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바위에 핀 해국
십일월이 중순에 접어든 둘째 수요일이다. 학생들은 한 달 두 차례 있는 가정의 날이라 저녁 공부는 않고 다른 요일보다 일찍 하교했다. 나도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교정을 빠져나왔다.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산책을 나섰다. 가을에 들어 해가 짧아지면서 정상 퇴근하고는 날이 금방 어두워져 산책을 나서지 못했다. 동선을 멀게 잡아 시내버스를 타고 갯가로 나가도 될 듯했다.
연사 정류소로 나가니 건너편 와야봉과 약수봉은 황갈색이 더 짙어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단풍은 남녘 산자락까지 접수했다. 정류소에는 통학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학생들이 시내버스를 타려고 차가 오길 기다렸다. 옥포와 장승포 방면을 비롯해 해안으로 가는 노선들은 모두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하청과 장목을 거쳐 외포를 둘러 옥포에서 능포로 가는 32번 버스가 먼저 와 탔다.
승객은 고현에서 일을 보고 가는 노인들이었다. 병원 진료를 받거나 생필품을 마련해 귀가하는 듯했다. 하굣길 학생들은 자리가 없어 서서 가기도 했다. 하청과 장목을 지날 때 노인과 학생들이 거의 다 내렸다. 버스는 장목삼거리에서 면사무소 앞을 지나 두모실고개를 넘어갔다. 두모실 윗마을에서 아랫마을을 지날 때 내렸다. 여태 내 발길이 닿지 않은 장목 바깥 연안 갯가였다.
두모실을 규모가 제법 큰 마을이었다.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가 선 동구에는 경로당을 겸한 마을 회관이 있었다. 마을에서 가까운 갯가로 나가니 풍광이 좋은 해안은 펜션과 찻집이 들어선 포구였다. 작은 몽돌이 펼쳐진 연안은 밀려온 파도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학동해수욕장에서 들었던 자그락자그락 마찰음이었다. 키로 검불을 가릴 때 콩알이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포구에서 동북쪽으로 거가대교 연륙구간이 아스라이 보였다. 우뚝한 교각을 팽팽하게 당기는 굵은 쇠줄이 뻗친 사장교였다. 해저터널을 지난 가덕도 남단엔 하얀 등대가 뾰족하게 서 있었다. 밤이면 신항만으로 드나드는 선박들의 안전을 지켜줄 등불이 되지 싶었다. 연안에는 바위섬이 몇 개 보였다. 눈앞에는 수평선이 아득하고 대마도가 멀지 않을 대한해협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관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개설되지 않아 찻길은 고갯마루로 올랐다가 내려갔다. 전망이 탁 트인 연안은 횟집을 비롯한 카페와 모텔이 들어서 있었다. 갯바위를 돌아가는 산책 데크는 초가을 태풍 때 일부 유실되어 있었다. 파도가 덮쳐 바닥이 망가진 데크를 조심스럽게 디뎌 갯바위에 닿으니 저물어가는 해국이 보여 반가웠다. 흙살이 없는 바위에 붙어 자라 꽃을 피운 해국이었다.
창원 근교에서 즐겨간 서북산이나 여항산에서 산국은 많이 봤다. 된서리까지 내린 이즈음 산국들은 시들었을 테다. 산국은 해발고도가 어느 정도 되는 산자락에 꽃을 피웠다. 야생에서 자란 국화는 산국 말고도 쑥부쟁이와 구절초와 감국도 있다. 이들과 달리 해국은 바닷가 갯바위에서 자랐다. 흙살이 아주 적은 갯바위에서 분재처럼 자랐다. 해풍에 날려 온 염분도 꿋꿋하게 이겨냈다.
갯바위를 돌아나간 연안도 몽돌이 펼쳐져 카페와 펜션이 이어졌다. 저만치 어부 밥상 민박으로 알려진 이수도가 보였다. 이수도 너머로는 수평선 위 뭉게구름이 뭉쳐 있었다. 대금마을이 가까웠고 대금산에선 산그늘이 내려왔다. 대금 초등학교 분교장은 폐교가 되면서 학생수련원으로 바뀌었다. 그마저 운영난으로 묵혀져 운동장은 시든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되어 유령의 집 같았다.
배차 간격이 한 시간인 능포에서 장승포를 거쳐 장목으로 가는 버스가 외포쯤 오고 있었다. 그 버스를 탔더니 승객은 몇 되지 않았다. 두모실고개를 넘으니 장목이었다. 실전삼거리 칠천도다리 길목에 이르니 날이 저무는 칠천량은 석양에 물들어갔다. 하청을 지나 연초삼거리를 지나 연사마을에서 내렸다. 어둠이 내린 연초천 연효교는 조명이 들어오고 산책로에는 보안등이 켜졌다. 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