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전55승5패. 풍운아 나폴레옹의 전적이다.
9할이 넘는 승률에도 끝내 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답은 ‘경제’에 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의 함대에 패해 영국 점령을 포기한 그는 1806년 신성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베를린 칙령’을 발표, 영국과의 무역을 금지시킨다.
이듬해인 1807년11월23일, 영국에 기항한 배까지 나포하겠다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한다.
두 칙령의 통칭이 대륙봉쇄령이다.
고통은 영국보다 프랑스와 동맹국에게 돌아갔다.
상인들이 밀무역에 나섰고 프랑스의 관세수입은 격감했다.
목재와 곡물 수출 길이 막힌 러시아가 공공연히 영국과 무역을 재개하자 나폴레옹은 원정에 나선다.
동장군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대륙봉쇄령은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령 캐나다와의 영토 분쟁, 영국의 미국 선박 나포에 시달리던 미국과 영국의 전쟁이 발발한다.
1차영미전쟁에서 영국군의 방화로 검게 그을린 대통령 관저를 흰 페인트로 칠한 게 백악관의 유래다.
커피 주산지인 아프리카 항로가 대륙봉쇄령으로 막히자 대체 산지로 모색된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유럽의 사설금융업자로 머물던 유대인도 이 때부터 세계 상권의 전면에 등장한다.
대륙봉쇄령을 뚫고 밀무역을 주도한 덕이다.
‘로스차일드가의 지원이 없으면 유럽의 어느 왕도 전쟁을 할 수 없다’란 말도 나왔다.
나폴레옹 전쟁의 이면에는 대륙봉쇄령이라는 경제전쟁이 있었다.
영국의 자본력과 프랑스의 군사력 싸움은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2,400여년 전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지탱하는 것은 축적된 자본이다.
’/권홍우ㆍ경제부 차장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세계의 돈 움켜준 로스차일드家 신화
[국민일보 2002-01-15 11:07]
“…세계 경제는 오래 전부터 몇 사람의 환전꾼들에 의해 조종되어 왔으며,이들의 정체는 ‘프리메이슨’이라는 오랜 전통의 유태인 비밀조직이다. UN을 비롯해 IMF,BIS,IBRD 등 국제기구도 모두 이들의 작품이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난다.프리메이슨의 시조가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이들은 2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1929년 미국대공황과 한국의 IMF도 일으켰다”(‘세계를 움직이는 그림자정부―경제편’·아라유카바 최 지음·해냄출판사)
18세기초 프랑크푸르트의 유태인 거주지역에서 발원한 로스차일드 일가는 21세기까지 ‘악마적 매력’을 가진 금융 재벌로 세계 위에 군림하고 있다.역사적으로 전쟁·혁명·공황을 거치며 사라져간 수많은 금융재벌들을 생각한다면 250년 세월에 걸친 금융계 황제 가문은 기적 그 자체다.로스차일드사는 실제로 한국의 IMF사태 이후 국내에도 들어와 구조조정,인수합병,경영평가,기업합작 등에도 관여했다.
영국의 저명 전기작가인 데릭 윌슨은 유태계 금융재벌로 세계 다국적 기업의 최초 모델이며 2차대전이후로는 비밀에 싸여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파란만장했던 250년 역사를 훑고 있다.다소 엉뚱해진 번역판 제목과 달리 원제는 ‘로스차일드:어느 왕조의 부와 권력’(Rothschild:The Wealth and Power of a Dynasty)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174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더럽고 비좁은 유태인 전용주거지역 게토에서 태어났다.이곳에서 고물상과 환전꾼 일을 하던 그는 유럽 최고의 부자가 된 빌헬름 9세의 구화폐(舊貨幣) 수집 취미에 맞는 좋은 물건을 공급하면서 기회를 잡는다.조상대대로 무력(武力)장사를 해온 카셀공국의 영주 빌헬름 9세는 용병들을 영국에다 팔고 1명 죽을 때마다 특별위로금까지 챙겨 부를 챙겼다.50년 뒤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으로 자유를 찾은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유럽 최고 군주의 고액자금을 조달 관리하며 금융가의 대열에 들어간다.
