가슴에 뚫린 구멍은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흉상을 프랑스로 옮겨가려다 실패한 자국이라는 말이 있다.
무게는 7.25톤에 달하고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제작되었다
미라 진저(Gebelein predynastic mummies)
기원전 3400년경 이집트 선왕조 시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미라 6구 중 가장 유명한 미라다.
붉은색 머리카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영미권에서 붉은 머리를 뜻하는 진저라는 별명이 붙었다.
1901년부터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진저'라는 별명으로 부르지 않는다.
한때 발견자가 자기 동생을 죽여 미라로 만들어서 박물관에 납품했다는 괴담이 돌았다.
대피라미드의 외벽(Casing of Great Pyramid of Giza)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기자의 대피라미드 바깥을 덮고 있던
석회암 외벽 조각의 일부로 보존 상태는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한다.
1838년에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떼와서 대영박물관에 안치했다.
이집트 관련 유물이 많아서 박물관 내에서 유물들을 순환 배치하면서 전시하고 있는데,
외벽 조각은 현재 전시되고 있지 않다.
대스핑크스의 턱수염(Beard of Great Sphinx of Giza)☆
기자의 대스핑크스의 턱수염이다.
영국이 1800년대에 오래전 파손되어 앞발 사이에 떨어져 있던
스핑크스의 턱수염 조각을 본국으로 가져왔으며,
대영박물관에서 인기 있는 유물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대스핑크스의 석질과 색을 추정해 본 결과,
처음부터 스핑크스에 턱수염이 달려 있던 것은 아니고
후대의 파라오들이 만들어 붙였던 것이라고 한다.
이집트가 정부 차원에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네바문의 무덤 벽화(tomb-painting of Nebamun)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대 이집트 예술품 중 가장 유명한 무덤 벽화다.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테베 인근의 신전에서 일하던 관료 네바문의 무덤에 그려져 있던 벽화로
가족을 이끌고 새 사냥을 하는 네바문과 연회에 부른 악공과 무희들,
상차림과 가금류, 생선 등 당대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1820년경 무덤이 도굴되어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고,
벽화 파편 중 다수를 대영박물관에서 매입했다.
호르네드즈테프의 미라(Mummy of Hornedjitef)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신관 호르네드즈테프의 미라와 목관이다.
기원전 220년 경에 만들어졌고, 정교한 수준의 목관과 미라, 그리고 데스마스크 덕분에 유명해졌다.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것에 비하면 훨씬 덜하지만 확실히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2. 그리스, 로마 전시관
아테네 신전인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40년 경에 지어졌다가
천년 후엔 기독교 교회로, 다시 천년 후엔 이슬람 회당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전쟁을 위한 화약창고로 쓰이다가 1687년 폭발했다.
폐허가 되어버린 신전에 기적적으로 남아있는 조각들 상당 부분이
이 곳 영국 박물관에 옮겨져 복원되었고, 관람객들에게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신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해주고 있다.
▲ 그리스 아테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대영 박물관
▲ 그리스인들은 대영 박물관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까?
▲ 이 유물들을 파르테논 신전에 다시 돌려 놓을 수는 없을지?
엘긴 마블(Elgin Marbles)☆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를 장식한 조각상들과 부조 조각.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 파르테논에 남아 있던 조각들을
엘긴 경이 7만 파운드를 들여 모국으로 가져온 것이다.
유물의 가치와 규모가 상당해서 그리스 정부가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가 묵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반 던지는 사람(Discus Thrower)
기원전 450년경 고대 그리스에서 미론이 만든 청동 조각상을 원본으로 만들어진
고대 로마 시대의 대리석 복제품이다.
복제품이기는 하지만 기원후 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도 오래 되었고,
아름다움이 뛰어나 가치는 충분하다.
1700년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이후 1805년에 대영박물관으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
발굴 당시 머리와 코, 발 부분이 파손되어 있었지만 후에 현재처럼 복원되었다.
마우솔레움 조각(Mausoleum of Halikarnassos)☆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마우솔로스 영묘를 장식하던 대리석 조각이다.