고물상에서 기적의 역사를 일으킨 마이어의 다섯 아들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영국 런던,프랑스 파리,오스트리아 빈,이탈리아 나폴리 등 유럽각국에서 막대한 부를 쌓는다.형제들의 결속력은 부친이 즐겨 들려주던 기원전 6세기 스키타이왕의 ‘낱개의 화살과 화살 다발의 힘’ 일화가 한몫했다.로스차일드(Rothschild)는 게토지역에 거주할 때 집의 문장(紋章) ‘빨간 방패’를 뜻하는 로트 실트(rot Schild)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며 독일식으로는 ‘로트실트’가문이다.이 빨간방패 문장 속 다섯 개의 화살은 이들 다섯 형제를 의미한다.
다섯 중 가장 똑똑했던 셋째 네이선이 1798년 가장 먼저 게토를 탈출해 영국 맨체스터에 정착,직물수입사업과 환전업 등으로 성공한다.나중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 않는 떠돌이배 선장들과 결탁,금괴밀수 등을 통해 전란에 휩싸였던 유럽의 정세 속에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형제들의 대륙진출도 도왔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네이선이 1815년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패배를 하루 먼저 알아냈고 거짓정보를 흘려 막대한 투자차익을 얻은 사건이다.‘…그림자정부’는 워털루전쟁 자체를 환전꾼 네이선 로스차일드와 나폴레옹 사이의 비밀 협약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정보가 곧 돈’이라는 믿음은 인간적 삶의 무기는 오로지 ‘돈’이라고 믿었던 이들 집안이 발견한 기업 전략이었다.돈과 정보의 힘은 천대받던 빨간방패 가문을 유럽 최고의 금융가문으로 만들었고 유대민족 2000년 유랑의 한을 푸는 이스라엘 건국의 발포어선언을 이끌어내는 힘도 됐다.로스차일드 집안은 이스라엘 건국의 재정적 후원자이기도 하다.
한때 러시아황제를 비롯해 유럽의 모든 왕실과 나폴레옹황제 일족까지 조종했던 로스차일드가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로스차일드는 끝났다”고 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지만 1960년대 원폭 제조의 원료인 캐나다 호주 아프리카의 우라늄광을 손에 넣으며 재기에 성공한다.저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3권에 풀어놓으며 드레퓌스사건,워털루전투,아편전쟁,영국의 수에즈운화 매수,이스라엘 건국,뉴욕증시 폭락 등 19∼20세기 모든 세기적 사건에 개입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스탈린이 초기 히틀러의 승승장구를 도와줄 때 유럽의 석유왕이었던 이 집안의 헨리 데터링이 소련에 유전을 갖고 있었다.그는 나중에 나치 여당원과 재혼하고 자신도 나치당원이 돼 독일에 정착해 히틀러에 자금을 대기도 한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본격화됐지만 미국사회는 이에 무관심했고 오히려 친나치주의자들까지 날뛰던 시절에 로스차일드가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부추겨 미국의 참전을 끌어내는 데에도 공헌한다.책은 프랑스 드골과 영국의 처칠도 ‘로스차일드 집안의 대리인’으로 그린다.로스차일드는 석유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항공 곡물 홍차 와인 레저 백화점 문화 영화 학술 의학 국제금융 등 전 분야에 걸쳐 다국적 조직을 갖고 있으며 로이터,UPI,AP 등 통신사와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셋째 권에서 저자는 유태인들의 비밀조직(프리메이슨)이 세상을 돈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과 관련해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을 비롯한 국제 기업사냥꾼과 국제 투기꾼 8명의 배경에 숨어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찾아낸다.하지만 로스차일드가로부터 충실한 자료협조를 받았던 저자는 모든 유태인을 한 통속으로 몰아세우는 ‘그림자 정부’식의 음모론은 유태인 대학살을 정당화했던 나치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고 경고한다.
“만일 철저한 금전욕이 없다면 로스차일드집안은 19세기에 소멸했을 것이고,악마적인 매력도 없을 것이다…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바닷속에 로스차일드집안의 얼마나 거대한 얼음산 덩어리가 숨어있는지는 상상할 수 없으리라”(전3권·데릭 윌슨·동서문화사·각권 1만원).
《돈과 인간의 역사(Wo das Geld die Welt regiert)》
클라우스 뮐러 지음/ 김대웅 옮김/ 이미고/1만5,000원
“1943년 말에 영국은 위조화폐의 물결로 시끄러웠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위조화폐는 전체 화폐의 약 50%에 달했다. 따라서 영국은행은 모든 지폐를 회수하였고 10파운드 지폐를 없앴으며 나중에 5파운드 지폐도 무효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이는 모두 위조 지폐를 조직적으로 생산했던 히틀러 덕분이었다. 히틀러는 포로수용소에 위조지폐국을 만들어놓고 파운드와 달러를 찍어낸 것이다. ”
저자 클라우스 뮐러는 이처럼 화폐의 역사 그 이면에 감춰진 수많은 음모와 의혹을 파헤치면서 돈과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정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돈으로 권력을 사다 = 필리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를 이끌고 트라키아를 정벌함으로써 에게 해의 지배자가 되었고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손에 넣었다. 1970년대 중반 서독에서는 59명의 전직 장관들이 200개가 넘는 회사의 중역 자리를 차지했다.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레이건은 수천명의 재벌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았다. 정치가의 이름은 바뀌지만 고대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원칙, 즉 권력은 돈을 쓰는 자가 갖기 마련이며 돈과 권력은 상부상조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메디치 가문은 교황을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결국 조반니 메디치를 교황 레오 10세가 되도록 하였고, 대부호 야코프 푸거는 막시밀리안 1세에게 황제의 왕관을 씌워 주었다. 자본과 권력의 결탁은 미국의 워터 게이트나 독일의 플리크 사건과 같은 정치적 사건으로 폭로되기도 하지만 이런 사건의 종말은 늘 틀에 박힌 범죄 영화처럼 시시하게 끝이 난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교묘하게 그 상황을 빠져나간다.
부자와 가난한 자 = 록펠러, 뒤퐁, 멜런, 포드, 게티, 케네디, 모건과 같은 이름은 미국에서는 부 또는 권력과 같은 의미로 통한다. 영국에서는 해밀턴, 로스차일드, 슈뢰더가 그런 이름들이다. 지벤스, 플리크, 튀센, 크루프는 독일 거대자본의 소유주들이다. 이 ‘위대한 가문’은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가진 재산가다. 몇 천명 밖에 안 되는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친인척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이며 국내 또는 국제 무대에서 엄청난 금융활동을 한다.
위조지폐를 만드는 사람들 = 주화 위조나 사기는 재정의 어려움을 모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아우렐리우스시대에 은화의 95퍼센트가 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영국의 헨리 8세는 해외 정복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의회가 승인해 주지 않자 주화의 은을 3분의 1로 줄인 새로운 주화를 찍어냈다. 또한 770년대 초 영국 총리 윌리엄 피트는 수십억 프랑의 위조지폐를 프랑스에 유포시켜 시민혁명에 심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화폐 위조의 제왕이라 불린 크뤼커는 히틀러를 위해 집단 수용소에서 위조지폐를 만들어냈다.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 권력과 부를 얻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훔치는 것이다. 권력과 돈을 얻으려는 대규모 약탈은 역사 속에서 거듭되어 왔다. 알렉산더 대왕의 젊은 신하 하르팔로스는 이소스 전투 직전에 대왕의 금고를 갖고 사라졌다. 또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금’을 위한 양심 없는 약탈이 자행되었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과 행복은 가차없이 희생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리마의 고고학 박물관 습격 사건, 나치스의 유태인 약탈, 돈을 노린 유괴 사건 등 돈을 위한 약탈은 그 수단과 방법이 점점 교묘해졌다. 급기야 직무상의 직위를 이용해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화이트칼라 범죄로 금융 관련 사건들이 늘어났다. 이제 합법적인 사업과 불법적인 사업 간의 경계선은 거의 알아낼 수 없을 만큼 애매하다.