마우솔로스 왕의 조각상, 그리스와 아마존 여인들 사이의 전투를 묘사한 부조,
마우솔레움 가장 꼭대기에 세워져 있던 사두마차를 끌던 말 한 마리의 조각 등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는 폐허에 불과한 마우솔레움의 얼마 남지 않은 유물로 그 가치가 높다.
튀르키예 정부에서 꾸준하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 조각(Temple of Artemis)☆
위의 마우솔로스 영묘와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유물이다.
현존하는 몇 안되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관련된 유물 중 하나이다.
신전의 기둥들을 받치던 화려하게 조각된 기둥 받침 1점,
그리고 이오니아 양식으로 만들어진 기둥주 장식 한 점이
1872년 이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기둥 받침에 새겨진 인물들은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페르세포네 등이라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랠리의 비너스(Crouching Venus)
영국의 화가 피터 랠리가 소유했던 수집품들 중 하나여서 '랠리의 비너스'라고 불리지만,
'웅크린 비너스'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
미의 여신 비너스가 목욕 중 자신의 모습을 들키자
놀라 제 나신을 가리는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해서
비너스를 묘사한 수많은 조각들 중에서도 유명한 편에 속한다.
서기 1세기경 로마인들이 그리스 조각을 베껴 만든 것으로
현재는 영국 왕실에 소유권이 있다.
에레크테이온 여인상(Erechtheion Statue)☆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떠받치던 6개 여인상들 중 하나로
1816년 영국이 아크로폴리스에서 통째로 가져갔다.
기원전 400년경에 만들어졌고 높이는 약 2m 정도로 실제 사람의 크기와 비슷하다.
그리스 측에서 여인상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 통치자의 권위가 느껴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두상' (이탈리아, 170-180년)
▲ 이상적인 남성미를 묘사하는 '판의 대리석상' (기원전 45-25년)
The Piranesi Vase
Marble crater. Roman, second century AD, restored 18th century.
3. 중동전시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금의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의 국가를 포함한 지역에서
기원전 7천 년 경에 생긴 문명이다.
성경에만 있고 역사책엔 기록되지 않았던 아시리아의 발견이 19세기 말에 이루어지면서
이 지역의 문명은 유물을 통해 그 존재를 확실히 입증했다.
메소포타미아에 등장한 무시무시한 패권국가 아시리아의 용맹함과 잔인함
그 이면에 예술성과 지성도 엿볼 수 있다.
님루드 렌즈(Nimrud Lens)
아시리아의 님루드 왕궁 유적에서 발견된 수정 유물로,
독특하게도 볼록렌즈의 효과를 내어서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볼록렌즈 자체의 발견이 10세기 경에 이루어졌고
볼록렌즈 안경은 12세기가 되어서 나왔는데
해당 유물은 무려 기원전 8세기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계에서는 님루드 렌즈의 효과는 우연의 산물일 뿐,
희귀한 장식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우르의 군기(Standard of Ur)
수메르의 도시 우르에서 발견된 유물. 조개 껍질과 청금석 모자이크가 박힌 나무 상자다.
세계 최초의 문명에서 만든 만큼 무려 4,600년된 유물이다.
전쟁과 평화의 모습을 새겨넣었고 1920년대에 우르의 왕릉에서 발견되었다.
길가메시 서판(Gilgamesh Flood Myth)
대략 기원전 7세기 경에 만들어진 토판으로
길가메시의 영생을 얻기 위한 여정을 담아낸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들 중에서도 홍수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
니네베의 유적에서 발굴했고 현재는 대영박물관 55번 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다.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Library of Ashurbanipal)
아시리아의 왕궁 유적에 소장되어 있던 3만 점이 넘는 토판을 통째로 가져왔다.
그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행정 문서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장르의 엄청나게 방대한 양 덕분에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구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유물들 중 하나다.
키루스 원통(Cyrus Cylinder)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정복한 직후 남긴 칙령과 업적을 새긴 원통으로,
1879년 이라크에서 영국 조사단이 발견했다.