돈이 세계를 지배하다 = 주식, 어음, 은행, 그리고 증권거래소 등이 생긴 이래 도박장에서만 돈을 따고 잃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투기와 증권투기는 룰렛 판에서의 도박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도 일확천금을 얻거나 알거지가 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완전히 이성을 잃게 되기도 한다. 1630년대 초반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 공황은 투기 연구가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사건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18세기 초 프랑스의 국가 재정이 바닥났을 무렵, 신용 제도의 신봉자 존 로는 주식 은행을 통해 미래의 자본주의상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 후 1929년 10월의 ‘검은 금요일’사건은 세계적 경제 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은행의 도산으로 시민의 돈은 사라졌고 불법적인 외환 거래를 한 은행가들은 언제나처럼 법의 판결이 아닌 보호를 받았다. 환전업이나 은행 및 신용 제도들이 발달할수록 가장 거대한 도박이나 사기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그리고 주식 투자란 항상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성공의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통화체제가 무너지다 = 국가 재정 및 화폐 거래는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계속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1970년 이래 통화 전선에는 계속되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전쟁, 골드러시, 은 쇼크, 환율 불안정, 자본 도피 등의 사건들이 뜨겁게 몰아쳤다. 통화 불안정은 재정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자본주의 세계의 신경 중추인 통화 체계는 훼손되었다.
70년대의 가장 큰 사건은 달러화의 급속한 하락이었다. 이러한 위기가 가져온 골드러시는 미국 경제의 불안정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기존 경제와 재정 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된다.
한편 프랑스는 이른 시일 안에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이자율 조정에 나섰다. 원래 생산력이 없는 화폐가 화폐의 본성을 거스르고 마치 스스로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화폐를 낳게 된다. 이자 취득을 반대했던 이전의 견해는 상품 생산과 화폐 경제가 확고한 기반을 차지하고 자본주의 경제 형태가 주목받기 시작하자 불가피하게 변화되었다.
미래 사회의 인간에게는 화폐가 한때 인간 사회에서 어떠한 힘과 마력을 소유했는가 상상하는 일이 무척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한겨레] [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 명가문의 조건1 - 로스차일드] 창업자 마이어 암셀로부터 8대째 내려오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어떻게 부와 명성을 쌓았나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보상이다.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 같으니,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구약성서 시편 127편) ‘워털루전투 사건’으로 유명해지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기초를 세운 사람은 마이어 암셀(1744~1812년)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게토(유대인 집단거주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교 랍비양성학교에 다니다가 11살 때 부모가 천연두로 죽자 학교를 그만두고 소년가장으로 경제생활에 들어갔다. 유대인 사설금융업자의 도제로서 경험을 쌓은 그는 통일 이전 독일의 제후 귀족 부호들을 상대로 옛날 화폐와 골동품 등을 팔아 돈을 번다. 이와 함께 의도적으로 독일의 권세가들에게 접근해 결국 헤센카젤공국의 지배자인 하나우공 빌헬름의 신임을 얻어 궁정 어용상인이 된다.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붉은색(rot)과 방패(schild)의 합성어로, 마이어 암셀의 집에 붙은 붉은 방패에서 비롯됐다.
그 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유럽의 군주국가들과 전면적인 전쟁에 들어가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하자 마이어 암셀은 빌헬름의 빼돌린 재산을 대신 관리하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다. 이때 이미 영국에 진출해 있던 야심적이고 모험적인 셋째 아들 네이선(1777~1836년)은 이 비밀자금을 정식으로 투자하기 전에 여러 나라의 국채를 사고 되팔아 엄청난 단기차익을 챙기고 사업적 명망까지 얻는 데 성공한다. 네이선은 이 자금으로 채권, 금, 주식, 밀무역 등에 투자한다. 그 뒤 마이어 암셀의 다른 네 아들도 각각 프랑크푸르트(첫째 아들 암셀), 빈(둘째 살로몬), 나폴리(넷째 칼), 파리(다섯째 제임스)로 진출해 혁명과 전쟁의 대변혁기에 가장 이른 시간 안에 주요 정보를 공유한 채 유럽 전역을 커버하는 선진금융 기법으로 막대한 부를 쌓는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워털루전투 사건’일 것이다. 당시 유럽 전역을 무대로 가장 빠른 정보입수-전달 체계를 구축하던 로스차일드상회는 워털루전투의 결과를 자체 능력으로 런던상회에서 24시간 정도 일찍 알 수 있었다. 이 정보력을 바탕으로 영국 정부의 국채를 몇 시간 일찍 무더기로 사들이는 등의 방법으로 무려 1억3500만프랑의 이익을 얻었다고 알려진다. 한편 다섯 아들은 모두 유럽의 중심국가 오스트리아제국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는다. 작위를 받으며 5발의 화살을 쥔 손이 그려진 문장을 사용한 것을 계기로 그 뒤 형제에게는 ‘5발의 화살’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나폴레옹 전쟁 뒤 로스차일드 가문은 사실상 ‘유럽의 숨은 지배자’가 된다. 전쟁 중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의 전비를 조달하기 위한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는가 하면, 이베리아반도에 진출한 영국군의 자금 조달에도 크게 기여했다. 나아가 네이선은 영국을 겨냥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뚫고 영국 상품의 비밀교역을 주도했다. 결국 세계 최강대국 영국의 재정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네이선이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됐고, 막내 제임스도 프랑스에서 국왕 루이 필립과의 친교를 바탕으로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과시하는 지위에 올랐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로스차일드의 지원이 없으면 유럽의 어느 왕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고대 유대인은 한 왕에게 복종했다는데, 지금은 여러 왕들이 한 유대인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철저히 유대적인 성공요인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후 막대한 자금력과 정보력 그리고 각국 정치권력과의 밀접한 유대관계 등을 활용해 유럽을 휩쓴 산업혁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 부를 더욱 늘렸다. 프랑스의 경우 프러시아전쟁에서 패배한 뒤 1871, 1872년 두 차례에 걸쳐 배상금을 조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영국에서는 몇 시간 만에 400만파운드를 영국 정부에 조달해 수에즈운하의 주식을 영국이 전격적으로 인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엄청난 부와 이런 뛰어난 공로를 바탕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자 유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재벌가문으로 부상한다. 한편 19세기 후반부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새로 건국하는 민족적 프로젝트에도 깊숙이 관여해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다.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업을 기본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레저산업, 백화점 등의 분야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런던의 로스차일드은행은 잉글랜드은행의 대리점으로서 국제 금가격을 결정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프랑스의 최고급 포도주 가운데 하나인 보르도의 샤토 무통, 샤토 라피트 등을 생산하는 포도원도 이 가문의 소유이다. 현재 표면적으로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10명이 약 15억달러 자산을 소유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 자산은 그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가문의 국제적 명성과 신용은 여전히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성공을 거둔 요인으로는 이런 것들을 꼽을 수 있다.
1. 단결: 가문의 형제들이 하나의 화살묶음처럼 뭉쳤다.
2. 네트워크 경영: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의 효율을 최대로 높이고, 위험을 분산시켰다.
3. 신용경영: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해 신용을 쌓고 다음 단계에 더 큰 거래를 장악했다.
4. 정보경영: 가장 정확한 정보로 가장 빠르게 사업기회를 잡아나가는 선진 경영기법을 동원했다.