발굴 당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있던 것을 큰 조각 2개로 합친후,
두 조각을 합쳐 원래의 원통 모양으로 복원한 것이다.
힘과 무자비함을 강조한 아시리아 아슈르바니팔왕의 비문과는 달리,
바빌론의 군주가 신들을 노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자
키루스 2세가 올바르게 바로잡아 평화를 되찾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바빌론의 외국인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는 대목이 있어
키루스 2세가 바빌론 유수를 끝내고 유대인들을 해방했다는 사료로 여겨지고 있다.
팔레비 2세의 적극적인 홍보로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원통의 복제품이 UN본부에 전시되어 있다.
라마수 석상은 사람 얼굴에 독수리의 날개 그리고 황소의 다리를 한 반인반수 조각상이다.
자세히 보면 다리가 다섯개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보는 각도에 따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면에서 보면 성벽을 굳건히 지키는 모습,
측면에서 볼 때는 바로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진취적인 모습이다..
이 라마수 석상 또한 유물 운반을 위해 거대한 석상들을 쪼갰다가 다시 붙였다고 한다..
그 흉터가 고스란히 보이는게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대표하는 또 다른 유물, 사자사냥 벽화 조각은
왕의 침실로 향하는 길목에 만들어진 진흙 조각이다.
왕권과시를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50마리의 사자가 단 한 마리도 똑같이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하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표현이 굉장히 사실적이고 정밀했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만큼, 런던에는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
습도 조절을 위해 전시실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운이 좋은 분들만 만나 볼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4. 아시아 전시관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대영박물관의 아시아 전시관에서 전시 중인 여러 점의 일본 회화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일본 에도 시대의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그렸으며,
에도 시대 뿐만 아니라 일본 회화 작품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그 판본 중 하나이다.
신라 금귀걸이(Silla Ear-Ring)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외국으로 반출된 수많은 유물들 중 하나다.
대영박물관의 소개에 따르면 1938년에 일본에게서 공식적으로 매입한 것이라고 한다.
1,600여 년 전 만들어진 유물임에도 굉장히 정교한 세공술을 자랑하는
대영박물관 내 대표적인 한국 유물이다.
안타깝게도 외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고고학자들이 쉽게 분석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고 한다.
춤추는 시바 신상(Dancing Shiva Statue)☆
힌두교 파괴의 신 시바의 춤추는 모습을 조각한 신상.
시바 신의 발 아래에는 짓밟힌 악마의 모습이 조그맣게 조각되어 있고
세상 만물을 상징하는 순환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촐라 제국 시대인 11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주형틀에 녹인 청동을 부은 후 굳혀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현존하는 수많은 시바 신상들 중 가장 유명한 신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사이 인도 타밀나두 주에서 가져왔고,
한동안 여러 유럽인 수집가들의 손을 전전하다
1987년부터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참고로 신상 왼쪽 어깨 위쪽의 아치가 약간 부서져 있다고 한다.
데이비드 화병(David Vases)
원나라 시대의 청화백자로, 높이 60cm에 달하는 병의 목부분에 서기로 1351년 4월,
당대 옥산현에 살던 '장원진'이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도교사원에 제작해 바친 내역이 적혀 있다.
제작 연도를 정확하게 확인 가능한 몇 안되는 백자 유물이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 세계의 청화백자 유물 중 가장 오래된 유물로 꼽히고 있다.
대영제국시기에 활동한 사업가 퍼시벌 데이비드 경이
중국에서 구입해 런던 대학에 기증한 유물이다.
5. 영국, 유럽, 선사시대 전시관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문명이 시작이 점차 유럽 대륙으로 이동하였다.
유럽과 영국의 고대 유물들을 시간에 흐름에 따라 전시해 놓은 곳으로서
청동기 시대부터 로만 브리튼 그리고 앵글로 색슨 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리쿠르고스 잔(Lycurgus Cup)
4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 제국 시대의 유리잔으로,
외부에서 반사광이 비춰지면 겉면이 녹색으로,
컵 안쪽에서 투과광이 비춰지면 안쪽이 붉은색으로 빛나는 것으로 유명한 유물이다.