5. 정경유착: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권력자와의 인맥을 형성해 사업기회를 잡는 데 능숙했다.
6. 2세 체제 준비: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경제교육(상황에 따라선 실무교육까지)을 시켰다.
이런 요인들은 다른 한편으로 대단히 유대적인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형제들이 뭉치는 것은 유대인들의 가족경영 방식과 일치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만든 회사 이름을 보면 ‘로스차일드 부자상회’ ‘로스차일드 형제상회’로 돼 있다. 실제로 월가에서 활동하는 레만 브라더스 은행도 이름 그대로다. 유대인들은 혈육이 같이 사업을 벌여 성공하거나 먼저 성공한 사람이 다른 형제를, 사촌을 차례로 끌어들이는 식으로 사업을 발전시키곤 한다.
어려서부터 실전형 경제교육을 받다 네트워크 경영은 당시 유대인이 처한 시대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유럽 각국에서 박해받는 소수였던 유대인들은 국가간 이동을 자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동과 이주에 따라 도시마다 유대인 거주지역과 유대교 회당(시나고그)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었다. 바로 이 시나고그 등 유대인 공동체가 시대 변화에 따라 중요한 경영 거점이 된다. 자연발생적인 유대인의 상공회의소, 정보시장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시대 변화에 따라 유대인의 존재 방식이 실제로 새로운 경영에 대단히 유용하리라는 것을 일찍 깨닫고 대응한 것이다.
정보경영은 역사를 통해 유대인들이 지적 자산을 축적하거나 계승하고 공유해온 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은 한편으로는 유대인의 게토로부터의 해방, 산업분야로의 본격 진출, 정치적 권리의 확대 등을 가능하게 했다. 유대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닥쳐온 이런 기회들에 과감하게 대응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지적 역량을 최대로 결합해 승부한 것이다. 그들은 전체의 대세를 정확히 읽고 거기서 벌어지는 개개 사안의 주요 정보를 일찍 파악해 유럽의 전통적인 은행이나 자본보다 훨씬 과감하고 빠르게 투기에 나서 성공한 것이다.
2세들에 대한 경제교육은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로스차일드의 경우 제2대 격인 ‘5발의 화살’ 형제들이 모두 어려서부터 실전형 경제교육을 충분히 마친 상태였다.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 암셀의 사업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돼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유대인의 경제교육은 거의 원초적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이 성경으로 삼는 모세 5경 가운데 하나인 ‘민수기’를 보면 금방 이해할 만하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에게 난 자를… 20살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를 다 계수하니 4만6500명이었다. …시므온의 아들들에게 난 자를… 계수하니 5만9300명이었다. …갓의 아들들에게 난 자를… 계수하니 4만5650명이었다. …” 이런 성경 구절을 어려서부터 읽고 암송해온 유대인에게 숫자는 인생의 기초이자 곧 돈벌이의 기초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왜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나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은 창업자 격인 마이어 암셀로부터 대략 8대째에 이르고 있다. 가문이 초기의 활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선 2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1800년대 후반 정세 판단을 잘못해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진출에 대해선 ‘5발의 화살’ 형제 가운데 3남인 네이선 못지않게 사업을 잘한 것으로 평가받는 5남 제임스가 자신의 장남이 낸 미국 진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지나친 유럽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셈이다. 둘째로, 세대가 내려갈수록 선조들만큼 뛰어난 경영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해선 조심스럽게 가문 내부의 근친결혼 관련설을 거론하는 의견도 나온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파리상회의 창업자 격인 제임스가 조카딸과 결혼하고 그 딸이 다시 사촌과 결혼하는 등 근친결혼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토록 구대륙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문에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역시 신은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는 법일까?
유대인, 지독한 부자들
로스차일드 이외에도 많은 경제인들이 세계 경제에서 강력한 힘을 과시해왔다. 특히 20세기 초반 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감에 따라 미국에서 유대인 부호도 많이 나오고 있다.