유리에 나노단위로 첨가된 금, 은 입자로 인해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려면 컵을 조각내서 내부를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서튼 후 보물(Sutton Hoo Treasures)
외국에서 들여온 유물로 가득한 대영박물관에서 몇 안되는 영국의 유물로,
1939년 영국 서포트 지방에서 발견된 중세 바이킹의 장례 부장품들이다.
서튼 지역의 야산에 묻혀 있던 배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서튼 후의 투구'는 발굴 당시 500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세 암흑기 시절 브리튼 섬에도 발달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물이어서
박물관 내에서도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다.
바로 뒷편에 투구의 복원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루이스 체스맨(Lewis chessmen)
대영박물관의 영국 유물 중 서튼 후 보물 다음으로 유명한 유몰로,
19세기 초반 스코틀랜드 루이스 섬에서 발견된 92개의 체스 놀이말 세트다.
이중 78개는 체스의 킹, 퀸, 비숍, 나이트, 폰을 그대로 의인화해서 만들었다.
12세기 ~ 13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모두 고래 이빨이나 바다코끼리의 이빨을 깎아 만들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판에서 해리 포터와 론 위즐리가
이 유물을 그대로 본뜬 체스를 두는 장면이 등장한 이후 엄청나게 유명해졌으며,
대영박물관 기념품 샵에서도 해당 체스말을 본뜬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성 아그네스 잔(Saint Agnes Cup)
에나멜과 진주로 화려하게 세공된 황금잔.
14세기 말에 프랑스 왕실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300여 년 동안 스페인에 있다가 나중에는 영국 왕실로 소유권이 이전되었으며
1892년부터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높이는 23.6cm, 지름은 17.8cm, 무게는 1.935kg에 달하는 상당히 큰 크기의 잔이다.
잔에는 성 아그네스의 일생이 색색의 에나멜로 칠해져 있는데
만든 지 700년이 넘은 유물치고는 거의 새 것처럼 보존 상태가 양호해서
고고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다.
컵 하단에는 4명의 복음 서기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컵 바닥을 보면 테두리 부분에 진주로 튜더 장미가 씌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헨리 8세 시절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40번 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며 상당히 유명한 유물들 중 하나에 속한다.
6.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전시관
모아이(Moai)☆
이스터 섬에서 가져온 거대한 조각상.
대략 1000년에서 1200년대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스터 섬에 세워진 석상이지만 1868년에 이스터 섬을 탐험한 영국 탐험대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칠 선물로 배에 실어왔고,
빅토리아 여왕은 모아이 석상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했다.
이후 이스터 섬 측에서 반환을 요구 중이지만 영국 정부의 답변은 없다.
아즈텍의 쌍두사(Double-headed Serpent of Aztecs)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에서 만들어진 고대 뱀신의 유물.
귀중한 터키석으로 만들어졌고 홍합과 조개 껍데기로 장식되어 있다.
아즈텍 제국의 몇 남지 않은 유물들 중 하나이며,
길이는 17인치, 높이는 8인치, 두께는 2인치 정도 되며
15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894년에 멕시코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약스칠란 24번 석비(Yaxchilan Lintel 24)
마야 문명의 유적 '약스칠란'에서 가져온 비석이다.
피의 의식을 치르고 있는 약스칠란의 군주 발람 3세와 카발 촉 왕비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1882년 영국의 고고학자 알프레드 모슬레이가 약스칠란의 한 건물 천장에서 뜯어왔다.
원래 다른 석비들도 있었지만 24번 석비를 제외하고 모두 멕시코로 돌아갔다.
이페의 청동 두상(Bronze Head from Ife)
14세기 경에 만들어진 청동 두상으로 왕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나이지리아의 이페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로 발견 당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서구 학자들은 '미개'하다고 여겼던 아프리카인들이 이런 정교한 두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프리카 문화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카융 토템 폴(Kayung Totem Pole)
캐나다의 하이다족이 1850년대에 만든 토템 폴이다.
1903년 무렵 캐나다 식민당국이 대영박물관으로 전달했다.
삼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깎아 부족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빽빽히 새겼다.
베닌 브론즈(Benin Bronze)☆
나이지리아의 베닌 제국의 왕궁에 장식되어 있던 청동 조각품들이다.
대략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다양한 연대에 만들어졌으며,
청동판, 조각 머리, 보석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청동판들은 본래 왕궁의 벽을 장식하던 것으로 왕실의 일대기와
베닌 제국의 역사를 연표식으로 담은 것이었는데,
영국이 약탈하는 과정에서 섞여버려서 올바르게 배열하는 순서는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1897년 영국이 원정을 와서 약탈해갔고,
현재는 대영박물관 외에 독일과 미국의 박물관에도 상당수가 전시되어 있다.
나이지리아 측에서 꾸준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Akan Drum
Drum made of wood with an animal skin head. Made in Ghana, found in Virginia, USA, 18th century.
7. 기타 전시물들
▲ 인간이란 존재의 경계를 넘어선 '내부의 또 다른 나'를 연상하는 이집트의 관 뚜껑(기원전 1000년 경)
▲ 가장 오래된 유물인 8천 년 전 신석기 시대의 해골.
침략과 강탈의 역사
대영 약탈 · 노략질 · 강도 박물관
대영박물관의 어두운 이면을 풍자하는 팜플렛 패러디.
이름은 영국 박물관인데 정작 영국 물건은 별로 없고 타국 유물이 더 많은 박물관이다.
고대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심지어 남태평양에서 온 유물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물이 정당하게 구매하거나 대여해온 것이 아닌,
무단으로 가져온 것이 많아서 장물관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비슷하게 장물관 소리를 듣는 루브르 박물관은
그래도 명색이 프랑스의 중심 박물관답게
프랑스의 작품이 많다는 점에서 대영박물관과 비교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많은 나라에서 대영박물관에 약탈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파르테논 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신전의 장식물(엘긴 마블)들을
그리스에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집트,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약탈당한 자국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약탈 문화재도 소장하고 있는데,
대영박물관 신라 금귀걸이가 한국이 자국의 유물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하였을 때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다. 대영박물관의 소개에 따르면
1938년 5월 24일 당시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을 통해 정식으로 구매한 것이라고 한다.
즉, 장물을 매입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성화에 못 이겨 돌려주거나 배상금을 지불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영박물관에서 영국 것은 건물과 경비원이 전부"라는 뼈 있는 농담도 있을 정도다.
물론 농담일 뿐 영국 유물이 거의 소장되어 있지 않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문화재를 빼앗긴 나라들 입장에서는 큰 원성의 대상이다.
이러한 비난을 의식하고 있는지 최근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화재보다는
합법 구매가 가능한 근현대 미술작품 위주로 소장품을 매입하고 있다.
또한 수집가들에게 합법적으로 기증받은 컬렉션의 경우,
기증자의 프로필과 입수 경로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여담
대영박물관이 그 명성과 수량 및 연간 방문객 통계 또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보니
타 국가 간의 문화전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대영박물관에서는 2009년 최초 행사 이후,
2016년부터 김치, 케이팝, 한가위 및 설날 축제 등 다양한 한국의 문화를
전 세계인들에게 소개하는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2023년 1월 20일에 트위터로 한국의 설날과 한복에 대하여
'아름다운 코리아의 문화'라고 소개하는 글을 올리고 한영 우호 차원에서
박물관 내에 한국 설날 기념공연을 기획했다가
중국의 전통문화를 한국의 문화로 둔갑시켰다면서 중국인들의 집단 테러를 받았다.
결국 1월 22일에 게시물을 다 내리고 '중국 설'이라고 새로 게시하면서 사실상 항복하고 말았다.
당연히 국내 누리꾼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이에 국내 누리꾼들은 댓글에
한국과 관련된 이미지를 넣거나 한국을 언급해 대영박물관과 중국인들을 비판하고 있고,
중국인들은 누리꾼들을 조롱해 두 나라 누리꾼글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와중에 글과 함께 영국이 2차 아편전쟁때 베이징을 함락시키면서 약탈한 그림을 올렸다.