퀀텀펀드를 설립해 운용하는 헤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도 유대인이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관련이 있는 인물로 알려졌으며, 당시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최상급 대우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라클의 창업자 겸 회장인 래리 엘리슨도 유대인으로 2000년 당시 자산 약 580억달러를 보유해 미국 제2위의 부자로 집계된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은 스티븐 발머, 델컴퓨터의 창업주 마이클 델, 복합 미디어 그룹인 비아컴의 회장인 섬너 레드스톤, 하얏트호텔 체인 등 시카고의 부동산 재벌인 마몬그룹을 소유한 로버트 프리츠커와 토머스 프리츠커도 유대인이다. 블룸버그통신의 회장이었다가 지금은 뉴욕시장으로 선출돼 재임 중인 마이클 블룸버그, 세계적인 화장품 에스티로더의 회장인 레너드 로더, 유명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역시 유대인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로렌스 부시는 1998년 기준으로 유대인이 소유하거나 직접 경영하는 기업이 미국 국민총생산(GNP)의 8~10%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개인 소유 재산으로 본 ‘미국 자산가 상위 400명의 부호 서열’(경제잡지 <포브스> 2000년 10월 간행)을 분석하면 이 가운데 적어도 64명, 16%가 유대인인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미국 전체 인구 중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2%를 조금 넘는 점을 감안하면 부호 집적도가 가장 높은 민족그룹에 들어간다.
미국의 우량 헤드헌팅 회사인 토머스 네프가 1999년 발표한 ‘미국기업 리더 베스트 50인’ 가운데 유대인은 적어도 8명, 즉 16%였다. 이 조사에서 유대인인 사람은 다음과 같다.
# 델컴퓨터: 마이클 델(기업명: 경영자)
# 월트디즈니: 마이클 아이스너
# GAP(의류 소매): 도널드 피셔
# 베어 스턴스(투자은행): 앨런 그린버그
# AIG(보험): 모리스 그린버그
# 인텔(반도체): 앤디 그로브
#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 시티그룹(금융 증권): 샌포드 웨일
[온 + 오프 항해지도]
▶ 중고생
-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1, 2, 3> 데릭 윌슨/동서문화사▶▶ 대학생 이상
- <솔로몬 탈무드> 이희영/동서문화사
- <미국 경제의 유태인 파워> 사토 다다유키/가야넷
- <세계종교 둘러보기> 오강남/현암사
- <세계재벌지도> 구보 이와오/평범사 신서(일본책)
- 〈The House of Rothschild 1798~1848〉
Niall Perguson/Penguin Books
- 〈The House of Rothschild 1849~1999〉 Niall Perguson/Penguin Books
[COMING SOON]
자료제공, 도움말씀 기다립니다.
okh1234@empal.com▶ 다음호: 명가문의 조건2- 영국 왕실 ▶▶ 다다음호: 명가문의 조건3- 경주 최부잣집
the sinews of war is infinite money 라고 키케로가 말하지 않았나요? 이번 주부터 아나바시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범우사) 읽기 시작했는데, 매우 자세히 그리고 사실적으로 기술했더군요. 갈리아 전기도 그렇고 위 글들도 그렇고, 매 문장마다 글 번호-_-가 매겨져 있는 이유가 뭔지 설명 부탁 드릴께요^^
첫댓글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예산!! 음흐흐흐흐 황금 만능주의 만쉐이~(응?)
the sinews of war is infinite money 라고 키케로가 말하지 않았나요? 이번 주부터 아나바시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범우사) 읽기 시작했는데, 매우 자세히 그리고 사실적으로 기술했더군요. 갈리아 전기도 그렇고 위 글들도 그렇고, 매 문장마다 글 번호-_-가 매겨져 있는 이유가 뭔지 설명 부탁 드릴께요^^
그렇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건 유대인도 아니고, 프리메이슨도 아니고, 네오나치도 아니고, 부시행정부도 아닌, 돈입니다..(-_-)