2023년 8월 직원이 유물 약 2,000여점을 훔쳤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런던광역경찰청이 조사에 나섰고 박물관 측에서도 자체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유물 여러 점이 이베이를 통해 팔려나간 것이 확인되었고
박물관은 유출된 유물들을 환수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2021년부터 도난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온 것이 밝혀졌고,
하트윅 피셔 박물관장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점과
도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발표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직원 1명은 해고당했다.
2023년 박물관 관람객 수 TOP 10 순위에서 3위(582만명)를 차지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구경
2023년 1월 23일 영국의 대영박물관을 다녀왔다.
800만 점 이상의 소장품과 70여 개가 넘는 전시실을 보유한 박물관답게 외관부터 멋졌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안은 더욱 웅장했다.
다양한 전시품 중 인상에 남았던 전시품과 관람후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대영박물관 투어의 첫 시작은
위 사진에 보이는 유리 천장, 바로 그레이트 코트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레이트 고트는 영국박물관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비를 막아주고
기존 부족했던 휴게 공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공공 공간에서 새천년을 맞이하며 2000년에 공개한 도시 계획 프로젝트,
일명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것 이라고 한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에는 영국박물관 그레이트 코트 외에도
잘 알려진 테이트 모던 미술관, 밀레니엄 브릿지, 밀레니엄 돔, 런던 아이가 있다.
1. 람세스 2세 조각상(고대 이집트/ 전시실 4)
대영박물관에서 가장 큰 이집트 조각상이라고 한다.
람세스 2세가 통치하던 약 67년 동안 이집트는 큰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크기가 크고 중앙에 놓여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높이가 2.67m)
람세스 2세 조각상 우측에 나있는 커다란 구멍은
람세스궁전에서 런던으로 가져오기 위해 뚫은 구멍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잘리고 가슴에 구멍까지 난 이 조각상의 상처는
영국으로부터 약탈당한 상처를 잘 보여주는 듯했다.
람세스 2세 조각상
2. 아멘호텝 3세 두상(고대 이집트, 전시실 4)
아멘호텝 3세는 특히 당시 이집트 수도였던 테베의 신전을 장식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조각으로 많이 남겼다고 한다.
상하 이집트 왕관을 모두 착용한 아멘홉텝 3세의 모습을 새긴 화강암 석상으로
석상의 한쪽 팔도 옆에 전시되어 있었다.
3. Anhurnakht의 묘비
다음은 비석에 관한 설명이다.아내와 팔짱을 끼고 서 있고, 그의 발밑에는 작은 아들의 형상이 있다.
가정부들은 물건을 바친다: 한 사람은 주인의 입술에 술을 내밀고, 다른 한 사람은 가젤을 들고 다닌다.
수치의 다양한 크기는 인식된 중요성을 명확하게 반영한다.
비석의 출처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Naga el-Deir에서 발견된 비석과 동일한 예술적 손길을 드러낸다.
그림과 텍스트의 무질서한 배열은 중앙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지방 예술의 전형이다.
중요도에 따라서 사람의 크기를 다르게 그린 것과 얼굴은 측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몸통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는 점 등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찍어두었다.
4. 늪지대에서 사냥하는 네버문네바문(부유한 서기관)
무덤은 기원전 1350년경에 만들어졌으며
영생에 대한 이상향을 그린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벽화에 대한 설명이다.
네바문은 작은 배를 타고, 그의 아내 하트셉수트와 그들의 어린 딸과 함께
나일강 습지에서 새들을 사냥하고 있다.
이집트 작화 전통에 따라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네바문을 가장 크게 중앙에 그렸다.
여가의 장면들은 이미 수세기 동안 무덤을 장식하는 전통적인 부분들이었고
무덤 주인이 '아름다움을 보며 즐기고 있다'라고 상형문자가 적혀있다.
비옥한 습지는 재생과 에로티시즘의 장소였기에 단순한 휴양의 이미지를 넘어섰다.
거대한 Nebamun의 걸어 다니는 모습이 습지의 풍요롭고 활기찬 삶에 둘러싸여
영원히 행복하고 영원히 젊은 모습을 두드러지게 한다.
사냥은 음식을 공급해 줄 뿐만 아니라 Nebamun의 승리를 상징했다.
이러한 그림들은 설명에 따라서 그림 속 상황을 읽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집트의 화가들은 사람을 그릴 때 엄격한 규칙을 따라 그렸다고 한다.
머리, 팔, 다리는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렸고 상반신은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렸다.
이러한 모습들이 자연스러움은 없지만 대신 그 신체의 부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술이 주술적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에 무덤에 일상의 모습을 그려
죽은 이가 다음 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명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실제로 이집트어로 조각가를 의미하는 단어는 '생명을 지속시키는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5. 고양이 미라이집트는 후기에 신과 관련된 동물들을 미라로 만들었다.
고양이는 델타의 부바스티스에서 주신으로 섬겼던 바스테트 여신과 관련이 깊으며
이집트 곳곳에 기타 고양잇과 동물들을 신으로 모셨다.
동물 자체를 신으로 모셨다기보다는 그들을 신의 중재자로 여겼다고 한다.
동물들의 미라는 처음 듣는 것이라 신기해서 찍어두었다.
6. 아문 아메노모페 성지자의 인쇄된 목관다음은 목관에 관한 설명이다.
뚜껑은 커다란 꽃무늬 깃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붉은 가죽이 교차되어 있으며,
이는 아마도 보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 케이스의 외부는 태양신의 야행성 여정을 보여주는 Amduat의 장면을 담고 있다:
내부에는 태양 원반과 고인이 다양한 신을 숭배하는 묘사가 있다.
벽화뿐만 아니라 관의 내부와 외부에도 이렇게 화려한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 놀라웠다.
7. 그 외 다양한 미라다음은 미라와 관련한 설명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과 사후세계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복잡한 장례 준비와 의식을 통해 세속적 인간에서 영생의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전시실에서는 관, 미라, 장례 가면, 초상화는 물론 죽은 사람과 함께 수장했던 다양한 부장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영생을 위해 시신을 미라로 만들었고, 대부분의 장기를 제거하여 항아리에 보관했다.
뇌도 제거했지만 이는 보존하지 않았으며, 몸속에 천일염을 채우고 얇고 긴 천으로 단단히 감았다.
사후세계에서 사자의 노동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진 작은 인형 샤브티도 함께 묻었으며,
황소, 악어, 고양이, 독수리 등 다양한 동물을 미라로 만들어 신에게 공물로 바쳤다.
많은 시신과 한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니 미라가 있는 관은 왠지 으스스했다.
영혼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시신을 보존해야 했기에
만든 미라와 왕이 죽은 후에 생활이 부족하지 않도록 그려 넣은
많은 하인과 음식들에서 그들이 사후세계를 특별하게 생각한 점을 엿볼 수 있었다.
CT 스캔했을 때 미라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는 점도 신기하였다.
미라와 벽화 등에 의해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그들의 삶이 읽힌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8. 네레이드 신전(고대 그리스와 로마/전시실 17)
다음은 한국어 안내 책자의 설명이다.
네레이드 신전은 크산토스(현재 터키)에서 발견된 최대 규모의 가장 정교한 리키아 무덤이다.
크산토스 통치자 에르빈나를 위해 만들었다.
에르빈나는 그리스인이 아니었으나 그리스 신전과 유사한 무덤에 묻히길 원했다.
신전의 아름다운 장식 조각을 전시실 벽면에 복원하여 배치하였는데
그리스와 리키아 양식 및 도상체계가 혼재한다.
에르빈나의 조각상처럼 일부 조각의 복식에서 페리시아의 영향도 눈에 띈다.
많은 조각상의 경우 원래 위치가 확실하지 않아 여기 복원된 모습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 신전의 이름은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요정이자 해신 네레우스의 딸들인 네레이드에서 유래했는데
신전 기둥 사이에 네레이드 조각상들이 놓여 있었다.
9. 켄타우로스와 라피테스 메토페파르테논 신전의 92개 메토페 중 하나로
이 작품에는 두 인물의 모습과 그들 사이의 싸움이 섬세히 표현되어 있다.
켄타우로스의 찡그린 코와 드러난 이빨은 그가 느꼈을 고통과 분노의 감정을 잘 드러낸다.
힘줄까지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서 놀랐다.
물론 지금 봐도 놀랍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우리가 아바타 CG를 보면서
진짜 같아라고 놀라는 것처럼 감탄했을 것 같았다.
10. 아이리스 조각상 무지개 여신이자 신들의 전령, 아이리스가 비상하고 있다.
등에 달린 청동 날개는 현재 소실되었다. 대리석에 생명을 불어넣은 듯
섬세하게 조각된 튜닉을 통해 당시 파르테논을 만든 석공들의 놀라운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섬세한 옷 주름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11. 말머리 조각상파르테논의 동쪽 페디먼트에 위치했던 달의 여신 세레네의 마차는
반대편에 놓은 태양의 신 헬리오스 마차와 한 쌍을 이뤘다.
튀어나온 눈과 늘어진 피부에서 밤새 달의 마차를 끌며 하늘을 달린 말의 노고를 느낄 수 있다.
영혼 없이 멍하니 벌어진 입에서 고된 야근을 한 말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12. 웅크린 아프로디테 조각상 아프로디테(비너스)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많이 발견된다.
대부분 실물 크기의 대리석 신상으로 기원전 360년 아테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현재 터키에 위치한 크니도스 시를 위해 만들었다.
이 신상은 로마의 복사판으로만 남아 있으며, 벌거벗은 몸을 감싸는 여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아프로디테 조각상 앞에는 이 조각상을 그리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13. 비너스다음은 조각상과 관련한 설명이다.
사랑의 여신의 어깨에서 무거운 망토가 미끄러져 그녀의 엉덩이에 불안정하게 달라붙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조각품이 기원전 4세기에 작업한 유명한 아테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에 의해 만들어진
아프로디테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래된 스타일과 새로운 스타일을 혼합한 로마의 창조물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조각상은 1775년에 화가이자 상인인 해밀턴에 의해 로마 근처의 고대 목욕탕 건물에서 발견되었다.
18세기에 고대 조각상의 구매자들은 완전한 조각품을 선호했고,
그래서 때때로 유명한 조각가들에 의해 조각된 누락된 부분들이 추가되었다.
이 조각상에는 팔이 복원되었다.
14. 모아이 석상(호아 하카나나이아)(전시실 24)
현무암으로 만든 이 거대한 조각상은 유명 라파누이(이스터섬) 석상(모아이)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하카나나이아는 '훔친 또는 숨은 친구'를 뜻한다.
원래 눈은 적석과 산호로 장식하고 몸통은 붉은색과 흰색으로 그렸다.
야외에 놓았던 것으로 나중에 오롱고 의례소 석실로 옮겼다.
15. 쌍두사 모자이크(멕시코/ 전시실 27)
멕시코 예술을 대표하는 터키석 모자이크는 의례 때 착용한 것(가슴받이 장식)으로 추정된다.
뱀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종교적 도상으로 자주 등장하며, 멕시코의 경우 일부 신들과 관련이 깊다.
16. 방울뱀 조각상쌍두사
모자이크 바로 앞에 있었던 조각으로
뱀의 안쪽까지 볼 수 있도록 거울을 장치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17. 대영박물관 외부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관을 중심으로 돌아보았다.
한국어 안내 책자를 구입하였고 이 안에 있는 작품들 위주로 감상하였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사람, 주변 사람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조용히 작품의 설명과 작품을 번갈아 쳐다보며 탐색하는 사람, 조각상을 그리는 사람,
가이드의 투어를 따라 듣는 사람, 학교에서 단체 견학을 온 학생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영박물관에 모두 머물러 있었다.
어떤 감상 방법을 택하든 과거의 물건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것이 현재의 소통의 장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굉장히 정적인 공간을 역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관람객의 일부로
공간에 머물러 있는 경험이 좋았고
다음에 또 방문을 하게 된다면 그땐 다른 감상 방법을 택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